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계엄문건', '북원추 문건' 관련 이낙연의 '이중잣대' : 월간조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북 원전 지원 발상을 담은 산업통상자원부의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문건’과 관련한 국민의힘 등 야권의 문제 제기에 반발했다.

지금 논란과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전 정부 일 꺼낸 이낙연

이낙연 대표는 1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 원전건설은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에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보상책으로 등장했다”며 “그에 따라 김영삼 정부 때 미국 주도의 사업이 시작돼 공정 30%까지 진행됐으나 좌초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에도 국내에서 거론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임 정부를 끌어들여 논란을 무마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는, 소위 ‘물타기’라는 지적이 가능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논의됐다는 ‘북한 원전 건설 추진안’은 ‘통일 이후’를 가정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통일’이란, 일단의 세력이 바라는 ‘연방제 통일’이나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이 아니다.

이명박 때는 '자유민주통일 이후 원전 건설' 가정

우리 헌법이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의한 통일’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불법 점유하는 반국가단체 북한 노동당이 붕괴되고, 우리 영토 북반부에 대한 실효권을 회복한 다음에 추진되는 원전 건설은 전혀 비판받을 사안이 아니다.

북한 개발을 위해 필수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저비용·고효율·청정 에너지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을 확대하는 일은 오히려 권할 만 하다. 따라서 이낙연 대표가 현재 논란이 되는 소위 ‘북원추 문건 의혹’과 관련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논리적으로 어불성설인 셈이라고 할 수 있다.

KEDO 원전 건설은 미북의 제네바합의에 따른 것

한국은 제네바 합의 과정에서 '배제'되고 돈만 부담

김영삼 정부 당시 추진된 북한 원전 건설은 미국과 북한의 소위 ‘제네바 합의(1994년)’에 따라 추진됐다. 당시 미국과 북한의 해당 합의가 진행, 도출되는 과정에서 한국은 사실상 배제됐다. 나중에 북한 원전 건설을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란 국제컨소시엄을 구성할 때 우리나라는 비용을 부담하고 참여했을 뿐이다.

당시 북한 원전 건설이 이뤄진 배경이 되는 ‘제네바 합의’는 핵 특별사찰을 통한 북핵 의혹 해소, 핵개발 포기와 관련시설 해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한 사찰 수용·보장,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핵연료봉 처리를 조건으로 한 일종의 ‘대가’였다. 하지만 북한은 핵개발 야욕을 포기하지 않았다.

북한의 '비핵화 사기극' 드러난 이후 사업 중단

이와 관련해서 2002년 10월,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확보한 물증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HEU) 개발 의혹에 대해 추궁했다. 애초 북한은 이를 부인하다가, 결국 시인했다. 북한의 ‘1차 비핵화 사기극’이 발각된 셈이다. 그 결과 제네바 합의에 따라 진행되던 북한 원전 건설과 대북 중유 지원 사업은 중단됐다.

요약하면, 김영삼 정부 당시 추진된 북한 원전 건설은 우리 정부가 주도한 사업이 아니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모두 함께 한 ‘북한 핵 폐기’ 노력의 하나였다. 물론 북한의 핵개발 야욕을 간과한 패착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이 같은 사기 피해를 본 상황에서, 북한 독재정권 붕괴 후 원전 건설을 논의한 게 아니라 ‘남북 경협 활성화’에 대비해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했다는 ‘북한 원전 건설 추진’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남북경협 활성화 대비 목적"은 말이 안 돼

애초 모든 분야에서 우리보다 절대 열위에 있는 북한과 우리가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없기 때문에 ‘경제협력'은 말이 되지 않는다. '대북지원'이 정확한 표현이다. ‘대북지원’을 한다고 해도 ‘국가안보시설’이면서 핵확산에 전용될 수 있는 원전을 적대 세력에게 지어준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다’고 할 수 있다.

이낙연 대표를 비롯한 여권 인사들은 ‘비현실적 발상’이라며 산자부 공무원의 ‘아이디어’라고 축소하려고 하지만, 이런 비현실적 발상을 어떻게 일개 공무원이 할 수 있느냐는 상식적인 의문을 없애기에는 논리적으로 부족한 측면이 많다.

