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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집

세월호 첫 신고부터 침몰까지 재구성

100분간 배 안에서 무슨 일이?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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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자들 증언, “선생님들이 닫힌 문을 열어줘서 바다로 뛰어들 수 있었다” “고깃배가 와 다 구조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배에 이상 생긴 후 한 시간 동안 구조 없었다”
⊙ 선장 떠난 배에 남아 ‘탈출하라’ 외친 22세 여승무원 故 박지영

[편집자 주]
그날 세월호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검경합동수사본부가 발표한 사항과 죽은 아이들의 휴대폰에서 발견된 동영상, SNS 대화 기록, 문자메시지, 진도 현지에서 기자가 만난 유가족들의 증언, 언론에 보도된 생존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그날의 세월호를 재구성했다
지난 4월 16일 사고 당시 세월호의 좌현으로 접근해 구조를 하고 있는 해경 구조정과 어선.
  안개가 잡아둔 2시간
 
  안개는 세월호(世越號)의 운명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지난 4월 15일 오후, 인천항 앞바다에는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인천항만청은 저시정주의보를 발령했다. 저시정주의보는 500미터 앞이 제대로 안 보일 때 내려진다.
 
  바다는 점점 어두워지고, 안개는 걷힐 줄을 몰랐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정박해 있던 배들은 하나 둘 출항을 포기했다.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던 배 10척 중에는 인천과 제주를 오가는 세월호가 있었다.
 
  세월호는 1994년 6월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건조돼 2012년까지 18년 동안 마루에페리사 소속의 ‘페리 나미노우에(‘파도의 위’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바다를 누볐던 배다. 퇴역 후 한국의 청해진해운에 팔려 대대적인 개조작업을 거친 후 2013년부터 인천과 제주를 오가기 시작했다.
 
  4월 15일 세월호에는 정원의 반이 넘는 476명의 승객이 승선했다. 화물은 얼마나 실렸을까. 청해진해운에 따르면, 화물 1157톤과 함께, 승용차 124대, 1톤 트럭 22대, 2.5톤 트럭 1대, 4.5톤 이상의 트럭 33대 등 약 3608톤 중량의 화물과 차량이 실렸다. 한국선급이 승인한 최대 적재량의 3배가 넘는다.
 
 
  출항 전에 이미 ‘출렁’
 
CCTV에 찍힌 4월 15일 오후 세월호의 모습. 화물이 선적되고 있다.
  세월호에는 다양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생 325명과 교사 10명이 타고 있었고, 환갑 기념 여행을 떠난 인천 용유초등학교 동창생 17명도 있었다. 화물을 운반하기 위해 떠난 화물기사들, 신혼여행을 떠난 젊은 부부, 제주도로 이사를 가는 가족….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은 부모와 형제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5반 박준민 군은 어머니에게 ‘일단 배 탔어. 출발할지, 안 할지 몰라’라고 보냈다. 단원고 아이들은 모두 4층 객실에 묵고 있었다.
 
  화물기사 서희근씨는 동료 기사 양인석, 이원일 씨와 함께 3층 객실에 묵고 있었다. 각자 20톤짜리 대형 트레일러를 몰고 세월호에 탔다.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해 비료를 만드는 설계시스템 기기를 제주도에 운반하기 위해서였다.
 
  서씨는 바다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군대 생활을 해병대에서 하며 상륙선거함(LSD)을 여러 번 타본 경험이 있다. 서씨와 동료들은 ‘출발이 지연되고 있으니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를 받고 선실에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배가 움직였다.
 
  ‘이렇게 큰 배가 정박해 있는 상태에서 출렁출렁 댈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점점 흘렀다. 원래 출항예정시각이었던 오후 6시30분보다 2시간이 흐른 저녁 8시30분, 세월호의 VHF(초단파무선전화)로 인천항만청의 안내메시지가 왔다. 저시정주의보의 해제를 알리는 안내방송이었다. 이날 출항 대기 중이었던 여객선 10척 중 9척은 이미 출항을 포기한 상태였다. 세월호 홀로 바다를 가르며 인천항을 떠났다. 출항 전 안전교육은 없었다.
 
