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설을 보내고 왔습니다.
제가 4년 전 이곳 기자수첩(해당 기자수첩 참조: 클릭) 에서 동네 세배를 여덟 집 도니까 끝났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정확하게 다섯 집을 돌았습니다. 물론 70이 넘으신 연세가 상당히 드신 上노인이 사는 댁만 돌았지만, 세배할 집이 줄었다는 것은 4년 사이 몇 분의 노인이 돌아가셨다는 뜻이 됩니다.
집안에 어른이 있을 경우 제사를 지내고 나면 세배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예전에 동네 사람이 북적거릴 때는 나이 많은 노인이 사는 집은 아예 사랑방에 손님 상을 고정으로 갖다 놓고 세배를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렇게 상을 고정으로 차려놓지 않고, 손님이 올 때마다 작은 소반을 내어옵니다.
세배를 받은 집은 식혜와 감주(안동, 예천 지방은 식혜와 감주가 다름), 배추적, 삶은 문어를 작은 소반에 내옵니다. 집집을 돌면서 식혜와 감주맛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물론 술도 내오지만, 술을 한잔 하면 이야기가 길어지니 식혜만 먹고 곧 자리를 일어섭니다. 세배만 드리고 자리를 뜨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새해에 인사를 하지 않으면 동네에 노인이 누가 살아 계신지 알길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는 오늘이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노인들에게 세배를 꼭 돌게 하십니다. 70이 훨씬 넘으신 우리 아버지도 작년까지도 옷을 차려입고 이웃 노인에게 새배를 갔었는데, 이웃 노인이 돌아가신 후 올해는 그냥 집에 계셨습니다.
우리 동네는 해마다 외지에서 동네를 찾아와 세배를 하는 형제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동네 형이 되는 셈인데, 15년 전쯤 우리 동네에서 안동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몇 년전에는 그나마 대구로 또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동네에는 이 집 사람들의 친척도 없고, 연고 있는 집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집 형제 둘(40대초반)은 한해도 빠지지 않고 정초에 고향 동네를 찾아와 집집마다 돌며 세배를 합니다.
이집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동네 세배를 한집도 빠지지 않고 다닌 것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어려서는 자기들 아버지가 그렇게 시켜서 했지만, 다 큰 후에, 그것도 오래전에 떠난 동네를 찾아와 세배를 하는 겁니다. 정월 초하루를 가족과 지내는 것을 포기하고, 대구에서 오직 고향 노인들에게 세배를 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도 해마다 귀찮은데 올해는 그냥 세배를 돌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기도 하지만, 이 두 형제를 보면 어느 새 마음을 고쳐 먹게 됩니다. 이 두 형제의 아버지가 바로 우리가 어릴 때 세배하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하자 "어른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는 거 아니다" 하며 세배 온 우리를 꿇어 앉혀 놓고 야단을 친 그 분입니다.(기자수첩 참조: 클릭)
우리 뒷집 할아버지를 찾아가니 방에 혼자 쓸쓸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몇년 전 두 아들이 모두 젊은 나이에 죽어서 찾아올 사람이 없는 노인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보다 몇 살이 많은 이 노인은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 때 참전해, 군대를 두번이나 갔다온 경험이 있습니다.
힘도 장사여서 젊을 때 나락 가마니를 번쩍 번쩍 들어올리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툭하면 꿀밤을 주기도 했습니다. 곡괭이 하나로 산을 깎고, 신작로를 만들던 노인입니다.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의 한복판을 맨몸으로 헤쳐온 근대사의 산 증인이 되는 세대입니다. 지금은 지팡이를 짚고도 문 밖을 못 나간다고 합니다.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정부서 나오는 몇 만원의 전쟁 참전 보조금과 교통비 등을 받아서 생활합니다.
우리나라는 우리 아버지를 포함 이 노인들의 희생 위에 서 있습니다. 이 노인들은 한푼의 돈도 자기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거나, 옷을 사입는데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세대입니다. 모든 것을 자식을 키우는데 바쳤기에 이 노인 세대는 늙어서는 경제적으로 독립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이좋아 '새마을 운동'이지 저는 실제 맨주먹으로 험한 세상을 헤쳐온 70대 노인들이 아무 경제력이 없는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이 노인들은 나라에서 길을 내라면 길을 냈고, 수로를 만드라면 수로를 만들었던 착한 노인들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 때 정부에서 화장실 개조를 해 주지 않았으면 아직도, 가마니 거적이나 싸리문이 달린 토담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을 겁니다. 이 노인들에게는 이 화장실 개조가 유일하게 정부에서 받은 새마을 운동의 직접적인 혜택일 것입니다.
