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월간조선 1988년 신년호 별책부록 《사진으로 본 감격과 수난의 민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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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복된 수도 서울. 중공군 개입으로 1.4후퇴를 했던 국군은 3개월 후 다시 수도를 탈환했다. (1951.3.6), 폭격으로 부서진 임진강 자유의 다리. 공병대가 가교를 설치하고 있다. (1952,310)

구도(球都) 인천의 야구 이야기를 취재하며 인천대 독어독문과 김종은(金鍾銀·70) 명예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인천 야구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김선웅(金善雄·1919~1978)의 장남이다. 김선웅 선생의 야구 이야기는 월간조선 3월호를 통해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기자에게 여러 권의 야구책과 함께 월간조선 1988년 신년호 별책부록을 선물로 주었다. 1988년 신년호 별책부록은 기자도 처음 보는 책이었다. 별책부록 제목은 사진으로 본 감격과 수난의 민족사. 부제는 ‘1945년 해방에서 6.25 전쟁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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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216쪽이며 제1부 해방 - 군정, 제2부 제1공화국, 제3부 6.25에서 휴전까지로 나누고 있다. 컬러와 흑백 사진이 중심이며 책 말미에는 심지연 경남대 조교수(현 국회혁신자문위원장)의 글 <격동기 한국사의 재조명 : 1945~1954 체제 경쟁의 10>을 실었다.

 

또 책 맨 뒷장에는 조선일보사 편집국 조사부 원영희(元寧熙) 차장에 의해 수집된 사진이라고 적혀 있다. 아무래도 출처가 불명확한 사진도 더러 포함됐을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조사부 기자였던 원 차장의 노력으로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휴전 70주년이다.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22개국과 함께하는 대규모 국제 추모식도 예정돼 있을 만큼 의미 있는 해다. 책에 실린 사진들을 일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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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을 떠나는 만원열차. 계단에 설 수밖에 없던 승객의 안전을 위해 새끼줄을 쳐 놓았다. (19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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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듬해, 홍수에 잠긴 서울 마포 일대. 주민들이 구명보트를 타고 대피 중이다. (1946.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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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립 선포의 환호성. 군정 3년을 끝내고 8월 15일 중앙청 광장에서의 선포식에서 시민들이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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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원 노천극장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대기 중인 연기자들.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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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태평로에 있던 옛 중부 소방서 건물. 지금은 헐리고 없지만 그때의 소방대원과 소방차의 모습은 이채롭다. (194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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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을 출발해 종착지인 대구를 향하는 월남인 피란열차. (1945)

한국에 대한 5년간의 미소 신탁통치안이 가결되자 전국에서는 신탁통치 결사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서울 종로에서 있었던 반대시위.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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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전선에서 2차 춘계 대공세에 나섰던 중공군들은 미 해병1사단의 집중 포격으로 400여명의 전사자를 내고 퇴각했다.  전쟁 중 식량부족은 극에 달했다. 굶주려 야윈 한 시골 어린이가 야전병원에서 겨우 목숨을 구했다. 부산 유엔군 묘지에 안장된 미군 전사자. 6.25 전쟁 중 유엔군 전사자는 3만6700여명이었다. (19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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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각하는 공산군들은 대전교도소에서 경찰관들을 무참히 집단 학살했다. (1950.10.6)

폐가가 된 9.28 수복 직후의 서울 종로거리. (1950.9.29)

국군이 진주한 함흥 형무소. 이곳에서 65구의 애국인사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가족들이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195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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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여명의 인민군과 중공군 포로들을 수용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19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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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 1.4 후퇴 당시 피란민들이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 필사의 탈출을 하고 있다.

(왼쪽) 유엔군의 총퇴각으로 서울이 다시 공산군에 의해 점령되자 얼어붙은 한강 나루터에 피란민들의 행렬이 또다시 줄지어섰다. (1951.1.4)

(오른쪽 위) 남한강 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리는 피란민 대열. (19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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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의 개입으로 엄동설한에 또다시 피란길에 올라야 했던 피란민들. (19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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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민을 실은 마지막 열차가 수원역을 떠난 뒤, 차를 못 탄 수천 명의 피란민들이 철로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19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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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닥친 피란민들의 임시 정착지. 대구 수성천변의 천막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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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4 후퇴 이틀 전의 서울 충무로 거리. 시민들이 피란을 떠난 텅빈 거리에 유엔군 환영이라는 플랑카드만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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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서 열린 첫 휴전회담 장소 봉래장. (1951.7.11)

개성 휴전회담의 뒷바라지를 위해 나온 북한의 여군장교.(1951.7) 덕수궁에서 있었던 서울 시민 휴전회담 반대 시위. (195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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