 
  마지막 생일파티
 
  배는 인천대교 아래를 지나갔다. 다리를 지나자마자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갑판에서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었다. 영상통화로 가족들에게 불꽃놀이 장면을 보여주는 아이도 있었다. 불꽃놀이 구경을 하지 않고 배 안에 머문 아이들도 있었다. 배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거나 3층에 있는 노래방이나 오락실에서 각기 시간을 보내는 식이었다.
 
  불꽃놀이 구경을 마치고 서씨는 객실로 돌아왔다. 매점에서 사온 맥주를 마시고 누워서 TV를 보고 있었다. 이때였다. 갑자기 배가 좌측으로 휙 넘어갔다가 바로 서는 게 느껴졌다. 15도가량 넘어간 듯했다. 순간의 일이었다. 바닥에 놓여 있던 쓰레기통과 음료수 캔들이 나뒹굴 정도였다.
 
  ‘이렇게 큰 배가 이런 식으로 충격을 받아서 움직이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 서씨는 객실을 나와 갑판 쪽으로 갔다. 혹시 바다에 무슨 변화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바다는 고요했다. 안개도 없었다. GPS로 위치를 확인하니 군산 앞바다였다.
 
  배에서는 어떤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았다. ‘이 정도로 배가 흔들렸으면 무슨 안내방송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안 좋은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시흥에 사는 김성묵씨는 제주도로 출장을 떠나는 길이었다. 간판 설치를 감독하는 일을 하는데, 바쁘게 떠나느라 미처 부모님한테는 제주도로 간다는 연락을 못 했다. 세월호만큼 큰 배는 처음 타보는 거였다. 객실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배가 ‘휘청’ 하는 걸 느꼈다. 돛단배 같은 작은 배가 큰 파도에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큰 배도 이런가’ 생각했다. 2~3분이 흘렀을까 배는 균형이 잡힌 것 같았다. 김씨는 잠이 들었다.
 
  2학년3반 아이들은 늦게까지 깨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 김초원씨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김초원씨의 생일은 출항 다음날인 4월 16일이었다. 시곗바늘이 12 숫자를 지나자마자 아이들은 깜짝 생일파티를 열었다. 준비해 온 떡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노래를 불렀다. 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떡케이크를 든 김초원씨는 브이자를 만들며 미소를 지었다.
 
 
  고요했던 바다
 
  ‘배에서 자고 일어났어.’ 아침 7시, 2학년2반 반장 양온유양은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30분 후, 학생들은 3층 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1반부터 차례대로 식당으로 갔다. 아침을 빨리 먹은 학생들 중 몇몇은 갑판으로 나가 바다를 보며 사진을 찍었다.
 
  세월호의 선박자동식별장치(AIS) 기록을 복원해 보니, 세월호는 오전 7시28분부터 8시까지 19노트, 시속 약 35km로 운항했다. 세월호의 최고속도는 21노트(시속 39km). 거의 최고속도로 달리고 있던 셈이다.
 
  오전 8시, 조타실에서는 3등 항해사 박한결이 당직사관으로 조타실 키를 잡고 있었다. 배를 운항할 때, 보통 항해사 1명과 조타수 1명이 1개 조를 이뤄 총 3개 조가 네 시간 단위로 당직 근무를 선다. 3등 항해사(이하 1・2・3항해사→1・2・3항사) 조는 오전 8시~낮 12시를 맡는다. 2항사 조가 낮 12시~오후 4시, 1항사 조는 오후 4시~오후 8시를 담당한다. 이후 다시 3항사 조가 키를 잡는 식이다.
 
  선장 이준석은 조타실을 내내 지키지는 않았다. 3~4시간마다 상황을 점검하러 들르는 식이었다. 세월호의 원래 선장인 신보식씨는 휴가 중이었다. 이준석씨는 대리선장인 것이었다.
 
  8시30분 세월호는 맹골수도에 진입했다. 날씨는 쾌청했다. 세월호는 해운조합 제주지부 운항관리실에 ‘이상 없음’ 보고 메시지를 보냈다.
 
