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소나타’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07-07-1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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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승용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마에바루(前原)’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그곳의 바닷가 포구에는 오래된 생선회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중에서 일본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우메야(梅屋)’라는 여관식 횟집은 5대째 내려오는 집이다. 장인(匠人) 정신이 투철하고 손님에 대한 서비스도 대단히 좋다. 50대 초반의 그 집 여주인은 ‘겨울연가’ 즉 ‘후유(冬)노 소나타’의 열혈 팬이다. NHK에서 겨울연가를 방영 할 즈음에는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가 거칠어진다. “잠시 후에는 제가 못 옵니다.” 빨리 일을 마치고 '욘사마와 지우 히메‘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겨울에 그 집을 갔었다. 그 여주인이 차를 몰고 기차 역 까지 마중을 나왔다.
“요즈음은 겨울연가를 못 보셔서 심심하시겠네요?”
“아닙니다. 얼마 전 케이블 TV에서 재방송을 시작 했습니다.”
“여러 번 보신 내용이어서 재미가 없을 텐데요?”
“무슨 말씀을....여전히 재미있습니다.”

 

 필자는 물론이고 같이 간 일행들도 고개를 갸우뚱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록 겨울연가를 좋아하다니.......겨울연가의 여운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구나.'


한류 스타들의 일본 선교

 

여섯 차례의 간암 수술이후 일주일에 3-4번의 신장투석으로 생명을 연장하면서도 기적 같은 열정으로 일본 열도를 녹이고 있는 서울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61세)의 얘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한․일 양국의 역사적 갈등을 정치와 경제로도 풀 수 없지만 문화로 해결 할 수 있는 실마리를 확인 했습니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빛이 하나 보였습니다.”
지난 3월부터 오키나와와 후쿠오카에서 기독 연예인을 통해 선교집회를 열어온 하목사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말이다. 이 선교 활동에는 최지우 등 한류 스타들이 함께 했다고 한다.

 

 “일본 전도집회를 ‘러브 소나타’로 한 것은 ‘겨울연가를 연상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일본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 뜻도 있다”는 하목사는 “경제 일변도를 통하여 부(富)를 축적해온 일본이 가정파괴, 자살 등 많은 사회적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러브 소나타‘는 바로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는 프로그램입니다”고 했다.

 

 7월 24일에는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 인근 '사이타마 현'에서 대규모 문화 전도집회를 연다고 한다. 이 집회에는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세례를 받으며, 골프 선수 최경주를 비롯해 드라마 주몽으로 인기를 누렸던 한혜진, 오연수, 김승수, 진희경 그리고 영화배우 조승우, 신애라, 유호정 등 기독 연예인들이 대거 참가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불모지인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한국 사람들에 의해서다. 아무튼 수 천 명의 인파가 운집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일본의 기독교 박해

 

 일본에서는 카톨릭교인 천주교를 통상 그리스도교로 부르고 있고, 천주교의 신자를 크리스천으로 부른다. 그리고 근래 들어 그리스도교를 구교인 천주교와 신교인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구별하기도 한다.
 일본은 16세기 중반에 스페인의 선교사 ‘사비에르’에 의해서 천주교가 확장되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 온 것은 영조 말(1724-76) 이라고 하니 일본이 우리보다 2세기 정도 앞선 셈이다. ‘사비에르’의 뒤를 이어서 1556년에는 포르투갈 선교사 ‘가스파르 비레라’, 1570년에는 이탈리아 선교사 ‘오르간치노’, 1579년에는 역시 이탈리아의 선교사 ‘알렉산드로 발리니야니’ 등이 선교활동을 펼쳤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이 크게 늘어나 1582년에는 신도 수가 수 십 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에 의해서 선교사 추방령이 내려지게 되어 천주교의 교세 확대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이유는 서양제국의 침략 두려움과 기독교가 그의 일본 통일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히데요시는 1597년 2월 5일 26명의 성인(聖人)을 처형하였다. 교토와 오사카 등에서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끌려온 이들은  나가사키(長崎)의 ‘니시자카(西坂)’ 언덕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전원 순교를 당한 것이다.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도 1613년에 금교령을 내려 천주교 탄압과 선교사 추방령을 내렸다. ‘일본은 신국(神國)이며, 크리스천이 신도(神道)와 불법(佛法)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홍윤기/메이지의 대해부 ,2003).
1637년에는 영주들의 가혹한 천주교 탄압과 무거운 세금에 반항한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키게 되는 데 이것이 ‘시마바라(島原)’ 난이다. 농민봉기에 앞장선 대장은 나이어린 소년 ‘마스다 도키사다(益田時貞, 1621-1638)’였다. 똘똘 뭉쳤던 37,000여명은 히라성(城)에서 90일을 버티다가 식량과 무기부족으로 손을 들었고, 봉기했던 농민들과 신도들은 모두 살해당했다. 그 후 막부(幕府)의 천주교 탄압은 더욱 심해졌으며, 일본은 쇄국의 자물쇠를 더욱 잠그게 되었다.

