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하늘을 섬겨 왔습니다.
始祖이신 단군 할아버지는 '하늘님'의 직계 자손이니 단군께서 세운 '古조선'은 말 할 것도 없고, 그 이후에 建國된 나라의 始祖들도 그 뿌리가 하늘과 닿아 있습니다. 건국 시조 중에는 알에서 태어난 분이 대부분인데 석탈해 임금처럼 다른 나라(f용성국)에서 오신 분도 있지만, 어쨌든 알에서 나신 분들도 대체로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심지어 저의 시조(경주 李씨 시조는 이알평)께서는 王族이 아닌 데도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후에 朴혁거세를 왕으로 옹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물론 '경주 李'씨를 비롯한 신라 6촌의 시조들도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중국의 옛 문헌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농절기 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서로 어울려 즐기며 갖가지 의식을 벌였습니다. 이 祭天 행사가 얼마나 요란했던 지 異민족인 중국 사람들 눈에 신기하게 비춰저서 기록으로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과 시조와 조상을 섬기는 것은 사실상 동격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늘을 받드는 것, 시조를 섬기는 것, 조상에게 감사하는 것, 天地神明을 믿는 것이 독립적인 믿음이 아니라, 결국은 천지만물 중에 가장 높은 하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데서 오는 행위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내는 제사가 유교의 영향을 받아 좀 더 형식화 되고, 세련된 면은 있을지 몰라도, 하늘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유교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우리의 중요한 사상체계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교 질서가 엄격하던 조선시대에도 우리는 하늘과 단군, 여타 우리의 건국 시조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에 있어서는 한 치도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조선 朝는 단군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단군 사당을 수시로 정비하고, 단군에 관한 제사는 나라에서 주관하면서 철저하게 지내 왔습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箕子(기자)’께서는 이 땅에 제대로 된 가르침을 펼쳤다고 믿었기 때문에 소중하게 생각했고, 檀君(단군)께서는 우리의 뿌리였기 때문에 역시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뿌리를 이루는 분과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 분을 동격으로 대접한 것입니다.
조선 왕조는 단군뿐 아니라 역대 건국 시조에 대한 예의도 깍듯이 지켜왔습니다. 조선은 건국하자마자 고려 태조(왕건) 사당을 세우고, 역대 임금에 대한 제사를 지냄으로써 배달민족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先 왕조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고려도 500년 간 단군을 비롯한 다른 선대 국가들의 시조에 대한 제사를 잘 모셨을 것을 의심할 바 없습니다.
정조 임금 때 기록을 보면 "백제 시조 溫祚(온조) 왕을 모시는 사당 이름이 격에 맞지 않으니 제대로 된 사당 이름을 내려달라"는 신하들의 건의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온조 임금 사당은 세종 때 지어져 나라에서 봄 가을로 제사를 소홀하지 않게 모셔왔었으나, 이때에 이르러 시조 사당의 이름이 다른 시조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신하들이 지적한 것입니다.
참고로 조선 시대에는 역대 건국 시조들을 모시는 사당에 ‘崇’자와 ‘殿’자가 들어간 이름을 임금이 직접 내렸습니다. 그런데 온조왕을 모시는 사당만은 오랫동안 ‘온조왕 祀’라고 되어 있어 뜻있는 선비들이 부끄러워 차마 낯을 들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건의를 받은 정조 임금은 당장 ‘崇烈殿(숭렬전)’이란 이름을 내리고, 제문을 직접 쓰셨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舊 대한국의 고종이 황제로 등극한 후에 제일 먼저 한 일도 하늘에 제사지내고, 단군 사당을 보수하고 제사를 지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하늘을 공경하고, 각 나라를 세우신 시조들을 거의 하느님과 동격으로 받들어 모셨습니다. 이런 후손들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조상들의 蔭德(음덕)이 있어서 인지, 어쨌든 우리나라는 망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특히 시조이신 단군은 삼국시대부터 각 왕조로부터 단 한 번도 소홀함이 없이 제사를 받아왔습니다. 이런 대접을 받아 온 것은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를 세운 단군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라 하겠습니다.
