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매너 4] 글로벌 비즈니스 무대의 식사 테이블은 전쟁터 : 월간조선

식당은 공공(公共) 영역이다. 철저히 공인(公人)으로 행세해야 한다. 공공 영역에서의 실수는 쿠데타, 즉 사회적 반역행위로 찍히고 만다. 그리고 그곳은 아군(我軍)과 적(敵)이 우글대는 전쟁터로 누군가가 자신의 식사 매너를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무실에서 나눈 얘기를 식당에서 반드시 더블 체크해야 한다. 그것도 철저히 상업적으로. 이는 글로벌 비즈니스계에선 기본이다. 필자의 지인(知人)이 중국에 사업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의 파트너인 중국인 사업가는 그와 만나는 자리에 선전(深圳)에서 삼성 애니콜 하나로만 단기간 내 1000억원대 매출을 올린 중국인 CEO를 데리고 나왔다. 두 중국인은 사무실에서는 물론 식당까지 동행하면서 필자의 지인이 두고두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더블 체크했다.

고작 식사가 뭐 그리 까다로울 필요 있느냐, 그냥 편하게 우리 식으로 배부르게 잘 먹었으면 됐지, 남의 나라 매너를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게 왜 부끄러운 일이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막살아온 사람들의 생각이자 변명일 뿐이다. 우리가 접대해야 할 만한 사람들의 수준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거다. 상대의 기분을 맞출 줄 알아야 기본적으로 상대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환대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은 목표를 두고 글로벌 매너로 무장을 한 다른 나라, 다른 경쟁업체들이 우글거린다는 점이다. 글로벌 비즈니스 무대에서 테이블 매너는 가장 치열한 경쟁 도구이다.

사소한 것과 시시한 것은 달라

2013년 11월 5일 오후 6시. 국빈만찬을 2시간 앞둔 버킹엄궁 2층 볼룸.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을 맞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이날 준비상황은 물론 접시와 포크, 나이프 등 테이블 세팅까지 모든 상황을 직접 일일이 점검했다. 그리고 이날 만찬은 당초 예정시간 3시간을 훌쩍 넘어 끝나는 바람에 ‘근래에 없었던 장시간의 만찬’으로 ‘이례적인 일’이라는 기사가 한국 일간지에 실렸다. 물론 그 연세에 간만의 긴 만찬이었겠지만, 기실 문명사회에선 그 같은 호스티스 서브드(hostess-served) 디너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 당연한 일이 한국에선 뉴스거리가 된다.

중증장애인 세계적인 유명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교수도 언젠가 신라호텔의 프랑스식당 라 콘티넨탈로 지인 2명을 초대한 오찬에서 부인의 조력(助力)을 받아 본인이 식사의 전 과정을 장악, 리드해 가는 호스트 서브드 내공을 유감없이 보여주어 이를 한국식 눈으로 걱정스레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경탄을 선사한 바 있다. 서구나 중국 등 선진문명권에서는 식사 자리 주재자로서 호스트(호스티스)의 책무와 권위, 즉 주인장의 인간존엄성 확보에는 극도의 중증장애인이라도 예외가 없다.

한국 기업들도 관공서 관리 접대에는 온 힘을 기울여 치밀한 계획을 짠다. 한데 허구한 날 대접만 받아본, 얻어먹기 습관이 몸에 밴 그 관료들은 정작 남을 대접하는 데에는 무지, 무식하기 짝이 없다. 해서 실컷 대접해 주고도 욕먹는 일이 다반사다. 아무렴 그렇다고 그 손님들이 그 자리에서 언짢거나 멸시하는 표정을 지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불쌍하게도 자신이 정작 뭘 실수했는지도 모르고 그저 허허거리기만 한다.

