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공동체로서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려는 자세 필요
봉사와 원조보다 교류·협력의 자세 필요
朴宗三 월드비전 회장
⊙ 1936년 서울 출생.
⊙ 서울대 치과대, 장로교신학대 졸업.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 신학 석사, 버지니아 코먼웰스대·
서던캘리포니아대 사회사업학 박사.
⊙ 한국사회복지학회 회장, 숭실대 사회사업학과 교수, 한국교회사회봉사연구소 소장 역임.
⊙ 現 서울 덕수교회 목사, 살롬문화원 원장.
대한민국은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에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제 국제사회에서 엄연한 공여국(供與國)으로 성장한 것이다. 나아가 올해 11월에 있을 G20 정상회담, 내년에 있을 OECD DAC 원조효과성 고위급회의, 후년에 있을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등 전 세계가 주목하는 중요한 회의들을 개최하게 되어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봉사와 원조보다 교류·협력의 자세 필요
朴宗三 월드비전 회장
⊙ 1936년 서울 출생.
⊙ 서울대 치과대, 장로교신학대 졸업.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 신학 석사, 버지니아 코먼웰스대·
서던캘리포니아대 사회사업학 박사.
⊙ 한국사회복지학회 회장, 숭실대 사회사업학과 교수, 한국교회사회봉사연구소 소장 역임.
⊙ 現 서울 덕수교회 목사, 살롬문화원 원장.
한편,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지구촌이 커다란 위기들을 겪고 있음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금융위기, 식량위기, 기후변화 등 이제는 몇몇 국가 간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라 전 지구촌의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현 시점에서 진정한 선진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하는 것은 전 지구적 위기 해결에 대한민국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기여하는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어떠한 요건이 필요한지 제시해 보고자 한다.
개발도상국의 잠재력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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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김혜자씨는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오랫동안 아프리카 등지에서 봉사 활동을 펼쳐 오고 있다. |
첫째, 과거에 군사력,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가 국력을 상징했다면 이제는 문화 콘텐츠와 같은 소프트파워가 국력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소프트파워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한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존경받고 있으며, 국민들이 자국(自國)에 대해 얼마나 신뢰하고 자부심을 느끼는가 하는 점이다. 과거와 같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위기와 현안을 해결하는 데 있어 얼마나 선도적인 모범을 보이는가가 진정한 선진국의 조건이다.
둘째, 기존의 봉사와 원조라는 개념을 넘어 교류와 협력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봉사와 원조는 일방적이고 우월적인 시혜(施惠)의 개념이다. 인간은 어떠한 관계에서도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라 서로 배우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국가관계에서도 일방적으로 돕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지구촌 공동체로서 무거운 짐을 함께 지고 나누려는 자세와 함께 교류와 협력의 과정에서 서로 배우고 상호이익이 될 수 있는 좀 더 넓고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몇 년 전, 수년 동안의 기근(饑饉)으로 위기에 빠져 있던 케냐의 한 지역에 실태조사를 위해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집은 집이라고 보기 어려운 선사시대 움집보다 못한 유목민들의 임시 가옥이었다. 가뭄과 기근으로 가축마저 죽어 가는 위기 속에서도 여주인은 우리에게 아프리카 밀크티를 대접해 주었다. 먹을 것이 부족할 때 밀크티는 구황식품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기근의 위기 속에서도 손님에게 먹을 것을 내오는 그들의 너그러움과 배려를 접하며 ‘예전에 우리 선조들도 그랬었는데…’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풍요하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빈곤해져 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삶의 모습은 무엇이 진정 발전된 사회이고 성숙한 사회인지 가늠케 하는 교훈과 방향을 제시해 주는 소중한 자원이다.
셋째,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는 개발도상국 주민들을 ‘무능력하고, 게으르고, 연약하다’고 보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누구나 스스로 발전하고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일본과 조선의 초기 서양 선교사들은 공통적으로 당시의 일본인들과 조선인들을 ‘게으르고, 불결하고, 무지한 백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같은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모습은 가난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지, 그러한 모습들이 가난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런 특징들이 가난의 원인이라면 일본과 대한민국의 지금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공 사례 국제사회와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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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세계식량계획이 나눠주는 음식을 기다리는 아이티 어린이들의 간절한 눈빛과 손짓. |
대한민국과 일본이 그랬듯 지금의 개발도상국들도 적절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스스로 성장하고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일원이 될 수 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교류하고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말에 ‘마중물’이라는 표현이 있다. 펌프질을 하는 데에 마중물 한 바가지면 수압을 이용해 지하수를 풍성하게 끌어올릴 수 있다. 그 마중물 한 바가지가 없으면 무한한 지하수의 잠재력은 무용지물이다. 우리의 기대와 인정, 그리고 동반자로서의 교류와 협력이야말로 개발도상국들이 빈곤의 함정에서 벗어나 발전사다리의 첫 계단에 올라설 수 있게 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현재 국제사회의 선진 공여국 중에 미국과 일본은 전체 원조액의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협력의 목적을 정치적, 경제적 국익 추구에 두고 있어 국제사회의 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노르웨이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원조 규모에서는 이들 국가에 미치지 못하지만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위에서 제시한 가치와 목적을 위해 협력을 추구하고 있어 진정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한민국은 후발 공여국으로서 빠른 시일 내에 인지도를 높이고자 하는 욕심에 종종 차별성을 부각시키려는 조급함을 보이고 있다. 필자 생각에는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이전에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스탠더드를 먼저 추구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물론 획일화된 스탠더드를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특성화된 국제협력의 모델을 만드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절대 빈곤과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성장한 국가로서 대한민국만이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다각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의 사례와 노하우를 국제사회와 공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당장에라도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점은 절대빈곤과, 전쟁의 아픔과 서러움을 몸소 겪어 본 민족으로서 개발도상국의 아픔과 서러움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한 민족으로서, 그들이 현재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과 같은 기적을 이뤄낼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지지해 줄 수 있다.
대한민국은 절대빈곤과 전쟁의 위기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모두를 이뤄낸 지구상의 유일한 국가다. 따라서 개발도상국들에 대한민국은 벤치마킹할 수 있는 중요한 모델이다. 우리가 겪어 온 고통과 시련을 바탕으로, 과거 강대국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지구촌의 빈곤과 위기극복에 기여하려 정진한다면 대한민국은 진정 성숙하고 존경받는 선진국의 새로운 모델이 되는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