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책 이야기 - 우리시대의 藝人 황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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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士의 책 이야기 / 우리시대의 藝人 黃秉冀
 

 

사진․李泰勳 月刊朝鮮 사진기자
金泰完 月刊朝鮮 기자

  黃秉冀(황병기․71) 이화女大 명예교수는 현대 음악가다. 가야금 「산조」라는 전통 세계에서 길어 올린 얼굴은 현대의 무늬를 띄고 있다. 그 두레박 속에 미친 얼굴은 참 맑다. 투명해서 안이 훤히 보인다. 「黃秉冀 음악」의 요체가 바로 투명한 정신세계의 표징이다.

  1월9일 서울 서대문구 자택에서 만난 黃秉冀 교수는 「草堂(초당)」이라는 책을 소개해 주었다. 이 책은 놀랍게도 그의 정신세계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草堂」은 분명 조선시대 이야기지만 영어로 쓰여졌고 책이 출간될 1930년대 당시 10여개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널리 읽힌 책이다. 정작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1949년 중학교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읽을 만한 책이 없었어요. 어른들이 보는 소설도 읽어 봤지만 도무지 재미가 없었어요. 어른들은 이다지도 재미없는 책을 왜 읽을까, 의아했는데 언젠가 「草堂」을 읽고 눈이 번쩍 뜨여졌습니다. 이것이 제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가야금을 배우게 된 정신적인 바탕이 된 것 같아요』

  「草堂」은 舊韓末(구한말) 한 선비의 눈으로 세상의 변화를 그린 자전 소설이다. 함경도 시골마을의 고매하고 아름다운 선비들의 삶과 국권상실의 혼란, 개화기의 충격, 지식인의 고뇌가 絶唱(절창)처럼 그려졌다.

  『처음에는 작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어요. 책에는 작가 姜鏞訖(강용흘), 역자 金星七(김성칠)만 나와 있을 뿐 작품해설이나 작가소개도 없었죠. 게다가 역자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지만 당시엔 영어로 쓰여 졌다고 상상도 못했어요』

  저자 姜鏞訖 선생은 1903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나 3․1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뒤 캐나다 선교사를 따라 고국을 떠났다. 보스턴大에서 의학, 하버드大에서 영미문학을 전공, 「대영백과사전」의 편집위원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연구원을 역임했으며 뉴욕大 등에서 동양문화와 비교문학을 강의한 일도 있다고 한다.「초당」은 그의 자전적인 첫 영문 장편소설이었다.

  『1960년대 중반 어느 신문에서 그가 美 롱아일랜드에 살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968년 7월 수소문 끝에 롱아일랜드 헌팅턴을 찾아 姜鏞訖 선생을 만났죠. 그는 그저 소박한 농군의 모습이었어요. 예순이 넘은 나이에 팔엔 알통이 가득했고 햇빛으로 검붉은 얼굴에 번쩍이는 눈빛이 인상적이었죠』

  선생의 집은 두 채였는데 아예 한 채는 책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거실은 물론 복도까지 책이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고 늦게까지 얘기를 나눴고 가지고 간 가야금으로 몇 곡조 연주도 해주었습니다. 선생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英譯(영역)하고 계셨습니다. 선생은 「草堂」의 영문판 「Grass Roof」 두 권을 직접 사인해서 제게 주셨죠 』

  나중 「님의 침묵」은 연세大에서 출판됐다. 姜龍訖 선생은 1970년 7월 국제펜클럽대회 초청을 받아 訪韓(방한)했고 두 사람이 반갑게 조우하기도 했다. 선생은 귀국 후 2년만에 72세 일기로 타계했으며 그의 소장도서 5000여권은 고려大에 기증됐다.

  『「草堂」은 대단한 문학작품은 아닐지 모르지만 한국적인 것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한 작품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아름다운 민족정서에 젖었고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됐어요』

  「草堂」에서 보여지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 고매한 정신세계와 고뇌하는 현대의 표상이 黃秉冀 음악세계의 한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가야금 연주자이면서도 바이올리니스트 유디 메뉴힌이나 하이펫츠의 선율을 좋아하고, 클래식 중에서도 낭만파 음악보다는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20세기 현대음악 애호가다. 또한 1960년대부터 존 콜트레인의 재즈음악에 심취했으며 비틀즈를 좋아하는가 하면 일본과 중국, 베트남 음악도 즐겨들을 정도다.

  『음식에서 비유하자면 비싸다고 다 맛있을 수 없잖아요. 음악이 건강해지려면 편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국악이라 해서 다 좋은 게 아니에요. 연주를 잘해야 좋은 겁니다. 어떤 장르는 무조건 안 듣는다, 나쁘다는 식으로 폄훼하는 것은 음악가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지요』

  그는 寡作(과작)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내놓은 음반이 고작 5개에 불과하다. 오는 3월 「달아 높이곰 돋아사」가 출시될 예정이라지만 평생 연주자와 창작자의 길을 걸었던 藝人(예인)치고는 작품수가 적다.

  『寡作이지만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작품이 지금도 끊임없이 연주됩니다. 2년전 미국 서부지역 산타크로즈라는 곳에 갔더니 곳에 갔더니 한 무용가가 제 작품 「가을」을 35년간 雨期(우기) 때마다 듣는다고 하더군요』

  黃秉冀 선생은 한 작품을 쓰기 위해 2년간을 고심한다고 한다. 2년간을 몰입해서 작품을 구상하고 마음속 소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을 쓰는 시간을 2주에 불과하다고 했다.

  『청량음료는 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는 것은 아무 맛이 없는 생수입니다. 생수같은 음악, 깊은 산골 오염되지 않은, 약수로 먹고싶은 음악이 있습니다. 그런 음악을 마지막까지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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