해외 공관(公館)이나 지사(支社) 직원들의 한결같은 고충은 한국에서 온 높은 사람들이 한식당과 한국식 의전, 매너를 고집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글로벌 매너를 대범하지 못하거나 또는 까다로운 성격 소유자의 위선, 심지어 애국심 부족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日, 주요 재외공관에 훌륭한 요리사 파견

2011년 10월 이명박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 때의 백악관 영빈관 오찬. 상당수 미국 내 오피니언 리더들이 초청되었으나 모두 굳은 표정으로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먹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게다가 바른 자세의 한국인이 눈에 띄지 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한국의 해외 공관들은 자체적으로 수시 파티를 열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부유한 나라 공관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되어 대개 얻어만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친 비하라고 나무라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지금도 일부 중진국 이하의 나라에선 자체적으로 자유롭게 파티를 열지 못한다. 한국은 이제 일본·중국과 함께 자체적으로 수시로 자유롭게 파티를 열 만큼 여유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럼에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얻어먹던 버릇만 남아 있어 공관장 외 중간 간부직원들은 오찬이나 만찬 메뉴 하나 제대로 코디할 줄 모른다. 그러니 ‘호스트 서브드 디너’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게다가 대부분 글로벌 비즈니스 실전(實戰) 무대에서 호스트로서의 경험이 전무한 서비스업 종사자 강사들로부터 배운 탓에 기껏 호스트가 되고서도 망신을 자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주요국 대사관엔 본국(本國)에서 훈련받은 뛰어난 요리사를 파견하고 있다.

가령 대통령은 국가의 호스트로서 외국의 수반이나 유명인사, CEO들을 하루에도 수차례 접대해야 한다. 평소 이런 훈련이 몸에 배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글로벌 정격(正格) 매너로 접대할 능력, 상대에 따른 맞춤형 접대를 치밀하게 코디할 능력을 갖춘 이가 한국에 과연 몇이나 될까? 현재 국가 최고기관인 청와대도 이런 수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심지어 국가지도자들을 모신 청와대 식탁에서도 입속에 음식을 넣은 상태로 말을 하더라는 소문도 들린다.

대통령, 장관, 공관장, 기업 오너, CEO 등 대부분의 한국 인사는 전통적으로 접대란 그저 아랫사람들의 일로 치부하고 있다. 본인도 뭐가 뭔지 모르는데 아랫사람이 알아서 한다? 식탁 하나 장악 못하는 사람이 기업이나 국가를 경영한다? 글로벌 무대에선 조롱거리일 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식탁에서 자신의 글로벌 소통 능력과 리더십을 증명해 내지 못하면 글로벌 비즈니스 무대에서 바로 탈락이다.

참고로, 대부분의 한국인은 해외 비즈니스 파트너를 대접한답시고 자신도 가보지 못한 유명 식당으로 데려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손님에 대한 큰 무례(無禮)다. 따라서 그 음식점에 대해 잘 모르면 사전에 답사해서 메뉴 전체, 접시 분량(몇 인분)을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직접 못 가면 팩스로 견적을 보내 달래서 협의를 해야 한다. 그런 사전 노력 없이 현장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은 손님에 대한 모독이다. “자기도 잘 모르는 식당에 날 데려오다니!”라는 소리를 듣기 쉽다. 밥값만 내면 된다는 나이브한 생각은 기껏 돈 쓰고 욕먹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해서 가능하면 자신이 평소 잘 아는 레스토랑으로 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 호스트가 그 식당 종업원들을 얼마나 잘 매니지먼트하고 있고 또 존경받고 있는지가 비즈니스 카운터파트에겐 매우 중요한 체크사항이기 때문이다.

왜 코스요리인가?

단품(單品)요리나 한국식 한 상 가득 요리로는 식담(食談)이 어렵다. 달랑 한 가지 요리로는 자신의 내공을 보여줄 수도 없을뿐더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 내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한꺼번에 모든 요리를 쫙 펼쳐놓는 것 또한 복잡하고 산만해서 음식 각각의 맛을 음미하기도 힘들뿐더러 메시지를 체계적으로 전달하기도 힘들다.

비즈니스 런천(luncheon)이나 디너(dinner)에선 정규 코스요리를 먹으면서 차례차례, 즉 기승전결(起承轉結)로 암시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간략히 정리하자면 애피타이저(appetizer)로 탐색전, 앙트레(entrèe·前食)로 얘기 꺼내기, 플라(plat·本食)에서는 마음 굳혀주기, 데세르(dessert·後食)로 행동 마무리시켜 주기, 그리고 끝으로 반드시 피드백, 즉 구체적인 감사표시와 함께 다음을 위한 답례 등 후속 사후관리다. 코스별로 나오는 각각의 요리를 하나의 단어로 보고 그것에다 각각의 맛과 숨은 의미, 혹은 의도를 부여하며 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의 문장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식사를 통해 음식들로 작문을 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프랑스인들과 중국인들의 작문 능력이 세계 제일인 것은 바로 그러한 음식문화에서 기인한다.

