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반도와 일본열도의 교류사’—나고야성 박물관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07-01-24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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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고고학 자료, 미술품, 인문・자연에 관한 학술적 자료를 수집・보존・진열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곳이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환경의 양상에 관해 실체적인 증거를 가지며 그 소장품들은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사가(佐賀)현이 운영하고 있는 나고야성(名護屋城) 박물관은 조선 반도와 일본 열도의 ‘교류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독특한 박물관이다. 입구에 서 있는 우리의 ‘돌하루방’과 ‘장승’도 한・일 교류사에 한 몫을 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대한 역사의 조명이 이채롭다.

 

“나고야성 박물관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文祿/慶長의 役, 1592-1598)을 침략전쟁으로 자리매김하고 그 반성(反省)위에서 일본열도와 한반도와의 긴 ‘교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앞으로 쌍방의 교류와 우호의 추진 거점이 될 것을 목표로 1993년 10월 30일에 나고야성 터에 인접하는 곳에 개관하였습니다.”
박물관 안내서에 쓰여 있는 박물관장의 인사말이다.

 

“침략전쟁으로 자리매김하고 그 반성(反省)위에서 교류와 우호의 거점이 되자”는 말이 참으로 의미가 있다. 그렇다. 솔직한 반성 없이 어떻게 새로운 역사가 탄생될 수 있으랴.

 

나고야성의 3대 테마를 보자.

 

첫째, 특별사적 「나고야성터 및 진영 터」의 조사, 보존, 활용
둘째, 성곽 그리고「일본열도와 한반도의 교류사」에 관한 자료의 수집, 보관, 조사, 전시
셋째, 교류사 연구를 주제로 하는 국제 학술 문화 교류 사업이다.

 

이를 토대로 하여 이 박물관은 한국의 문화소개, 한국어 강좌, 한・일간의 교류 및 우호 촉진을 위한 「사가(佐賀)현 한・일 교류 센터」를 개설하는 등 새로운 일을 추진하고 있다.

 

필자는 사전에 연락도 없이 이 박물관에 들어섰다. 구경만 하는 것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 문제는 사진촬영이었다. 입구에서 따스한 미소로 맞이하던 그들도 “상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박물관의 기획보급담당 계장인 이에다 준이치(家田淳一, 48세)씨와 인사를 나누었다. 방문 목적과 촬영 범위에 대해서 설명하고 문서에 서명도 하였다. 잠시 후에 필자의 팔에 완장이 채워졌다. “아! 완장의 위력이 이토록 클 줄이야.” 마음 내키는 대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완장을 차기 위해서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역사속의 나고야성(名護屋城)

 

이 박물관의 전시 컨셉은 「나고야성 이전」,「역사속의 나고야성」,「나고야성 이후」로 구분되어 있다.

 

「나고야성이 생겨나기 이전」의 교류는 조선 반도와 일본 열도에서 출토된 구석기 시대의 토기를 비교해서 전시를 하고 있다. 또, 조몬(繩文, 신석기)시대에서 부터 중세까지의 역사도 벼농사나 불교의 전래와 함께 다양한 물자와 문화가 현해탄을 건너서 일본에 전해 진 것을 소개하고 있다. 이 자료만 보더라도 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고대로부터 많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세기 후반부터 4세기에는 백제, 가야 등과의 관계를 심화하여 문화와 기술을 받아 들여 야마토(大和)정권의 체제를 강화하였다. 5-6세기의 각 고분에서는 조선 반도 계열의 유물이 다수 출토됨으로써 당시 활발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7세기 후반에는 당나라와 신라, 발해와의 교류도 활발하였다. 규슈의 홍로관(鴻矑館)은 당나라와 신라의 교류의 창구였다.>

 

박물관에서 제시하고 있는 교류의 발자취다.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코너가 바로 「역사속의 나고야성」부분이다. 이곳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한 임직왜란과 정유재란에 관한 전시와 모모야마(桃山, 1573~1600)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히젠(肥前) 나고야성도 병풍’, ‘다이묘의 진영 배치도’, 일본군선인 ‘아타케부네(安宅船)’,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와 거북선’, ‘조선군 지도병풍’ 등 7여 년 동안에 걸쳐서 서로 싸웠던 슬픈 ‘전쟁의 역사’의 잔영들이 평화롭게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를 확보하는 데에는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는 이에다 준이치(家田淳一)씨의 말이다. “‘400여전의 아픔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는 상처’ 그대로였기 때문입니다. 이 박물관의 설립 취지를 이해토록 설명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면서 그는 필자에게 ‘역사의 반성(反省)’이라는 박물관의 설립 취지를 다시 한 번 설명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활발한 교류가 추진되어 부산, 광주, 진주, 제주 등 여러 도시와 공동세미나를 개최함은 물론 한국어 강좌도 개설하여 일본인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충무공 이순신—

 

“방패로 내 앞을 가려라.”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이순신 장군은 쓰러지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구국의 일념’뿐이었다.
선조는 “1등 공신으로 봉한 것만으로는 그대를 표창함이 다 못 되도다.” 고 아쉬워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도 숙종은 ‘제 몸을 죽여 나라를 일으킨 것은 이 사람(이순신)에게서 처음 보았도다.(身亡國活 始見斯人)’고 찬양을 했다. (조성욱, 충무공 이순신)

 

그러하다. 임진왜란 당시 조국을 위해서, 겨레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린 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영웅’이다. 비록 초상화지만, 일본 땅의 충무공 이순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용서와 화해일까?’
‘이 원수만 없앤다면 죽어도 한이 없다....일까?’

 

이훈범 논설위원(중앙일보, 1.23)은 “한국인은 피해자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근대의 삭풍(朔風)속에서 우리 생존의 맹아(萌芽)를 지킨 건 틀림없이 강한 민족주의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공존하며 국민을 넘어 세계시민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다.”고 했다.
이 박물관의 설립취지도 ‘역사의 반성(反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말로 답(答)을 해야 할까?

 

“두 나라가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는 어린아이의 공작품이 박물관의 보물보다 더 보물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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