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범하되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 물샐틈없는 급변계획 준비 필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 김정일을 초청해 국제현실 보여줘야
鄭玉任 국회의원
⊙ 1960년 서울 출생.
⊙ 성신여대 사대부여고·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同대학원 석·박사.
⊙ 美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美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 브루킹스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전문위원, 국가정보원·외교통상부·국방부 정책자문위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제18代 국회의원,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위원, 한나라당 국제위원회
부위원장.
국제사회에서 우리처럼 역동적인 나라는 드물다. 대외(對外)정책, 국내정치뿐 아니라 문화, 예술, 체육 등 전방위적으로 ‘다이내믹 코리아’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한반도의 역동성은 대외정책이나 국내정치에 그치지 않는다. 시대정신이 무색할 정도로 1인 독재를 고집하며 대(代)를 이어 권력을 승계하는 북한의 존재와 김정일(金正日)의 운명! 이것이야말로 2010년의 문턱을 넘어선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며, 한반도의 역동성을 극단적으로 심화시킬 수 있는 동인(動因)이다. 북한 정권이 기존의 통제력을 잃어갈수록, 긴장의 고삐를 죄며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 자체가 역설(逆說)이다. 물론 현상에 관한 제한된 정보에, 직관과 상상력이 동원된 만큼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철저히 준비할 때이며, 변화가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는 주장을 접을 수가 없다.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 김정일을 초청해 국제현실 보여줘야
鄭玉任 국회의원
⊙ 1960년 서울 출생.
⊙ 성신여대 사대부여고·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同대학원 석·박사.
⊙ 美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美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 브루킹스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전문위원, 국가정보원·외교통상부·국방부 정책자문위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제18代 국회의원,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위원, 한나라당 국제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일 정권은 붕괴해도 북한 체제는 존속 가능
김정일 정권은 과연 무너질 것인가? 이 질문은 붕괴의 여부보다 ‘언제 붕괴할 것인가’가 더 적절할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역사적으로 모든 정권이 명멸해 왔으며 영속한 정권은 없다. 공산주의의 외피(外皮)를 쓴 채 권력의 부자(父子)승계에 성공한 독특한 정권이 과연 21세기에도 존속될 수 있을지는 희대의 관심사다. 김정일 사후 아들에게 권력을 일시적으로 승계할 수는 있으나, 그 권력이 영속될 가능성은 붕괴 가능성보다 훨씬 미미하다.
둘째, 정권과 체제는 구분해야 한다. 김정일 정권은 붕괴해도 북한 체제는 존속할 수 있다. 따라서 정권의 붕괴를 곧 체제 와해에 따른 대한민국 주도의 남북통일과 연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더욱이 우리의 통일과정은 베트남식도, 독일식도, 예멘식도 아닌 새로운 시나리오로 전개될 것이다. 상황 추이에 따라 순발력 있게 조정할 여지를 확보하되, 통일 과정 전반이 지난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셋째, 어떤 붕괴 시나리오가 되든 그 출발점은 김정일의 유고, 즉 생물학적 사망의 가능성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 붕괴와 관련해 군부 쿠데타, 주민소요, 학살 그리고 대량 난민 발생 등 다양한 급변사태 시나리오를 제기한다. 김정일 암살 가능성 및 생존 시 쿠데타 시도 확률은 ‘제로’로 보는 것인데, 이것 역시 전례가 없는 북한 정권의 비(非)정상성에 기인한다. 무엇보다 김정일은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데는 동물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가 김일성(金日成)으로부터 이어받은 권력도 승계라기보다는 쟁취에 가깝다. 그만큼 그는 천부적인 권력자이다.
따라서 김정일 개인의 건강상태가 북한 정권의 존속과 남북관계 및 한반도, 동북아 안보를 결정짓는 주 변수가 된다. 김정일은 2008년 뇌졸중 발생으로 좌하부 신경기관 마비 및 우울증, 그리고 당뇨성 만성 신부전증 악화와 만성후두염 등 각종 성인병을 앓고 있다. 이런 건강상태는 1인 지도체제에 과부하를 주기에 충분하다. 채 서른도 안된 셋째 아들에게 권력 세습을 서둘러야 하는 정치적 과제 또한 독재자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극단화시킬 수밖에 없다.
노화(老化)에 따른 자제력 부족도 드러난다. 대북(對北) 정보 핵심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일은 자신의 가족에 통치의 한 축을 의존하고, 술과 담배를 다시 찾는가 하면 짜증과 의심으로 측근들을 괴롭힌다고 한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자연사할 확률은 높아지고 2012년은 어떤 의미로든 분기점이 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김정일의 권력 세습에 대한 집착은 북한 정권이 벼랑 끝에서 극단적 선택을 감행할 개연성을 줄이는 요소가 된다. 권력 계승은 죽어도 좋다는 각오보다는 대(代)를 이은 생존에의 집착에 가깝다.
