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 현대차, SK 등과 같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제조업 기업이 GDP 2만 달러 시대 열었다면,
4만 달러 시대는 글로벌 금융기업의 탄생이 필수
朴焌鉉 삼성증권 사장
⊙ 1953년 인천 출생.
⊙ 제물포고, 서울대 법대 졸업. 同 대학원 법학석사.
⊙ 삼성생명 기획실장, 자산P/F그룹장(전무), 자산운용BU장(부사장) 역임.
4만 달러 시대는 글로벌 금융기업의 탄생이 필수
朴焌鉉 삼성증권 사장
⊙ 1953년 인천 출생.
⊙ 제물포고, 서울대 법대 졸업. 同 대학원 법학석사.
⊙ 삼성생명 기획실장, 자산P/F그룹장(전무), 자산운용BU장(부사장) 역임.
-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07년 9월, 뉴욕 증권가에서 다우존스와 S&P가 3% 가까이 빠지자 투자자들이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명문대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 둘이서 지금까지는 보지 못한 뛰어난 기술을 개발했다면서 투자자들을 모으고 있다. 직원은 자신들 포함 총 3명이며 매출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고, 사업계획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또 자신들이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기술조차 최초가 아닐뿐더러, 이 분야가 워낙 경쟁이 치열해 현재도 수많은 기업이 이전투구를 하고 있는 레드 오션이라고 한다.”
만약 대한민국이라면 이 학생들이 투자자를 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들은 투자자를 모으는 데 성공했고, 나아가 세계에서 가장 큰 IT회사를 만드는 기적을 창출했다. 바로 10년 전 투자 유치에 성공해 현재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삼성전자보다 두 배나 큰 ‘구글’을 만든 미국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라는 청년 사업가 이야기다.
미국의 눈부신 발전의 토대에는 개척시대에 필요한 투자자금을 유럽 등지에서 모아줄 수 있었던 JP모건과 같은 투자은행의 존재와, 앞서 예를 든 것과 같이 모험 기업이 태동해 성장할 수 있는 벤처 생태계가 살아 있다는 점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결국 자본시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보자. 지금까지 전 세계 주식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로 상장한 기업은 어디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미국기업을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중국공상은행(ICBC)이다. 중국공상은행은 2006년 219억 달러라는 엄청난 기업공개(IPO) 자금을 끌어들이면서 세계 자본시장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천명한 지 30년, 상하이에 증권거래소가 설립된 지 채 20년 만에 중국이 이루어낸 작품이다. 이는 중국정부가 경제발전을 위해 얼마만큼 자본시장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게 해 주는 단적인 사례다. GDP 4만 달러는 일본도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열심히 일하는 근면성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1인당 GDP 4만 달러의 산업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 특히 자본시장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서지 않고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글로벌 기업의 30% 금융기관이 차지
GDP 2만 달러 시대를 삼성전자, LG, 현대차, SK 등과 같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제조업 기업(2007년 글로벌 100대 기업)들이 열었다면, 4만 달러 시대는 글로벌 금융기업의 탄생이 필수다.
세계적으로 글로벌 100대 기업 중 약 30% 이상을 금융기관이 차지하고 있다. 매출이나 순이익 기준 어느 것으로 보아도 같은 결과를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글로벌 100대 기업에 들어간 금융기관은 29개社(사)로 이 중 26개사가 1인당 GDP 4만 달러를 넘는 국가들의 금융기관이다. 더욱이 금융산업은 순이익 측면에서 글로벌 100대 기업 전체 순이익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가 부실자산을 헐값에 인수한 후 비싸게 재매각하는 사례를 보고 ‘먹튀’냐 아니냐 논란이 일고, 대우건설 인수 후보에 오른 사모펀드 자금이 투기자금이냐 아니냐를 논하기 전에, 왜 우리 토종자본은 인수할 능력이 없어서 외국기업들에 기회를 줄 수밖에 없는가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전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글로벌 자본시장에선 24시간 쉬지 않고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리먼브러더스가 쓰러진 자리를 일본의 노무라증권과 영국의 바클레이즈가 대신하면서 차근차근 과실을 수확하고 있다.