  선내에 안내방송이 울렸다. “제주 도착시각이 예정시각보다 1시간30분 지연된 낮 12시쯤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이었다. 화물기사 서씨와 함께 제주도로 향하던 양인석씨는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항에서 늦게 출발했다는 걸 감안하고라도 원래대로라면 10시30분에는 제주도에 도착해야 한다. 1시간30분이나 늦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양씨는 방송을 듣고 주차해 놓은 트레일러를 확인하러 객실 밖으로 나왔다.
 
  8시44분 조타실. 박한결은 조타수 조준기에게 키를 5도 돌리라는 변침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예상보다 키가 더 돌았고, 당황한 조씨는 반대방향으로 키를 돌렸는데 배가 갑자기 오른쪽 방향으로 급하게 돌기 시작했고 선체는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키를 어떻게 돌렸는지에 대해서는 박한결과 조준기의 진술이 엇갈린다.)
 
  당시 세월호가 지나고 있던 해역은 통상 선박이 10도가량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변침점이다. AIS를 복원해 본 결과, 세월호는 8시48분에 오른쪽(남서방향)으로 45도 변침했고 급변침 후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17노트에서 15노트, 10노트로 속도가 떨어졌고 8시50분에는 5노트로까지 속도가 내려갔다.
 
  이윽고 엔진이 멈췄다. 뱃머리를 남서쪽으로 향한 채 북쪽으로 떠내려간 세월호는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해상에서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면서 침몰하기 시작했다.
 
 
  첫 신고는 단원고 학생
 
  다시 객실. 단원고 학생들이 몰려들 걸 예상해 느지막이 아침을 먹은 서씨는 객실로 돌아와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왼쪽으로 기울었다. 대략 45도가량. ‘아이고 이거 사고났구나’.
 
  동료 기사 양씨는 배가 급선회할 때 방에서 넘어졌다. 어찌나 갑자기 배가 돌았는지 바닥에 쓰러질 정도였다.
 
  8시52분, 조타실의 조타수는 북쪽으로 방향을 확 틀었다. 배 안 화물은 처음보다 더 심하게 쏠렸다. 쾅 하는 폭발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기관장 박기호는 조타실 직통전화로 기관실에 전화를 걸었다. 기관원들에게 탈출 지시를 내렸다.
 
  2학년9반 김모 양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배가 흔들렸지만 파도 때문이라고 여겼다. 갑자기 배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식탁 위의 식기가 떨어지고, 친구들이 소리쳤다. 이 시각 갑판에 나와 있던 승객들은 쾅 하는 굉음을 들었다.
 
  6반의 최덕하 군이 119로 전화를 걸었다. 세월호에서 외부로 나간 첫 조난신고였다. 최군의 전화가 연결된 전남소방본부, 목포해양경찰서의 전화 통화 내용이다.
 
  최군 : 살려주세요. 배가 기울고 있어요.
 
  전남소방본부(이하 전남소방) : 배 이름이 뭐예요? 제가 해경으로 바로 연결해 드릴게요.
 
  최군 : 세월호요.
 
  전남소방 : 지금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신고가 왔는데요.
 
  목포해양경찰서(이하 목포해경) : 침몰하고 있다고요? 배 위치요. 위치.
 
  전남소방 : 네, 서거차도리로 지금 뜨고 있거든요. 신고자 전화번호 드릴게요.
 
  목포해경 : 여보세요. 여기 목포해경 상황실입니다. 지금 침몰 중이라는데 위치가 어디예요, 배가 어디에 있습니까?
 
  최군 : 위치를 잘 모르겠어요. 지금 여기가….
 
  목포해경 : 위치를 잘 모르시겠다고요? 거기 GPS 경위도 안 나오나요? 경도와 위도.
 
  최군 : 어, 어제, 어제.
 
  목포해경 : 어제 출항하셨다고요?
 
  최군 : 어제 8시에 출발한 것 같아요.
 
  목포해경 : 배 이름이 뭡니까? 배 이름.
 
  최군 : 세월호요, 세월호.
 
  목포해경 : 세월호. 이게 상선인가요, 뭔가요?
 
  최군 : 네?
 
  목포해경 : 배 종류가 뭐예요? 여객선인가 아니면 어선인가요?
 
  최군 : 여객선.

 
 
  최초 신고부터 침몰까지 100분, 골든타임엔 무슨 일이
 
세월호 선내에 붙어 있던 최대 적재량 안내판.
  최덕하 군이 최초로 침몰 신고를 한 시각은 8시52분. 목포 해양경찰청 상황실에 사고가 정식으로 접수된 시각은 8시58분이었다.
 
