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이승만 대통령이 1941년 지은 <일본, 그 가면의 실체>(Japan Inside Out)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마침 이 책 뒷부분에 이 책에 대한 손세일 전 국회의원의 서평이 있어서 제가 감상문을 따로 쓸 것 없이 그 부분을 아래에 싣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손세일 의원님은 월간조선에 ‘이승만-김구’ 평전을 오랫동안 연재하고 계십니다.
특히 이 책 13장에서 미국이 조선과 맺은 조약을 휴지조각처럼 버리고, 일본의 조선 침탈을 방조한 책임을 통렬하게 질책하고 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일본이 기고만장하면서 중국과 동남아 국가를 침략하고, 국제 조약을 우습게 여기면서 국제 질서를 어지럽히고, 급기야 전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가지게 된 것이 결국은 미국이 무책임하게 국가 대 국가가 맺은 ‘韓-美 조약’을 지키지 않은 데서 출발했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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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전쟁 예언한 베스트 셀러
이승만 박사 영문 저서 <일본-그 가면의 실체>
孫世一 전 동아일보 논설의원, 국회의원(3선)
(前略)
일본인들의 전쟁심리 자세히 분석
‘일본, 그 가면의 실체’는 유럽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인 1939년 겨울부터 1941년 봄까지 이승만이 워싱턴에 있으면서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이다. 통계 등의 자료수집은 임병직이 도왔다. 이승만이 쓴 영문원고는 프란체스카가 타이핑했는데 출판사에 넘길 때까지 프란체스카는 전문을 세 번이나 다시 타이핑하느라고 손가락이 짓물렀다.
‘일본, 그 가면의 실체’에서 이승만은 중국을 점령한데 이어 동남아시아로 침략행군을 멈추지 않고 있는 군국주의 일보는 그들의 세계 제패의 야심을 달성하기 위하여 머지않아 對美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 전망하고 美-日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이 먼저 힘으로 일본을 제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승만은 그의 이러한 주지를 15장으로 나누어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먼저 제 1장에서는 일본인들의 전쟁심리의 기반인 극단적인 국수주의 내지 군국주의의 특성을 그들의 건국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자세히 분석했다.
그리고 그러한 일본 군국주의의 세계제패의 구체적 계획서가 바로 ‘다나카(田中) 메모리얼’ 이었다면서 제 2장에서 이 세기의 괴문서를 특별히 논평했다. 그는 ‘다나카 메모리얼’이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독일인들에게 갖는 의미와 같은 의미를 일본인들에게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승만이 인용한 마크 게인의 기사에는 이 극비문서를 복사해서 중국인에게 넘겨 준 사람이 한국인이었다고 적시되어 있어서 흥미롭다. ‘다나카 메모리얼’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국제적으로 심심찮게 논란거리가 되었다.
미국의 反戰 주의자들을 신랄히 비판
이승만은 일본인들의 침략전쟁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외국신문기자들과 선교사들이고, 따라서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이들이 가장 먼저 추방되어야 할 외국인들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제 5장과 제 6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자유언론의 개념은 일본의 정치사회제도와는 언제나 배치되는 것이었다’고 이승만은 적었다. 그러면서 1940년 7월에 도쿄에서 55시간 동안 일본 경찰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사망한 로이터 통신의 멜빌콕스 기자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승만은 또 일본인들은 선교사들이 어디든지 다니면서 자신들이 저지르는 일들을 목격할 뿐 아니라, 그들이 퍼뜨리고 있는 서양의 민주주주의 정신은 자기네의 천황중심주의 생활에 해독을 끼치고, 그들이 선교하는 종교는 일본인들이 믿는 불교와 신도에 배치된다는 등의 이유로 선교사들을 배척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기독교가 일본인들로부터 얼마나 박해를 받아왔는지를 길게 서술했다.
이승만은 국제연맹의 9개국 회의 및 해군 군축회의 등에서의 일본의 태도, 일본의 對美 선전과 미국인들 반응의 문제점 등을 차례로 논급한 다음 제 13장과 제 14장에서는 미국의 反戰 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먼저 미국의 反戰 주의자들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자신의 경험을 들어 실감나게 설명하고 나서 반전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나는 종교적인 신념이나 인도주의 원칙에서 같은 인간에 맞서서 무기를 들 것을 거부하는 ‘양심적 전쟁거부자’들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의 방위, 국가의 명예, 또는 국가의 독립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불문하고 모든 종류의 전쟁을 거부하는 투쟁적 반전론자들은 제 5열(간첩)처럼 위험하고 파괴적인 것이다....”