역사를 좀 아는 사람들이 말하길 "한국史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부분은 '한국이 생존했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 정도로 우리 민족이 이렇게 살아남아 세계사 속에 이름을 남기고, 후손들에게 오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 자체가 사라질 뻔한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설사 민족이 어떻게 겉모습은 생존해왔더라도 혼이 빠지면 그 민족의 독창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만주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비록 DNA 테스트를 해서 민족의 독특한 형질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고 해도, 이미 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외세에 의해 민족이 사라질 뻔한 적도 있었지만, 내부의 돌연변이 때문에 민족 전체가 혼 빠진 민족이 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습니다. 50여년 전 우리는 정말 한끗발 차이로 공산화 되는 것을 면했는데, 그때 우리가 金日成이 손 아래 들어갔더라면 지금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수많은 有無형의 문화유산이 한 순간에 모두 사라졌을 겁니다.
한마디로 김일성이 때문에 껍데기만 남고 魂은 사라진 민족이 될 뻔했는데, 용케도 우리 南쪽이라도 살아남아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이 멸실 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역사를 좀 아는 또 다른 사람들이 말하길 "아시아에 두 개의 기적이 있는데 하나는 중국이 공산화 된 것이고, 또 하나는 한국이 공산화 되지 않은 것이다"고 합니다. 수천년 간 중국의 등쌀을 이겨내며 살아남은 것도 우리에게는 '기적'이었지만, 중국까지 공산화 된 마당에서 한국이 공산화 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공산화 되었으면 김일성이에 의해 사라진 수많은 유무형의 문화유산은 후에 회복 자체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혹시 일부에서는 “중국도 공산화 되었지만 그들 민족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도 공산화 되었어도 어느 정도는 문화유산이 보존되었겠지”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순진한’ 생각입니다.
김일성 체제 下에서 무슨 민족문화가 남아 있는지 살펴보면 이 문제에 대 답은 바로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독재자 단 한명 때문에 수천년의 아름다운 전통의 명맥이 모두 끊어진 것이 오늘날 북한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중국과는 사정이 다른 것이 중국은 공산당이 아무리 자기들 민족 문화를 말살하려 해도 땅 덩어리가 너무 커서 이를 100% 실행하기가 힘들었지도 모르지만, 땅이 넓지 않은 북한은 하루아침에 수천년의 전통문화를 쓰레기통에 처 넣을 수가 있었습니다.
(김일성이 같은 돌연변이가 우리민족의 역사에서 다시는 등장하지 않게 하는 연구도 절실하다. 단 한 명의 정신병자 같은 지도자가 민족의 유구한 문화유산을 흔적도 없이 없앨 수 있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어쨌든 우리 민족은 외세뿐 아니라, 같은 피를 받은 사람 손에 의해서도 사라질 뻔했는데, 이를 지켜낸 것도 하나의 기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땅에 나라를 세운 후 수천년간 조상과 건국 시조를 깍듯이 모셨으니, 산천초목도 感泣(감읍)이 있다는데 어찌 조상들인들 음덕을 발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수 천년 하늘에 제사를 지내오며 하늘을 두렵게 생각하던 우리 민족이 언젠가부터 하늘을 우습게 아는 '천하의 호로자식' 민족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사가 끊이지 않던 단군에 대한 나라 차원의 제사가 끊어진 지 오래입니다. 시조 단군에 대한 제사를 일부 종교단체(무슨 종교단체인지는 모름)가 맡아서 지내는 바람에 단군은 국민들의 가슴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단군을 팽개치니까 단군께서는 심지어 무슨 종교단체 敎主(교주) 비슷하게 변해버렸습니다.
역대 건국 시조에 대한 대접은 또 어떻습니까?
