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충무공 동상. 사진=뉴시스
1598년 11월 19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적의 유탄에 맞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날이다. 올해 양력으로 하면, 12월 15일이다.
충무공의 마지막 말은 이렇다.
“전쟁이 한창 다급하니 부디 내가 죽었다고 말하지 말라.”
죽는 순간까지 나라 생각뿐이었던 충무공은 자신의 기록이 후대에 이어 내려가게 될지 몰랐다. 우리가 《난중일기》라고 부르는 기록이다.
11월 말 충무공의 마지막에 대해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난중일기 유적편》, 《교감완역 난중일기》의 저자 노승석 소장은 “충무공의 기록을 무어라 불러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하다”며 “《난중일기》에는 정작 난중일기란 말이 전혀 안 나오고 충무공의 뜻이 아닌, 정조 때 편리 상 붙인 이름이다”고 이야기했다.
수많은 이들이 충무공의 뒤를 따르겠다고 이야기한다. 장군의 뒤를 따르겠다고 하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기록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상황이다.
하루빨리 고민해야 하는 이 문제에 대해 노 소장에게 물었다.
- 난중일기라고 불린 기원은?
“《난중일기》란 명칭은 학식이 많은 정조(正祖) 임금의 명에 의해 이순신과 관계된 사적을 정리하여 문집인 《이충무공전서》가 간행될 때 이순신의 일기 친필 초고를 해독하면서 처음 붙여진 명칭입니다. 1792년 8월 19일 정조가 이순신의 전기 〈이충무유사〉를 읽고 감동하여 이순신의 신도비문을 짓고 《이충무공전서》를 간행하라는 명을 내각에 내렸습니다.
그후 교정 각신(校正閣臣)인 원임 직각(直閣) 윤행임이 이순신의 관계 기록을 편집하고, 감인 각신(監印閣臣)인 직제학 이만수(李晚秀), 검서관 유득공 등이 인쇄를 감독하여 예문관에서 1795년(정조 19)에 9월 14일(정축) 정유동주자(丁酉銅鑄字)로 간행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긴 내용을 줄이거나 어려운 글자를 쉬운 글자로 교감(校勘)하여 해독한 내용들이 상당수 들어 있고, 이순신의 사적과 유고, 장계, 난중일기 등 이순신과 관계된 모든 기록들이 망라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정확한 책의 제목은?
“《난중일기》이란 이름은 정조(正祖)의 명을 받은 윤행임과 유득공이 이순신의 친필 초고 난중일기 8권을 해독하여 편집할 때 편리상 붙인 것입니다. 한편 간행 당시에 실학자 서유구(徐有榘)는 이순신의 일기를 《충무일기(忠武日記)》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본래는 이순신이 임진년부터 무술년까지의 연도별 간지를 따서 각 일기의 표지에 《임진일기》, 《계사일기》, 《갑오일기》, 《을미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 《무술일기》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단, 《을미일기》는 친필 초고본이 전하지 않아 표지 글씨를 확인할 수 없고, 《정유일기》는 Ⅰ·Ⅱ 두 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 이순신 장군이라면 어떻게 불리는 것을 원할까?
“이순신 자신이 일기에 적은 제목을 보면, 일일이 임진부터 무술까지의 간지로 표기했습니다. 전쟁 중에 임진년부터 일기를 작성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연도별로 표지에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전쟁이 끝나 일기를 마쳤다면 이순신도 전체 제목을 달아 표기했을 것입니다. 충무(忠武)라는 시호는 1643년 인조가 이순신 사후에 내린 칭호이고, 이순신이 생전에는 편지와 시문 등에 자신의 자(字)인 여해(汝諧)를 적은 것을 볼 때 이순신 자신이 7년간의 8권 일기를 굳이 하나의 제목을 붙였다면 연도별 그대로 사용했거나 《여해汝諧) 일기》로 했을 것으로 추정해봅니다.”
-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난중일기》라는 이름으로 후대에 전하는 일기류는 이순신의 《난중일기》 말고도 간행된 책자로 확인된 것으로 2종이 또 있습니다. 즉 임진왜란 시기에 이순신의 휘하에서 둔전관리를 했던 정경달의 《난중일기》가 있고, 적진을 오가며 정보전달에 힘썼던 사명당의 《분충서난록》속에 《난중일기》가 있습니다. 또한 그 외 임진왜란기의 일기로 10여 종이 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정확하게 말한다면 《난중일기》앞에 ‘충무공’ 또는 ‘이순신’을 넣어서 부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난중일기 가치에 대한 생각은?
“필자가 발굴한 일기까지 모두 합한 난중일기는 임진년부터 무술년 전사하기 이틀 전까지의 일기를 합하면 모두 1595일치입니다. 이순신은 7년 동안 작전을 지휘하는 진영에서, 또는 전쟁 중에서 보고 들은 체험 사실들을 실시간 수시로 작성했습니다. 이처럼 작전 지휘관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일기를 작성한 예는 세계역사상 그와 같은 유례가 없는 유일무이한 것입니다. 총탄과 빗발이 빗발치는 전쟁의 와중에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 이순신의 필기의식과 함께 필사즉생(必死則生)을 강조한 국난극복의 한결같은 염원이 담긴 웅건한 필체의 《난중일기》는 산이 숫돌이 되고 강물이 띠가 되도록 길이 만대에 전해질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