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Mr. 장! 얼굴색이 왜 그러지요?“
“글쎄요, 갑자기 어지럽군요. 혹시 지진이 난건 아니죠?......서울 가서 종합 진찰을 받아야 하겠네요.”
“아니에요. 당장 병원에 갑시다.”
후쿠오카의 명물인 캐널시티(Canal City)의 커피숍에서 필자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부랴부랴 차를 몰아 병원으로 내달린 사람이 있다. 그는 다름 아닌 후쿠오카 지쇼(福岡地所)의 부사장 ‘도 켄이치(藤賢一, 58세)’씨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홍보담당인 필자가 10여명의 기자들과 신도시, 미래주택, 테마파크 등을 취재하기 위하여 후쿠오카(福岡)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날따라 커피 한 잔 하자고 고집스럽게 우기던 ‘도 켄이치’씨는 졸지에 필자의 보호자가 되어 밤늦게 까지 병원에서 자리를 지켰다.
도 부사장의 절친한 친구인 병원장은 “고혈압입니다”고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는 “참으로 큰일 날 번했습니다. 혈압이 110/195까지 올라갔으니 말입니다.”
필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혈압이 더 오르는 것 같았다. 평소 혈압이 높다는 걸 모르고 살았으니 그 충격이 더 할 수 밖에...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새우다시피 한 필자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고, 그 다음날 일본에서 종합 진찰을 받았다. 그것도 ‘도 켄이치(藤賢一)’의 이름을 빌려썼다.
‘법보다는 인정이 앞섰을까?’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일본에서 편법(?)으로 자행된 일이다.
인간사는 참으로 순간적일 수 가 있다. 불나방처럼 날아드는 위험한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중요하다. 필자는 도 부사장과 그의 친구인 병원장의 배려로 최악의 사태를 비켜갔다. 그날 이후로 필자는 그들을 ‘생명의 은인(恩人)’이라고 부른다.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 일본 사람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1887-1984)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의 거리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인 군중들이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단지 자발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경찰이 아닌 사사로운 사람이 제멋대로 참견을 하면 그 행위가 그 사람에게 은(恩)을 입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 형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경우 일본인은 은(恩)에 휩쓸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고 했다. 그렇다. 일본인들은 대체로 남의 일에 간섭을 하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고(故) 이수현이 사람을 구하려고 지하철에 뛰어 들때도 보고만 있었을까?
그러나 필자의 경험으로는 후쿠오카 사람들은 타 지역의 일본인들과 염색체가 다른 것 같다. 도 부사장의 경우도 남다르다. 그토록 바쁜 사람이 모든 일을 뿌리치고 필자의 병간호에 몰두 했으니 말이다.
‘인간의 삶은 사회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이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는 본질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국경이 없고 이데올로기가 없다’는 필자 나름대로의 처방을 내리고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다.
‘건축물은 살아 있어야 한다’
‘도 켄이치(藤賢一)’씨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디벨로퍼(developer)다. 그는 후쿠오카 지쇼(福岡地所, 1961년 설립)라는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게이오대(慶応大) 법과를 나온 그는 대학시절 럭비 선수로도 활동했다. 그러한 그가 건축을 중심으로 하는 일류 디벨로퍼로 성장했으니 사람일이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의 손을 거쳐 간 프로젝트(project)는 실패가 없다. 미래형 주택(Nexus World), 쇼핑몰, 영화관, 극장, 복합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등 새로운 개념의 신상품을 독창적으로 요리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를 피하기도 한다. 이유인즉, 식사 할 때나 술을 마실 때나 업무 얘기만 한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식당에서 세미나 장을 방불케 하는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필자는 그러한 그를 좋아 한다. 배울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와 처음 만난 것은 1989 년쯤이다. 후쿠오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신세계와의 만남”이라는 박람회 장에 정보센터를 건설하는 사업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었다. 말이 너무 어려워서였다. 일본 사람이 옆에서 통역을 해 줄 정도였다. ‘일본 말을 일본 말로 통역을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그러나 현실이었다.
“카미나리(번갯불)”로 명명된 프로젝트를 위해서 필자와 그는 한 달 동안을 동고동락(同苦同樂)했다. 그리고 친구가 되었다. 그의 말을 다른 일본인들에게 필자가 통역해줄 만큼 서로를 알게 되었다.
도 부사장의 주장은 한결같다. 건축물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햇볕, 바람, 물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도심 속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건물이 살아 있는 건물이다.” 그래서 그가 기획한 건물들은 대체로 자연에 노출되어 있다. 후쿠오카의 캐널시티(Canal City)와 기타 규슈(北九州)의 리버 웍(River Walk)은 맑은 물이 흐르고, 산들 바람이 옷깃을 스치며 건물 구석구석에 햇살이 스며든다.
‘우리 세대에 한・일 간의 문제를 해결해야’
이 캐널시티는 필자에게도 특별하다. 한국 업체로는 최초로 ‘원청 공사 수주 1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필자와 도 부사장의 합작품으로 일궈 내었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발주처인 후쿠오카 지쇼(福岡地所)가 공사 참여(대우건설)를 결정하였으나 일본 건설 회사들의 반대가 하늘을 찔렀었다.
“우리도 일거리가 모자란데 한국 업체가 웬 말이냐?” ‘도 부사장(그 당시 상무)’도 그들의 원성을 외면할 수 없어서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도 상무의 전화를 받고 얼굴이 노래진 필자는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메시지를 그에게 들이댔다.
“도 상무! 한국과 일본의 아픈 상처를 이 일을 통해서 씻어 봅시다. 이것은 우리 세대가 풀어야 할 숙명입니다. 정치적으로 풀지 못한 한・일 간의 문제를 우리 민간 차원에서 풀어 봅시다.” 30분이 넘도록 전화로 설득시킨 필자의 말이 먹혀들었다.
필자는 후쿠오카에 갈 때 마다 캐널시티에 간다. 건설공사 수주와 건설 현장을 누비던 추억 만이 아니고 거기에는 항상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카가와’의 강물을 끌어들여서 건물사이로 물이 흐르게 한 발상의 전환이 볼수록 맘에 든다. 이곳의 원형극장 같은 건물의 중앙 광장에는 시시각각 쇼핑객을 위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그리고 수 십 개의 영화관, 일 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는 뮤지컬 극장 등 소비자의 문화생활에 역점을 둔 건물이 바로 살아 있는 건물이리라. 이 모두가 도 부사장의 아이디어(idea)다.
필자의 소개로 한국의 많은 건설 회사들이 후쿠오카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많은 것을 얻어왔다. 기업인들은 일본이 가까이 있어서 좋은 점이 많다고 한다. 그래도 일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앙일보(2006/9,22)가 조사한 국가 선호도를 보면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호주(17%),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일본(55%)이란다. 그러나 가장 본 받아야 할 나라도 일본(26%)이 1위를 차지하였다는 것이다. 참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시대는 흔들리며 움직인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가치, 어느 시대에도 받아들여지는 가치는 성실과 신용이다. 무엇이 올바른 것일까? 무엇이 그른 것일까? 그것은 역사가 결정한다. 우리 회사는 역사의 판정에 견디어 내는 사업을 목표로 한다”는 후쿠오카 지쇼((福岡地所)와 그 속에서 꿈을 펼치고 있는 ‘도 켄이치(藤賢一)’ 부사장의 행보에 궁금증이 더 해 간다.
“그는 또, 도시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까?” 필자에게 다가오는 설레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