미국의 반전주의자들은 後者 쪽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또 기독교와 반전주의는 다르다고 강조하고, 기독교의 중립주의를 비판했다.
‘大地’의 작가 펄 벅 書評에서 극찬
이승만은 마지막 제 15장에서 현재의 위기상황을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의 대결이라고 규정하고, 미국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전체주의 국가들에는 추축국(일본, 독일,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연합국의 일원으로 對독전을 수행하고 있는 소련도 포함시키는 논리를 전개했다.
이승만이 주장하는 미국의 역사적 책임의 근원은 미국이 1882년에 조선과 맺은 朝-美 수호통상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1905년에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드는 것을 방조한 일이었다.
이승만은 그때의 일을 길게 설명하고, 그것이 제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주장은 일반 미국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대지’의 작가 펄 벅의 ‘일본, 그 가면의 실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서평은 그러한 반응의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무서운 책이다. 나는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오직 너무 진실인 것이 두렵다.... 나는 李 박사가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 곧 미합중국이 수치스럽게도 조-미 수호조약을 파기하고, 그럼으로써 일본의 한국 약탈을 허용했다고 말해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李 박사는 ‘이것이 큰 불이 시작되는 불씨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이 말에 정말로 두려움을 느낀다...”
(中略)
진주만 기습에 ‘이승만은 예언자’로 평가
‘일본, 그 가면의 실체’는 미국인들이 일본 군국주의의 실상을 깨우치는데 큰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이승만 자신을 알리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재미동포사회에서 그의 명망을 새로이 제고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이승만은 이 책을 루스벨트 대통령과 부인 엘리노아여사, 스팀슨 육군 장관에게는 우편으로 보내고, 헐 국무장관에게는 극동국의 혼벡 박사를 통해서 보냈다. 오랜 교분이 있는 혼벡은 이 책을 읽고 정정해야할 곳을 지적해 주었다.
‘일본, 그 가면의 실체’의 내용에 대해 비판하는 미국인도 없지 않았으나, 책이 출판되고 다섯 달 뒤인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의 기습적인 진주만 공격이 있자 이승만은 예언자라는 칭송을 받았고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특히 이 책 13장에서 미국이 조선과 맺은 조약을 휴지조각처럼 버리고, 일본의 조선 침탈을 방조한 책임을 통렬하게 질책하고 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일본이 기고만장하면서 중국과 동남아 국가를 침략하고, 국제 조약을 우습게 여기면서 국제 질서를 어지럽히고, 급기야 전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가지게 된 것이 결국은 미국이 무책임하게 국가 대 국가가 맺은 ‘韓-美 조약’을 지키지 않은 데서 출발했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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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전쟁 예언한 베스트 셀러
이승만 박사 영문 저서 <일본-그 가면의 실체>
孫世一 전 동아일보 논설의원, 국회의원(3선)
(前略)
일본인들의 전쟁심리 자세히 분석
‘일본, 그 가면의 실체’는 유럽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인 1939년 겨울부터 1941년 봄까지 이승만이 워싱턴에 있으면서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이다. 통계 등의 자료수집은 임병직이 도왔다. 이승만이 쓴 영문원고는 프란체스카가 타이핑했는데 출판사에 넘길 때까지 프란체스카는 전문을 세 번이나 다시 타이핑하느라고 손가락이 짓물렀다.
‘일본, 그 가면의 실체’에서 이승만은 중국을 점령한데 이어 동남아시아로 침략행군을 멈추지 않고 있는 군국주의 일보는 그들의 세계 제패의 야심을 달성하기 위하여 머지않아 對美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 전망하고 美-日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이 먼저 힘으로 일본을 제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승만은 그의 이러한 주지를 15장으로 나누어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먼저 제 1장에서는 일본인들의 전쟁심리의 기반인 극단적인 국수주의 내지 군국주의의 특성을 그들의 건국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자세히 분석했다.