1984년생 ‘청년대장 김정은’에 대한 상징조작과 찬양은 인민의 비아냥을 넘어 눈물겨울 정도다. 김정은의 공식 직함은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후계 자체를 함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김정일 시대가 저문다는 인식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정은 후계화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김정은은 김정일의 현장 방문 수행 등 통치 활동을 보좌하는 가운데 신진 간부를 선발해 친위 세력화하고 있다. 2009년 4월의 미사일 발사와 화폐개혁도 원래는 김정은의 공으로 돌려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었다.
한국은 북한의 非대칭적 殺傷 위협의 인질
![]() |
건강악화설에도 불구하고 현장 지도를 강화하고 있는 김정일. 지난 2월 21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이 황해도 북부 송림에 위치한 황해 철강 복합단지를 방문했다’며 이 사진을 공개했다. |
김정일의 사망으로 권력의 진공상태가 발생할 경우 특정 세력이 김정은을 앞세워 집단지도 체제를 구축할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권력투쟁이 촉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일의 고민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화폐개혁 실패로 북한 정권이 흔들리고 있지만, 일련의 불안이 무(無)정부 상태나 정권 붕괴로 비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시장 보따리 아줌마가 벤츠 탄 고위 간부를 이기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주민 대(對) 당국 간 갈등 징후는 나타나지만, 촉매가 될 조직화 세력이 부재한 데다, 체제 보위기관이 건재해 있어 단기간 내 변화를 주도할 개연성이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변사태 대비 계획은 긴요하다. 세계 경제력 10위권의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느냐 하는 것은 북한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북한의 비대칭적 살상 위협의 인질 상태에 있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형국에 더해, 생화학 무기·미사일 및 휴전선 일대를 뒤덮은 자주포·방사포 등의 사정권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급변사태 대비 계획의 존재는 기밀이 아닌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급변계획의 요체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일차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안녕과 대한민국의 안보를 확고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1991년의 남북 기본합의문 정신, 즉 체제의 상호 인정을 강조하되, 북한 정권이 그들의 내부 문제를 대남 도발로 반전시키려는 기도 자체를 사전 봉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급변사태에 있어 중요한 대목이 있다. 바로 북한 엘리트의 관리 문제다. 김정일 정권하의 엘리트들에 대해 그들이 대한민국의 안보에 치명적 위해(危害)를 가하지 않는 한, 김정일의 유고와 함께 체제 변환의 과정에서 그들에게 어떠한 단죄도 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언급하기도 조심스럽고 예민한 사안이나, 북한 내 엘리트들에게 명확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 위기관리에 결정적 순기능을 할 것이다. 체제 피로감을 체감하는 핵심 엘리트들이 향후 새로운 북한 체제의 리더로서 자리매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북한 정권은 6·15 10주년, 고려연방제 제의 30주년을 맞은 2010년을 자주통일의 새 국면을 여는 해로 천명하고 있다. 체제 속성과 전술한 압박 때문에 유화와 도발의 양동 작전을 구사할 가능성은 더 커졌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내지 미·북(美北) 간 대화가 열린다고 해도 김정일이 핵 폐기의 전략적 결단을 내린다는 보장은 없다.
남북정상회담과 G20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과 내용은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201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해서는 여야(與野) 모두 긍정적이다. 이명박(李明博)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의 의지가 있음을 이미 밝혔으나, 회담의 사전 대가는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올해 11월 한국이 G20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는 않다. 북한이 그 사이에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주목해야 하는 상황이며, 국지 도발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정권의 부자상속을 향한 북한의 퇴행적 행태와 아시아 최초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한국의 선진화 행보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G20은 국제사회에 전근대와 포스트모던을 아우르는 역설적인 한반도 상황을 재확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만약 올 11월 이전까지 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이 없다면 차라리 이명박 정부가 G20에 김정일을 옵서버로 초청하는 극적인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모름지기 북한의 권력자에게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와 상호의존적인 국제 협력의 실체를 직접 체험하게 해 줄 장(場)이 될 것이다.
김정일이 이 제안에 응할 가능성이 작다 해도 한국의 대북정책 방향과 북핵 문제의 심각성, 나아가 유엔이 천명하는 쟁점들을 환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가 있다. 한국이 북한의 덫에서 헤어나려면, 즉 부정적 동력을 긍정의 힘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대범하되 원칙에 입각한 대북 정책 그리고 물샐틈없는 급변계획을 병행하지 않을 수 없다.★
(본 기고문은 개인의 의견으로 한나라당 또는 대한민국 국회의 입장과 무관(無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