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이메일을 열어보니 누군가 아래와 같은 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아마 제가 몇일 전 기자수첩에 쓴 중국관련 글(한자표기 관련 글)을 보고, 항의성 메일을 보낸 것 같습니다.
<월간조선에서 "황하"어쩌고 저쩌고 하느 글 봤는데 기자의 중국 지식이 수치스러울 정도로
형편없어서 연민의 정을 느낀다. "漢城"이 무슨뜻인지 알고 있느지? 우리나라가 중국 변방의 한성이란뜻이다. 나도 중국 한 10년정도 사업하고 삼성 주재원도 했지만 중국에 사는 우리 교민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바꾸자고 노력해온것인데...함부로 글쓰지 마라. 정신상태가 온전한지 두렵다. 40대 후반 독자. >
저는 위 이 메일을 받고, 기분이 나빴다기 보다는 참으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40대 후반이면 우리나라의 중심 세대이고, 자식이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나이 일텐데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저런 막말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잠시 우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위 메일을 보낸 분도 분명 자기 아이들에게는 "남에게 예의를 차리라"고 교육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초등학생만도 못한 무례한 편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보낸 것입니다. 단지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이처럼 스스로의 인격까지도 팽개치고 만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이런 기본 교양도 없는 사람이 보낸 편지를 몇 차례 받았습니다.
몇 개월 전에는 어떤 해외 기업체 사장이란 사람이 제가 같은 메일을 두번 보냈다고, 저에게 다짜고짜 반말로 무례한 편지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답장을 해서 이 사람의 무례함을 따지고 넘어갔습니다. 해외에서 기업체를 이끈다는 사람의 교양 수준이 이 정도이면 그 회사 직원들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몇 년전 이곳 기자수첩에서 '호통쳐서 자리 뺐는 노인들'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비록 노인들이라도, 젊은이가 앉은 자리를 호통쳐서 강제로 뺐을 수는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몇몇 노인들은 노인 공경사상을 잘못 이해하여 지하철에서 경로석에 앉은 젊은이의 자리를 호통쳐서 뺐어도 되는 줄로 알고 있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수없이 많은 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시골 노인들이 호통쳐서 학생들의 자리를 뺐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서울에 와서 호통쳐서 자리를 빼앗는 노인이나, 또 이런 노인에게 막말을 하면서 대드는 젊은이나 저에게는 무척 황당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노인들의 권리는 권리이지만, 이 권리를 찾을 때도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나라 노인들의 경우 좀 이해가 가는 것이 한 세대와 다음 세대의 가치관이 이만큼 크고 빠르게 변한 나라도 잘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노인들이 젊은이에게 호통쳐서 자리 뺐는 것은 우리가 여러모로 과도기적인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이메일이 사회에 널리 보급된지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10년이면 인터넷 문화가 과도기는 지난 것 같고, 이제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들 때도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메일은 자기의 이름을 걸고 상대에게 편지를 보낸 다는 점에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댓글하고는 그 성질이 또 다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나이먹은 분들이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초등학생 정도의 인격도 갖추지 못한 채 애 어른처럼 행동해야 합니까.
아마 제가 몇일 전 기자수첩에 쓴 중국관련 글(한자표기 관련 글)을 보고, 항의성 메일을 보낸 것 같습니다.
<월간조선에서 "황하"어쩌고 저쩌고 하느 글 봤는데 기자의 중국 지식이 수치스러울 정도로
형편없어서 연민의 정을 느낀다. "漢城"이 무슨뜻인지 알고 있느지? 우리나라가 중국 변방의 한성이란뜻이다. 나도 중국 한 10년정도 사업하고 삼성 주재원도 했지만 중국에 사는 우리 교민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바꾸자고 노력해온것인데...함부로 글쓰지 마라. 정신상태가 온전한지 두렵다. 40대 후반 독자. >
저는 위 이 메일을 받고, 기분이 나빴다기 보다는 참으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40대 후반이면 우리나라의 중심 세대이고, 자식이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나이 일텐데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저런 막말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잠시 우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위 메일을 보낸 분도 분명 자기 아이들에게는 "남에게 예의를 차리라"고 교육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초등학생만도 못한 무례한 편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보낸 것입니다. 단지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이처럼 스스로의 인격까지도 팽개치고 만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이런 기본 교양도 없는 사람이 보낸 편지를 몇 차례 받았습니다.
몇 개월 전에는 어떤 해외 기업체 사장이란 사람이 제가 같은 메일을 두번 보냈다고, 저에게 다짜고짜 반말로 무례한 편지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답장을 해서 이 사람의 무례함을 따지고 넘어갔습니다. 해외에서 기업체를 이끈다는 사람의 교양 수준이 이 정도이면 그 회사 직원들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몇 년전 이곳 기자수첩에서 '호통쳐서 자리 뺐는 노인들'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비록 노인들이라도, 젊은이가 앉은 자리를 호통쳐서 강제로 뺐을 수는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몇몇 노인들은 노인 공경사상을 잘못 이해하여 지하철에서 경로석에 앉은 젊은이의 자리를 호통쳐서 뺐어도 되는 줄로 알고 있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수없이 많은 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시골 노인들이 호통쳐서 학생들의 자리를 뺐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서울에 와서 호통쳐서 자리를 빼앗는 노인이나, 또 이런 노인에게 막말을 하면서 대드는 젊은이나 저에게는 무척 황당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노인들의 권리는 권리이지만, 이 권리를 찾을 때도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나라 노인들의 경우 좀 이해가 가는 것이 한 세대와 다음 세대의 가치관이 이만큼 크고 빠르게 변한 나라도 잘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노인들이 젊은이에게 호통쳐서 자리 뺐는 것은 우리가 여러모로 과도기적인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이메일이 사회에 널리 보급된지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10년이면 인터넷 문화가 과도기는 지난 것 같고, 이제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들 때도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메일은 자기의 이름을 걸고 상대에게 편지를 보낸 다는 점에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댓글하고는 그 성질이 또 다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나이먹은 분들이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초등학생 정도의 인격도 갖추지 못한 채 애 어른처럼 행동해야 합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