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 한 번도 박근혜 대통령 독대는 물론, 어떠한 대면보고도 하지 않아
◎ 기무부대원 활동에 대해 희생자 유가족 및 언론 등에서는 적시적절한 조치에 크게 인정하는 분위기
◎ 어떤 도움을 받을 곳도 없어 답답하고 안타까워
◎ 박지만과 고교, 육사 동기라는 이유로 부임 초부터 세간의 따가운 눈총 받아
◎ 기무부대원 활동에 대해 희생자 유가족 및 언론 등에서는 적시적절한 조치에 크게 인정하는 분위기
◎ 어떤 도움을 받을 곳도 없어 답답하고 안타까워
◎ 박지만과 고교, 육사 동기라는 이유로 부임 초부터 세간의 따가운 눈총 받아
- 이재수 전 국군 기무사령관이 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 실질 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월호 유가족의 동향을 조사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7일 투신해 숨졌다. 전(前) 정권과 관련해 '적폐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은 이 전 사령관이 세 번째다.
이 전 사령관은 A4용지 두 장 분량의 유서(遺書)를 남겼다. <월간조선> 취재 결과 이 유서 외에도 이 전 사령관은 A4용지 5장 분량의 글을 최측근에게 남겼다. 지난달 27일 포토라인에 서기 전 작성, 측근에게 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2일 국방부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태스크포스(TF)는 “기무사가 세월호 사고 직후 6개월간 TF를 운영하며 조직적으로 사찰해 온 사실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구성된 특별수사단은 지난 9월 21일 유족 사찰 혐의로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을 구속기소했다. 특별수사단 수사 과정에서 김병철 전 310 부대장(준장) , 손모 세월호TF 현장지원팀장(대령) 등 3명이 추가로 구속기소됐고, 기우진 전 유병언 검거 TF장(준장)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11월 6일 특별수사단은 "기무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율 회복 등을 도모하기 위해 TF를 구성·운영하는 한편, 안산과 팽목항, 진도체육관 등에서 '충성' 구호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카카오톡 잠금장치 활용까지 지시하는 등 조직적으로 사찰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군 특별수사단의 수사 결과 발표 이후 20여 일 만에 이 전 사령관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이 됐다.
최악의 국가위기 상황에서 이를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부대와 부대원을 이렇게까지 질책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처사라고 생각한 이 전 사령관은 ‘세월호 관련 수사개시 이후 개인적 소회’(A4용지 반 장 분량)와 ‘세월호 민간사찰 의혹이 성립될 수 없는 이유’(A4용지 세 장 반 분량)라는 제목의 글을 써 측근에게 넘겼다.
사실상 또 다른 유서로 볼 수 있다. 이 글은 자필이 아닌, 컴퓨터 한글 파일로 작성했다. <월간조선>은 고인의 명예를 고려해 글 전체를 공개한다.
세월호 관련 수사개시 이후 개인적 소회
1) 일 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사령관 재임기간에 수행했던 업무 중 가장 힘들고 보람 있었던 업무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으나 5년이 되어가는 지금, 국가위기 시 불철주야 고생한 부대와 부대원들에게 너무나 가혹하게 질책하는 것을 보며 정말 안타깝고 허탈한 생각마저 들었음.
2) 오래전 일이어서 거의 잊고 있었지만 참사발생 직후인 4.19일부터 CIA 등 미국, 캐나다 정보기관 방문을 위해 계획된 공무 출장도 급거 취소하고 구조 활동 지원에 전념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려볼 때 이런 마음은 더욱 심해지는 것이었음.
3) 또한 이로 인해 야전부대 원복조치 등 불이익을 받은 부대원들에게 사량관으로서 전혀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현실에 스스로 무력감과 자괴감이 들어 오랜 기간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아직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사실임.
4) 오랜 야전생활을 하다가 사령관으로서 잠시 재직했던 기무사 문제로 나라 전체가 시끄러워지고 본인이 재임 시 있었던 일까지 문제가 제기되니까 전역 이후 군(軍)과는 거의 담을 쌓고 생활해 오다가 이번 일로 인해 과거의 일로 다시 되돌아가 봐야 하는 것도 견디기 힘든 괴로운 일이었음.
5) 무엇보다 정확한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재임 시 참모 및 관련 부대장들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한데도 사건 관련 공모 및 증거인멸 의혹 우려 때문에 연락도 여의치 않아 어떤 도움을 받을 곳도 없어 답답하고 안타까웠음.
세월호 민간사찰 의혹이 성립될 수 없는 이유
1) 전대미문의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이후 희생자 구조 등 사고 수습을 위해 민‧관‧군‧경이 투입되어 총력을 다했고, 특히 해난사고에 경험이 많은 해군을 중심으로 육 해 공군 해병대 등 군 병력이 대거 투입되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이때 기무부대원들은 투입된 군과 희생자 유가족 지원을 위해 오랜 기간 동안 불철주야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던 시기임.
2) 사고 당시 국가 초유의 대형 재난사고를 맞아 사고 수습을 위해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라 이 분야에 정통한 지식과 경험인력, 장비를 갖고 있는 해군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었으며 따라서 정부 각 부서에서 파견되어 운영된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서 구조작업 포함 사고후속조치 토의 시 다른 어느 부서보다 국방부 및 해군 담당자들과 유가족들 간에 심각한 의견교환과 토의가 많이 이루어졌던 것은 주지의 사실임.