아직 성공여부를 판단하기는 이르겠지만, 노무라증권은 1980년대부터 추진해 오던 글로벌 플레이어 진입이라는 평생의 숙원사업을 이번 리먼브러더스의 유럽과 아시아지역 본부를 인수하면서 기회를 얻게 됐고, 바클레이즈는 리먼브러더스 북미지역본부를 인수해 미국 자본시장의 심장부인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 본사건물에 자사 로고를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다.
금융위기가 한 풀 꺾이고 난 지금 기지개를 켜고 있는 중국 자본시장의 움직임도 주목해야 한다. 이미 공상은행 기업공개를 통해 저력을 확인한 바 있지만, 2009년에는 특히 한국의 코스닥과 유사한 차스닥 시장을 개설해 자본시장을 통한 모험 기업 육성 전략을 공고히 한 바 있으며, 2009년 신규상장 규모는 이미 세계 최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엔젤 투자자들이 ‘구글’ 키워내
구글이 10년 전 벤처투자자로부터 자금조달에 실패했다면 세계 최대의 인터넷 회사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당시 구글에 대한 투자자는 누구였는가? 이는 기술은 있지만 자금이 없는 모험 기업들에 천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엔젤 투자자’들이다. 엔젤 투자자들이 투자한 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던 것은 광대한 자본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자본시장을 통해 리스크 수용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얻어낼 수 있었다.
구글의 경우 엔젤 투자를 받은 5년 후 나스닥 시장에 상장하면서 투자금의 몇 배에 해당하는 수익을 안겨줬다. 엔젤 투자자나 창업자를 제외하고도 직원들 중에서도 수많은 억만장자가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조성된 자금은 다시 모험 기업에 투자자금으로 유입되는 선순환을 거치면서 신생기업의 성장을 돕게 된다.
모험 기업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시스템이 제공되는 환경하에서는 엔젤 투자자가 늘어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본이 부족해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다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이런 자본시장의 선순환적 특성을 꿰뚫고 자본시장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미 미국과 한국시장에서 자본시장을 통한 IT 육성이 검증된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기업가 정신이 충만했던 경험이 있다. 지난 IT붐 시절에 한글과컴퓨터, 안철수연구소, NHN 등 1세대 IT벤처기업들이 성장한 배경에는 자본시장의 역할이 컸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다시금 기업가 정신을 살리기 위해 신뢰가 무너진 자본시장을 정상화시키는 작업이 시급하다는 점을 기업가와 투자자 그리고 시장참여자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신성장동력 중 하나인 녹색성장을 보자. 녹색성장은 우리뿐만 아니라 선진국 모두 新(신)성장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는 분야로, 과거 인터넷 혁명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의 구글의 사례에서 보듯이 현재 기술만 있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산업, 아이디어는 좋지만 투자 회수는 의문인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경제 환경이 우선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선뜻 녹색기업에 투자하기 힘들 것이다.
녹색성장산업뿐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분야라 해도 GDP 4만 달러 시대는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이 발휘되지 못하고선 달성할 수 없다. 그 발판이 되는 것이 건강한 자본시장이다.
아시아 금융시장의 가능성
금융산업과 자본시장은 제한된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육성하는 금융 본래의 기능 외에도 그 자체가 중요한 수출산업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금융의 수출은 자본과 금융 노하우 등을 통해 해외투자와 해외 금융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것으로, 그동안 미국과 일부 유럽국가 등 금융선진국들이 독점하고 있던 분야이다.
그러나 100년 만에 한 번 나타난다는 금융위기로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잔뜩 위축돼 있는 지금이 우리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국제금융의 중심이 빠르게 아시아로 바뀌면서 향후 2020년까지 아시아 시장의 성장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3배 이상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결국 글로벌 금융산업에서 ‘아시아에서의 톱이 글로벌 톱’이라는 등식을 만들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 금융시장은 아시아적 가치관에 대한 몰이해 등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사들이 쉽게 공략하지 못해 온 시장이다. 가족과 공동체 의식이 살아 숨 쉬는 새로운 아시아적 가치(Neo Asian Value)를 이해하고 있는 한국이 아시아 시장을 전략적으로 공략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금융수출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본다.
첫머리에 소개했던 구글의 초기 투자자는 과연 어떻게 됐는지 알려드리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초기 투자자 중 하나였던 앤디 벡톨샤임의 경우 총 20만 달러를 투자해 나스닥 상장 이후 1500배가 넘는 3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