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분야 민간투자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법제도 완비해야
⊙ 국가 주도로만 철도 투자할 경우 단기간 내 경쟁력 갖추기는 역부족
崔然惠 한국철도대학 총장
⊙ 1956년 대전 출생.
⊙ 대전여고, 서울대 독문학과 졸. 독일 만하임경영대 경영학 석·박사.
⊙ 한국철도대 운수경영학과 교수, 건교부 철도구조개혁 심의위원, 서울시 도시교통정책심의위원,
한국철도공사 부사장 역임.
⊙ 국가 주도로만 철도 투자할 경우 단기간 내 경쟁력 갖추기는 역부족
崔然惠 한국철도대학 총장
⊙ 1956년 대전 출생.
⊙ 대전여고, 서울대 독문학과 졸. 독일 만하임경영대 경영학 석·박사.
⊙ 한국철도대 운수경영학과 교수, 건교부 철도구조개혁 심의위원, 서울시 도시교통정책심의위원,
한국철도공사 부사장 역임.
- 신고속철 차량 ‘KTX-Ⅱ’가 서울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기존 KTX가 프랑스 알스톰사의 TGV를 그대로 들여온 것과 달리 KTX-Ⅱ는 국내 독자 기술(국산화율 87%)로 탄생했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1990년대부터 교통정책의 패러다임을 철도 중심으로 전환해 철도투자를 도로투자의 2배 이상으로 확대해 왔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汎(범)유럽교통망(TEN-T) 구축을 위해 2010년까지 총 교통 투자액 1300억 유로 중 85%를 철도에 투자하고 있다.
일본은 전국 신칸센 철도정비법을 신설해 기존선 고속화와 신간선 직통노선을 확충하고, 2010년까지 철도화물 수송분담률을 50%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도쿄-오사카 간 마그레브열차(초전도자기부상식 열차) 건설계획을 수립하는 등 세계 최고 철도강국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동안 철도가 뒷전이었던 미국도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 130억 달러 규모의 주요 도시 간 고속철도 건설계획을 발표하는 등 철도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철도차량 시장, 약 420억 달러 규모
우리나라도 과거 30년 이상 정체됐던 철도 산업이 급부상하고 있다. 2004년 KTX 개통으로 국가 교통망은 업그레이드의 전기를 맞았다. 특히 현 정부의 저탄소·녹색성장 정책과 전국의 지자체들이 대중교통 체계를 경전철 중심으로 개편함에 따라, 고속화에 이어 철도기술의 다변화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 철도는 日帝(일제) 시대 일본의 기술과 자본으로 건설됐지만, 세계에서 5번째로 고속철도를 운영하고 있고, 세계에서 4번째로 고속철도 생산기술을 확보했다. 게다가 철도기술 수출국으로 발전하는 등 세계 철도역사에서 보기 드문 성공사례를 만들어 냈다. 우리나라 철도의 성공은 1905년 경부선의 개통과 함께 철도학교를 설립해 꾸준히 우리 기술인을 양성해 낸 결과다.
세계 철도시장에 초점을 맞춰 보자. 2006년 세계 철도시장의 총 규모(철도차량과 철도건설)는 약 700억 달러 수준이다. 철도차량 시장만 보더라도 약 420억 달러 규모로 같은 해 조선 산업의 발주액인 460억 달러 규모와 비슷하다.