3) 따라서 이때 기무사의 역할은 초유의 국가적 재난사태를 맞아 국가가 보유한 모든 역량을 동원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국가의 부름에 의해 투입된 군의 현장구조요원에게 유가족의 여망을 전달하고 국방부 차원에서 파견된 대표들에게 정책적 대안을 제공하며 이러한 현장의 상황을 가감 없이 상급기관에 보고함으로써 보다 정확한 정책적 판단을 하는 데 있었음.
4) 특히 범대본의 통제를 받는 구조요원들과 졸지에 사고를 당한 희생자 유가족들이 매일 탐색구조방법과 사후 수습대책을 놓고 동일한 공간에서 격렬하게 대립하는 분위기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사고 관련 모든 정보는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실시간 공유될 수밖에 없어서 의도적인 사찰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다는 주장은 사실을 왜곡, 또는 확대 해석한 것이라 볼 수 있음.
5) 일부에서 제기된, 당시 정부·여당에 비판적 여론이 증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기무사가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원이라는 명목하에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조성을 목적으로 불법 사찰행위를 계획, 실행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성립될 수 없는 주장임.
△ 먼저 기무사도 부대원 중에서 세월호 사고의 희생자가 2명이나 있었던 유가족 당사자였으며
△ 사령관인 본인도 세월호와 동일한 코스로 수학여행을 인솔해서 다니는 고교 교사인 아내가 있어서 누구보다 유가족의 아픔을 공감하는 국민의 한 사람이었고 △ 특히, 사령관 재임 중 단 한 번도 대통령 독대는 물론이고 어떠한 대면보고도 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정치적인 상황에도 관심 갖거나 연루될 필요가 없었던 위치에 있었으며, △ 또한 대통령 친동생과 고교, 육사 동기라는 이유로 부임 초부터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왔고, 세월호 사고를 전후해 시사저널 잡지에 소위 대통령 동생에 대한 정윤회 미행설이 보도되고 이어서 민정수석실의 조응천 비서관 등 실무자들이 대거 교체되는 등 매우 어수선했던 시기여서 비서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관계자들과 서먹서먹한 관계가 형성되었던 터라 더욱 더 이런 역할을 할 이유가 없었음.
△ 그리고 무엇보다 기무사는 과거부터 민간 사찰에 대한 반복적인 사건 발생과 이에 따른 문책으로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을 누구나 갖고 있어 세월호 사고 당시에도 이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누차 강조하며 활동을 하였음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사찰 의혹은 사실과 전혀 부합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음.
6) 그리고 이번 일은 MB정부 시절의 정치적 사안에 대한 댓글 행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압수수색을 통해 획득한 자료를 사실 여부에 대한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댓글수사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 발표 시 언론에 발표하면서 수사가 시작된 것으로서 법적인 절차 면에서도 아쉬운 측면이 많다고 봄.
7) 또한 세월호 사고 이후 이를 수습하기 위해 구성된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에는 해수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여 투입된 국방부 및 軍병력 외에도 정부 및 지자체 산하 16개 이상의 기관 및 부서가 참가했으며, 국정원, 경찰 등을 포함 모든 정보기관이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파견된 모든 요원이 원소속 기관에 당시의 현장 상황을 일일보고 형태로 보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유독 기무사의 활동만 문제 삼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임.
8) 기무부대가 사찰 의혹을 받을 수 있는 현실적 여건
△ 우선 기무사는 국방부 직할부대로서 장관을 보좌하는 동시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보필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입장에서 늘 현명한 판단과 행동을 해야 하는 조직임.
△ 또한 기무사 본연의 임무인 軍 관련 첩보수집·처리에 있어 활동영역 면에서 군과 민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며, 활동대상 면에서도 군인과 민간인 구분에 애로를 겪는 등 임무수행 간 항상 딜레마를 안고 있는 부대임.
△ 더욱이 정보기관 특유의 보고서 형태 및 용어 사용에 대한 자부심 등으로 사찰의 의혹을 야기할 수 있는 소위 「…동향」, 「…동정」 등의 용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외부인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음.
△ 또한 기무사 본연의 임무인 軍 관련 첩보수집·처리에 있어 활동영역 면에서 군과 민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며, 활동대상 면에서도 군인과 민간인 구분에 애로를 겪는 등 임무수행 간 항상 딜레마를 안고 있는 부대임.
△ 더욱이 정보기관 특유의 보고서 형태 및 용어 사용에 대한 자부심 등으로 사찰의 의혹을 야기할 수 있는 소위 「…동향」, 「…동정」 등의 용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외부인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음.
△ 통상 정보기관의 보고서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 부대원들의 수집활동을 통해 보고된 첩보를 토대로 유가치 또는 무가치 여부를 판단, 정보사용권자에게 제공되기 때문에 최종보고에 포함되는 첩보는 극소수에 불과하나, 보고된 첩보가 모두 정보로 제공된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음.
9) 따라서 세월호 사고 당시 희생자 구조와 후속조치와 관련한 기무부대 활동은 민간선박 침몰이라는 국가적 재난에 투입되어 민간인인 희생자 유가족과 투입된 軍을 지원하는 부대 고유의 임무와 관련된 것이었으며, 당시에도 기무부대원 활동에 대해 희생자 유가족 및 언론 등에서 어떠한 문제도 제기된 바 없으며 오히려 적시적절한 조치에 크게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함.
10) 결론적으로 사고 당시 상황은 현장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최악의 국가위기 상황에서 이를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부대와 부대원을 이렇게까지 질책하는 것은 당시의 사령관으로서 너무 과도한 처사라고 사료됨.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