  김성묵씨는 아침밥을 먹은 후, 4층 우현 쪽 갑판에 올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슬리퍼를 신은 채였다. 그런데 배가 갑자기 크게 우회전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배가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좌현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니 우현 쪽이 올라간 거였다. 이때 ‘제자리를 지키라’는 방송이 나왔다.
 
  김씨는 직감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기울어진 객실로 뛰어내리듯 내려갔다. 휴대폰으로 배가 기운 각도를 재보니 이미 45도 넘게 기울어져 있었다. 김씨는 얼른 다시 뛰어올라가 출입문 입구 쪽에 있는 난간을 잡고 선실을 빠져나왔다. 큰 파도가 친 걸까, 흔들림과 동시에 자판기가 넘어졌다. 쿵 하는 소리도 들렸다.
 
  아래층에 있던 선원들이 계단으로 위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왜 저렇게 뛰어갈까’ 생각하며 바다를 봤다. 바다에는 컨테이너와 쓰레기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4층의 다른 객실에서 단원고 2학년4반 박수현 군은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바닥에 앉거나 벽에 기대어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배가 기울어졌다’ ‘죽기 싫다’ ‘동생은 수련회에 가지 말라고 해야겠다’ ‘선생님은 괜찮으시대?’ ‘침몰하면 안 돼’….
 
 
  작동하지 않는 밸러스트 펌프
 
세월호 3층에 위치했던 오락실 시설.
  다시 조타실. 배는 이미 선원들이 이동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자신의 당직 시간을 마치고 객실에서 쉬고 있던 오용석 조타수는 함교로 달려갔다. 문 앞에서 선장(이준석)과 마주쳤다. 이씨는 함교 옆에 붙어 있는 숙소에 있다가 배에 이상이 생기자 함교로 온 참이었다. 이씨는 한 손으로 문고리를, 다른 손으로는 문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려 애를 쓰고 있었다. 오씨는 이씨를 뒤에서 밀어 함교 안으로 들여보내고 자신도 따라 들어갔다.
 
  선장과 1항사 2명, 2항사와 3항사 각 1명, 조타수 3명, 기관장 등 9명이 모였다. “배가 심하게 기울었으니 모두 잡을 수 있는 것을 잡고 버텨라.” 선장이 말했다. 그는 “구조를 요청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오씨가 초단파무선통신(VHF) 무전기를 세 번째 시도 끝에 잡아 2항사 김영호에게 전달했다. 김씨는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구조요청을 했다. 교신 내용이다.
 
  세월호 : 본선이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갑니다.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빨리 좀 와주십시오.
 
  제주VTS : 귀선 어디십니까? 예, 알겠습니다. 해경에 연락하겠습니다.
 
  세월호 : 지금 배가 많이 넘어갔습니다.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빨리 좀 와주십시오. 병풍도 옆에 있어요.
 
  제주VTS : 예 양지했습니다.

 
  이때가 8시55분. 구조 요청 직후 선장은 “힐링을 잡으라”고 지시했다. 힐링펌프는 배 좌우측에 설치된 물탱크로 배가 한쪽으로 기울면 반대편으로 물을 대거 이동시켜 수평을 유지하게 해주는 장치다. 힐링 스위치를 누르면 자동으로 균형이 조절된다. 조타수 박모씨가 간신히 스위치를 눌렀지만 이미 배가 크게 기운 상태라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3항사 박한결은 더 이상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좌현 쪽 구석에 앉아 있었다.
 
  선장은 1항사 강원식에게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대기시켜라”고 지시를 내렸다. 객실에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현재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안전우려사고에 대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선장은 이어 “구명정을 터뜨려라”는 지시를 내렸다. 강씨와 조타수 박씨가 좌현 미닫이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구명정에 접근하려 했지만 배는 이미 너무나도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구명정 주위의 펜스를 넘지 못했다. 두 사람은 펜스를 붙들고 서서, 구명정을 펴지도, 다시 브리지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구조대를 기다렸다.
 
