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제대로 못하는 사람도 많아...주중대사가 대통령 최측근이 가는 자리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 노영민 전 의원 주중대사 임명으로 본 주중대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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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민 주중대사는 충북 청주 출신이다. 제19대 대선 당시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조직본부장이었던 노영민 주중대사가 청주 유세에서 나란히 연단에 서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노영민 전 의원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관계가 냉랭해진 주 중국대사로 발탁됐다.

 충북 청주 출신의 노 대사는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 후보군에 포함될 만큼 문 대통령의 신임을 얻는 인물이다. 측근 배제 원칙 때문에 비서실장이 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이번 대선에서도 선대위 조직본부장을 맡았다.

 그는 19대 국회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일 당시 자신의 의원회관 사무실에 신용카드 결제기를 가져다 놓고 산자위 관련 공공 기관에 자기 책(시집)을 다량 팔아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간 주중대사직에는 대통령의 측근이 임명됐다.

 황병태 제2대 주중대사(1993년 6월 5일~1995년 12월 10일)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그는 상도동에 가장 늦게 합류했지만 꾀주머니라 할 정도로 풍부한 아이디어로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 됐다. 불과 1년 만에 좌동영 우형우 로 불리던 기존의 인적 울타리를 뛰어넘어 좌병태 우병태 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3당통합 당시 민정계의 박철언, 공화계의 김룡환의원과 함께 막후협상의 주역을 맡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황 전 대사는 성공한 주중대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중관계의 틀을 바꿨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993년 6월. 중국과 수교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 중국에 부임한 황병태 대사는 '등거리 외교'란 표현을 처음 썼다. 한ㆍ미 동맹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던 그 시절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한 그의 주장은 당시로선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보수진영에서 비난이 들끓었지만 결국 그의 예상은 현실이 됐다.

 황 전 대사의 후임인 정종욱 전 주중대사(제3대)는  학자 출신으로서 대사직을 맡은 뒤 외교안보전문가로 입지를 굳힌 케이스이지만 그 역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자문을 맡은 대통령의 측근이었다.

 1993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발탁된 그는 외무부 본부 대사를 거쳐 주중대사에 임명됐다. 그는 이후 최고의 '중국통'이란 평을 받으며 2014년 박근혜정부에서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에 올랐다. 정 전 대사는 특히 1997년 황장엽 망명 사건 당시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상대로 끈질긴 협상을 벌여 황씨의 한국행을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는 모두 외교가에서 잔뼈가 굵은 권병현(1998년 4월 28일~2000년 8월 7일)ㆍ홍순영(2000년 8월 31일~2001년 9월 12일)ㆍ김하중(2001년 10월 10일~2008년 3월 11일) 대사가 10년간 대중외교를 책임졌다.

 이명박 정부 초대 주중대사(제7대)인 신정승 전 대사(2008년 5월 27일~2009년 12월 25일)는 외교관 출신이었다.
1992년 한ㆍ중 수교의 실무 주역이었던 그는  당시 동북아 2과장을 하다가 중국과 비밀 교섭을 위해 병가를 낸 뒤 안가에서 5개월간 은밀하게 작업했다.

 신 전 대사 다음으로 주중대사가 된 류우익 전 대사(제8대 2010년 1월 11일~2011년 5월 7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경북 상주 출신인 류 전 대사는 2007년 이명박 대선후보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원(GSI) 원장을 맡아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입안했다. 인수위 시절엔 조각(組閣) 등 인사와 대통령 연설문 작성 등에 깊이 관여했고 이명박 정부 초대 대통령실장으로 발탁됐었다. 당시 한나라당 내에선 " "대통령에게 어떤 문제도 서슴없이 직언할 수 있는 핵심측근"으로 통했다. 대통령실장 시절엔 비서실 내부의 사소한 일까지 일일이 챙기며 직원 단속에 나서 '청와대 군기반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권영세(2013년 6월 1일~2015년 3월 26일), 김장수(2015년 3월 27일~2017년 8월 31일)전 대사가 주중대사를 역임했다. 두 사람 모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권 전 대사는 친박 핵심으로 18대 대선 때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다. 2012년 4월 총선 때는 사무총장을 맡아 선거 실무를 지휘했다.

 권 전 대사의 후임인 김장수 전 대사는 국방장관 시절인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며 고개를 숙이지 않아 '꼿꼿 장수'란 별명을 얻었다. 이듬해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2012년 새누리당 대선 캠프에서 국방안보추진단장을 맡아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만드는 데 역할을 했다.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 분과위 간사를 거쳐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장관급)에 발탁됐다.

 주중대사직에 대통령의 최측근 또는 정권 실세를 임명하는 이유는 한·중관계가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진 까닭이다. 중국은 우리와의 교역 규모에서 미국·일본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최대 교역 상대이자 북한의 도발 때  번번이 북한 쪽 입장을 두둔해 우리를 어려운 지경에 빠뜨리곤 하는 나라다.

 정치권 관계자는 "중국은 한반도 주변 4강이자 6자회담 수석대표국이다. 자연스레 미국 못지않게 이들 나라에 거는 대사의 중요성도 크다. 북핵은 물론 안보·경제(중국), 위안부문제(일본), 경제협력(러시아) 등 현안도 많다. 이것이 대통령의 최측근이 기용되는 이유"라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 최측근 주중대사들이 받은 성적표는 다소 실망스럽다. 그동안 기대를 모았던 대통령 측근이나 정치인 출신의 주중 한국 대사가 대부분 부임 후에는 중국 외교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측근 출신은 대통령의 의사를 직접 중국 측에 전달할 수 있어 한·중 관계에서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막연히 기대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며 “이는 관시(關係)를 중시하는 중국 특유의 문화도 있지만 측근이나 정치인 출신 대사는 한·중 관계 전반을 고민하기보다는 다음 자리를 염두에 두고 본인 정치에 바쁜 탓이 더 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주중 대사를 정권 내부의 인사(人事) 요인 때문에 바꾸다 보니 중국어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외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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