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계속해서 '개헌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16일, “5·18 이후 직선제 개헌 등 정치적 민주주의를 제도화했고, 이제 우리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한 개헌에 나설 때가 됐다”며 “‘내 삶을 지켜주는 민주주의를 위한 개헌’을 국민 앞에 제안드린다. 헌법에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 주거권을 신설하자”고 했다.

정치적 시각으로 해석하면 이낙연 전 대표의 '개헌' 주장은 소위 '판 깨기' 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7∼19일 전국 유권자 1009명에게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가 가장 적합한가'를 조사한 결과(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이 전 대표의 지지율은 10%에 불과했다.  이와 달리 더불어민주당 내 유력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지율 25%를 기록해 여야 주자 중 1위에 올랐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이낙연 전 대표의 '개헌론'이 제대로 그 '효과'를 발휘한다면, 세간의 이목은 이 전 대표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개헌' 논의가 진행된다면, 현행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라 '이원집정부제(대통령은 외치, 총리는 내치)' 또는 '내각책임제'로 '권력 구조'를 개편하려는 움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평소 이 같은 주장을 했던 야권 인사(김종인, 김무성)들도 이에 동조하게 된다면 '개헌론'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럴 경우 유력 주자였던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유리했던 '대선 판' 자체가 깨지게 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상기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를 기록한 '군소주자' 정세균 전 총리도 '헌법 개정'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이재명 경기도지자는 이낙연 전 대표의 '개헌론'을 일축했다. 그는 18일  "경국대전을 고치는 일보다 국민들의 구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구태여 깰 필요가 없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러자 이낙연 전 대표는 "바로 그 구휼 위한 제도화가 헌법 담기는 게 좋겠다는 뜻"이라고 반박했다. 이 전 대표는 21일 "사회경제 분야 민주주의를 제도화하자는 개헌"이라고 설명하며 "헌법에 국민 생명권, 안전권, 주거권의 선언적 규정이라도 넣자는 것이다. 그래야 하위정책 추진에 탄탄한 기반을 가질 수 있다. 그게 민생이고 구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이낙연 전 대표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 이유는 현행 헌법에는 이미 이 전 대표가 주장하는 ▲생명권 ▲안전권 ▲주거권이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이면서 국회의원을 네 차례 지낸 이 전 대표가 헌법 조문 내용을 몰라서 지금 이런 '개헌론'을 내세우는 것일까. 

일단 생명권의 경우에는 너무도 당연한 절대적 기본권이므로 대다수 국가의 헌법은 이를 특별하게 명시하고 있지 않다. 우리 헌법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제10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제37조 1항)"고 못박고 있다. 

주거권의 경우에는 "모든 국민은 거주ㆍ이전의 자유를 가진다(제14조)"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제16조)" "국가는 주택개발정책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제35조 3항)" 등 다수의 조항이 현행 헌법에 있다. 

안전권 역시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34조 6항)"고 명시돼 있다. 이와 같은 헌법 조항을 따져 봤을 때 이 전 대표의 '개헌 주장'은 불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미 그가 주장하는 '선언적 규정'이 현행 헌법에 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전 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은 국민 분열과 국정 마비를 초래할 수 있는 '헌법 개정'을 주장할 게 아니라 헌법 정신과 조항에 부합하는 법률안을 내놓고, 국정을 견제·비판하면 된다. 

더구나 현재 우리 국민의 '민생고'는 헌법에 관련 조항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헌법이 추상적이고, 미비한 대목이 있고, 우리 시대상을 담지 못하고, 미래 변화상을 제시하지 못해서 현재 우리 국민이 신음하는 게 아니다.  

헌법에 이미 명시된 국민 권리를 무시하고, 국가의 의무를 외면하고, 각종 권력을 독점하고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제1조 1항)"이란 헌법 규정과 다르게 이 나라를 '전제군주정' 또는 '신정체제' 비슷하게 퇴보시킨 자들 때문이다.  '헌법'에 어긋나는 각종 정책을 강요하면서 국민을 '실험대상'으로 여겼던 현 정권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 대표는 '헌법' 탓을 할 게 아니라 '자기 반성'을 먼저 하는 게 '순서'이지 않을까.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