그나마 요즘 지자체 장들이 자기 고을 홍보를 위해 자기 군에서 열리는 건국 시조의 제사에 참여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이를 두고 나라에서 정식으로 제사를 지낸다고는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백제 온조왕의 사당이 이름이 격이 맞는다고 부끄러워했는데, 이 땅에 나라를 세우고, 문화를 꽃피우고, 그것을 후손에게 물려준 역대 건국 시조와 임금님에 대한 제사를 내팽개 쳐 놓고도 어느 누구 하나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상하좌우가 뒤죽박죽이고 질서가 없는 집안을 ‘콩가루 집안’이라고 합니다. 콩가루 집안이 잘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어쩌다 한 두 세대가 잘 먹고, 잘 살수 있을 지는 몰라도 결국 '망한 집구석'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거지같이 사는데, 그 집 애완 개(犬)는 호사롭게 잘 산다면 이 것이 바로 '콩가루 집안'에 전형적인 '호로자식 집안'이라고 봐도 됩니다. 자기 할아버지 제삿날은 모르면서 미국의 가수 앨비스의 사망일을 잊지 않고 애도하는 손자가 있다면 이 또한 콩가루 집안에 호로자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개가 죽었는데 火葬해서, 그 뼛가루를 사람 뼈 모시듯 동일하게 하는 행위는 인간을 모독하는 행위가 될 수 있음으로 단속해야 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행위를 야금야금 허용하기 시작하면 호화 개 장례가 등장 하게 될 것이고, 이는 심각한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 만약 자기의 소중한 가족이 죽었는데, 돈이 없어서 부잣집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이 사회의 일상적인 일이 된다면 당사자들의 가슴은 찢어질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禽獸(금수)의 나라이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참고로 저는 개를 엄청 좋아합니다.)
하늘을 공경하지 않으면 사람이 두려워할 대상이 없어지고, 인간이 善한 본성을 좇을 때 두어야 할 기준이 없어집니다.
'콩가루 집안 사람들'은 하늘을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기 집 개 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 나쁜 유혹이나 죄를 짓는데 쉽게 빠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옛 선비들이 한 시도 자기 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고, 몸 가짐에 조심한 것도 바로 하늘과 조상이 늘 자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나라는 제대로 된 품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한 나라의 격조는 대체로 그 나라의 구성원들의 생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라의 구성원들이 자기의 역사를 어떻게 대접하는가, 역대 자기 나라 건국 시조를 어떻게 대접하는가, 자기의 조상을 어떻게 대접하는가, 노인을 어떻게 대접하는가, 애국자를 어떻게 대접하는 가 하는 것만 살펴보면 나라의 품격에 대한 견적이 대강 나옵니다.
미국 사람들이 링컨을 비롯한 자기들 건국 시조를 엄청 존경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 사람들도 미국을 세운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같이 존경하게 됩니다. 자기가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결코 남들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단군을 버리는데, 일본 사람이 와서 “단군이 훌륭하니 우리가 제사를 모시겠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건국 시조와 단군에 대한 제사만큼은 일부 종교단체나, 문중에 맡겨 놓지 말고,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격을 찾는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이 조상의 음덕이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나라가 아닐 진데, 역대 건국 시조를 이렇게 우습게 대접하고, 교만방자하게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하늘을 두려워하고 받드는 것은 우리가 하늘의 성품을 닮으려 노력해온 선조들의 자세를 잇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총리들이 신사를 찾듯이 우리의 지도자들도 단군 사당이나 역대 건국 시조, 종묘 등을 찾아 예를 표하는 것을 일상화 해야 합니다.
후기 :
기독교가 전래 될 때 성경의 '유일신'(God)을 우리 민족이 원래부터 받들어 오던 ‘하느님’과 같은 단어로 번역하면서 우리의 ‘하느님’ 사상이 기독교의 ‘하느님’ 사상 속으로 상당부분 흡수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원래 말이 어떤 ‘개념’을 만들기도 하는데, 성질이 다른 두 개의 神에 대해 하나의 단어를 쓰다보니 온갖 천지신명들 속에 섞여서 주먹구구식으로 내려오던 우리 전통의 ‘하느님’이, 체계적인 기독교의 ‘하느님’ 벽을 넘지 못하고, 개념 자체가 모호해지거나, 기독교의 ‘하느님’으로 고스란히 대치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느님’이란 단어를 입에서 꺼내기를 꺼려하고,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면 곧 기독교를 믿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애써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곤 합니다. 애국가에도 나와 있듯이 하느님은 원래 우리가 믿어 오던 분인데도 말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원래 뒤뜰에 정화수 떠놓고 빌던 것 밖에 모르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교회를 한 번 가더니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가니 어머니께서 평소 뒤뜰에서 정화수 떠놓고 막연하게 찾던 것과는 게임이 안 되게 하느님이 상당히 구체적인 모습으로 계셨던 것입니다. 지금 저의 어머니는 30년 가까이 교회를 다니시며 교회 집사로 있습니다.
혹 이 글을 종교 문제로 오해 하지 말았으면 고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