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이 아시아 2위의 군사강국이었다고? : 월간조선

황태연 동국대 교수가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에서 황 교수는 대한제국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강한 3만 명의 현대식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1910년 한일합방 당시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815달러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잘 나가던 대한제국이 일본의 군사적 강점에 의해 망했다는 주장이었다. 몇몇 매체들은 황 교수의 주장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황 교수의 주장이 정말일까? 두 가지 예만 들어보자.

#1. 비운의 군함 양무호

양무호(揚武號)라는 배가 있다. 대한제국이 보유했던 최초의 근대식 군함이었다. 영국에서 1881년 건조한 이 배는 원래 전투함이 아니라 일본 미쓰이물산에서 사용하던 석탄운반선 팰러스(Pallas)호(3432톤)였다.

이 고물 선박을 구입하게 된 것은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우리도 군함을 하나 가져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군부(국방부)에는 예산이 없었다. 군부에서 고종에게 내장원의 돈, 즉 황제의 통치자금을 내달라고 청하자 고종은 돈을 꾸어 주었다.

이 배를 구입하는 데 1903년에 당시 국가예산(500만원)의 10%, 국방비의 30%가 넘은 거금 55만원이 들어갔다. 여기에 대포(80mm) 4문, 소포(5mm) 2문을 장착해 ‘군함’이라고 했다. 사실 웃기는 얘기였다. 트럭에 박격포 얹는다고 탱크가 되지 않듯이, 낡은 석탄운반선에 포를 단다고 전투함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초 미쓰이물산에서 25만원에 구입해 9년이나 사용하던 배를 배가 넘는 돈을 주고 사왔으니 옴팡 바가지를 쓴 것이다. <황성신문>은 “한 명의 수병도 없는데 군함을 사들여 재정을 낭비했다”고 개탄했다.

함장은 동경상선학교 출신 신순성이라는 분이 맡았다. 그는 배는 알았지만, ‘해군’은 아니었다.

워낙 구식의 배라 양무호는 석탄을 하루에 43톤이나 먹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그 석탄을 댈 돈도 없었다. 양무호는 바다에 나가는 날보다 항구에 묶여 있는 날이 더 많았다.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양무호는 포 한 방 못 쏘아 보고 일본해군에게 접수되어 화물선을 전용됐다. 군대해산 후인 1907년 해양실습선으로 전락했다가, 1909년 일본 하라다상회에 4만2000원에 팔렸다. 그리고 1916년 동중국해에서 침몰했다.

#2. 군대 해산을 반긴 백성들

<각도에서 진위대를 창설한 뒤로 도적이 뒤를 이어 발생했으나 금지하지 못했으며, 군사들이 술을 퍼마시고 교만을 부리며 백성들을 착취하였다. 그러므로 지방에서는 그들을 두려워하기를 마치 이리나 호랑이 보듯 했고, 미워하기를 원수와 같이 하였다. 그 군대가 해산됨에 이르러 무지한 백성들은 손을 들고 좋아하였으나, 얼마 안 있어 의병들이 뒤따라 일어나 일본군과 싸움을 벌여 죽거나 다쳐 낭패를 보는 자가 수천 수만을 헤아리게 되니, 또 군대를 창설할 때보다 못하였다.>

1907년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했을 때의 얘기다. 지금으로 치면 향토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군인 진위대 군사들이 하도 민폐를 많이 끼쳐 백성들이 군대해산을 오히려 반겼다는 얘기다. 황태연 교수는 대한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일제 식민지 교육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위의 이야기는 경술국치 때 음독자결한 매천 황현 선생이 <매천야록>에서 한 얘기다.

대한제국이 근대국가?

이상이 대한제국 군대의 수준이었다. 혹자는 그건 해군과 지방군의 얘기일 뿐, 시위대 등 중앙군은 달랐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양무호나 진위대를 운용하는 수준으로 보아 중앙군이라고 해서 크게 낫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고종의 광무개혁을 높이 평가하면서 고종을 ‘근대화를 추진했던 계몽전제군주’로 미화하고 있다. 하지만 광무개혁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내장원(황실재정기관), 원수부(통수기구) 등 황제의 개인권력기반 강화차원에서의 개혁이었지, 진정한 의미에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추구하지는 못했다.

대한제국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국제(大韓國制)> 제2조를 보면 “대한제국의 정치는 이전으로 보면 500년 전래하시고 이후로 보면 만세에 걸쳐 불변하오실 전제정치이니라”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 무슨 근대성이 있나?

대한제국이 ‘백성의 나라’라고? 헌법(대한국제)에 군주의 권리만 잔뜩 열거해 놓고, 백성의 권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는데 그게 무슨 ‘백성의 나라’인가?

황당한 것은 대한제국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이 대개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초에 “1897년 정유년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해였다”면서 “2017 정유년 대한민국은 이순신 장군의 비장한 재조산하(再造山河·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 정신, 고종의 이루지 못한 새로운 나라 꿈이 합쳐져 우리 역사상 가장 큰 도전과 변혁이 시작되는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조선호텔 옆 환구단에서 덕수궁을 돌아 구 러시아공사관에 이르는 길을 ‘대한제국의 길’로 선포했다. 황태연 교수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둔 상황에서 “내부식민지인 호남과 충청, 강원, 경기, 서울 등이 단합해 PK 김영삼 정권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지역패권의 나라 - 5대 소외지역민과 영남서민의 연대를 위하여》라는 책을 펴내, 정권교체의 이론적 틀을 마련했던 인물이다.

대한제국을 예찬하는 사람들이 복벽주의자(復辟主義者)이라면 말이나 안 하겠다. 자칭 ‘진보’라는 사람들이, 우리 민족사상 가장 큰 진보를 이룬 대한민국 건국에 대해서는 이상한 소리들을 하면서, 대한제국은 예찬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

우리 역사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또한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허구에 근거한 자부심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글=배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