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아번님이 돌아가신 후
남기신 일기장 한 권을 들고 왔다.
모년 모일 ‘종일본가(終日本家)’
‘종일본가’가
하루 온 종일 집에만 계셨다는 이야기다
이 ‘종일본가’가
전체의 팔 할을 훨씬 넘는 일기장을 뒤적이다

해 저문 저녁
침침한 눈으로 돋보기를 끼시고
그날도 어제처럼
‘종일본가’를 쓰셨을
아번님의 고독한 노년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
‘종일본가’를 해보며
일기장에 이런 글귀를 채워 넣던
아번님의 그 말할 수 없이 적적하던 심정을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동순의 시 ‘아번님의 종일본가’를 읽으면 슬퍼진다. 가슴이 매인다. ‘終日本家’하며 사는 갑갑한 老年의 삶이 눈에 선하다.

  문득 혼자서 밥해 드시고, 얼마 안 되는 밭떼기를 호미로 쪼으시며, 밤에는 스탠드 아래 두꺼운 돋보기를 쓰고 과월호 月刊紙를 뒤적이실 내 아버지가 생각난다. 지난 2000년 5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렇게 혼자 사신다. 경북 경주시 산내면 우라리.

  하루 버스가 2번밖에 가지 않는 해발 700m 산을 머리에 인 牛羅 마을. 겨우 가옥 12호가 게딱지같은 땅을 일구며 옹기종기 산다. 아버지께 “서울서 같이 살자”고 하니, 아버진 “답답다. 맘 내키면 갈란다” 하신다.
  봄에는 언제나처럼 이 고랑, 저 고랑에 콩 심고 옥수수 심고, 고춧대 주변에 흙을 덮어 지주를 세우신다. 쪼그려 앉아 담배피기 좋아하신 아버지, 지난 겨울 어느 눈오던 날 방한모 쓰신 모습이 자꾸 눈에 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