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일본 NHK는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가 3월 25일 성명을 통해 “전날(24일) 동해라고 표기한 성명은 일본해 또는 한반도 동쪽 바다라고 했어야 했다”며 표기를 정정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미 인도태평양사령부는 “지명으로서 일본해를 유일하게 인정된 것으로 사용한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이에 앞서 미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3월 24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방향과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면서 ‘동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즉각 “일본해가 국제적으로 확립된 유일한 호칭이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고, 동해 표기는 부적절하다”며 반발했다.
국내외 지명을 다루는 미국 지명위원회(BGN)는 동해를 ‘Sea of Japan’ 또는 ‘日本海’를 표준 표기로, ‘East Sea’를 별도 표기로 인정하고 있다. ‘동해’로 표기하느냐 ‘일본해’로 표기하느냐 하는 것은 한일 간의 민족적 자존심(?)이 걸린 첨예한 문제다. 미국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런 문제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본의 손을 들어 준 것은 최근 한미동맹, 한일동맹을 바라보는 미국의 관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전례를 보면 미국이 꼭 일본의 편만 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한국 편을 들어줬을 때도 있었다. 

이명박 정권 시절이던 2008년 7월 말 미국 지명위원회는 독도의 미국 명칭인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 와 관련, 종전에 ‘한국령’과 ‘공해’라고 표기하던 것을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했다. ‘독도’ 명칭 표기도 ‘독도’ 다음에 ‘다케시마’라고 했던 것을 ‘다케시마’ 다음에 ‘독도’를 표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일본의 집요한 로비활동의 결과임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온 후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리학자 출신인 류우익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세계지리학연합회 사무총장으로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류우익 전 실장은 유엔지명위원회 위원장, 미국지리학회 회장 등을 만나 문제의 지명 표기를 원상회복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지명의 원상회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1년 6개월간 전문가들이 실무적으로 결정한 일이기 때문에 이를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7월 29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FTA 관련 행사 후, 이태석 주미대사는 집무실로 향하는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국무장관을 쫓아갔다. 외교관례 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한 이태석 대사는 큰 소리로 부시 대통령을 불렀다. 부시 대통령이 발걸음을 멈추자 이태석 대사는 지명위원회가 독도 관련 표기를 변경하는 것이 왜 부당한 일인지 설명하면서 그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이 국내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고 호소했다.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내 친구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이 어렵다. 그가 원하는 대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라이스 장관이 반론을 제기할 틈도 주지 않고 자리를 떴다. 

라이스 장관은 결국 7월 30일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독도 관련 표기를 원상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통상적인 외교채널을 통해 접근했다면 해결하기 어려웠을 문제가 일거에 해결된 것이다. 이날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독도에 대한 데이터들을 재검토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독도 관련 표기를 1주일 전의 상태로 복귀시키기로 결정했음을 기쁜 마음으로 알리고자 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친구이며, 한국민과 미국민도 친구입니다.”

이것은 빈 말이 아니었다. 부시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4월 첫 한미정상회담 이후 보수주의 정치인으로서의 공통의 철학, 특히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매개로 개인적으로 깊은 친분을 나누었다. 부시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명박 대통령을 “내 친구(My friend)”고 호칭했다. 2008년 7월 일본 훗카이도에서 열린 G8확대정상회의 때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등장하자 부시 대통령은 “내 친구 이명박 대통령입니다”라고 소개했다. 국제무대에 처음 데뷔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위한 배려였다.

국제정치에서의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국익(國益), 공동의 가치(價値)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국가 정상(頂上)들 간의 개인적 친분과 신뢰관계이다. 독일통일과정에서도 헬무트 콜 독일 총리와 조지 H.부시 미국 대통령 간의 신뢰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지금 한미 관계를 보면, 국익이라는 관점에서도, 공동의 가치라는 관점에서도, 국가 정상들 간의 신뢰관계라는 관점에서도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입으로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월간조선 4월호에서 보도한 것처럼 뒤로는 대북제재 회피 방안들을 열심히 궁리하는 등 표리부동한 행위를 일삼는 문재인 정권의 행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의 이런 이중적 행태는 양국간 신뢰관계를 밑바닥에서부터 허물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3월17~18일 서욱 국방장관과의 회담 및 외교·국방장관(2+2) 회담에서 “사드 기지를 지금 같은 상태로 계속 방치할 것이냐”면서 “사드 기지의 열악한 생활 여건을 계속 방치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미 양국 외교-국방장관은 공동성명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기는 했지만, 북한 비핵화나 중국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양국간에 이런 문제들에서 근본적인 이견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반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가질 정도로 미국과 일본은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4월에 있을 미일정상회담에서는 센카쿠 열도(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미·일 안보조약 적용 대상이라고 명기한 공동문서를 발표할 예정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즉 중국이 센가쿠열도를 침공할 경우 미군이 나서서 방위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미 양국군은 북한을 의식하는 문재인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 때문에 실제 훈련이 아니라 지휘소 연습만 하고 있지만, 미일 양국군은 야전훈련을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이 한미-미일동맹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마 정부는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가 ‘동해’라는 표현을 취소하고 ‘일본해’로 정정한 데 대해 엄중 항의할 것이다. 국내 좌파세력들은 이를 기화로 반미(反美)-반일(反日)캠페인에 나설 수도 있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밀리고 있는 정부·여당도 이를 이용해 보려는 유혹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미국이 진심으로 ‘한국과 미국은 친구이며, 한국민과 미국민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미국은 꿈적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한미관계를 이렇게 멀어지게 만든 것은 거듭 말하거니와 바로 표리부동한 문재인 정권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