 

 

일본에는 기독교가 없을까?

 

일본에는 인구의 80%가 신도(神道)나 불교(佛敎) 신자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 발간하는 국가정보 보고서(world fact book)에 의하면 2005년 말 현재 일본의 크리스천 수는 전체 인구의 1% 미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의 10대들의 7%가 “나는 기독교인이다”고 답했다는 놀라운 통계가 나왔다(크리스천 투데이 2007.1.31).
 세계적인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갤럽(Gallup)이 올해 초에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 물었을 때, 10대의 7%, 성인의 4%가 각각 기독교를 자신의 종교로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들이 기독교에 호감을 갖는 이유로는 기독교식 결혼식과 가스펠 음악 등 기독문화를 꼽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NHK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앞으로 종교를 갖는다면 어떤 종교를 갖겠느냐’는 물음에 60% 이상이 기독교를 지목했다고 한다. 이유는 신성하고 좋은 이미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란다.
 대체로 내성적인 일본인들이 발을 구르거나 박수를 치면서 장단을 맞추며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기독교에 대한 일본인들의 마음이 열리고 있을까?

 

 

일본에서 받은 세례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가고 있고 지금은 대기업에서 은퇴한 '야마다 야스히로(山田佳弘, 70세)' 씨는 요즈음 교회 일로 너무나 바쁘다. 개인적인 일을 모두 미루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그는 일본에서 보기 드문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필자와 그는 20여 년 동안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와의 끈끈한 관계가 바로 교회를 통해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크리스천은 아니다. 단지 교회 주변에서 맴돌 뿐이다 .야마다(山田) 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일본 굴지의 건설회사인 가지마 건설(鹿島建設)의 기획부장이었다. 15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회사다. 그는 20여 년 전에 필자가 홀홀단신 그 회사를 방문했을 때 반갑게 맞이하여 많은 정보를 주었던 사람이다.
그가 필자에게 “한국에는 크리스천이 많다고 하던데 장과장도 크리스천이지요?“
”아- 네, 그렇습니다.“고 생각 없이 대답하였다. 필자가 과장 때의 일이니 꽤나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필자는 그가 다니는 교회에 붙들려(?) 갔었다. 실제는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잡아 뗄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평소에 주변에서 듣던 풍월로 ‘아~멘’만 하며 되겠지 맘먹고 신쥬쿠(新宿)의 어느 교회에 들어섰다. 신상명세서를 작성하라고 해서 만년필을 꺼내서 멋들어지게 한자로 빈칸을 채웠다. 잠시 후 하얀 가운이 내밀어 지고 탈의실로 안내되었다. ‘온천장도 아닌데 가운이?’ 필자의 머리가 혼란스럽게 돌아갔다.
 결국 필자는 물탱크 앞에 서서 목사님의 기도를 듣게 되었고, 그에게 손목이 잡혀 깊이도 모르는 물탱크 속으로 가라앉아야 했다. “주여! 저는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영도 못 합니다. 저를 일본 땅에서 죽이려 하십니까?”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었는데, 얄미운(?) 목사님께서 한 번 더 끌고 들어갔다.
 그 때가 2월 말 쯤으로 기억된다. 마침 이슬비까지 내려서 밤공기가 무척 차가웠었다. 필자가 억울함을 달래지 못하고 ‘일본인들이 예의가 바르다고 하던데, 이도록 무례한 일을 하다니...’
 그러나 야마다 씨가 물탱크 옆에서 비를 맞으며 ‘할렐루야, 할렐루야...’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돌아오던 전차에서도 필자의 표정이 내내 어두웠던 까닭에 그는 성경책을 펴들고 기독교의 세례의식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다.
그와의 만남은 이렇게 특이하게 이루어 졌고, 그 당시 필자회사(대우건설)의 직원 3,000여 명이 가지마 건설 견학에 참여하게 되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러브 소나타’를 통해서 굳게 닫친 일본인들의 마음이 활짝 열릴까?
일본에서 세례까지 받고서도 아직도 교회를 나가지 않는 필자이기에 할 말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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