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문제와 백두산을 팔아넘긴 매국노 김일성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8-07-1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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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이곳 기자수첩에 제가 독도 문제에 대해 쓴 것이 있기에 다시한번 옮겨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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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문제와 백두산을 팔아넘긴 매국노 김일성
 
글쓴 날자 : 2005년 3월 18일 
 
독도 문제가 시끄럽습니다.
독도 문제는 기본적으로 영토 문제입니다. 국가는 자국의 영토를 침략당하면 자위적 차원에서 반격에 나설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이 독도를 침략하면 우리는 반격해서 독도를 지키거나, 나아가 일본 열도의 일부나 전체를 점령하면 이 문제는 간단하게 끝날 것입니다. 
 
독도 문제와 아울러 일본의 고질적인 교과서 왜곡 문제도 불거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본에 대해 『과거사 왜곡하지 말고, 식민지배 사과하라』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해서 일본 사람들(일본 정부) 과거사 절대로 사과 못 합니다. 전범 히로히토가 전후에 아무런 책임 추궁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천황에 대해서는 언론조차 입도 뻥긋 못하는 나라입니다. 전범이 살아서 천수를 누리고, 그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일본은 죽었다 깨어나도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독일과 일본을 자꾸 비교하는데 독일과 일본은 사정이 완전히 다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 전쟁 범죄자가 패한 후에 천수를 누린 경우가 있었습니까.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었을 겁니다.  

엄청난 국제적 범죄를 저지르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고도 자손대대로 계승하고 있는 일본 천황에 비하면, 자국이나 타국의 백성에게 거의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우리나라 황실은 일본에 의해 황실자체가 말살되었습니다. 

일본 정치 지도자가 입 발린 사과 몇 마디 한들 진실함도 없을 것이며, 사람 심사만 더 뒤틀어 놓을 것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앞에서 일본 왕이 『통석의 념을 금할 수 없다』고 비비 꼬아서 사과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완전히 엎드려 절 받기식입니다. 

저의 고향 동네에는 전쟁에 두 번 나간 노인이 아직도 살고 있습니다.
 
이 노인은 일본에 의해 태평양 전쟁에 나가서 싸웠고, 6ㆍ25 전쟁 때 국군에 가서 싸웠습니다. 태평양 전쟁은 일본 정부의 명령에 의해 일본 군인신분으로 강제로 나가서 싸웠습니다. 당시 우리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이 땅에 그나마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던 불쌍한 백성들에게는 일본 정부의 명령이 국가의 명령이었습니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죽은 자국의 군인들은 전부 보상을 하고 나름대로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징집 명령을 받고, 똑 같은 군인 신분으로 전쟁에 끌려갔던 우리 백성들은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의적 차원의 관심도 보이지 않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아무리 한일협정 때 이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하지만 자기들 정부의 명령으로 전쟁터에 내 몬 군인들까지 이렇게 차별하고 있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군인이 이런 대접을 받을 진대 일본 군국주의 피해를 보았던 군 위안부나 노동자들은 두 말해야 무엇하겠습니까.  

차라리 우리 정부에서 『나라를 못 지킨 책임으로 우리 정부가 일제 피해자들에게 개인보상을 해주겠다』고 나서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일본과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국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국력이 일본을 역전하면 현재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한일간 문제는 상당부분 없어지거나 해결 될 수가 있다고 봅니다. 

그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몇 개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선언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먼 먼 훗날 일본과 전쟁이 났을 때 대마도를 접수하기 위한 포석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해 놓지 않으면 우리가 유리한 전쟁을 해 놓고도 전후에 대마도를 접수할 명분이 없어진다. 실제 일본은 이 점 때문에 독도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한다고 본다. 간도도 마찬가지).  

오늘 아침 출근을 하려는 데 경남에 사는 70대 노인 한 분이 저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서 흥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왜놈들이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애국자가 한 명도 없소? 왜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국회의원은 한 명도 안 나오느냔 말이오. 분해서 밤새 한 잠도 못 잤습니다』 

대마도가 원래 우리 땅이라는 많은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 때는 실제로 무력을 동원해 점령까지 했습니다. 사료 조사를 해보면 일본이 결코 유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은 수시로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고, 오키나와를 독립시켜야 한다고 해서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이승만의 고집을 아는 일본인들이었기 때문에 혹시 이 고집불통 노인이 미군정에 영향을 끼쳐 진짜 오키나와를 독립시키지나 않을까 걱정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 당장 실시해야 할 일로 일본인 관광객에게 고궁의 입장료를 다문 몇 백원이라도 더 받기를 권합니다(이 문제는 이곳 기자수첩 「2004년 1월20일」에 따로 써 놓았으니 참조 바랍니다).
 

