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07-03-0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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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들은 도자기를 대단히 좋아한다. 필자가 일본 출장을 갈 때는 항상 도자기에 들어있는 술을 사간다. 값은 좀 비싸지만 나름대로의 품격이 있어서다. 예를 들면, 경주 법주. 문배술, 안동 소주 등의 도자기 술이다. 
술을 사갈 때는 술의 역사, 제조 방법, 알코올 도수(度數), 생산지 등의 간단한 지식을 알고 가야 한다. 일본 사람들의 궁금증을 덜어주는 것도 있지만, 딱딱해 지기 쉬운 비즈니스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갈 수 있는 화제꺼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본 사람들은 식사가 끝날 무렵에 어렵게 말을 건넨다.
“저 도자기 술병을 내가 가져가면 안 될까요?”
“그러시지요.....”
그들이 가져간 빈병은 꽃병으로 사용된다. 이것이 바로 일본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도자기 사랑‘의 한 단면이다.

 

‘포로 중에서 도공을 먼저 보내라’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하기도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도자기에 흠뻑 빠졌던 도자기 광(狂)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의 ‘도자기를 빼앗아 가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도공(陶工)들을 붙잡아 오도록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규슈(九州)와 시코쿠(四國) 출신의 다이묘(大名)들은, 앞을 다투어 도공들을 일본으로 연행하여 갔다. 그 기술이 사쓰마 야키(薩摩燒), 아리타(有田) 야키, 하기(萩) 야키, 다카도리(高取) 야키 등의 새로운 터전이 되어 오늘날 일본의 도자기 문화를 이끌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침략 전쟁에는 실패하였지만, 조선의 도공을 수 만 명이나 일본에 납치하여 ‘세계적인 일본의 요업(窯業)’이라는 도자기 산업을 도입하고, 부흥시킨 장본인이 되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 옻칠 기술도 숨어 있다. 일본의 자동차, 카메라 등은 옻칠 기술에 의해서 화려한 광택과 오랜 수명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영어 사전에도 japan의 의미가 ‘옻칠, 칠기, 일본식 세공품’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도자기나 옻칠 공예가 ‘산업발전의 모태’라는 사실을 그들은 오래전부터 꿰뚫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사쓰마 야키(薩摩燒)의 핏줄인 14대 심수관(沈壽官)씨는 수년전 필자에게 “한국의 도자기 제작 기술이 고대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은 김칫독 만드는 기술”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들(현, 15대 심수관)을 ‘한국의 김칫독 공장에 보내 2년 동안 연수를 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예기술의 원산지라고 큰소리치던 우리는 어떠한 상황일까?

 

“오늘날 우리는 그 화려했던 과거의 한국 도예의 영광을 재창조하고, 그윽한 문화생활을 다시 향유해 볼만한 시점에 와 있다. 우리에게서 도예기술을 배운 일본이 오늘날 세계 제일의 도예 문화국이 된 것은 모든 국민이 도자기를 ‘사랑’하고, 도자기를 생활필수품으로 생각하여 도자기와 더불어 살았기 때문이다.” (임무근 교수의 도예)

 

그렇다. 우리는 도자기에 대한 ‘기술전수’도, ‘사랑’도 하지 못했다
만물의 근원은 ‘사랑’이다. 18세기 초에 태어난 독일의 마이센, 영국의 본차이나(bone+china), 일본의 노리타케 등은 ‘도자기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세계 곳곳에서 그 명성을 날리고 있지 않는가.
우리 다함께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역사의 풍경’ 아이치현 도자기 자료관

 

나고야 성(城)을 돌던 사람들 외에 두 사람이 불어났다. 기업인인 오오모리(大森)씨와 대학교수인 간코지(願興寺)씨가 합류한 것이다.
우리 일행은 수학여행단처럼 카메라, 노트, 가방 등을 들고 자료관에 몰려갔다.

 

“옛날의 아이치(愛知)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옛날의 아이치(愛知)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 “

 

“세토(瀨戶), 사나게(遠投)...... 아이치 현의 산업과 문화는 이러한 도자기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발전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도자기에 관련된 주요한 문화재를 수집, 보관하기 위해서 1978년 본 자료관이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내방객 여러분! 녹음 풍부한 자연 속에서 도자기와의 만남을 한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아이치 현 도자기 자료관(愛知縣陶磁器資料館)에서 발간한 책에 있는 글이다.

 

필자가 서두에서 밝혔듯이 일본인들의 도자기에 대한 '사랑'을 적절하게 묘사했다. 그들은 도자기를 ‘역사의 풍경’이라고도 했다.

 

난잔대학(南山大學)의 간코지(願興寺) 교수는 졸지에 필자의 안내자가 되었다.
그는 교수답게 일본의 도자기 역사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현장학습(?)은 계속 되었다.

 

5층으로 된 본관 건물에는 일본은 물론 세계각지의 우수한 도자기 문화를 소개하고 있었다. 2층의 상설 전시장(3,4,5,6,7 전시실)에는 조몬 시대(신석기시대), 야요이 시대(금석기 병용시대), 고훈시대(아마토, 4~7세기 초), 나라시대(710~794년), 헤이안 시대(794~1185), 가마쿠라 시대(1192~1333), 무로마치 시대(1336~1573), 모모야마 시대(1573~1600년)는 물론, 에도 시대(1603~1868), 메이지 시대(1868~1911년), 쇼와시대(1926~1986년)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도자기 역사’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었다.

 

모모야마(桃山)시대를 소개하는 안내판에는 이러한 글도 써있었다.

 

<임진왜란ㆍ정유재란(文祿ㆍ慶長의役)후에는 조선으로부터 도래한 도공에 의해서 아가노(上野), 다카도리(高取), 사쓰마(薩摩), 하기(萩), 등 각 가마(窯)가 설치되고 차(茶) 도구를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시유도기(施油陶器)가 생산되게 되었다.>

 

임진왜란 후 한국도공들에 의해서 일본의 도자기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중국과 조선의 도자기 전시실을 돌던 중 우리 모두는, 고려청자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 청자는 '가장 아름답다'는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정양모 교수(고려청자, 대원사)도 12세기의 고려청자가 으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청자는 12세기 전반에 비색(翡色) 순청자로서 유래가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바로 이어 12세기 중엽에 유약을 맑고 밝게 발전시켜 상감으로서 다시 꽃을 피웠다.”
은은하면서도 더없이 고운 자태인 ‘조상의 손길’이  일본 땅에서 빛나고 있었다.
일본의 지인들도 “일본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청자를 만들 수 없습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 했다.

 

 ‘난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보기도 하고
  풀 위에 맺힌 이슬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본다고 해서 왜? 라고 묻지는 않거든,......

 

 그것들이 거기서 다시 빛나리라는 걸 나는 알기 때문이야.’ (월터 새비지 랜더, 영국시인)

 

일본의 도예가들은 ‘전통의 보존’과 ‘현대적 계승’이라는 명제수행을 위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도자기의 마을 아이치현 세토(瀨戶)의 구릉지에 ‘도자기 문화의 전당’을 건설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참으로 부럽다’는 말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우리는 무슨 까닭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스스로 외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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