(올림픽 전후해서 신청자에 한해서 정부에서 화장실 개조 자금을 지원해 준 적이 있다. 물론 재래식 화장실로 시멘트 블록으로 만든 것이었다. 당시까지 시골에서 화장실 하나 제대로 개조할 여력이 있는 집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시골 집도 그때 지은 화장실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내년에는 이 노인에게 세배를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4년 전 이곳 기자수첩(해당 기자수첩 참조: 클릭) 에서 동네 세배를 여덟 집 도니까 끝났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정확하게 다섯 집을 돌았습니다. 물론 70이 넘으신 연세가 상당히 드신 上노인이 사는 댁만 돌았지만, 세배할 집이 줄었다는 것은 4년 사이 몇 분의 노인이 돌아가셨다는 뜻이 됩니다.
집안에 어른이 있을 경우 제사를 지내고 나면 세배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예전에 동네 사람이 북적거릴 때는 나이 많은 노인이 사는 집은 아예 사랑방에 손님 상을 고정으로 갖다 놓고 세배를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렇게 상을 고정으로 차려놓지 않고, 손님이 올 때마다 작은 소반을 내어옵니다.
세배를 받은 집은 식혜와 감주(안동, 예천 지방은 식혜와 감주가 다름), 배추적, 삶은 문어를 작은 소반에 내옵니다. 집집을 돌면서 식혜와 감주맛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물론 술도 내오지만, 술을 한잔 하면 이야기가 길어지니 식혜만 먹고 곧 자리를 일어섭니다. 세배만 드리고 자리를 뜨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새해에 인사를 하지 않으면 동네에 노인이 누가 살아 계신지 알길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는 오늘이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노인들에게 세배를 꼭 돌게 하십니다. 70이 훨씬 넘으신 우리 아버지도 작년까지도 옷을 차려입고 이웃 노인에게 새배를 갔었는데, 이웃 노인이 돌아가신 후 올해는 그냥 집에 계셨습니다.
우리 동네는 해마다 외지에서 동네를 찾아와 세배를 하는 형제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동네 형이 되는 셈인데, 15년 전쯤 우리 동네에서 안동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몇 년전에는 그나마 대구로 또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동네에는 이 집 사람들의 친척도 없고, 연고 있는 집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집 형제 둘(40대초반)은 한해도 빠지지 않고 정초에 고향 동네를 찾아와 집집마다 돌며 세배를 합니다.
이집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동네 세배를 한집도 빠지지 않고 다닌 것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어려서는 자기들 아버지가 그렇게 시켜서 했지만, 다 큰 후에, 그것도 오래전에 떠난 동네를 찾아와 세배를 하는 겁니다. 정월 초하루를 가족과 지내는 것을 포기하고, 대구에서 오직 고향 노인들에게 세배를 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도 해마다 귀찮은데 올해는 그냥 세배를 돌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기도 하지만, 이 두 형제를 보면 어느 새 마음을 고쳐 먹게 됩니다. 이 두 형제의 아버지가 바로 우리가 어릴 때 세배하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하자 "어른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는 거 아니다" 하며 세배 온 우리를 꿇어 앉혀 놓고 야단을 친 그 분입니다.(기자수첩 참조: 클릭)
우리 뒷집 할아버지를 찾아가니 방에 혼자 쓸쓸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몇년 전 두 아들이 모두 젊은 나이에 죽어서 찾아올 사람이 없는 노인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보다 몇 살이 많은 이 노인은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 때 참전해, 군대를 두번이나 갔다온 경험이 있습니다.
힘도 장사여서 젊을 때 나락 가마니를 번쩍 번쩍 들어올리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툭하면 꿀밤을 주기도 했습니다. 곡괭이 하나로 산을 깎고, 신작로를 만들던 노인입니다.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의 한복판을 맨몸으로 헤쳐온 근대사의 산 증인이 되는 세대입니다. 지금은 지팡이를 짚고도 문 밖을 못 나간다고 합니다.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정부서 나오는 몇 만원의 전쟁 참전 보조금과 교통비 등을 받아서 생활합니다.
우리나라는 우리 아버지를 포함 이 노인들의 희생 위에 서 있습니다. 이 노인들은 한푼의 돈도 자기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거나, 옷을 사입는데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세대입니다. 모든 것을 자식을 키우는데 바쳤기에 이 노인 세대는 늙어서는 경제적으로 독립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이좋아 '새마을 운동'이지 저는 실제 맨주먹으로 험한 세상을 헤쳐온 70대 노인들이 아무 경제력이 없는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이 노인들은 나라에서 길을 내라면 길을 냈고, 수로를 만드라면 수로를 만들었던 착한 노인들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 때 정부에서 화장실 개조를 해 주지 않았으면 아직도, 가마니 거적이나 싸리문이 달린 토담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을 겁니다. 이 노인들에게는 이 화장실 개조가 유일하게 정부에서 받은 새마을 운동의 직접적인 혜택일 것입니다.
(올림픽 전후해서 신청자에 한해서 정부에서 화장실 개조 자금을 지원해 준 적이 있다. 물론 재래식 화장실로 시멘트 블록으로 만든 것이었다. 당시까지 시골에서 화장실 하나 제대로 개조할 여력이 있는 집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시골 집도 그때 지은 화장실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내년에는 이 노인에게 세배를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