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책 이야기 - 국민 아나운서 김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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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책 이야기 / 국민 아나운서 金東鍵

 

사진=李泰勳 月刊朝鮮 사진기자

글=金泰完 月刊朝鮮 기자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조리로/노랑새 꿈꾸는 버드나무 아래로」(박단마, 열일곱 살이에요)로 시작하거나, 「버들 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말을 매는 나그네야 해가 졌느냐(백년설, 대지의 항구)로 끝나는 노래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격식도, 랩 같은 호들갑도 필요없다.

  구세대 노래라고 하지만 트로트만큼 여러 세대가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드물다. 트로트는 팝송으로 치면 「스탠더드 팝」에 비견된다. 오래오래 닦아 반짝이는 놋그릇 같다.

  아나운서 金東鍵(김동건·67)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도 다르지 않다. 트로트 하면 KBS 가요무대가 떠오르고, 가요무대 하면 그가 연상된다. 트로트가 한국인에게 깊이 뿌리박힌 양식인 것처럼 金東鍵 역시 「국민 아나운서」로 남아있다. 그가 가요무대를 떠난 지가 벌써 오래 전의 일인데도 말이다.

  지난 11월7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金東鍵 아나운서를 만났다. 「오실 땐 단골손님 안 오실 땐 남인데」로 시작되는 조미미의 노래(「단골손님」)처럼 그는 익숙한 단골마냥, 여전히 국민 가까이에 서 있다. 사실 그의 단아하고 느린 목소리를 들으면 색소폰이나 금관 악기에 실린 배호의 노래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1939년생이니 은퇴할 법도 한 나이지만, 여전히 방송인으로 식지 않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현재 그는 KBS 2TV에서 「金東鍵의 한국 한국인」이란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金아나운서는 대학 은사이자 링컨 연구가이기도 한 金東吉(김동길) 연세大 명예교수의 「링컨의 일생(샘터 刊)」과 「대통령의 웃음(정우사 刊)」을 꺼내들었다. 30년도 더 읽어 손때가 묻은 책이지만 읽을수록 새로운 책이라고 소개했다. 너덜너덜해진 부분은 몇 겹의 종이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링컨에 대한 여러 책을 읽었지만 이 책 보다 잘 쓴 글을 보지 못했어요. 이 책은 「너무 인간적인」 링컨에 대한 평범하면서도 진솔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링컨의 인간미와 유머, 리더십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책이에요. 같은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 다릅니다』

  링컨의 인간미를 드러내는 대목을 그는 이렇게 소개했다.

  『남북전쟁 당시 군기를 문란 시킨 탈영병에게 군사법원이 사형선고를 내리면, 링컨은 어떤 핑계나 이유를 들어 이들을 살려내려 했다고 합니다. 왜 살리려 했을까요? 링컨은 사형이라는 단죄보다는, 탈영병을 집으로 돌려보내 기뻐할 그 부모나 일가친척의 마음을 먼저 해아렸기 때문입니다. 정말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링컨의 일생」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링컨이 23살 되던 해, 주의회 의원선거에 출마하면서 선거전단에 썼던 글이다. 링컨은 스스로 「삶의 가장 미천한 곳에서 태어나 여태 거기 머물러 있다」고 고백하며 이렇게 말했다.

  <뽑아주신다면 여러분은 저에게 커다란 호의를 베푸는 셈이고, 나는 그 호의에 보답코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착하신 어른들께서 지혜롭게 판단하시어 나를 뒷전에 그냥 두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신다 하여도 상심하지는 않을 겝니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실망을 겪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金아나운서는 이 책에 적힌 金東吉 교수의 친필 사인을 자랑스럽게 펴 보였다.

  『1977년 1월2일 세배하러 찾아뵈었더니 이 책을 주셨어요. 당시 선생님은 반체제 인사로 찍혀 고초를 당하셨는데 전혀 내색치 않으시고 제자를 맞아주셨습니다. 또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제가 졸업 전 동아방송에 입사하는 바람에 학점을 못 채워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할 판이었어요. 그런데 대학 교무처장이셨던 선생님께서 교수회의까지 소집, 졸업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셨지요』

  최희준의 노래처럼 인생이란 그저 나그넷길이요, 하숙생과 같은 처지지만 金東吉 교수와의 인연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스승이 「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오기택 노래)」, 「맨발로 뛰어라(남일해 노래)」를 외치는 한, 제자인 그 역시 현역이자 청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스승의 까랑까랑하고 거침없는 直說(직설)과 달리, 제자의 느리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는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쟁이」의 삶이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11월7일 KBS 가요무대가 1000회 방송을 맞아 그는 다시 무대에 섰다. 마치 가요무대의 진행자로 복귀한 것처럼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중장년층 흰머리 오빠부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다시금 끌어냈다.

  『그 자리에 서니 21년 전 첫 무대에 오르던 흥분과 기대, 설렘이 다시 느껴졌어요. 마치 가요무대 첫 회를 다시 진행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은 벌써 신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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