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차량 테러가 발생, 1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테러 발생 장소가 바르셀로나의 유명 관광지인 람블라스 거리라는 점, 테러범들이 당초 목표로 했던 것은 가우디가 건축한 것으로 유명한 성가족성당이었다는 점 등이 충격적이다. 무엇보다도 비교적 테러로부터 안전한 것으로 알려졌던 스페인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것은 이제 유럽 어느 도시도 테러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유럽 모든 곳이 테러 위험지대는 아니라고 본다.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아직까지는 별다른 테러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경우, 로마,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등 주요 도시의 관광 명소, 광장 등지에는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다. 군인들과 군용차량들이 거리를 순찰하는 것도 자주 눈에 띈다.

밀라노 두오모(대성당) 등 관광 명소에 들어갈 때에는 군인들이 가방을 철저하게 검색한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군인들은 손을 내저으며 큰 소리로 “찍지 말라!”라 소리친다.

지난 5월 23일 저녁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목격한 일이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인 두 명이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보였다.

군인들이 순찰하는 것은 자주 보았지만 그렇게 급한 걸음으로 뛰다시피 걷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들이 가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다 보니, 경찰관이 어떤 사내를 불러 세워놓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는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입는 것 같은 장옷을 입고 있었다. ‘아! 저 사람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군인들이 그를 좌우에서 포위하며 총을 겨누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이 스쳐갔다. 범행이 들통 난 테러범이 낭패해 하는 표정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아! 이런...내가 테러범으로 몰린 거야?’하면서 황당해 하는 표정 같았다. 그 표정에는 슬픔과 노여움, 속상함 같은 것이 함께 묻어 있었다.

외모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테러범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지적인 외모에 입고 있는 옷이나 들고 있는 가방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물론 테러범이 그렇게 위장할 수도 있지만....).

아마도 그는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여권을 보여주는 순간, 아니 그 이전에 그런 복색으로 나타나는 순간, 잠재적 테러 용의자로 간주됐을 것이다. 경찰이 그를 불러 세울 때만 해도 그는 심상한 검문이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옆구리에 자동소총이 겨누어지는 순간, 그는 아득한 절망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복색이나 외모, 혹은 그가 소지한 여권만으로 범죄 용의자 대접을 받는 것은 고약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꼈다. 바로 그 전날 영국 맨체스터에서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을 앞두고 폭탄테러가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저렇게 철저히 검문검색을 한다면, 안전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에서 무장군인들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 같으면 거리에 무장군인들이 일상적으로 쫙 깔려 있는 상황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테러방지법 제정시에도 진통을 겪었던 나라이니, 그런 상황을 고분고분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테러가 일상화되어가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안전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유와 인권, 일상생활에서의 불편을 보류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때로는 그런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성숙한 시민의 자세일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 정권이 그런 상황을 이용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