왜 '북원추 문건'은 문재인-김정은 만남 이후 생성됐나?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을 만나 이른바 ‘신경제구상’을 담은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전달한 2018년 4월 27일로부터 불과 20일도 안 돼 산자부 일개 부서의 공무원들이 ‘북한 원전 건설 추진 구상’을 구체화해 문건으로 남기고, 관련 자료를 함께 저장했다가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이를 삭제한 정황에 대한 세간의 의심도 풀 수 없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낙연 대표의 주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소재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원자력은 친환경적이지 않고, 값도 싸지 않고, 위험한 에너지”라고 주장하며 ‘탈원전’을 외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정책 소관부서가 ‘감히’ 이 같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느냐는 지적에 대한 답으로도 충분치 않다.

북한의 핵 포기 없는 상황에서 '경협'은 어불성설

대북 원전 지원 검토에 대한 '이적성' 논란은 당연해

평소 ‘합리적’이라고 자처하던 ‘기자 출신’ 이낙연 대표는 이처럼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주장을 내놓으면서 “지금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가 계속되는 마당에 북한 원전을 극비리에 지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과거 북한 원전건설 추진했던 김영삼, 거론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일도 이적행위라고 생각하는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또 이낙연 대표는 “야당은 지금도 선거만 닥치면 색깔론을 들고 나오는 낡고 저급한 정치를 되풀이하고 있다”며 “정부를 흔들기 위해서라면 국익 훼손도, 국민 안전에 대한 타격도 개의치 않는 위험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했다. 위기에 몰리면 으레 나오는 ‘색깔론’ 얘기 말고는 다른 방어 수단이 없는지 묻고 싶은 대목이다.

'국무총리 이낙연'은 '기무사 계엄 문건' 논란 때 무슨 얘기했나?

이낙연 대표는 2018년 당시 이른바 ‘기무사 계엄문건’과 관련해서 자신이 했던 말을 상기하고, 이번 ‘북한 원전 추진’ 문건 의혹에 그대로 적용하기를 권한다.

2018년 여권이 의혹을 제기하고, ‘내란음모’ ‘국기문란’ ‘친위쿠데타’ ‘반역 모의’ 등 별 주장을 다 했던 ‘기무사 계엄 문건’의 내용은 ‘박근혜 탄핵’에 대한 입장과 무관하게 헌법재판소 선고에 불복한 이들에 의해 ‘심각한 치안 불안’이 야기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 대응 조치로 ‘위수령’과 ‘계엄령’을 검토했던 것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7월 10일, 인도 순방 와중에 국방부 독립수사단을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계엄 문건의 논의 주체, 지시·보고 체계, 실행 준비 정도, 문건 내용의 타당성 밝혀야 한다"

이와 함께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낙연 대표는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기무사 계엄 문건’과 관련해서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여부 결정을 앞두고 국군기무사령부가 계엄령 선포와 탱크를 포함한 대규모 병력동원을 검토했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지난주에 공개됐다”면서 “이 문서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고 규정했다.

당시 총리였던 이낙연 대표는 또 “계엄령 선포와 병력 동원을 어떤 사람들이 논의했는지, 그것을 누가 지시했거나 허락했는지, 그것을 누구에게까지 보고했는지, 그 문서대로 실행할 준비를 했는지, 했다면 어디까지 했는지, 평화로운 촛불집회에 병력을 투입한다는 것이 온당한 발상인지, 그런 검토와 문서작성이 기무사의 업무에 속하는지 등등 규명돼야 할 문제가 매우 많다”면서 “사실 관계를 밝히고 법에 따라 처분하는 일이 불가피해졌다”고 밝혔다.

'국무총리 이낙연'의 논리 따르면 여당 대표 이낙연은 이런 말을 해야

그 당시 ‘이낙연 논리’를 그대로 차용해 ‘북한 원전 건설’ 의혹에 대입하면 지금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다음과 같은 주문을 ‘문재인 정부’에 해야 하지 않을까.

“2018년, 1차 문재인-김정은 회동 직후 산업통상자원부가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관련 자료를 정리하는 한편 탈월전 반대단체 동향도 수집했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지난주에 공개됐다. 이 문서를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대북 원전 지원을 어떤 사람들이 논의했는지, 그것을 누가 지시했거나 허락했는지, 그것을 누구에게까지 보고했는지, 그 문서대로 실행할 준비를 했는지, 했다면 어디까지 했는지, ‘핵 포기’ 의사가 전혀 없고 적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반국가단체' 북한 독재정권에 원전을 지어줄 수도 있다는 게 온당한 발상인지, 그런 검토와 문서 작성이 산업통상자원부의 업무에 속하는 등등 규명돼야 할 문제가 많다. 사실 관계를 밝히고, 법에 따라 처분해야 한다.”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