우리 500년 조선왕조의 상징인 궁궐을 식물원, 동물원으로 만들고 전각을 다 헐어 버린 것이 일본인들입니다. 그 복원에 있어 원인자 부담을 원칙을 적용하고, 상징적 차원에서 일본인에게 입장료를 얼마간 더 받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고궁을 찾은 많은 일본인들은 이를 의아해 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이 땅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지, 한국인들이 정말 과거의 아픔을 뼛 속에 새기며 기억하고 있구나』 하고 과거를 한번쯤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자기들이 자기 조상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후손에게 가르치지 못하면 우리라도 가르쳐야 합니다.  

일제 시대를 경험했던 노인들의 광범위한 증언 채록도 필요합니다. 백성들이 일제시대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았는가를 기록해 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일본의 쇠붙이 공출 정책 때문에 벼 베는 낫까지 다 빼앗겨 추수를 못할 지경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저의 할머니는 『왜놈들이 곡식을 다 공출해 가고 대신 만주에서 재배한 콩 비지를 주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증언을 차곡차곡 모아서 독립기념관 도서관에 보관해 놓아야 합니다. 오욕의 역사를 잊는 민족은 같은 비극을 또 다시 겪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오늘은 일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야기가 길어 졌습니다.  

독도 문제를 접하다 보니 갑자기 우리 역사상 최악의 매국노 김일성이 떠올라서 한마디 하려고 합니다.  

1962년 김일성은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보답으로 중국과 극비조약을 체결하고 백두산의 절반을 중국에 넘겨버렸습니다. 우리 역사상 국토 자체를 타 민족에게 잘라준 매국행위를 한 이는 김일성이가 처음일 것입니다. 

조선 조정은 중국과 300년 동안 국경 분쟁을 하면서도 단 한치의 땅도 중국에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종황제는 간도에 관리를 파견하여 세금을 거두고 백두산뿐 아니라, 간도까지 다스렸습니다.  

993년(성종 12) 거란이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얼마나 전세가 불리했으면 조정에서는 항복하자는 안과 서경 이북을 거란에게 떼어주고 강화를 하자는 안이 나왔습니다. 이에 고려 문신 서희는 자진해서 국서를 가지고 가 적장 소손녕과 담판을 벌였습니다. 

거란의 소손녕은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했다. 고려가 차지한 고구려의 옛 영토를 내 놓으라』고 합니다. 이에 서희는 『고려는 곧 고구려와 같다. 우리는 그 후손으로 같은 말을 쓰고 있으니 우리가 고구려의 후신』이라고 설득하여 거란군을 철수시켰습니다. 도리어 거란은 돌아가는 길에 여진을 정벌하여 강동6주를 고려에게 내 주었습니다. 당시 송나라와 고려, 거란 등과의 국제정세를 잘 파악하여 거란의 양보를 얻어 낸 것입니다.  

이렇게 조상들이 피 눈물로 지켜온 우리의 국토를 김일성은 무슨 떡고물 흥정하듯 지도에 줄을 죽 그어 하루아침에 중국에 넘겨 버렸습니다.
 
김일성이 백두산뿐 아니라 간도문제까지 포함하여 중국에게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으면 사정이 지금처럼은 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백두산은 중국에 넘겨줄 하등의 이유가 없는 명백한 우리 땅이었습니다. 김일성은 백두산을 영영 되찾을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기야 외세의 힘을 빌어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김일성에게 눈꼽 만큼의 애국심이나 역사관이 있었다면 그가 국토를 팔아먹는 매국 행위를 이처럼 거침없이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지도자의 역사관은 중요한 것입니다. 

김일성은 6ㆍ25 때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기가 死地로 내 몰았던 이북의 백성을 버리고 자기만 살고자 중국으로 도망갈 계획까지 세워놓았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선조 임금의 뒤통수까지 쫓아 왔을 때, 선조는 압록강을 넘으려고 했습니다. 평양까지 파죽지세로 치 닫는 일본 군대에 얼마나 겁이 났겠습니까. 신하들은 압록강을 넘는 순간 종묘사직은 사라진다며 결사로 막았습니다.  

6ㆍ25 때 이승만 대통령은 부산까지 후퇴를 했습니다. 낙동강 전선이 불안할 때 미군이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일본으로 건너가라』고 건의했습니다. 이에 이승만은 『나는 여기서 백성들과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발자국도 못 물러선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백두산을 이 민족에게 팔아 넘긴 김일성을 보건 데 그가 만약 남한 지배에 성공했더라면 과연 독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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