 
  ‘제자리에 있으라’ 거듭된 안내방송
 
  승객 이중재씨는 3층에 있는 객실에서 쉬고 있었다. 용유초등학교 동창생 17명이 함께 2박3일의 환갑 기념여행 중 막 하룻밤이 지난 참이었다. 갑자기 배가 요동치면서 왼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객실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실 문은 꿈쩍도 안 했다. 배가 왼쪽으로 기울면서 여닫이 문에 중력이 가해져 문을 잡아당겨 열기가 쉽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 끝에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틈이 생겼다. 몸을 그 틈으로 밀어넣고 3층 로비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은 3층 베란다 쪽으로 빠져나가 바다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있어 달라’는 방송을 들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내에는 아직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배가 침몰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언제든 바다로 뛰어내릴 수 있는 공간으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배는 점점 기우는 것 같았다. 불안함이 점점 더 밀려왔다. 3층 중앙 로비로 기어갔다. 로비를 지나면 바다로 뛰어내릴 수 있는 베란다가 있었다.
 
  이씨보다 앞서 베란다로 가고 있던 한 승객이 편의점 쪽으로 미끄러지면서 문에 머리를 부딪혔다. 피를 흘리는 게 보였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피커에서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8시58분, 승무원 중 자동항로 기사가 해경에 신고를 했다. 목포해경은 목포항공대 기지에 ‘헬기를 이용해 수중 구조작업에 탁월한 특공대를 현장에 급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이미 목포항공대 헬기 B511은 항공구조사 2명만을 태우고 사고해역으로 떠난 뒤였다. 나머지 2대의 헬기 중 1대, 카모프는 수리 중이었고, 또 다른 헬기 B512는 3009함에 탑재되어 있었다. 3009함은 중국어선의 불법어업을 단속하기 위해 가거도 해상으로 출동한 상황이었다.
 
 
  답이 없는 무전기
 
  9시, 기관사들이 모두 기관실을 빠져나와 함교로 모였다. 제주해경 상황실과 세월호의 교신이 이어졌다.
 
  제주해경 : 세월호, 현재 상황이 어떻습니까.
 
  세월호 : 현재 선체가 좌현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컨테이너도 넘어가고.
 
  제주해경 : 네, 인명 피해는 없습니까.
 
  세월호 : 현재 확인 불가합니다. 선체가 기울어져 이동 불가합니다.
 
  제주해경 : 네, 알겠습니다. 인명들 구명조끼 착용하시고 퇴선할지도 모르니까 준비 좀 해주십시오.
 
  세월호 : 사람들 이동이 힘듭니다.

 
  화물기사 강병기씨는 선체가 점점 기울어지자 3층 안내데스크로 기어갔다. 안내데스크에 있던 승무원 박지영씨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박지영씨는 승객들이 탈출해도 되는지 거듭 무전기에 대고 물었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박씨는 정직원이 아닌 계약직 아르바이트 직원이었다. 수원과학대학교 산업경영학과를 다니던 중,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여동생의 생계를 위해 휴학하고 세월호에서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박씨는 그 후에도 무전기를 들고 10여 차례 ‘탈출해도 되는지’ 물었지만 끝내 아무도 그녀에게 답신을 주지 않았다. 함교에 있는 해기사 중 무전기를 들고 있던 사람은 이준석 선장, 2항사 김영호, 3항사 박한결이었다.
 
 
  승무원들, 청해진해운에 7차례 전화
 
2층 침대가 있는 8인실의 모습. 정면에 구명조끼 함이 보인다.
  9시1분, 승무원 중 한 명이 휴대전화로 청해진해운에 사고를 보고했다.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들은 이후 청해진해운에 7차례 전화를 걸었다.
 
  단원고 학생과 선생님들 사이에는 SNS 카카오톡을 통한 메시지가 오갔다. 강민규 교감은 카카오톡을 통해 ‘자리 지키고 있어라. 선생님들은 카톡 통해 학생들 확인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9시5분, 세월호 함교에서는 제주 VTS에 또다시 구조 요청을 보냈다. 교신 내용이다.
 
  세월호 : 해경 어떻게 됩니까?
 
  제주VTS : 네, 지금 해경한테 통보했고요. 저희가 진도VTS랑 완도VTS에 통화 중에 있으니까요, 잠시만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시각 진도VTS는 세월호로 교신을 시도했다.
 
