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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실제인물 ‘김사복’ 소유 콜택시 타고 국립극장 간 문세광, 육영수 여사 저격 순간

1974년 8월 15일 오전 7시경 문세광, “곧 출발할 테니 빨리 승용차 준비하라”고 재촉

편집자주 : 아래 글은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문세광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다룬 《월간조선》 기사들 중 관련 대목을 발췌, 편집한 것이다. 취재기자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사 대표(현 조갑제닷컴 대표), 정순태 전 월간조선 편집위원, 이정훈 전 월간조선 기자다.
1974년 8월 15일 오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세광이 쏜 총탄에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는 순간. 사진=조선DB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이곳에서 열리는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
 
▲당일 새벽 2시경 : 문세광은 조선호텔 1030호 객실의 거울 앞에서 밤늦게까지 실탄을 장전하지 않은 권총으로 조준-격발 연습을 끝낸 후 잠자리에 들었으나, 이 시각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전 6시경 : 조선호텔 커피숍에서 그는 커피와 케이크를 먹었다. TV방송 아침 뉴스를 통해 국립극장에서 박정희 대통령 참석 하에 광복절 기념식이 거행된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이 시각부터 3시간 동안(06:00~09:00) 경찰 병력은 국립극장 반경 2km 이내에 있는 남산 및 응봉산에 대한 제2차 산악 수색을 실시했다. 남산과 응봉산에 대한 제1차 수색은 하루 전날 오후 4시간 동안(13:00~17:00) 실시되었다. 이틀에 걸쳐 산악 수색에 동원된 연인원은 1백28명이었다.
      
▲오전 7시경 : 문세광은 호텔 프론트에 『국립극장에 갈 것이니 고급 승용차를 준비해 달라. 출발시간은 9시』라는 내용의 전화 통화를 했다. 조선호텔 안내 데스크 김문희 씨(당시 30세)는 1030호에 투숙한 문세광로부터 『장충단 국립극장에 가야 하니 리무진 한 대를 불러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김문희 씨는 『호텔 전용차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문세광은 『중요한 손님을 모시고 갈 일이 있다. 30분만 전세내자』고 사정했다. 잠시 후 프론트에 다시 전화를 걸어 『곧 출발할 테니 빨리 승용차를 준비하라』고 재촉했다. 문세광은 초조했다. 그 무렵 경찰은 국립극장 주변 고층 건물 옥상을 봉쇄했다. 호텔 안내 데스크 김문희 씨는 도어맨 엄성욱 씨에게 문세광을 연결시켜 주었다.
 
▲오전 8시30분경 : 청와대 경호2과 선발 요원 19명이 국립국장에 도착하여 근무 지점에 각각 배치되었다.
     
▲오전 8시40분 : 대형 포드 M-20 승용차(서울 2바 1091호 렌터카·편집자주 영화 〈택시운전사〉실제인물 김사복 소유 차량)가 조선호텔 정문 앞에 도착했다. 문세광은 검은색 싱글에 금테안경 차림으로 머리를 단정히 뒤로 빗어 넘긴 모습으로 나타났다. 도어맨 엄성욱 씨는 문세광에게 택시를 타고 가라며 마침 호텔에 들어온 파레스호텔 소속의 콜택시(서울 2바 1091호. 보조 운전사 황수동·당시 32세)를 소개했다. 문세광은 실탄 5발이 장전된 38구경 권총을 허리춤에 감춘 채 즉각 승차하여 국립극장을 향해 출발했다. 문세광이 탄 차는 1970년식 포드 20M으로 당시로서는 고급승용차였다. 문세광은 운전사 황씨에게 『30분으론 국립극장까지 갔다 오는 시간도 안되니 한 시간으로 하자』고 했다. 그리고는 일찌감치 5천원권 두 장(1만원)을 엄씨에게 내밀고 일본말로 뭔가를 지껄였다. 문세광은 『하차 때 먼저 내려 밖에서 문을 열어 달라』고 황씨에게 부탁했다. 황씨가 받은 1만원의 가치는 쌀 1가마 값을 웃도는 금액이었다. 1974년 8월 현재 쌀(혼합미) 60kg의 가격이 7천4백40원이었다. 요금이라기보다는 VIP 대우를 유도한 뇌물이었던 것이다. 차량 이동 중 그는 왼쪽 옆구리에 손을 가만히 넣어 권총의 공이치기를 뒤로 제쳐 놓았다.
   
▲오전 8시59분경 : 「승차 입장 카드」가 부착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문세광이 탄 외제 대형 승용차는 아무런 검문검색도 받지 않고 국립극장 정문을 통과하여 구내로 진입했다. 대형 차량 탑승자에 대해선 예외적으로 대우한 경호 조치였다. 비표 없는 차량에 대해선 일단 정차시켜 탑승자의 초청장과 신분증을 확인해야 했다.
    
