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빽판의 전성시대 : 팝송의 국내 유입 역사》를 펴낸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 |
《빽판의 전성시대 : 팝송의 국내 유입 역사》는 출간과 함께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빽판을 한두 장 이상은 소장하고 있는 팝 팬들의 추억을 소환시켰기 때문이다. 책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월간조선》은 저자 최규성씨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했다.
“이 책은 불법이지만 대중음악의 자양분 역할과 팝의 국내 보급에 일조하고 금지 문화의 벽을 넘어선 빽판에 대한 보고이자 대중문화의 흑역사에서 찾은 빽판의 현주소와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빽판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이 궁금합니다.
“고백하자면 내 음반 수집인생의 시작은 빽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동네 친구 집에서 우연하게 딥 퍼플(Deep Purple)의 ‘Highway Star’를 듣고 충격을 받았던 소름 돋는 전율이 기억납니다. 강렬한 팝송 한 곡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으니까요.
이번 책을 쓰는 내내 빽판을 처음 듣고 음악에 빠져들어 용돈을 아껴 주말마다 청계천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어떤 음반을 구할지 흥분했던 추억에 행복했습니다. 2년 동안 수집한 방대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사진으로 촬영하는 작업은 너무 고단했지만 행복하게 마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라이선스와 원판을 접한 후 불법으로 제작된 열악한 인쇄와 음질의 빽판은 무시했던 제가 빽판의 흑 역사를 기록했으니 세상일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빽판의 역사는 팝송의 국내 유입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 대중문화에 끼친 긍부정적인 영향을 말씀해 주세요.
“빽판은 한국전쟁 이후 물밀 듯이 유입되었던 서양의 장르 음악들을 담아 트로트 일변도의 한국대중음악에 다양성을 수혈하며 성장과 발전을 위한 기름진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쟁으로 붕괴 직전이었던 국내 음반시장의 재건에도 상당부분 공헌했다고 확신합니다.
빽판을 통해 접한 다양한 서구 장르음악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 팝송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잡지들과 방송과 다운타운 디제이(DJ)들이 등장하면서 팝 문화를 형성에 절대적인 기여한 점도 긍정적인 영향으로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정적인 면이라 하면 1960~80년까지 국내 음반 산업을 황폐화 시켰을 정도로 과도하게 팽창했던 점이라 할 수 있겠네요. 당시의 빽판 라벨에는 정부에서 정식 발행했던 납세필증 인지와 지방자치단체의 검인 인지까지 붙여 판매했는데 저작권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어설픈 시대의 해프닝입니다.”
 |
|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씨(사진=박기훈) |
-빽판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압니다. 전국을 찾아 발품을 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디어디가 전국에서 빽판으로 유명한가요.
“제가 소장한 빽판이 800여장 정도였는데 책 집필을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수집하러 나섰는데 빽판을 파는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편하게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빽판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서울 회현 지하상가, 동묘, 청계천을 비롯해 인천 부평, 경기도 동두천, 파주 그리고 대전, 전남 무안, 부산 등 전국을 찾아다녔습니다.
수집과정에서 놀라운 음반들을 많이 발견하는 성과를 올렸는데 압권은 지인을 통해 구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7인치 도너츠 빽판입니다. 그동안 12인치 이미자 ‘동백아가씨’ 빽판은 소장하고 있었는데 7인치 빽판은 실체를 처음 보았습니다. 현재 빽판을 취급하는 중고 음반가게는 극소수이지만 국내외 인터넷 경매 사이트, 그러니까 이베이 같은 곳에서는 2000년대 이후에 한동안 상당히 고가에 낙찰이 되었습니다.
대전에서는 상당량의 빽판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경남 진해와 지방 몇 군데에 있는 분이 빽판을 엄청나게 수집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대부분 한국인보다 관심이 더 많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분위기입니다.”
-요즘은 빽판이 완전히 사라졌나요?
 |
| 최규성씨. |
“빽판은 한국에서만 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일본, 홍콩,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권과 브라질, 러시아 등 남미와 유럽에서도 제작했습니다. 그리스와 저작권 협약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일부 국가에서는 지금도 빽판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공연실황을 관객이 비밀리에 녹음한 부트렉(bootleg) 음반도 넓은 의미로 보면 ‘빽판’이라 할 수 있죠. 2013년 해외 제작된 싸이의 ‘강남스타일’ 픽쳐 LP와 2014년 EEC(유럽경제공동체) 제작 산울림 1집, 해외에서 제작된 방탄소년단(BTS) 빌보드 앨범차트 1위 앨범들과 소량 제작된 픽쳐 LP들도 빽판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빽판을 제작하지 않고 있지만 지금도 해외에서는 빽판은 제작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장 중인 빽판의 수와 가장 애착을 지닌 빽판은?
“책 집필을 위해 2년 동안 빽판을 수집한 결과, 800장 정도에서 이제는 5000장으로 몸집을 불렸습니다. 가장 애착을 지닌 빽판은 너무 많아 어렵네요. 제가 처음 빽판을 수집하면서 제 소유를 표시하기 위해 구입 순번과 날짜, 가격까지 재킷에 적었어요. 당시 제가 쓴 자필이 들어 있는 단색 빽판들은 가치와 상관없이 제겐 가장 소중한 보물들입니다. 그중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동네 친구 집에서 우연하게 딥 퍼플의 ‘Highway Star’ 빽판은 제가 처음으로 구입한 음반이라 가장 애착이 갑니다.”
-향후 빽판을 전시할 계획은 있나요?
-향후 빽판을 전시할 계획은 있나요?
“원래 책 발간과 더불어 전시가 1년 전부터 확정되어 있었습니다. 헌데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를 거듭하다 결국 취소되었습니다. 책 발간 이후 시대별로 제작된 다양한 빽판 실물들을 직접 보고 싶은데 전시회가 취소되어 너무 안타깝다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시더군요.
2년 전 청계천박물관에서 일부 빽판을 전시했을 때 추억에 잠기며 너무 좋아했던 많은 관람객들의 표정도 떠오릅니다. 지금은 전시를 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안정이 되면 추억을 소환시켜주고 한국 팝 문화 형성에 기여한 빽판 전시를 꼭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