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
삼복 더위 때문이었다고 믿고 싶다. 엊그제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본 후 불쾌해진 이유 말이다.
1972년 설립된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현재의 자리(서울 용산구 서빙고로)로 이전했다. 널찍한 공간으로 옮긴 후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은 국민들은 물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올해 상반기에만 9만 5천여명의 외국인들이 국박을 찾았다. 기자가 찾은 7월 29일에도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방문객들이 많이 보였다. 케이컬쳐의 뿌리를 이루는 한국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알고 싶은 외국인들이 찾을 터다.

전시실을 둘러보는데 전시 설명 중 의아한 대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2층 서화관에서다. 이름 그대로 글씨와 그림을 모아 놓은 곳이다. 서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놨다.
‘한자를 사용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문자로 표현하는 예술, 즉 서예가 오래 전부터 발달하였습니다. 역대 명필가들은 다양한 서풍으로 각 시대의 미감을 드러냈고, 후학들은 이들의 글씨를 거울삼아 전통을 계승하고 학습해 나갔습니다.’
별로 흠잡을 데 없는 설명이다. 그런데 한국어 설명 옆에 쓰여진 영어 설명을 보자.
'Calligraphy has an especially long and illustrious history in East Asia, where Chinese characters have been widely used since ancient times. The greatest calligraphers of China cultivated innovative styles that exemplified the aesthetics of their era.'
이런 뜻이다. ‘서예는 동아시아에서 특히 긴 역사와 명성을 자랑한다. 고대부터 중국 문자가 널리 사용되어 왔다. 중국의 위대한 서예가들은 그 시대의 미학을 구현한 독창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이 영어 설명엔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한자를 ‘중국의 문자(Chinese characters)’라 썼다. 한자 창제를 누가 했느냐를 두고 지금까지 논란이 있다. 여기에 구구절절 언급하진 않겠지만, 한자의 초기 형태인 갑골문자에 ‘동이족’이라 불린 민족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국경이 어디에 있었는지, 동이족이 어디에 살았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획정하기 어렵다. 여기에 더해, 한자는 지금의 한국, 중국, 일본 지역에서 두루 쓰였던, 지금도 쓰이고 있는 문자다. ‘동아시아 문자’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어느 박물관에서도 한자를 가리켜 중국의 문자(Chinese character)라 써놓은 걸 본 적이 없다. 도대체 국박이 한자를 두고 자신있게 ‘중국의 문자’라 굳이 써놓은 이유를 이해하기 힘든 이유다.
둘째, 한국어로는 ‘역대 명필가’라 쓰고 영어로는 이렇게 써놨다. ‘중국의 위대한 서예가들(greatest calligraphers of China)’. 서예 문화를 일군 명필가들은 전부 중국인 뿐인가? 추사체를 만든 김정희나 안평대군은 국박의 분류에 따르면 명필가가 아니었던 건가? 대체 국박은 왜 대한민국의 세금을 써가며 굳이 외국인들에게 중국의 위대한 서예가들을 홍보하고 있나? 그것도 영어 설명은 한국어 설명과 다르게 써놓고 말이다.

우리나라의 서예에 대해 써놓은 대목을 보니 더 기가 막힌다.
‘우리 나라의 서예는 중국의 서예를 받아들이고 재해석하여 독창적인 미감을 추구하며 발전해 나갔습니다.’
역시 영어 설명이 옆에 쓰여져 있다.
‘From early on, Korean people accepted and reinterpreted Chinese calligraphy by adding their own diverse aesthetics.’
이런 뜻이다. ‘초기부터 한국인들은 중국의 서예를 받아들여 독자적인 다양한 미감을 덧붙이며 재해석했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중국의 서예를 받아들였다고 단정할 수 있나? 추사체를 구사하며 한중일 학자들의 학문 교류를 이끈 추사 김정희의 존재를 국박은 인지조차 하고 있는걸까? 당시 청나라 문인들 16명이 추사의 세한도를 보고 감동받아 찬사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엄정하게 표현하자면 ‘우리 나라의 서예는 중국의 서예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독창적인 미감을 추구해 왔다’ 정도가 맞겠다. 문화에 ‘발전’이라는 낡은 표현을 쓰는 것도 격에 맞지 않다.
의아한 마음을 진정하고, 국박이 자랑하는 ‘사유의 방’에 갔다. 두 분의 금동반가사유상을 만날 수 있는 방이다. 조용한 가운데 찬찬히 불상을 감상하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전시실엔 경비 역할을 하는 박물관 직원이 한명 있다. 그가 갑자기 한 외국인에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셀카봉’을 꺼내들려하던 참이었다. ‘셀카봉’은 사용금지라는 말을 하려던 것인데, 그 조용한 전시실에서 굳이 소리를 지를 필요가 있었을까. 얼른 다가가서 조용히 말해도 될 일이다. 더군다나 전시실 입구에 ‘셀카봉 사용금지’라는 문구를 비치해놓은 것도 아니다. 직원은 바닥에 그려진 흰 선을 넘어가지 말라고 다른 관람객에게 또다시 소리를 질러댔다. 강압적인 태도가 무척 놀라웠다. 나라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간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전시공간에 고개를 조아려가며 관람을 간 기분이었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국립박물관, 미술관 등을 방문했다. 관람객에게 소리를 지르는 박물관 직원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공교롭게도 국박 방문하기 며칠 전에 도쿄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내돈내산’이었다) 어쩌다보니 박물관 폐관시간을 넘겨 가장 늦게 전시실을 떠나게 됐다. 기자가 전시실을 다보고 나설 때까지 채근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가, 조심히 조명을 만지는 경비의 모습이 아직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참이었다.
외국의 주요 전시실에는 어떤 물건을 소지하면 안되는지, 어떤 행동을 하면 안되는지 입구에 주의문구를 배치해놓는 경우가 많다. ‘사유의 방’에서는 그런 문구를 찾을 수 없었다. 한국 문화를 보러 온 관람객들에게 조용히 규칙을 알려줄 순 없었을까. 좌중이 다 돌아볼 정도로 큰 소리로 야단을 쳐가며 불쾌한 기억을 안길 필요가 있을까.
전시 설명 전문가여야 하는 도슨트의 설명도 마찬가지다. 국박에서 영어 가이드 설명을 듣고 온 기자의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한국 문화가 중국, 인도, 중동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을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 번 해서 민망했다. 영향이라는 것은 주고받는건데 유독 한국이 외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해서 의아했다. 한국의 전통 유물에 새겨진 한자를 두고도 ‘중국의 문자’라 설명하더라. 한국을 잘 모르는 영어권 외국인들이 그 설명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한국 문화나 국립중앙박물관을 저평가하게 될 것 같다”
결국 전문성의 부재다. 국박은 한국 문화의 정수를 알리는 문화 향유의 최전선에 있는 기관이다. 그 곳의 가이드도, 경비원도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전문성의 부재가 여기저기에서 보여서 아쉬웠다. 국립중앙박물관의 2024년 예산은 2325억원이다. 수천억원을 들여 중국 문화의 우수성을 홍보할 필요가 있을까?
글=하주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