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도 공동분배?”…노봉법 이후 번지는 ‘하청 교섭’ 도미노

원청 노조 넘어 외주·급식업체까지 성과급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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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는 4월 30일 오전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 3공장 앞에서 하청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규탄하고 원청 교섭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대한민국 산업 현장에서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단순한 임금 갈등이 아니라 노동법 체계와 기업 생태계 자체를 뒤흔드는 ‘교섭권 확장 실험’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노동계 움직임을 바라보는 재계와 보수 진영에서는 “기업의 경영 판단 영역에 속했던 성과급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른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논란 이후 현장 분위기가 급변했다.

 

청와대 정책실장의 ‘국민배당’ 발언

 

최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국민배당’ 발언이 사실상 불을 질렀다. 김 실장은 “AI 인프라 시대의 초과이윤 일부를 국민과 나누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재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라 “정부 핵심부가 기업 이익의 사회적 분배 확대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정책실장의 개인적 견해일 뿐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며 한 발 물러섰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강한 시그널로 읽히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도체·조선업 현장이다. 지난 4월 30일 충북 청주 SK하이닉스 3공장 앞에서는 협력 운송업체 피앤에스로지스 노조 조합원 30여 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성과급 차별 지급을 중단하라”며 원청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해와 올해 1분기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낸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수억원대 성과급을 받았지만, 하청 노동자들은 500만~600만원 수준 상생장려금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성과급 교섭을 공식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법적·계약 구조의 벽 때문인지 이후 논란은 잦아 들었다. 일부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대다수 협력사는 이런 방식의 시위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등 같은 하청업체 내부에서도 온도 차가 있다.

 

앞서 경남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4월 16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급식·시설관리·통근버스 운영 등을 맡는 외주업체 웰리브 노조에 대해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렸다. 웰리브는 급식·세탁·통근버스 운영 등을 맡는 업체로, 거제사업장 근무 인력 484명 중 절반이 넘는 251명이 급식 인력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한화오션이 협력사 노동자 1만5000여 명에게 원청과 동일 비율의 성과급 지급 방침을 밝히자 “급식 노동자 역시 생산 현장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며 동일 수준 성과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재까지 성과급 지급 확대나 최종 합의가 이뤄졌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원·하청 교섭 구조 변화의 신호

 

또 HD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 4월 23일 하청노조가 원청 성과급과 처우 문제를 연계하며 집회 수위를 높였다. 하청노동자들은 “같은 배를 만들고 같은 위험을 감수하는데 왜 성과급은 차별받느냐”고 주장했다.


현대제철의 경우 인천지방노동위원회가 사내하청 노조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 일부를 인정했다. 재계에서는 이를 원·하청 교섭 구조 변화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난 5월 초 이후 건설업계에서는 “노봉법 시행과 노동위 사용자성 판단 확대 흐름이 건설현장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대형 건설사 현장에는 철근·콘크리트·전기·설비·타워크레인·안전관리 등 수십 개 협력업체가 동시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경제지 인터뷰에서 “조선업처럼 ‘같은 현장에서 같은 공정을 수행했다’는 논리가 적용되면 건설업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건설업계에서는 일부 협력업체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산업안전·작업중지권·성과보상 문제를 직접 교섭 의제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사 기간 단축이나 대형 프로젝트 성과급 지급 시 원청과 협력업체 간 보상 격차 문제가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한 기업 안에는 수십, 많게는 수백 개 협력업체가 존재한다. 생산라인 유지보수 업체, 물류업체, 청소·경비업체, 급식업체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만약 “원청 성과가 발생했으니 간접 고용 노동자도 함께 과실을 나눠야 한다”는 논리가 확산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성과급의 사회화와 노동권 문제

 

삼성전자 같은 초대형 제조기업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반도체 공장에는 장비 유지보수, 물류, 세정, 보안, 식음료, 건물 관리 등 수많은 외주기업 인력이 들어와 있다. 원청 노조가 성과급 협상을 벌이는 순간, 협력업체 노조들도 “우리도 생산에 기여했다”며 줄줄이 교섭을 요구할 가능성이 생긴다. 과거에는 계약 단가 문제였던 것이 이제는 ‘노동권’ 문제로 바뀌는 셈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를 “성과급의 사회화”라고 부른다. 기업이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해 얻은 성과가 협력 생태계 전체의 공동 몫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물론 노동계는 반론한다. “원청이 실질적으로 노동 환경과 작업 강도를 지배하면서 책임만 하청업체에 떠넘겨왔다”는 것이다. 반도체·조선처럼 다단계 하청 구조가 일반화된 산업에서는 원청과 협력업체 노동자의 경계가 이미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이런 흐름이 한국 제조업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성과급은 원래 기업 실적과 투자 위험을 반영해 결정하는 경영 판단의 영역이다. 이를 협력업체와 외주 생태계 전반으로 확대하기 시작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구조 자체를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실적이 나면 원청 노조가 요구하고, 다시 협력업체 노조와 외주업체 노조까지 연쇄적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삼성전자 노조 파업을 바라보는 재계 시선

 

삼성전자 노조 파업을 바라보는 재계 시선도 이런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과거 삼성은 ‘무노조 경영’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성과급(GOS·초과이익성과급) 산정 방식 하나를 두고도 대규모 집단행동이 벌어진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청 노조 투쟁이 선례가 되면 협력업체 노조들도 “왜 우리는 제외되느냐”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한 대기업 임원의 말이다. “원청 노조가 성과급을 받아내면 협력업체도, 또 다른 외주업체도 ‘왜 우리는 제외하느냐’고 나설 겁니다.”

이 인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함께 키우는 구조가 아니라, 성과가 발생할 때마다 산업 생태계 전체가 분배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기업들은 가장 두려워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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