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다큐 '황하'보다 반가운 마음에...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7-03-0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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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다큐멘터리 '황하' 4부를 우연하게 보았습니다. 아직 방송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방송은 근래 방송에서 보기 드물게 중국 지명을 우리 한자음으로 표기 해주고 있어 무엇보다 반가웠습니다. 방송에 등장하는 아주 세세한 지명까지 우리 한자음으로 해주니 알아듣기 쉽고, 이해가 금방 되었습니다.
 
저는 몇 개월 전 '태평천국의 난'을 다룬 어느 책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등장인물이며, 지명을 모두 중국음으로 표기 해 놓아 도무지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고, 독서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알고 있는 태평천국 난의 주인공인 '홍수전'이 누군지조차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이놈이 홍수전 같기도 하고, 저놈이 홍수전 같기도 했습니다. 
 
역사책을 어지간히 좋아하는 저조차 책을 읽다가 포기했는데, 어린 학생들이 이런 암호같은 이름과 지명이 등장하는 책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독서도 마음대로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잘난 '중국 인명과 지명은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달리 표기한다'는 원칙은 왜 이 책에서는 적용이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심지어 중국관련 뉴스에 유명한 공산당 간부가 나와도 그 사람이 제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작년인가 중국 전 주석 '류사오치'의 부인 '왕광메이'가 죽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저는 '류사오치'가 그 유명한 '劉少奇(유소기)'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졸지에 기본 교양도 없는 놈이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교육받은 멀쩡한 대한민국 사람 반 병신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지구상에 어느 한 나라의 인명과 지명을 자국어로 표기할 때 시기를 기준으로 이중적으로 나누어 놓은 나라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 인명과 지명은 우리 조상들이 수천년간 우리식 한자음으로 써 왔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우리식 한자음으로 표기해 주어야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또 그래야 조상들과 소위 커뮤니케이션도 되고 지식의 연속성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중국 발음이 오죽 어려웠으면 우리 조상들이 수천년에 걸쳐서 이를 완벽하게 우리식 한자음으로 바꾸었겠습니까.
 
조선중기 학자 최부란 사람이 아버지 喪을 당해 제주에서 육지로 가다 풍랑을 만나 중국에 상륙했습니다. 그는 돌아와서 중국에서 겪은 일을'표해록'이란 책으로 엮었는데 이를보면 최부는 중국식 발음을 단 한자도 몰라도 '북경'은 '북경'으로 이해했고, '심양'에 가서는 그곳이 '심양' 인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스쳐간 곳의 역사적 배경을 중국 사람 뺨 칠정도로 줄줄 꿰고 있습니다. 최부가 설령 한 두개의 지명을 중국 현지음으로 알았다고 해서 중국을 더 잘 이해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는 언론에서 '절강성'이라고 하면 그 곳이 어디쯤인지 금방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지만, '저장성'이라고 하면  그것이 어디있는지 어림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저장성' 따로 있고 '절강성' 따로 있는 줄 알았습니다. '허베이성'은 더 헤깔립니다. 
 
제가 요즘의 추세를 보면서 감히 장담하건데 조만간 인명과 지명이 중국 현지음으로 된 삼국지가 등장할 것입니다. 아마 그 책뒤에는 '삼국지 인명과 지명 현지음 우리음 대조표'가 부록으로 따라 붙을 겁니다. 그때쯤이면 저같이 책을 읽다가 집어 던지는 사람 많이 나올 겁니다.
 
얼마전 어느 중화권 영화 포스터를 보았는데, 남자 주인공은 '주윤발'이나 '유덕화'인데 여자 주인공은 '짱쯔이'였습니다. 세상에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습니까. 이런 웃지못할 일이 벌어져도 멀뚱멀뚱 지켜 보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후기:
지금대로라면 1980년대 이전에 출판된 혹은 조선시대 지은 책에 한자로 표기된 중국 지명과 지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도 고민해야 한다. '北京'을 '북경'으로 읽으면 표기법이 틀리고, '베이징'이라고 읽으면 한자음이 틀리게 되니 참 난감하다. 이것도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가려서 읽어야 하는가.

또 '서울'을 '首爾'(수이)라고 쓰라고 해 놓고, '서우얼'로 읽으라는 것은 우리의 한자 음을 무시하라는 건지 아니면, 그냥 중국 사람한테만 적용되는 기준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람에게는 아무리 머리를 짜내 봐도 '首爾'는 '수이'로 발음될 뿐이지 서울 시청 공무원들이 원하는 '서우얼'로는 발음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뭣 때문에 기백 넘치는 '漢城(한성)'이란 멋있는 이름을 아무 의미없는 '수이'로 바꿔달라고 중국 사람에게 요구했을까. 할 일없는 공무원들이 긁어 부스럼 만든 격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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