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AP/뉴시스
1889년 3월 31일, 파리 샹드마르스 광장에 높이 300m짜리 철탑이 섰다. 건축은 1887년 1월 28일 시작됐고, 26개월 만인 1889년 3월 30일 기본 구조가 완성됐다. 이튿날인 3월 31일 준공식이 열렸고, 같은 해 5월 6일 일반에 공개됐다.
설계자는 귀스타브 에펠이 아니다. 에펠탑을 처음 구상한 사람은 에펠 휘하의 엔지니어 에밀 누기에와 모리스 코에쉴랭이었다. 에펠은 후보작 107개 중 300m 철골 구조물 프로젝트를 채택했다. 탑에 자기 이름을 붙인 에펠은 프로젝트 총책임자였다.
건설 비용은 780만 프랑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5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50만 프랑만 댔다. 에펠은 나머지를 자비로 조달하는 대신 완공 후 20년간 에펠탑 관람 운영권을 얻는 조건으로 공사를 맡았다. 당시 건설비는 2018년 달러 기준 약 4000만 달러(약 560억 원)에 해당한다. 1889년 만국박람회 기간에만 200만 명이 에펠탑을 찾았고, 에펠은 3년이 채 되지 않아 투자비를 모두 상환했다.
철근 7300톤, 1만8038 조각이 투입됐고, 설계도 5300개를 그려야 했다. 엔지니어만 50명이 참여했다. 근로자 300명이 리프트 5개를 만들었다. 공사 기간 중 사망한 인부는 없었다.
완공 당시 반응은 냉담했다. 에펠탑 계획이 알려지자 파리 시민들은 반대했고, 인근 주민들은 주거환경을 해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완공 후에도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파리의 미관을 해친다고 비판했다. 소설가 기 드 모파상, 오페라 극장을 건축한 샤를 가르니에 등이 신문에 반대 글을 썼다.
에펠탑은 원래 임시 구조물이었다. 만국박람회 종료 후 20년까지만 유지될 예정이었지만, 에펠이 기상관측소·항공연구소·군사통신탑 등 다양한 용도를 증명해 철거를 막았다. 1차 세계대전 때는 군사 통신 수단으로 쓰이며 독일군의 암호 메시지를 감청해 프랑스군이 역습에 성공하는 데 기여했다.
2차 세계대전은 에펠탑에 또 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1940년 6월 14일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했다. 히틀러는 에펠탑에 오르려 했지만, 프랑스인들이 독일군 점령 직전 엘리베이터 케이블을 끊어놓았기 때문에 오르지 못했다.
히틀러는 새벽 5시 30분경 파리에 도착해 약 3시간 동안 도시를 둘러보다 떠났고, 이후 파리를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1946년이 돼서야 수리됐다. 전쟁 막바지엔 히틀러가 에펠탑을 포함한 파리의 주요 기념물 파괴를 명령했지만, 파리 군사총독 디트리히 폰 콜티츠 장군이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오늘날 에펠탑은 연간 약 700만명이 찾는 세계 최다 방문 유료 기념물이다. 개장 이후 누적 방문객은 약 2억5000만명에 달한다. 관람 시간은 1·2층만 볼 경우 최소 1시간 30분, 정상(3층)까지 오르면 2시간 30분을 잡아야 한다. 입장권은 2024년 6월부터 인상됐다. 엘리베이터로 정상까지 오르는 성인 티켓은 35.30유로(약 5만2000원)다.
탑은 7년마다 도색한다. 도색 작업에는 52톤의 페인트가 소요된다. 철골 구조의 특성상 온도에 따라 높이도 변한다. 기온이 가장 낮을 때 탑의 높이는 꼭대기에서 약 18cm 줄어든다.
준공 당시 ‘파리의 흉물’로 치부됐던 에펠탑은 137년 만에 프랑스의 상징이 됐다. 에펠이 투자 회수를 위해 세운 구조물은, 히틀러도 오르지 못한 채 파리의 스카이라인을 지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