그러니까 비즈니스 런천·디너가 음식으로 하는 작문, 즉 일차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말로는 잘 할 수 있다고 백번 이야기한들,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을 아무리 잘 꾸민들 그것만 믿고 사업을 맡기거나 거래를 틀 수 없다는 말이다. 해서 그 진정성과 그만한 내공을 더블체크로 보여줘야 하는데,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에선 사전 식사메뉴 기획 및 현장 구사 식탁 매너를 통해 간접적으로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가령 창의력을 중시한 사업 관계라면 특별한 재료나 특별한 요리, 즉 창의적인 메뉴로 대접하고, 치밀성을 요하는 사업이라면 사전에 아주 치밀하게 준비해서 상대방에게 명백히 전달할 재료 선택과 상대방 기호, 취향, 건강을 배려한 그만을 위해 맞춤형으로 고안한 레시피로 섬세한 맛과 멋을 내야 하고, 장기간 끈질기게 헤쳐나가야 하는 사업이라면 몇 시간 이상 조리시간이 필요해 수일 전 사전예약이 필수인 요리 종류 탐색, 선택, 주문과 이에 걸맞을 양념 레시피 및 곁들일 와인과 차 종류까지 철저히 사전준비해서 접대해야 한다. 그 외 각각의 사업 특성, 손님 전체와 각각의 기호와 주선한 자리의 성격에 맞춘 치밀한 준비로 그 사업에 최적임 파트너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해 상대를 감동시켜야 한다.

식사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기회

오바마 대통령에게 빵을 권하는 아프가니스탄 카르자이 대통령. 빵을 건네면서도 눈길은 상대를 주시해 소통에 전혀 어려움이 없음을 연출해 내었다. ⓒ백악관

급하게 식사를 하거나, 절제 없이 배불리 먹거나, 이것저것 한꺼번에 비벼먹는 사람은 기승전결식으로 생각을 잘 정리하지 못한다. 당연히 작문 실력도 남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무계획적이어서 예측불가능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당연히 신뢰가 떨어진다. 식사를 통해 신뢰성, 치밀함, 창의성, 품격 등 자신이 보유한 상업적 신용의 넓이와 깊이를 비유적으로 증명해 보임으로써 ‘아, 저 정도라면 일을 맡겨도 잘 해낼 것 같다’거나 ‘저런 친구하고 같이 일하면 재미있겠다!’라는 믿음이 생겨야 한다. 그게 없는 사무실에서의 프레젠테이션은 이미 김 다 빠졌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진행 중인 비즈니스에 대해서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속으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과 일을 같이 해도 괜찮을까?’하는 생각에 점점 꼬치꼬치 캐묻고 따지며 확신이 들 때까지 이중 삼중 체크하게 된다.

그렇다고 왜 반드시 식사 접대냐? 골프 접대 같은 것도 있는데! 대답은 그게 시간과 경비가 가장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대개의 한국 유학생, 관료, 공관장, 교수들은 이런 정규 런천·디너 경험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사관이나 학회 등에서 주최하는 파티에서 공짜 음식 주워 먹은 경험이 대부분이다. 이런 스탠딩 리셉션에서는 ‘포크앤나이프’가 아닌 ‘핑거푸드’, 즉 오드되브르만 주워 먹으며 명함 교환이 고작이다. 설사 그렇다 한들 한국인들은 이런 기회마저 비즈니스 런천이나 디너로 발전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기 돈 지출하기가 아까운 데다가 그런 런천·디너를 주재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나 자기 돈 아끼는 구두쇠를 좋아할 리 없다. 그저 기업 주재원이나 공관 직원들을 골프장으로 불러내서 괴롭힌다.