  진도VTS : 세월호, 여기는 진도VTS 감도 있습니까?
 
  답이 없자 진도VTS에서는 부근을 지나던 다른 배, 둘라에이스(DOOLA ACE)로 교신을 보냈다.
 
  진도VTS→DOOLA ACE : 둘라에이스, 여기는 진도VTS.
 
  DOOLA ACE→진도VTS : 네, 여기는 둘라에이스.
 
  진도VTS→DOOLA ACE : 귀선, 세월호 육안 확인되십니까?
 
  DOOLA ACE→진도VTS : 예, 우현 쪽에 확인되고 있습니다.

 
  세월호에서 진도VTS로 답신이 왔다.
 
  세월호→진도VTS : 진도VTS, 여기는 세월호.
 
  진도VTS→세월호 : 세월호, 세월호, 여기 진도VTS, 귀선 지금 침몰 중입니까?
 
  세월호→진도VTS : 예, 그렇습니다. 해경 빨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진도VTS→DOOLA ACE : 둘라에이스, 여기 진도VTS, 귀선 우현 전방 2.1마일에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에 있습니다. 귀선 구조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쪽으로 가셔서 구조 부탁드리겠습니다.
 
  DOOLA ACE→진도VTS : 예, 일단은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각 강혜정 매니저는 ‘구명동의를 착용하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객실의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나눠 입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걱정했다.
 
  ‘구명조끼 입어 얘들아’ ‘지퍼가 안 잠겨’ ‘나도 지퍼가 고장났어’ ‘밖에 애들 구명조끼 안 입었어’ ‘선장은 뭐하기에’….
 
 
  9시10분
 
  세월호→진도VTS : 진도VTS, 여기 세월호. 저희가 기울어서 금방 뭐… 넘어갈 것 같습니다.
 
  진도VTS→세월호 : 네, 귀선 승선원은 어떻습니까? 둘라에이스가 최대한 빨리 귀선으로 접근 중에 있습니다.
 
  세월호→진도VTS : 너무 기울어져 있어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도VTS→세월호 : 세월호, 여기 진도VTS. 지금 승선원들은 라이프래프트 및 구조 보트에 타고 있습니까?
 
  세월호→진도VTS : 아니, 아직 못 타고 있습니다. 지금 배가 기울어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진도VTS→세월호 : 네, 현재 인근 선박 둘라에이스호가 가고 있습니다.

 
 
  9시14분
 
  진도VTS→세월호 : 주변에 어선들까지 다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DOOLA ACE→진도VTS : 옆에 보트가 탈출하네요. 좌현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접근이 위험합니다. 아무튼 최대한 안전거리 확보해서 접근해 보겠습니다.
 
  진도VTS→세월호 : 세월호, 현재 승객들이 탈출이 가능합니까?
 
  세월호→진도VTS : 지금 배가 많이 기울어서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진도VTS→세월호 : 최대한 경비정 및 어선들에 연락을 취해서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9시15분
 
  다른 배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드래곤에이스11→진도VTS : 드래곤에이스 11호입니다. 저희도 구조작업에 지원해도 되겠습니까?
 
  진도VTS→드래곤에이스11 : 네, 최대한 전속으로 그쪽으로 이동… 승선원이 500명 이상 됩니다. 최대한 전속으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드래곤에이스11→진도VTS : 네, 양지했습니다. 그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진도VTS→세월호 : 세월호 여기는 진도VTS, 감도 있습니까? 현재 침수 상태가 어떻습니까?
 
  세월호→진도VTS : 지금 50도 이상 좌현으로 기울어져 사람이 좌우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며, 선원도 라이프자켓 입고 대기하라고 했는데… 사실 입었는지 확인도 불가능한 상태고, 선원들도 브리지(함교)에 모여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입니다. 빨리 와주시기 바랍니다.

 
 
 
9시18분

 
  진도VTS→세월호 : 세월호 현재 물이 얼마나 차 있습니까?
 
  세월호→진도VTS : 그것도 확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지금 데크에 컨테이너 몇 개가 빠져나간 거는 선수에서 확인이 되는데, 이동이 안 돼 브리지에서 좌우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여서 벽을 잡고 겨우 버티고 있는 상태입니다.
 
