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본 國寶인 신라 고승인 元曉대사와 와 義湘대사의 일대기를 그린 불화들을 볼 수 있다.
계간 ‘한국의 고고학’誌(주류성출판사 발행) 여름호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교토 북서쪽 매미산에 있는 高山寺가 소장하고 있는 일본의 국보인 두루마리 불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7세기 신라의 고승이며 해동 華嚴宗(화엄종)의 창시자인 의상대사(625-702)와 원효대사(617-686)의 일대기를 그린 華嚴宗祖師繪卷(화엄종조사회권)이다. 불교계와 학계는 현지 특파원이 입수한 복사 두루마리 그림들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그동안 1-2장씩 국내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지만 전권이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에서는 12세기 들어서 後鳥羽(후조우) 황조가 命을 내려 화엄종을 발전시키기 위해 東大寺에서 후학을 지도하던 묘에쇼닌(明惠上人, 1173-1232)을 고산사 주지로 임명한다.
고산사 주지가 된 묘에는 원효와 의상을 고산사의 主神으로 모셨다.

의상과 원효가 당항성으로 가던 중에 비가 내려 이틀간 무덤속에서 쉬었다는 그림. 이곳에서 원효는 귀신에 시달리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7세기가 지난 12세기 일본 교토 고산사에서는 의상과 원효의 일대기를 여섯 권짜리 두루마리 그림으로 그려 화엄사상을 가르치고 교화시켰다.
당시 일본인들은 전란으로 심한 고통을 받으며 살았다. 묘에쇼닌이 구상하고, 에니지보조인(惠日房成忍)이 그린 이 그림은 지금은 국보로 지정되어 교토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인도의 龍樹(용수)가 지었다는 화염경은 일본 불교에서 난세를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화엄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蓮華藏世界(연화장세계)가 현실을 극복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융합하여 끝없이 뻗어가는 역동적인 생명체가 바로 연화장의 세계다. 화엄경의 중심인 毘盧蔗那佛(비로자나불)이 항상 大 광명을 비추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의상을 사랑한 선묘낭자가 자신을 두고 의상이 탄 배가 떠나자 바다에 투신한다.
신라의 高僧(고승) 의상은 650년 26세의 나이로 당시 나이가 34세였던 원효와 함께 唐나라에 간다. 첫 번째는 육로로 요동까지 갔으나 고구려 초병에게 붙들려 뒤돌아 온다.
이 두 사람은 11년 뒤인 661년 현장이나 지은대사로부터 불법을 배우기 위해 해로를 이용해 지금의 경기도 남양만 서신면 당항포에서 배를 타고 唐나라로 가기로 했으나 원효는 중간에 발길을 돌린다.
三界가 오직 법이요, 萬法이 모두 자기의식 속에 있다고 자각한 원효는 경주로 돌아온다. 혼자서 바다를 건너간 의상은 唐나라 양주에 머물면서 唐나라 화엄 2祖인 智儼(지엄)의 수제자가 되어 불도를 닦는다.
의상은 이곳에서 저서로 華嚴一乘法界圖 (화엄일승법계도)를 짓기도 한다.

선묘낭자가 의상의 만남. 선묘낭자가 의상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이 번에 지상에 공개된 두루마리 그림 의상圖 제1권에는 비오는 날 무덤 속에서 누워 잠을 청하는 원효와 의상이 그려져 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죽은 사람의 뼈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비가 여전히 내려 다시 무덤 속에서 묵게 되는데 원효는 꿈에 귀신을 만나 시달리는 장면도 그려있다.
의상은 지업으로 부터 불교를 전수 받으면서 중국 화엄종의 최고 사찰인 지상사에 8년간 머문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善妙(선묘)라는 낭자를 만난다. 이를 묘사한 장면이 고산사 소장 두루마리 그림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아름다운 소녀 선묘가 의상에게 마음이 끌려 사랑을 고백한다. 의상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자, 의상이 불법을 성취하도록 돕기로 마음을 고처 먹는다.
수도를 하던 중에 신라와 唐나라간의 관계가 악화되어 의상이 서둘러 떠나려 하자 선묘낭자는 바다에 몸을 던져 자신이 龍이 되어 의상이 탄 배가 신라의 땅에 무사히 도착하게 해달라고 발원 한다.
선묘낭자가 龍이 되어 의상이 탄 배를 끝가지 호위를 했다는 설화가 이번에 발표되는 두루마리 그림에 잘 그려져 있다.

의상이 귀국 할 때 선묘낭자가 龍으로 변신하여 의상이 탄 배가 무사히 바다를 건너 신라로 돌아오게 했다고 한다.
의상이 676년 신라 문무왕의 어명을 받들어 경북 영주 浮石寺(부석사)에 화엄종을 일으키려 했으나 먼저 자리를 잡은 승려와 신도들이 반발을 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龍의 모습으로 나타난 선묘가 그들을 내쫓고 의상이 부석사를 일으켜 세워 華嚴(화엄)사상을 펼칠 수 있도록 했다는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선묘는 큰 바위가 되어 지금도 부석사를 지키고 있다고 해서 부석사 無量壽殿(무량수전) 뒤편에 작은 善妙閣(선묘각)을 세워 선묘낭자를 기리고 있다.
의상대사 영정.

원효대사 영정.

경북 영주시 부석사

부석사를 지켜주는 선묘낭자의 화신인 浮石.

부석사 무량수전 뒤뜰에 있는 선묘낭자와 의상대사의 설화가 깃든 선묘각.
두루마리 그림 ‘원효圖’에는 신라 문무왕이 왕비의 병을 못 고치자, 원효로 하여금 칙사를 唐나라에 보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칙사가 唐나라으로 가는 도중 바다 위에서 노인을 만나 간 곳이 바로 용궁이었다. 그곳에서 黔海大龍王(검해대용왕)을 만나서 받아온 ‘金剛三昧境(금강삼매경)’의 힘을 빌려 왕비의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다.

산속에서 수도를 하는 원효대사. 호랑이들이 대사를 지켜주고 있다.

신라 문무와의 왕비가 병환이 낫지 않자 唐나라로 약을 구하러 가는 도중에 바다 속 용궁으로 들어가 금강삼매경을 받아 오고 있다.
우리는 이 두루마리 그림들을 보면서 화엄사상의 진수와 신라의 불교문화를 재음미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다시 한번 갖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