주재원들 또한 본국에서 오는 높은 양반들 골프 접대나 여행 가이드 하는 게 고작이다. 틈날 때마다 가족들 관광시켜 주고 높은 양반들 선물 사다 바치는 일에 경비 다 써버리고 정작 자기를 업그레이드시켜 선진 오피니언 리더들과 친구 되는 일, 즉 글로벌 인적네트워크 구축에는 나 몰라라 해왔다. 해외파견 근무가 인사결정권자의 관심에서 멀어져 승진에 불리해질까 봐 하루빨리 돌아갈 궁리만 하니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올 리도 없겠다.

그러다 보니 반대로 비즈니스 상대방으로부터 런천이나 디너 대접을 받고서도 거기에 담긴 메시지를 읽지 못한 채 그저 배만 채우고 나서는 정떨어지는 소리를 해대거나 엉뚱한 결정을 내리고 만다.

간부들과의 午餐 통해 고급 인력 채용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M투자은행의 어느 해 연차보고서에 직원을 ‘대거’ 열두어 명 뽑았다고 자랑하는 내용이 책자 맨 앞 부분에 대형 연수 장면 사진과 함께 나와 있어 의아했던 적이 있다. 수백 명을 채용한 걸로 알고 있는데 고작 열두어 명이라니?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들이 말하는 직원이란 회사의 브레인 계층, 즉 오피서(officer) 그룹을 말하는 것이었다.

글로벌 우량 기업에선 평사원이나 하위직 종사자와 같이 기계 부속품처럼 수시 교체 가능한 사람들은 인적 코스트(human costs·물격체)라고 부르고, 의사결정권을 지닌 브레인 계층으로 낙점한 이른바 패밀리급을 원래 의미의 직원(employees·인격체)이라고 부른다(1만여 명 중 300여 명만!). 이 직원들을 채용할 때 3차 시험은 반드시 파트너급 임원과의 오찬(午餐) 면접으로 치른다.

대략 한 시간 반에 걸친 런천 동안에 구사하는 입사희망자의 테이블 매너를 보고, 먼저 1차 때 제출 서류에 기재한 사실의 진실성과 2차 때 필기시험 내지 에세이에서 주장한 내용의 역량 수준을 재검증하고, 이어서 전문가로서 사회적 인격체 성숙 정도 및 회사를 대표하는 이로서의 사교성 수준을 테스트한다.

이를테면 인성과 사회성, 공공의식과 공사(公私) 구분 능력, 배운 지식을 현실화시킬 전문가적 역량, 지속 가능성 등, 이어서 식사 습관에 부정적인 요소가 없는지, 파티에서 누구나가 친숙하게 가까이하고 싶은 매너를 지녔는지, 어떤 상대 기업의 식사 초대에 나가도 문제가 없을지 등등, 회사의 대표로서 각종 행사에 참석하여 회사 이미지와 품격을 높여줄 수 있을지를 체크한다.

세부적으로는 식사를 하면서 자세가 올바른지, 시선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시야가 얼마나 넓은지 등도 빠뜨리지 않고 살핀다. 떨어뜨린 음식이나 도구를 처리하는 것을 보고 위기관리 능력을 체크하고, 식당 종업원을 어떻게 부르고 주문을 하고 감사표시를 적절하게 하는지를 보고 나중에 사원이나 고객들을 다룰 수 있는 내공을 짐작하고 채점한다. 이렇게 테이블 매너라는 프레임으로 통상 42개 항목을 체크한다.

일반직에겐 그런 면접시험이 없다. 비즈니스 런천이란 정규 레스토랑의 비교적 격식 있는 오찬을 말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간이식당이나 길거리에서 샌드위치,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인적 코스트, 즉 일반직들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에겐 괜찮은 오피서들과의 런천을 할 기회가 퇴직할 때까지 전무하다. 법인카드나 회사 돈으로 점심 먹을 일이 없다는 말이다.

식사면접에서 ‘먼훗날’의 운명 결정

한국식, 즉 학력에 따라 일괄 단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는 간부급 사원 채용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한국은 아직 똑같은 학력으로 똑같이 입사하여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해 근무 연한에 따라 직급이 반자동 올라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실제로도 대부분 그런 식으로 기업이 운영되고 있지만 유럽과 미국에선 그렇지 않다.