  DOOLA ACE→진도VTS : 사람들이 탈출을 안 하면 Alongside 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최대한 주의해서 접근 선회하면서 지원토록 하겠습니다.
 
  진도VTS→DOOLA ACE : 현재 세월호는 탈출이 도저히 불가능한 상태니까, 도착해 승객이 탈출하면 승객들을 최대한 안전하게 구조 바랍니다.

 
  트레일러를 점검하기 위해 갑판에 나가 있던 화물기사 양씨는 9시20분 형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형, 지금 여기 배가 기울고 있어. 보여?”
 
  “야 임마, 네가 지금 그럴 때냐. 배가 기울면 빨리 빠져나갈 생각을 해야지.”
 
  양씨는 급하게 선실로 돌아가 일행을 찾았다. 이들은 신발과 휴대전화를 가지고 갑판으로 나가기로 했다.
 
  같은 시각, 선원들은 탈출준비를 완료했다.
 
 
  9시23분
 
  DOOLA ACE→진도VTS : 지금 상황은 세월호 선수 쪽에 부유물도 있고 해서 접근이 불가합니다. 지금 침몰 직전인 거 같습니다.
 
  진도VTS→세월호 : 경비정 도착 15분 전입니다. 방송하셔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착용토록 하세요.
 
  세월호→진도VTS : 현재 방송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진도VTS→세월호 : 방송이 안 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셔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및 두껍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조치 바랍니다.
 
  세월호→진도VTS : 본선이 승객들을 탈출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겠습니까?
 
  진도VTS→세월호 : 라이프링이라도 착용시키고 띄우십시오. 빨리!
 
  진도VTS→세월호 : 세월호, 인명 탈출은… 선장님이 직접 판단하셔서 인명 탈출시키세요. 저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선장님께서 최종 판단을 하셔서 승객 탈출시킬지 빨리 결정을 내리십시오.
 
  세월호→진도VTS :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진도VTS→세월호 : 경비정이 10분 이내 도착할 겁니다.
 
  세월호→진도VTS : 10분 후에 도착한다고요?
 
  진도VTS→세월호 : 네, 10분 정도 소요됩니다. 10분!

 
  객실 안, 실내등이 꺼졌다.
 
  9시27분, 신모 군은 엄마에게 ‘엄마 말 못 할까 봐 미리 보내놓는다, 사랑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김모 군은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아빠, 배가 가라앉으려 해. 구명조끼 입고 침대에 누워 있어. 살아서 만나요.”
 
  울먹이는 음성과 함께 전화는 끊겼다.
 
 
  구조 헬기, 구명정 도착
 
세월호에서 구출된 후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아이들.
  9시30분, 해경 항공구조단 소속 헬기가 도착했다.
 
  김성묵씨는 세월호 위 상공에 도착해 하늘에 떠 있는 헬기를 바라봤다. 헬기에서 사람은 안 나오고 카메라가 나오더니 몇십 초 동안인가, 사진을 찍었다. ‘왜 온 거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구조원이 헬기에서 내려왔다. 승객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헬기 소리가 너무 커서 말로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 헬기 구조원이 손가락 다섯 개를 폈다. ‘다섯 명을 싣겠다는 말인가보다.’ 아이들 5명을 헬기로 올려 보냈다. 구조원이 다시 손가락으로 여섯 명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옆에 있던 화물 기사분과 함께 협력해서 여섯 명을 헬기로 올려 보냈다. 승객들을 업고 이동하는 구조대원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보였다.
 
  9시32분, 또 한 대의 헬기가 도착했다.
 
  선실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들을 구하러 주변에 있는 소방호스를 가져다가 선실로 내려 보냈다. 한 가닥만 잡고는 힘들어하기에, 소방호스 한 가닥을 더 내려 보냈다. 아이들은 소방호스를 겨드랑이에 끼고 올라왔다.
 
  9시35분, 목포해경 소속 경비정 123정(110톤)이 도착했다. 123정은 어선단속정이다. 구조전문인력은 타고 있지 않았다. 민간어선도 속속 도착했다. 123정은 세월호의 좌현에 접근해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검경합동수사본부가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와 함께 분석해 본 결과 당시 세월호는 좌현 쪽으로 45도 기울어져 있었다. 3층, 4층 객실은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상태였다.
 
