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대답이 다를 것이다. 원폭(原爆), 나가사키 짬뽕, 나가사키 카스텔라,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 일본 역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도쿠가와 막부 시대 네덜란드와의 통상(通商)창구였던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가톨릭 신자라면 나카사키 니시자카 언덕의 순교자들을 생각해 낼 지도 모른다. 

저마다 다른 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이 책 《한중일의 갈림길, 나가사키》를 읽다보면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사실은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원래 한적한 어촌이던 나가사키는 16세기 중반 이래 포르투갈‧스페인과의 통상항(港)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도래(渡來)로 가톨릭이 전파(傳播)됐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막부 시절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포르투갈인들이 소개한 ‘카스티야의 빵’과 생선튀김 ‘콰르투 템포라스’를 일본인들은 카스텔라와 덴푸라로 발전시켰다.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축출되면서 나가사키의 데지마에 있는 네덜란드상관(商館)을 서구(西歐)를 향해 열린 유일한 창(窓)이 되었다.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유신에 이르는 시기 나가사키는 이토 히로부미, 사카모토 료마 등 유신의 영웅들이 나가사키에서 활약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상인 토마스 글로버는 유신을 꿈꾸던 조슈와 사쓰마번을 지원해 거부(巨富)가 되었다. 료마의 동료였던 이와사키 야타로는 미쓰비시그룹을 설립하면서 이곳에 거대한 제철소와 조선소를 지었다. 군함도는 그곳에서 사용할 석탄을 캐던 탄광이었다. 나가사키가 원폭을 맞은 것도 군수(軍需)산업도시였기 때문이다. 

한편 나가사키를 드나들던 서양 상인과 군인, 문인들의 설익은 로맨스는 19세기말 20세기 초 구미(歐美)를 휩쓸던 이국(異國)취미와 맞물리면서 걸작 오페라를 탄생시켰으니, 그것이 바로 푸치니의 <나비부인>이다. 나가사키에서 중국음식점을 하던 화교는 가난한 중국 유학생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일본의 우동을 변형해 만든 나가사키 짬뽕을 내놓았다. 그리고 나가사키와 서구와의 오랜 인연을 주목한 버블시대의 일본 자본주의는 이곳에 네덜란드 숲속의 마을을 모델로 한 하우스텐보스라는 테마파크를 만들어 냈다.

일본사(日本史)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런 식으로 카스텔라나 덴푸라, 나가사키 짬뽕 같은 익숙한 키워드들을 따라 읽다 보면, 지난 500년간의 일본사, 아니 일본과 서양의 문명교류사를 한번 쭉 살펴보게 된다.

저자는 주후쿠오카총영사‧요코하마총영사 등을 거쳐 주바티칸대사를 지낸 퇴직 일본통 외교관이다. 퇴임 후에는 나가사키현립대학 교수로 8년간 교단에 섰다. 《일본극우의 탄생 메이지유신 이야기》 《일본은 있다》 《일본인과 천황》 등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책들을 다수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