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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북한대사관)에 가면 냉면도, 불고기도 준다"

동백림사건 당시 독일 유학생 박동희 교수 증언....석방 후 만난 윤이상 "나는 죄 없다"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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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윤이상은 베를린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우리에게 그의 음악은 낯설기만 합니다. 윤이상 탄생 100돌을 맞는 오늘, 국민과 함께 윤이상이 사랑했던 이 땅, 이 바다, 이 하늘의 소리를 그의 음악에서 발견하고 즐길 날을 기대해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이상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오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는 취소시키더니, 윤이상의 생일은 대통령이 나서서 챙긴다. 하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대통령 부인 김정숙씨는 지난 75일 베를린에 있는 윤이상의 무덤에 참배, 식수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윤 선생이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가져오게 됐다. 선생의 마음도 풀리시길 바란다.”

윤이상이 독립운동가였던가?’싶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말이었다. 김정숙씨의 일을 계기로 <월간조선> 8월호에 대통령 부인 김정숙씨가 참배한 윤이상은 누구인가?’라는 기사를 썼다. 시비를 피하기 위해 윤이상과 그의 부부 이수자의 회고록을 주된 자료로 사용했다. 두 사람은 여기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혐오와 김일성에 대한 흠모의 정을 감추지 않았다.

기사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박동희(83) 건국대 명예교수(법학)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박 교수는 윤이상과 같은 무렵 독일 유학을 했다면서 그 시절 혹시나하고 생각했던 의문들이 배 기자 기사를 보고 많이 풀렸다고 말했다.

지난 830일 박동희 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내가 윤이상에 대해 특별히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나오고 북한에 기울게 된 당시의 분위기 정도는 얘기해 줄 수 있겠다 싶어서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박동희 교수는 기자가 윤이상에 대한 기사에서 윤이상이 북한으로 기울게 된 것은 혹시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던 가난한 음악도에 대한 한국과 북한의 태도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한 데 대해 공감을 표시했다. 1963년 본 대학 법학과로 유학을 간 박 교수는 당시 독일 유학생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냉면을 먹고 싶으면 동백림(동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에 가라는 말이 돌았다고 말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달러가 없어서 대사를 제외한 공관원들은 가족을 데리고 나오지 못하던 시절이었어요. 교민사회라야 유학생들이 전부였구요. 어디 가서 한식을 먹을 데가 없었어요. 그런데 동백림에 있는 북한 대사관에 가면 냉면을 준다는 거예요. '정말 거기 가면 냉면을 먹을 수 있을까'라고 하면 '불고기도 준대'라고 하더군요.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지요.”
박동희 교수는 1959년부터 윤이상이 자동차를 갖고 있었다는 기자의 기사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면고 말했다.
 "그 가난하던 시절에, 유학생 신분으로 자동차를 소유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누가 돈을 주지 않고서야...."

박동희 교수는 임석진 전 서울대 교수와 절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임석진 교수는 독일 유학 중 북한에 포섭되어 북한을 드나들었지만, 결국 독일 교민 사회에 침투한 북한 공작의 실태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제보했다. 그의 제보가 동백림사건의 단초가 됐다. 이후 임 교수는 헤겔 철학의 세계적 권위자가 됐지만, 좌편향된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는 배신자로 몰려 인정을 받지 못했다.

임석진 교수는 서백림(서베를린), 나는 본에 있었어요. 임 교수가 여러 번 서백림에 한 번 다녀가라고 했어요. ‘밥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데, 거기 갈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그는 여비는 자기가 전부 부담할 테니 다녀가기만 하라고 했어요. 나중에 동백림사건이 터진 후에 , 임석진이 나를 포섭하려고 그런 거구나싶었어요.”

- 임 교수가 친북-용공적인 발언을 하거나, 북한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한 적은 있나요.

그런 적은 없어요. 먼저 나를 서백림으로 부른 후, 서서히 포섭해보려고 한 게 아닐까 싶어요.”

