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34일이 지난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비장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이날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사과의 눈물을 흘리며 해경 해체라는 폭탄 선언을 던졌다. 해경은 졸지에 세월호 사고 구조를 등한시 한 '범죄자 집단'으로 낙인 찍혔다. 

훗날 해경은 사고 당시 최선의 구조 작업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월호라는 육중한 배의 침몰은 세계 해난 사고에서도 유례가 드문 절박한 상황이었다. 해경은 물길이 거세기로 유명한 맹골수도를 가로 질러 40여 분만에 출동, 172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 이 사고는 육지가 아닌 바다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했다. 바다를 이해 못했던 이들은 해경을 손가락질 하는 데에만 바빴다. 

박 대통령의 해경 해체는 공무원 사회 전체가 정권에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공무원 사회의 동요는 필연적으로 권력 누수로 이어진다. 집권 2년 차에 공무원들의 공분(公憤)을 산 박근혜 정권은 비틀거렸다. 총선에서도 패배했다. 그 연쇄작용은 박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으로 귀결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해경을 제물로 삼았다면, 문재인 정권은 검찰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검찰은 정권 초, 이 정권의 핵심 국정과제인 소위 '적폐 청산'의 행동대 격이었다. 당시 검찰의 최대 현안 중 하나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공소유지였다. 정권 입장에서 봤을 때 검찰은 이처럼 나무랄데 없는 조직이었다.

지금의 검찰은 정권 입장에서 아주 고약한 존재가 돼 버렸다. 역설적으로 적폐 청산의 마지막 대상이자 끝판왕 격으로 전락해버렸다. 이 정권 인사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왔던 윤석열 검찰총장은 개혁의 걸림돌을 넘어 '정권의 공적(公敵) 1순위'가 된 지 오래다.  

평면적으로 비교하면, 해경 해체는 그나마 세월호 사고라는 명분 아닌 명분이 있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토벌 작전처럼 벌이는 이른바 '검찰개혁'은 명분마저 약하다. 정권이 검찰개혁의 수단으로 삼으려 대대적으로 띄우던 '검언유착' 사건이 흐지부지 된 게 이를 방증한다.

검찰은 정권에 치명상을 가할 수 있는 예민한 사건에 자꾸 칼을 들이 밀었다. 그때부터 양측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문재인 정권이 '어제의 친구'였던 검찰을 '오늘의 적'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권력 때문이다. 정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검찰을 때리는 셈이니, 지금 나오는 검찰개혁의 진의(眞意)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쯤 되면 5년짜리 시한부 정권이 특정 국가 조직에 망신을 주며 단죄할 명분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어느 조직이든 문제가 없는 조직은 없다. 그것은 대개 구성원 개개인의 문제이지 조직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전체를 싸잡아 범죄 집단으로 매도하는 건 분명 정상이 아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권의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국민 합의 없이 권력의 힘만으로 하려는 개혁은 개혁이 아닌 마녀사냥에 불과하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