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전 오늘, 이란 이슬람 공화국 선포… 미국도 신정은 못 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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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슬람 혁명 당시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4월 1일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선포된 지 47년째 되는 날이다.


1979년 4월 1일,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신정(神政) 공화국을 선포했다. 국민투표 찬성률 98.2%. 이때부터 이란은 대통령 위에 종신 최고지도자(라흐바르)가 군림하는 체제가 됐다. 47년이 지난 지금, 그 체제는 전쟁 한복판에서 3번째 라흐바르를 맞이했다.


호메이니 → 알리 하메네이 → 모즈타바 하메네이


라흐바르는 지금까지 3명이다. 초대는 혁명 주역 호메이니였다. 1989년 그가 사망하자 전문가회의는 후임으로 알리 하메네이(당시 50세)를 선출했다. 알리 하메네이는 대통령을 역임하는 등 정치 경력은 출중했지만, 종교적으로는 호자톨이슬람(hojatolislam)에 불과했다. 최고지도자 임명 직전에야 겨우 아야톨라가 됐다. 자격 미달 논란을 무릅쓰고 추대된 셈이다.


호자톨이슬람은 시아파 이슬람에서 성직자 계급 중 하나로, 신학교에서 신학·율법 등을 이수한 뒤 얻는 기본 칭호로 설명됩니다. 이 칭호는 아야톨라(대주교급)보다 낮은 단계다.


알리 하메네이는 37년간 신정 체제의 정점에서 이란을 통치했다. 하마스·헤즈볼라 등 이른바 ‘저항의 축’ 무장 조직을 지원하며 반서방 노선을 고수했다. 그러다 2026년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했다.


후임은 아들이었다. 이란 전문가회의는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56)를 3대 최고지도자로 선출했다. 혁명의 명분 중 하나가 ‘세습 왕정 타파’였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이란 전문가회의는 이란의 최고지도자 선출을 담당하는 헌법 기구로, 80여 명의 무하티드(성직자)로 구성된다.


알리 하메네이는 생전에 모즈타바의 세습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전시(戰時)라는 상황이 군부의 추대를 정당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메네이의 아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지만 이란 전문가회의는 이를 무시했다.


미국·이스라엘, 이란 공습


공화국 선포 이후 이란은 쉼 없이 전쟁을 겪었다. 1980년 이라크가 침공하며 8년 전쟁이 벌어졌다. 추산 사망자만 100만 명이다. 이후 핵 개발로 서방의 제재가 쌓였고, 2015년 핵합의(JCPOA)로 상황이 개선될 조짐을 보였으나 2018년 트럼프 1기 정부의 탈퇴로 원점이 됐다. 


2025년 12월 반정부 시위가 재점화됐고, 이란 보안군은 시위대를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통계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다 3만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협상 결렬 및 임박한 핵 위협을 명분으로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UN 헌장상 선제적 자위권과 이란 내 정권 교체 유도를 공식적인 공격 근거로 제시했다.


전쟁으로 인해 세계 원유·천연가스 물동량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봉쇄됐고, 유가는 40% 이상 올랐다. 전쟁은 5주째 교착 중이다. 혁명이 낳은 신정 체제는 최고지도자가 죽고 아들이 그 자리를 물려받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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