▲정문 근무 경호실 요원은 文이 정문을 통과했을 때 정위치에 배치되어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청와대 경호2과 직원의 행사장 도착 완료 시각이 9시였기 때문이었다. 정문 주변 경찰 근무자들은 당일 8시 7분에 배치되어 있었음에도 범인 탑승 차량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경호 근무보다 교통 혼잡 방지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정각 9시 문세광을 태운 승용차는 국립극장 정문에서 검문을 받지 않고 들어가 극장 계단 아래에 도착했다. 운전기사는 차에서 내리더니 뒷문을 정중하게 열어주었다. 중절모를 쓴 문세광은 기사가 공손히 절을 하는 가운데 계단을 올라갔다. 文은 왼쪽 현관을 통해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검문하지 않았다. 당시 현관에는 대통령 선발 경호원이 3명, 경찰관이 8명 근무 중이었다. 문세광은 비표도 없이 통과했다. 중절모를 쓰고 으스대는 문세광의 모습을 본 경호원들은 고위인사라고 생각하여 통과시켰던 것이다. 이들은 그 뒤 조사에서 '3.1절 행사 때 외국인에 대한 경호를 너무 심하게 했다고 지적을 받았기 때문에 그날엔 소극적으로 대했다'고 변명했다.
   
▲극장 안으로 들어온 문세광은 1층과 2층 로비를 오고가면서 저격의 기회를 노렸다. 그는 통로에 카펫이 깔려 있는 것을 보고는 박정희 대통령이 지나갈 때 저격하려고 카펫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는 곧 생각을 바꾸었다. 장시간 같은 장소에 머물다가는 경호원의 검문을 받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호원으로 보이는 10여명이 권총을 차고 로비를 오가고 있었다. 문세광은 로비 경호원에게 먼저 다가가서는 '우시로쿠 일본대사와 스즈키씨를 기다리는데 혹시 오지 않았느냐'고 일본어로 말을 걸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극장 로비는 여기 뿐인가요”
  “2층에도 있습니다”
  
▲경호원은 문세광을 2층으로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문세광은 '아, 1층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었지'하면서 1층으로 되돌아왔다. 경호원은 다른 간부 경호원에게 문세광을 인계했다. 경호원은 '저 분은 일본대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보고했을 것이다. 인계받은 경호원은 문세광을 보고는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이윽고 박정희 대통령이 나타났다. 경호원은 문세광을 잡고는 기둥 뒤에 있으라고 했다. 문세광은 박 대통령이 입장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다가 약 10분 더 로비에서 머물렀다.
    
▲문세광은 다시 로비 근무자에게 다가가서 일본어로 '대통령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은데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일본어를 모르는 근무자는 문세광의 입장을 묵인하는 표정을 지었다. 문세광이 로비에서 극장 안으로 들어가려니 출입구 근무자가 비표를 달지 않은 그를 제지했다. 문세광은 로비 근무자를 가리키면서 '저 사람이 들어가도 좋다고 이야기했다'고 둘러대었다. 출입구 근무자가 로비 근무자를 바라보니 그는 무표정이었다. 출입구 근무자는 이를 들여보내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극장 안으로 들어온 문세광을 안내하여 맨 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자리에 앉혔다.
    
▲문세광은 국립극장 맨 뒷줄에 약10분간 앉아 박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10시25분24초, 박 대통령은 『조국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룩되어야 합니다. 그 원칙은…』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딱총을 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B열 맨 뒤편 2백14번 좌석에 앉아 있던 문세광이 왼쪽 허리춤에 감춘 권총을 뽑다가 방아쇠를 잘못 건드려 자신의 왼쪽 허벅지를 관통시키는 소리였다. 박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는 마이크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인 듯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총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고함도 비명도 전혀 울리지 않았다.
   
▲문세광은 허벅지로 오발을 하자말자 놀라서 복도에서 안으로 세 번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통로로 나와 연단을 향하여 뛰어갔다. 통로 쪽 자리엔 경찰관들이 앉아 있었으나 아무도 문세광을 제지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퍽’ 소리가 난 뒤에도 6초 동안 연설을 계속했다. 녹음테이프를 들으면 대통령이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시종”이라고 할 때 달려가는 문세광을 본 청중의 “와-”하는 함성과 함께 ‘탕’ 하는 제2탄 발사음이 들린다.
   
▲이 총탄은 박 대통령이 연설하던 연대(演臺)를 맞추었다. 문세광은 6초 동안 11.85m를 뛰어와서 20m 떨어진 박 대통령을 향해서 쏜 것인데 맞추지 못했다. 문세광은 제3탄의 방아쇠를 당겼으나 불발이었다. 제4탄을 쏘려고 하니 박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은 방탄연대 뒤에서 몸을 낮추어 버린 것이다. 문세광은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 18.2m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육영수 여사를 향해서 쏘았다. 총탄은 육 여사의 머리를 관통했다. 문세광은 제5탄을 쏠 때 청중 이대산씨가 발을 걸어 넘어지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은 연단 위 태극기에 맞았다. 문세광은 넘어진 상태에서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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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된 문세광. 사진=조선DB

▲문세광은 자리에서 뛰어나와 6초 만에 제2탄을 쏘았고, 7.5초 때 제5탄을 쏘고 잡혔다. 1.5초 사이에 세 발의 총성이 들렸다. 연발 사격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을 놓고 경호의 실수를 미세하게 따져나가면 현실의 긴박감과 유리되어 탁상공론이 될 수가 있다.
   