박동희 교수는 윤이상을 세 번쯤 만났다고 했다. 한번은 1963년 독일(서독) 두이스부르크에서 한인회가 결성될 때, 또 한 번은 1964년 경 주독 한국대사관 앞에서, 마지막은 1970년 윤이상의 자택에서였다고 한다.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오기 전까지는 독일 교민이라야 유학생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아마 독일 전역에 200명 정도 됐을 겁니다. 이 대학 저 대학에 20~30명 정도 됐던 것으로 압니다. 프랑스에도 200여명 쯤 있었고...얼굴은 몰라도 어느 학교 출신 누구는 지금 파리 무슨 대학에 있다는 식으로 유럽 내 유학생들은 서로에 대한 소식들을 알고 있었어요. 음악을 하던 사람은 이화여대 출신 성악가를 제외하면 윤이상 하나였을 것입니다. 음악가를 낮추어보던 분위기도 있고 해서, 동백림사건 이전까지 윤이상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1963년에 윤이상이 두이스부르크에서 재독 교포들을 소집해 한인회를 처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윤이상이 회장이 됐죠. 그때까지만 해도 유학생회는 있었어도 한인회는 없었어요. 이후 유럽 다른 나라에 있는 교민들도 한인회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유럽의 한인회들은 좌파성향이 강했습니다. 배 기자의 기사에서 1959년부터 윤이상이 북한과 접촉이 있었다는 대목을 보고, 한인회를 만든 것이 김일성의 지령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박 교수는 한인회에서 활동하거나 윤이상과 어울리지는 않았다고 했다.

나도 유학생 모임 같은 데서 박정희 정권을 쿠데타 정권이라고 강하게 비난하곤 했어요. 그 바람에 대사관의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나를 주시하기도 했지만, 좌파쪽으로 기울지는 않았어요. 동백림 사건 후 나도 중앙정보부 요원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빨갱이' 운운하는 협박편지를 받고 두려워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잡혀오지는 않았죠."

박동희 교수는 윤이상-이수자 부부가, 동백림 사건이 일어난 후 독일 문화예술인들이 적극적으로 구명운동에 나선 덕분에 윤이상이 구명된 것처럼 주장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독일(서독) 정부는 처음에는 이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가서도 윤이상 등 개인의 인권보다는,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서독에 들어와 윤이상 등을 한국으로 연행해 간 것이 자국의 주권을 침해했다는 점을 더 중요시했어요. 당시 본 대학 형법 교수로 내 지도교수이기도 했던 그륀발트 교수가 독일 정부의 대표로 들어와 윤이상 재판 과정 등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륀발트 교수는 한국으로 가면서 너를 통역으로 데려가고 싶은데, 그랬다가 네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못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윤이상이 구명된 것은 독일 정부의 이런 노력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윤이상은 196912월 석방돼 독일로 돌아갔다. 이듬해 박동희 교수는 윤이상의 집에 찾아갈 기회가 생겼다.

문학평론가 곽종원 선생이 독일에 오게 됐는데, 본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윤이상을 만나도 되겠느냐고 문의했어요. 대사관에서 상관없다고 했대요. 그래서 곽 선생이 윤이상의 집을 가는데 안내자로 동행했습니다.

30분쯤 있었는데, 주로 둘 사이에 있었던 옛날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윤이상은 나는 죄가 없다면서 애국자처럼 이야기를 하더군요.”

박동희 교수는 윤이상의 음악적 성취에 대해서도 한국에서 과장된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윤이상의 음악은 서양인들이 만들어냈지만, 그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음악이에요. 나도 음악에 관심이 있어서 독일의 음악잡지들을 보고 있지만, 윤이상을 높이 평가하는 건 본 기억이 없어요. 그냥 그런 음악가가 있다는 정도로만 소개되고 있어요.”

 

입력 :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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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년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 등이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제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면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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