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利濟 하와이 東西 연구소(East-West Center) 수석고문

한국과 일본은 오랜 역사 속에서 침범을 당한 희생자로서, 혹은 침략자로서 「善」의 역사와 「惡」의 역사를 같이 했던 인접 국가이며 민족이다. 세계 어느 지역의 역사를 보더라도 인접국가나 인접민족 간에는 침략과 갈등이라는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좀더 거시적인 지리적·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과 일본은 인종·민족·언어·통치체제뿐만 아니라 문화적 관점에서도 동질성을 더 많이 공유하고 있는 인접국가다. 먼저, 한국과 일본은 대륙의 부여族을 중심으로 한 기마민족의 지배로 형성된 나라이며, 일본은 민족과 국가형성 과정에서 이른바 渡來人(도래인)을 주축으로 한 後發國家(후발국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두 나라는 漢字(한자)를 사용하는 공통점을 가짐으로써 언어와 문화의 발전과 전개에 있어 동일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일본어의 기원은 한반도의 남단에서 사용되었던 古語(고어)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인종적인 동질성과 문화적인 친근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두 나라가 왜 이처럼 기복이 심한 역사를 가지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韓國과 日本

또 한편으로는 한국과 일본,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언론인으로서의 관찰과 해석 그리고 역사관과 비전을 상호보완적인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다음의 몇 가지로 간추려 볼 수 있다. 일본의 한반도 통치와 제2차 세계대전 후 한국의 정치·경제·사회史의 「收(수)」와 「放(방)」이라는 리듬의 흐름, 對북한 관계의 시비, 일본과 한국 간의 兩價的 감정, 그리고 東아시아 근대사에 있어서 미국의 역할 등이 논의되고 있다.

문화와 기술은 긴 역사의 과정에서 파도처럼 움직인다. 일본은 19세기까지는 중국과 한반도로부터 문화와 기술을 습득하여 왔으며,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서구의 기술을 받아들여 그것을 일본화하고 난 후, 한반도를 포함한 東아시아 전역에 이양하기 시작했는데 그 파도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들이 언급한 것처럼 일본 산업혁명의 파도는 아시아의 산업혁명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으며, 일본의 국가 근대화는 아시아 전체의 사회발전을 수반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는 과학기술 부분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새로운 아이디어와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용어나 어휘개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들이 일본어를 일본의 국어뿐만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3인칭」의 일본어로 간주한 점은 의의가 있다.
사회과학 분야의 예를 들면, 경제학 용어가 대부분 메이지유신 시대에 번역되어 중국과 한국에서 현대도 사용되고 있다.
이 책에는 세계대전 이후의 한반도, 그리고 한국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그리고 격동적인 국내외 사정에 연관된 희비극이 교차했던 사건들에 관한 흥미 있는 에피소드들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한국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가, 패전국인가 하는 관점에서 한국인의 처세와 행동에 관한 지적은 당시 일본에서 직접 목격한 바 있는 평자로서도 매우 흥미로웠다.
韓日 수교에 관한 秘話도 인상적이다. 한국의 경제발전에 필요한 일본의 자본과 기술 이양을 조건으로 한 이 제안에 대해 일본 국내의 반대가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朴正熙 대통령이 당시 일본의 강력한 反韓(반한) 지도자였던 오노 반보쿠(大野伴睦)씨를 서울로 초청하여 술좌석에서 『오늘 저녁 둘이 같이 여기서 잡시다』라고 하고는 하룻밤 같이 지내면서 갈등을 풀어 갔다는 대목에서 당시 한국이 당면한 경제발전을 이룩해 富國强兵이라는 국가목표의 달성을 이루려는 의지로 현실적 장애를 돌파해 나갔던 추진력에 다시 한 번 통쾌함을 금할 수 없었다. 결국 그의 그런 의지가 그들을 감동시켜 승복하게 했다는 일화인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핵심적 화제 가운데 하나는 국가와 주권의 개념이다. 사실 주권국가의 개념과 실체는 300여 년 전 유럽에서 시작된, 인류사에서 극히 짧은 최근의 한 토막에 불과하다. 따라서 100여 년 전 東아시아에서 리퍼블릭을 번역한 「공화국」, 「민국」이라는 단어와 그 개념도 미래의 세계화·지역화의 대세에 따라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인류가 지혜롭고 현명하다면 인간의 선한 본성을 토대로 인간의 복지를 위한 제도적 진전으로 지향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므로 국가를 위한 국민보다는 국민을 위한 국가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것은 본질적 민주화의 과정을 반드시 요청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들이 한국이나 일본국이라는 「나라」보다 한국「인」과 일본「인」을 강조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漢字문화권 공동체를 향한 비전으로 漢字표준화를 제시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한국·중국·일본 간의 이해증진을 도모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오늘과 미래의 韓日 양국 간, 나아가 양 국민의 상호이해 증진과 관계개선을 염두에 두면서 과거 역사가 뒷받침 해 주는 실증을 흥미 깊은 일화와 경험담을 대화형식으로 집필해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가볍게 빙그레 웃으며 읽어 가면서 韓日 양국 간의 진지한 역사의 한구석 한구석을 이해하게 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