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복지 모델은 2차 대전 후 서구 사회에 바탕,
선진국에서는 公·私 부문 협력, 고용을 통한 복지 강조 추세
金元植 건국대 교수·前 한국사회보장학회장
⊙ 1956년 서울 출생.
⊙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美텍사스A&M대 경제학 박사.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사회과학대학장, 공무원연금제도개혁위 위원, 한국사회보장학회장 역임.
⊙ 現 21세기근로복지연구회장, 국민연금심의위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 고용보험전문위원.
우리나라가 1995년 OECD에 가입한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경제적으로 OECD의 30여 개 국가 가운데 우리는 이미 중간 수준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사회복지 수준에서는 100년 이상의 복지전통을 가진 선진국들과 질적·양적으로 상당한 격차가 있다.선진국에서는 公·私 부문 협력, 고용을 통한 복지 강조 추세
金元植 건국대 교수·前 한국사회보장학회장
⊙ 1956년 서울 출생.
⊙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美텍사스A&M대 경제학 박사.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사회과학대학장, 공무원연금제도개혁위 위원, 한국사회보장학회장 역임.
⊙ 現 21세기근로복지연구회장, 국민연금심의위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 고용보험전문위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기초생계비 이하 소득의 취약계층을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 근로자 및 일반국민들을 위해 4대 사회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및 장기노인요양보험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저(低)소득층이 이러한 제도의 대상에서 제외돼 있고, 다수의 근로자가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복지패널>에 따르면 2006년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고 있는 비율은 7%로 상대적 빈곤계층의 50% 수준에 불과하다. 공적(公的)연금 가입비율은 전체 인구의 65%, 고용보험은 39%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국민건강보험은 가입률이 93%에 달하지만, 진료비 보장 수준은 50%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복지비 지출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득재(再)분배 성격이 강한 사회보험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를 확대해 왔다. 이는 기업들에 인건비 부담으로 전가(轉嫁)됐고, 영세기업들로 하여금 사회보험료 부담을 기피하게 해 저소득 근로자들이 사회안전망에서 사실상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는 겉보기에는 상당히 잘 갖추어진 것 같아 보여도, 공공복지비 지출은 다른 어떤 OECD 선진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예를 들면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공공복지비는 국내총생산의 6.9%로 일본 18.6%, 미국 15.9%, 독일 26.7%, 영국 21.3% 등과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2020년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복지비 수준이 위의 나라들을 추월할 것이다. 하지만 복지비의 증가는 정부재정이나 경제발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복지제도를 단기간에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낡은 서구식 제도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은 전통적으로 유지해 온 복지제도들이 성장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1980년대부터 신(新)자유주의에 입각해 복지제도를 재구축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1980년대 초 대처 총리 시절부터 복지제도를 대폭적으로 축소하면서, 고용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자극받은 다른 유럽 국가도 복지제도의 운영에 경쟁개념을 도입하고, 민간부문과의 공조(共助)를 시도해 왔다.
선진국의 사회적 환경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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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과 복지를 연계시키는 것이 선진국의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이다. |
선진국들이 복지제도를 개혁하게 된 계기는 기존의 복지제도가 도입되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와는 사회적 환경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당시 복지제도는 다음과 같은 가정(假定)을 바탕으로 구축됐다.
첫째, 당시의 복지제도는 여성이 앞으로도 가사(家事)만을 담당하리라는 가정에 바탕을 두었다. 이에 따라 여성에 대한 일자리 창출보다는 여성이 가정을 유지하는 데 지원이 집중됐다. 그러나 현대의 여성은 일과 가정의 양립(兩立)을 원한다.
둘째, 자본시장의 활성화로 근로자들의 자본소득 비중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개인의 소득은 주로 근로소득으로 구성된다고 가정했다. 이에 따라 아직도 자본소득을 포함한 전체 소득이 아닌 근로소득에만 기초해 사회보험료 및 급여가 책정되고 있다.
셋째, 저소득층도 고용이나 취업 기회가 주어지면 계층상승을 할 수 있음에도, 복지제도는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이나 취업교육, 다양한 사회경제적 정보로부터의 소외에 대해 무관심해 왔다.
넷째,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가정했다. 이에 따라 선진 각국은 국민연금을 부과(pay-as-you-go)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그러나 인구가 정체(停滯), 감소하면서 공적연금의 적자(赤字)가 눈덩이처럼 커져서 국가재정과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1992년 이탈리아의 외환(外換) 위기나 최근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기는 과도한 공적연금 적자가 한 원인이었다.