  3층 안내데스크 부근에서 승객들을 돕던 박지영씨는 큰소리로 ‘모두 탈출하라’고 소리질렀다. 123정은 세월호를 향해 방송을 내보냈다. “승객 여러분 총원 바다로 뛰어내리십시오.” 방송은 헬기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헬기 소리를 듣고 아이들은 희망을 가졌을까. 휴대전화로 촬영된 영상 속에서 아이들은 ‘헬리콥터가 와’ ‘되게 많이 기울었다’ ‘엄마 보고 싶어’ ‘살 건데 무슨 소리야’ ‘살아서 보자’는 대화를 나눴다.
 
  구명조끼가 손에 손을 거쳐 전달됐다. 김성묵씨는 전달된 조끼를 입고 소방호스 한쪽을 배 난간에 묶고 다른 한쪽을 4층 홀 쪽으로 던졌다. 2명이 줄을 잡고 건너왔다. 소방호스 한 줄을 더 던졌다. 1명이 더 건너왔다.
 
 
  선장이 버린 배를 지킨 직원
 
  9시38분, 진도VTS와 세월호 간의 교신이 두절됐다. 선장과 승무원들은 배를 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9시40분, 세월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구명조끼 입은 승객들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9시46분, 이준석 선장과 승무원들이 구조됐다. 이들과 함께 필리핀 출신 선상 가수 부부도 구조됐다.
 
  선실 안은 혼란 자체였다. 물이 들어오고 배가 급속도로 기울었다. 승객들은 미끄러지는 정도가 아니라 날아다니고 있었다. 머리와 허리를 다친 사람들이 많았다. 이중재씨는 주위를 둘러봤다. 물이 들어와 3층 베란다로는 이제 나갈 수 없었다. 학생들이 4층 베란다로 올라가고 있었다. 4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편의점 문을 고정해 줘야 했다. 순간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여승무원이 보였다. 박지영씨였다. 박씨는 분주히 돌아다니며 구명조끼를 승객들에게 전해주고, 다친 사람들에게 휴지를 건네줬다. 편의점 출입문을 잡아준 것도 박씨였다. 이중재씨는 4층 베란다로 겨우 올라갔지만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여기서 이제 죽는 건가’ 생각하는 찰나 소방호스가 내려왔다. 그 줄을 잡고 올라갔다.
 
  3층에 있던 화물기사 한승석씨와 강병기씨는 탈출하자고 외쳤다. 물이 빠르게 들어오면서 출입문을 줄줄이 삼키고 있었다. 강병기씨는 탈출을 외치며 학생 10여 명을 잠수하라고 밀었다. 4층에 있던 승객 30여 명도 출입문으로 잠수해 탈출했다. 필사의 잠수탈출로 승객 70여 명이 목숨을 건졌다.
 
  배는 이제 90도로 넘어갔다. 더 이상 김성묵씨가 있는 쪽으로 아무도 건너오지 못했다. 물이 너무 빨리 차 들어왔다. 30~40명이 물을 따라 위쪽으로 떠올랐다. 아이들 몇 명을 끌어올렸다. 이때 누군가가 머리 위로 6세 여자아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김씨는 아이를 받아 머리 위로 올린 뒤 ‘아이가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다른 남자 승객이 아이를 넘겨받았다. 아이를 넘겨주고 돌아보니 선실 입구가 막혀 있었다. 아까 물을 따라 떠올랐던 사람들은 한순간에 물에 휩쓸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10시17분, 한 학생이 108도로 기운 배 안에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배가 기울고 있어. 엄마 아빠 보고 싶어. 배가 또 기울고 있어.’
 
  세월호에서 밖으로 보낸 마지막 메시지였다. 10시31분, 선수 일부분만 남기고 세월호는 사실상 완전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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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희    (2014-06-03) 찬성 : 164   반대 : 115
여러분 희망을 잃지말고 조부모님들 힘내세요!! 그리고 생존자가많기를 바람니다. 그리고 선장님께서 학생들보고 나가라고하였으면 사람들이 살수있었습니다... 참슬픈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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