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책 이야기 - 연극계의 거인 임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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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의 거인, 林英雄

 

사진 李泰勳 月刊朝鮮 사진기자

글   金泰完 月刊朝鮮 기자

 

  林英雄(임영웅·71). 한국 연극계에 그의 이름은 독보적이다. 평생을 『내 무덤이 곧 무대』라는 신념으로 무대를 뒹굴었다. 그의 연극은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곧바로 문제의 본질에 착근, 끈질기게 삶과 현실의 부조리에 맞서왔다.

  그가 연출을 맡은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1969년 12월17일 初演(초연), 37년간 관객을 불러 들였다. 스물 두 차례나 연출하면서 「고도」는 한국은 물론 세계 공연사에 전설을 남겼다. 12월5일 서울 홍제동 산울림 극장에서 만난 林英雄 선생은 아내(吳證字 전 서울여대 교수)가 번역한 「고도…(민음사 刊)」를, 잊을 수 없는 책으로 내밀었다.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주간한국 국장이던 김성우씨가 한국일보 소극장(지금은 구관이지만) 개관 기념으로 연극을 올려보자고 해 어물쩍 「고도…」를 택했어요』

  극장이 없어 쩔쩔매던 그에게 반가운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극장엔 보기 드물게 붉은 카펫까지 깔려있지 않았던가! 당시 林英雄은 헤럴드 핀터의 부조리극 「덤 웨이터」를 카페 떼아트르에서 공연하고 있었다. 「덤 웨이터」는 바로 「고도…」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어서 자연스럽게 부조리 연극에 마음이 쏠렸던 것이다.

  『「고도…」는 별도의 장치나 등장인물도 적어 소극장에 안성맞춤이라 생각했죠. 일단 마음을 정한 뒤 「고도…」를 집에 가져가 읽는데, 통 읽히지 않았어요. 사흘이나 걸려 읽긴 했으나 어떻게 표현할지 막막하더군요. 亂賊(난적)을 만난 셈이죠.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내 방식대로 해석해 정신없이 막을 올렸습니다』

  당시 입장권 가격은 300원, 예매시 200원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뜻밖에 대박을 만난다. 악전고투하며 초연을 준비하는데 사무엘 베케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연극은 전회 매진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세인들의 호기심을 끌었던 거죠. 또 아일랜드 출신이면서도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 베케트의 정체성 때문에 영문학도와 불문학도의 관심도 몰렸구요』

  지금까지 「고도…」엔 수많은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그에게 배우 咸賢鎭(함현진)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부랑자 에스트라공으로 扮(분)했던 그는 1960년대 당시 서울 명동을 휘저으며 장발에다 벨벳코트, 노랑머리까지 그야말로 끼가 가득 찼다. 초기 「고도…」를 대중 속에 안착시킨 데는 咸賢鎭의 연기가 컸다.

  『무대에 서면 멋있게 보이는 배우가 있습니다. 咸賢鎭이 꼭 그랬어요. 대사도 못 외우고 횡설수설 하면서 제대로 공연을 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섬세함과 열화와 같은 폭발적인 면도 갖췄지요. 관객들은 그에게 시선을 뗄 수 없었죠. 실수조차 연기로 받아들였죠. 평생 프랑스 파리 무대에 서길 꿈꿨지만 1970년대 중반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林英雄은 1977년 3월 그를 추모하는 연극(「꽃피는 체리」)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바다의 침묵」

 

  지금은 절판된 베르꼬르 作 「바다의 침묵」(창조사 刊)은 1959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시절에 처음 손에 잡은 책이다. 이 작품 역시 아내가 이화여고 교사시절 번역한 책이다. 「고도…」의 前作인 「덤 웨이터」를 연출할 당시 「바다…」를 무대에 올릴까 고민할 정도로 애착이 갔던 작품이라고 한다.

  2차 대전 당시 「심야총서」로 지하 출판된 「바다…」는 프랑스 농부의 조카딸과 점령군 독일 장교가 침묵의 언어로 전쟁의 비극성을 넘는다는 줄거리. 「바다…」는 이후 1977년에서야 무대에 올려졌다. 당연히 각색은 아내가 맡았다.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1959년 이지만 당시 받은 감동과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독일군 장교 베르네르의 거의 독백에 가까운 대사외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는 소설을 희곡으로 옮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죠』

  칠순의 老연출가는 요즘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극중 대사처럼 그는 아직도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무대는 그에게 일터이자 족쇄다. 끊을 수 없는 사슬처럼 그를 옥죈다. 산울림 소극장을 이끌며 『이번 연극 끝나면 이놈의 극장, 폭파시켜 버릴 거야』라고 외쳤지만, 돌아서면 여전히 무대 앞에 서있다. 무대가 그의 무덤이기 때문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하는 양이 하나도 변한 게 없어요. 일이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60대 초반까지만 해도 체력의 한계를 느끼지 않았는데 지금은 힘들어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밤을 새는 일도 허다합니다. 남에게 연출을 맡겨도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어요. 아직도 「고도」라는 정체불명의 인간을 기다리며 여전히 「고도」와 함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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