▲문세광이 총을 들고 단상을 향하여 뛸 때 가장 먼저 대응자세를 취한 것은 박종규(朴鐘圭) 경호실장이었다. 그는 일어서더니 권총을 뽑아들고 단상 앞으로 뛰어나왔다. 그가 일어선 것은 문세광이 제1탄을 쏘아 ‘퍽’소리가 난 지 4.5초 때였다. 그는 범인을 향해 쏘려고 단상 앞으로 뛰어나오다가 관중석이 조명으로 너무 환해 눈이 부셨다. 표적을 잃은 것이었다. 박 실장의 행동에 대해서 1998년 청와대 경호실이 펴낸 사례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했다.
 <경호실장이라면 범인에 대한 응사가 주(主)가 아니라, 피경호인 박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연대로 나와 피경호인의 머리를 숙이게 조치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연대 위에 몸을 숨긴 시기는 2탄이 연대에 맞은 후이거나, 3탄이 불발된 이후이기 때문에 범인이 제2탄을 정확히 사격했거나, 3탄이 불발되지 않았더라면 박 대통령 저격이 성공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1998년 경호실의 사례연구서는 육영수 여사 피격은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범인이 대통령을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저격하기 위하여 통로를 달리면서 총을 쏘는 상황인데도 통로 좌우측에 앉아 있던 경찰근무자들은 아무런 경호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앉아만 있었다. 총을 쏘는 범인을 밀어 넘어뜨리거나 정조준을 할 수 없도록 범인의 몸을 건드리기만 했어도 육 여사는 머리에 총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좌석에 앉아 있던 12명의 경찰관들은 무엇 때문에 행사장에 와서 앉아 있었는지에 관한 기본적인 행사교육이나 우발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단상에는 후미 근무자 2명을 제외한 다섯 명의 근무자가 있었지만 범인이 고함을 지르면서 단상 쪽으로 뛰어나오며 사격을 하는 상황인데도 단상 좌우측의 근무자들은 박 대통령이나 육 여사를 방호하러 즉각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박종규 경호실장이 뛰어나온 시점에 단상 근무자들이 행동을 취하여 피경호인을 방호하면서 머리를 숙이게 했더라면 육 여사는 생존했을 가능성이 컸다. 단상의 수행요원들은 범인이 연대를 맞춘 이후에야 행동을 취했으나 육 여사를 방호하려고 달려가던 경호원은 육 여사의 뒤쪽으로 숨고 말았다. 이는 경호원으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날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은 사건 현장의 녹음을 통해 재생한 범인 체포 전후의 상황이다.
ㆍ제1탄 오발 후 17초:『가만 계세요』(경호원이 연단 뒤에 숨은 대통령에게)
ㆍ19초:『가만히 계세요』(대통령에 대한 경호원의 당부인 듯함)
ㆍ20초:『잡았니?』(대통령의 물음인 듯함)
ㆍ21초:『예』(경호원의 답변인 듯함)
ㆍ22초:『사모님이--』(경호원의 말인 듯함)
ㆍ23초:『탕』 하는 소리와 함께 어딘가로부터 제6탄이 날아와 합창단석에 있던 여고생 장봉화양(당시 18세)의 머리에 명중했다. 합창단석에서는 여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장내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누가 제6탄을 발사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범인은 이미 제압된 뒤였다. 이것은 경호원 쪽에서 잘못 쏜 총탄이었다.
 선발 경호요원 김씨는 단상(무대) 커튼 뒤편에서 근무 중이었다. 그는 『탕』 하는 총성과 군중의 웅성거림을 듣고, 장막을 헤치고 무대로 뛰쳐 나왔을 때는 범인이 통로 중간쯤에서 단상을 향해 사격 중이었다. 박종규 실장의 권총에서 난 두 발정도 총소리를 듣고 범인을 향해 총을 겨누게 되었다고 한다.
ㆍ1분37초 : 장내 소란은 계속되었다. 사회자가 『앉으세요, 일반시민들 앉으세요』라며 장내 정리에 나서던 순간이었다. 『탕』 제7탄의 총성이 들렸다. 제7탄은 극장 내부 천장을 뚫었다. 경호요원의 오발(誤發)인가? 소란 진정을 위한 의도적 발사인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육영수 여사가 후송된 후 박 대통령은 보리차 한 모금을 마신 다음, 중단됐던 경축사를 끝까지 낭독했다. 이렇게 박 대통령은 책임과 오기의 인물이었다. 육 여사는 이날 저녁 7시 서울대학부속병원에서 서거했다. 
 
글=조갑제 전 월간조선사 대표(현 조갑제닷컴 대표), 정순태 전 월간조선 편집위원, 이정훈 전 월간조선 기자. 정리=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7.09.10

조회 : 2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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