다섯째, 인간의 평균수명이 지금처럼 빠르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기존의 복지제도는 1930년대의 평균수명인 45세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지금은 이보다 적어도 30년 이상 평균수명이 연장됐다. 더욱이 의료기술의 발달로 앞으로 평균수명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예상이 불가능하다.
선진국의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
이상의 가정하에 운영되어 온 복지제도는 사실상 사회 전반에 걸쳐서 도덕적 해이(解弛)를 낳았고, 복지예산의 낭비와 정부지출 증대로 이어지면서 근로계층의 부담을 높였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은 복지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우선 여성들이 마음 놓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기 위해 육아(育兒)를 위한 정부지원을 늘리고 있다. 저소득층 자녀에 대해서는 양질(良質)의 공공교육을 통해 능력을 배양시켜 보다 나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돕고 있다.
개인의 노후(老後)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국민연금, 기업연금(우리나라의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중심으로 한 3층보장연금 시스템을 확립하고, 기업연금을 활성화해 민간부문 연금자산의 축적을 독려하고 있다. 호주·홍콩 등은 모든 근로자에게 기업연금을 의무화하고 있다. 영국·독일·미국 등은 개인이 가입하는 민간연금에 다양한 세제(稅制)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기업연금·기금은 자본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등 보이지 않는 효과를 낳고 있다.
미국·독일·스웨덴 등은 평균수명에 따라 국민연금 수급(需給)연령을 높이고 있다. 개인이 공적연금 수급 전까지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면서, 더 많은 기간 연금을 적립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의료부문은 고령화(高齡化)나 고가(高價) 의료기술의 발달에 따라 국민의료비가 급증하고 있어 각국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문 중 하나다. 이에 따라 다양한 의료전달체계 및 공적건강보험제도의 개선이 시도되고 있다.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인구가 전체의 20%(약 4700만명)가 넘는 미국은 현재로서 힘들기는 하지만 공적건강보험을 도입해 공공보험과 민간보험 간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독일은 공적건강보험에 대해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호주는 생애보장 민영건강보험 구매에 정부가 지원을 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건강보험에서 민간부문과 공적부문과의 조화가 일반화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이상이 오늘날 복지선진국의 스탠더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용과 복지
‘고용이 최고의 복지’라는 점에서 노동시장 개혁은 매우 중요하다. 선진국의 경우, 비교적 안정된 고용구조 및 기업복지제도는 복지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자영업자들을 기업 부문으로 유도하고, 기업 부문에서도 정규직의 비중을 높여서 고용안정을 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영환경이 경쟁적이 되고 지속적 고용유지가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은 특성에 따라 다른 형태의 고용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규직 등의 특정 고용형태를 강요할 경우 노동시장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기업 경쟁력의 하락을 낳는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이 고용을 보장하도록 간접적인 유인(誘因)을 제공하고, 근로자를 중심으로 기업복지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양한 근로자복지제도가 있으나 기업이나 근로자의 참여가 저조하고, 공적사회보험제도의 확대에 따라 이들 근로자복지제도의 전체 노무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하락하고 있다.
새로운 복지시스템을 설계하자
1980년 초반 국민건강보험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온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지금까지 그 효율성에 대한 검증 없이 확대 일변도로 성장해 왔다. 복지정책은 공평성에 기초해 지나치게 소득분배적인 목적으로 시행됐다. 이에 따라 도덕적 해이와 제도 운영의 관료화 현상, 보험재정의 낭비 현상 등이 나타났다.
이제는 서구의 낡은 사회복지시스템에 기초한 기존 복지제도의 효율성을 검증하면서, 질적 개선을 도모해야 할 때이다.
연금제도의 경우, 퇴직금제도를 폐지하고 퇴직연금을 강제화해 3층 연금보장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국민연금에서 조성된 300조원의 기금은 20년 후면 고갈되기 시작할 것이다. 따라서 퇴직연금을 통해 노후 기금을 적립해서 안정적인 노후보장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현재 건강보험은 의료공급자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단일보험료 단일급여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입자 특성별·지역별 보험료 급여의 편차가 심하고, 이에 따른 도덕적 해이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국민건강보험을 지역별로 독립적으로 재정을 운영하도록 하고, 국민건강보험을 보완하는 성격의 민영건강보험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아울러 국민들의 의료수요 및 환자의 질적 의료서비스 개선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동안 공공성 논리에 묶여서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영리(營利)의료법인의 도입이 필요하다.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서비스제도의 경우, 오늘날에는 의료급여뿐 아니라 교육, 건강보장, 육아, 주거안정까지 요구되고 있다. 이는 저소득계층의 생활을 안정화시키고 사회적으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복지급여제도의 질을 높여서 저소득층이 노력에 따라 중산층으로 편입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