그리고 그러한 일본 군국주의의 세계제패의 구체적 계획서가 바로 ‘다나카(田中) 메모리얼’ 이었다면서 제 2장에서 이 세기의 괴문서를 특별히 논평했다. 그는 ‘다나카 메모리얼’이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독일인들에게 갖는 의미와 같은 의미를 일본인들에게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승만이 인용한 마크 게인의 기사에는 이 극비문서를 복사해서 중국인에게 넘겨 준 사람이 한국인이었다고 적시되어 있어서 흥미롭다. ‘다나카 메모리얼’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국제적으로 심심찮게 논란거리가 되었다.
미국의 反戰 주의자들을 신랄히 비판
이승만은 일본인들의 침략전쟁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외국신문기자들과 선교사들이고, 따라서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이들이 가장 먼저 추방되어야 할 외국인들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제 5장과 제 6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자유언론의 개념은 일본의 정치사회제도와는 언제나 배치되는 것이었다’고 이승만은 적었다. 그러면서 1940년 7월에 도쿄에서 55시간 동안 일본 경찰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사망한 로이터 통신의 멜빌콕스 기자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승만은 또 일본인들은 선교사들이 어디든지 다니면서 자신들이 저지르는 일들을 목격할 뿐 아니라, 그들이 퍼뜨리고 있는 서양의 민주주주의 정신은 자기네의 천황중심주의 생활에 해독을 끼치고, 그들이 선교하는 종교는 일본인들이 믿는 불교와 신도에 배치된다는 등의 이유로 선교사들을 배척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기독교가 일본인들로부터 얼마나 박해를 받아왔는지를 길게 서술했다.
이승만은 국제연맹의 9개국 회의 및 해군 군축회의 등에서의 일본의 태도, 일본의 對美 선전과 미국인들 반응의 문제점 등을 차례로 논급한 다음 제 13장과 제 14장에서는 미국의 反戰 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먼저 미국의 反戰 주의자들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자신의 경험을 들어 실감나게 설명하고 나서 반전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나는 종교적인 신념이나 인도주의 원칙에서 같은 인간에 맞서서 무기를 들 것을 거부하는 ‘양심적 전쟁거부자’들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의 방위, 국가의 명예, 또는 국가의 독립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불문하고 모든 종류의 전쟁을 거부하는 투쟁적 반전론자들은 제 5열(간첩)처럼 위험하고 파괴적인 것이다....”
미국의 반전주의자들은 後者 쪽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또 기독교와 반전주의는 다르다고 강조하고, 기독교의 중립주의를 비판했다.
‘大地’의 작가 펄 벅 書評에서 극찬
이승만은 마지막 제 15장에서 현재의 위기상황을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의 대결이라고 규정하고, 미국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전체주의 국가들에는 추축국(일본, 독일,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연합국의 일원으로 對독전을 수행하고 있는 소련도 포함시키는 논리를 전개했다.
이승만이 주장하는 미국의 역사적 책임의 근원은 미국이 1882년에 조선과 맺은 朝-美 수호통상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1905년에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드는 것을 방조한 일이었다.
이승만은 그때의 일을 길게 설명하고, 그것이 제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주장은 일반 미국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대지’의 작가 펄 벅의 ‘일본, 그 가면의 실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서평은 그러한 반응의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무서운 책이다. 나는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오직 너무 진실인 것이 두렵다.... 나는 李 박사가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 곧 미합중국이 수치스럽게도 조-미 수호조약을 파기하고, 그럼으로써 일본의 한국 약탈을 허용했다고 말해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李 박사는 ‘이것이 큰 불이 시작되는 불씨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이 말에 정말로 두려움을 느낀다...”
(中略)
진주만 기습에 ‘이승만은 예언자’로 평가
‘일본, 그 가면의 실체’는 미국인들이 일본 군국주의의 실상을 깨우치는데 큰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이승만 자신을 알리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재미동포사회에서 그의 명망을 새로이 제고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이승만은 이 책을 루스벨트 대통령과 부인 엘리노아여사, 스팀슨 육군 장관에게는 우편으로 보내고, 헐 국무장관에게는 극동국의 혼벡 박사를 통해서 보냈다. 오랜 교분이 있는 혼벡은 이 책을 읽고 정정해야할 곳을 지적해 주었다.
‘일본, 그 가면의 실체’의 내용에 대해 비판하는 미국인도 없지 않았으나, 책이 출판되고 다섯 달 뒤인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의 기습적인 진주만 공격이 있자 이승만은 예언자라는 칭송을 받았고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