우리나라 조선 산업은 45%가 넘는 시장 점유율로 세계 1, 2 위를 다투는 반면, 철도산업의 시장점유율은 0.1% 정도로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거꾸로 보면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은 급속한 인구증가, 그리고 域內(역내) 교역량 증가로 철도성장의 중심부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다가 전통적 철도강국인 유럽에서 향후 5년 내에 대규모 노후 차량 대체 시기가 닥칠 것으로 전망돼 앞으로 몇 년간 우리 철도는 세계 철도시장에서 신흥 철도강국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의 문턱에 서 있는 우리 철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국가의 新(신)성장동력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첫째, 교통정책의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지난 30년 이상 지속돼 온 道路(도로) 중심의 투자패턴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 한 교통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1962~1991년 동안 철도투자는 도로 투자의 20%에 불과했다. 예산을 배정할 때 여전히 전년 대비 상승률에 집착하다 보면, 새로운 정책의 틀이 짜일 수 없다. 기존의 교통정책을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해 저탄소·녹색성장의 정책기조에 부합하는 수송수단 간 분담률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둘째, 철도분야 민간투자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법제도를 완비해야 한다. 철도투자를 지금처럼 국가 주도로만 일관할 경우, 우리 철도가 단기간 내에 경쟁력을 갖추기에 역부족이다. 투자 재원도 감당할 수 없으려니와 국가 주도 사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예산 확보 어려움 등으로 인한 工期(공기) 지연, 불합리한 건설 원리금 상환부담으로 인한 운영상의 구조적 적자재정 등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
국가재정 사업으로 추진되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들은 정치적 입김 등이 작용돼 수요도 없는 불요불급한 공사가 되기 쉽다. 일본에서도 소위 ‘잃어버린 10년’ 동안 불황을 타개한답시고 100조 엔이 넘는 돈을 투자해 아무도 건너지 않는 다리, 산골에 들짐승만 뛰어노는 포장도로가 양산됐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으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의 민간 투자 SOC 사업들은 국가주도 사업보다 오히려 더 많은 부작용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한국철도공사가 인수한 인천공항철도가 대표적 예이다. 이런 사례들을 거울삼아 민간투자촉진을 위한 법제도와 철도, 그리고 역세권개발 관련 법제도 등을 과감하게 정비해 민간투자자가 철도 건설과 운영에 참여해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
철도사업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에는 철도시설이 혐오시설로 간주돼, 철도역이 낙후한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 철도 역세권 개발을 통해 철도역이 지역 경제와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되는 추세다. 우리 철도사업자들도 자체 개발이 어려울 경우, 과감한 민간투자 유치를 통한 역세권 개발로 새로운 수요창출과 경영 활성화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셋째, 철도산업의 글로벌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철도산업이 신성장 동력으로서 국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세계 철도시장의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南北(남북) 철도의 단절로 인해 섬 아닌 섬으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유라시아 대륙은 이미 철도로 하나가 된 대륙철도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소극적으로 대처할 경우, 한반도 철도연결의 주도권을 중국과 러시아에 빼앗길 우려도 크려니와, 글로벌 철도 시대의 낙오자가 될 수 있다. 이 밖에도 철도산업의 세계화가 가져오는 이익은 다양하다. 제품이 수출되는 자동차 등과는 달리 철도사업의 수출은 건설과 인력 수출이 동반되는 高(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최근 상대적으로 빈곤한 자원 富國(부국)들의 추세가 그렇듯 철도건설과 자원의 대형 빅딜도 가능해진다. 이와 관련해 철도 인력의 국제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 철도사업은 사업기간이 매우 길고, 기술 國粹主義(국수주의)가 상대적으로 강한 분야이기 때문에, 국제철도 재직자 훈련 프로그램 등 꾸준한 교육 사업을 통해 신흥 開途國(개도국)의 철도 담당자들을 한국 기술에 친숙하게 만들어 두어야 한다. 이 분야는 産學(산학)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넷째, 철도를 국가 미래비전과 연결시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정보통신(IT), 자동차, 조선 산업에 이어 우리 철도산업도 세계 최고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가 도래했다.
철도 SOC투자는 다른 경제활동에 막대한 乘數(승수) 효과가 있고, 혜택이 전 국민적이며, 국민복지적 측면과 환경적 측면에서도 긍정적 영향을 가져온다. 뿐만 아니라 전방위적 경기부양 효과, 타산업에 비해 월등한 고용창출 효과 등으로 국가 성장추진 동력으로 적합하다. 또한 京仁(경인) 운하사업, 4대강사업과 철도사업의 연계 개발을 통해 효율적 국토 균형발전을 실현해 세계적 물류 SOC투자 모델 창출도 가능하다. 국가 百年大計(백년대계)를 위해 韓中(한중) 간 열차페리사업, 韓日(한일) 해저터널과 한중 해저터널 등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일본 회사원들, 출퇴근에 高價의 신칸센 이용
철도산업은 우리 경제를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로 이끄는 견인차다.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 등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전국 구석구석을 거미줄처럼 연결해 주는 철도망과 철도역에서 원스톱서비스로 이어지는 대중교통망이 완비되어 있다.
파리나 암스테르담과 같은 세계적 거대도시에서조차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전철시스템과 자전거 도로망, 그리고 보행로가 놀라울 정도로 잘 갖춰져 있다. 예컨대 일본은 기업 회계제도상 직원들에게 무료로 제공된 출퇴근용 철도패스를 회사비용으로 처리토록 함으로써, 高價(고가)의 신칸센을 출퇴근시간에 이용하는 회사원들로 넘쳐난다. 우리나라는 승용차 보조비가 지급되지만,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대중교통카드에 대해서만 파격적인 보조금을 준다. 우리나라도 더 늦기 전에 철도망을 확충해 미래사회의 폭증하는 교통수요도 감당하고 환경도 지키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한다. 선진국 수준의 철도문화를 창달하여야만 우리는 진정한 초일류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