이미 면접에서 집행부급 직원으로 결정되면 이후 줄곧 테스트하고 가르치며 도제(徒弟)식으로 길러 나간다. 중상류층으로서의 전문가적 가치관과 오블리주(책임과 의무)를 제대로 지키고 있고 지켜나갈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보고 처음부터 낙점해 키워나가는 방식이다.

브레인급 관리직원인 이들은 바로 임원후보(executive candidates)로서 일반직과는 철저히 구분된다. 그들은 채용되자마자 목재마루에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청년 때 명상 장면’ 사진에 나와 있는 조명 조건 그대로, 노(no) 형광등, 갓 달린 백열등, 간접조명으로 키 큰 스탠드, 책상 위의 작은 스탠드가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다.

한국에서 나름 공부 좀 한다는 과학고, 민사고, 외국어고 나와 서울대, 카이스트, 하버드대학을 나온 많은 한국 젊은이에게 이 오찬면접 낙점은 언감생심이다. 혹 채용된다 하더라도 이미 단순 일반직으로 분류되어 버린다. 일반직에서 임원급으로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드문 일인지는 간혹 국내에 소개되는 ‘성공한 한국인’들의 눈물겨운 경험담에서 엿볼 수 있다. 그나마도 비(非)유럽권에서나 있는 일이지만. 매너와 품격 대신 관상이나 스펙으로 인재를 뽑아서는 한국 기업들이 진정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란 요원하다 하겠다.

한국 기업의 비애

대형사고! 첫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냅킨을 뭉개어 접어버린 노무현 대통령. 냅킨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무지. 이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자크 로게 IOC 위원장. 서양인들은 음식이 나오기 전에 냅킨을 이처럼 구기는 것은 ‘당신과는 식사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들인 노력만큼 글로벌 일등 기업이 되지 못해 애가 타는 한국의 모(某) 대기업은 해마다 미국에서 글로벌 인재 영입 행사를 가진 다음 그 사진들을 국내 언론에 배포하는데 한마디로 탄식이 절로 나온다. 직접 행사를 주관하는 회장은 물론 해당 CEO의 글로벌 매너는 수준이랄 것도 없을 정도인데다 채용 면접에 임한 젊은 인재들 역시 매너가 하나같이 낙제점들이다. 저급한 테이블 매너는 물론 제대로 악수조차 못하고, 개중에는 정장도 못 차려 입은 사람도 있다. 그들이 그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어느 그룹에서 어떤 대접을 받아왔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가 사진 한 장에 다 드러나 보인다.

흡사 그 사회의 주류가 못 되는, 주류에 들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삼류들만 골라 뽑은 듯하다. 그저 어벙한 한국 대기업에 얹혀 편안한 삶을 보장받은 행운아들(?). 중상류층 오피니언 그룹에 절대 들 수 없는 그들을 데리고 글로벌 경영을 외치는 것 자체가 희극, 아니 비극이다. 그러니 그들의 인적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 주류 사회의 고급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며 선도적 기업으로서 함께 성장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아무튼 인재를 구별하는 오너의 안목이 생기지 않는 한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의 발돋움은 요원하다 하겠다.

테이블 매너는 철학이다

차분하게 코스요리를 즐기는 민족은 주관적이며 단계적이고 계획적인 협상 능력을 지닌다. 한꺼번에 모든 걸 다 내놓고 담판을 좋아하는 한상요리(단품요리) 민족과는 성향이 다르다. 항상 다음을 생각하고 서너 수를 앞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해서 한상요리(단품요리) 민족은 이를 두고 제 수준 세계관에서 음흉하다고만 여긴다.

한국인들은 일단 도박이나 게임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바람에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인의 이런 올인 기질은 식사문화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또 기업인들까지 떼를 지어 몰려가 한꺼번에 모든 현안을 일괄타결하려 드는 한국 대통령의 해외순방 역시 그런 전시적인 식탁문화 때문으로 볼 수도 있겠다. 아무튼 한국인의 식탁문화에는 절제가 없다. 철학이 없다. 철학은 식탁에서 나오지 책상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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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비즈니스 무대의 식사 테이블은 전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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