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십니까] 朝鮮大에서 漢學 가르치는 개그맨 金炳朝 : 월간조선

올해는 ‘6월 항쟁’ 25주년이 되는 해다. 1987년 6월 10일 서울 잠실 체육관에서는 민주정의당 전당대회 및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가 열렸다. 전두환 대통령은 후보로 선출된 노태우 대표위원의 손을 들어올렸다.

같은 날 ‘호헌 철폐 민주 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는 성공회 대강당에서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를 개최했다.

이날을 유독 특별히 기억하는 이가 있다. 개그맨 김병조(金炳朝·62)씨는 25년 전 6월 10일 민정당 전당대회 여흥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민정당은 민족에게 정을 주는 당이고, 통민당(통일민주당)은 민족에게 고통을 주는 당”이라는 만담(漫談)을 했다. 그의 발언은 그날 석간신문에 보도됐고, 큰 파문이 일었다. 당시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서 세태(世態)풍자 개그로 인기 절정을 구가하던 김씨는 출연 요청을 한 정당의 입장을 고려한 풍자 한마디로 공적(公敵)이 됐다. 김씨가 전속 출연하던 MBC에 항의전화가 쇄도했다. 가족도 빗발치는 항의를 견디지 못해 피신해야 했다. 그는 출연 프로그램에서 자진하차했다.

한 달 뒤, 김병조씨는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 복귀했다. 그는 “안녕하십니까, 김병조입니다”라고 인사하고서 30여 초 동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 후 김씨는 설화(舌禍) 때문에 스스로 풍자 개그를 하기 어렵다고 여겨, 개그맨보다 주로 진행자 역할을 맡았다. 1991년 SBS로 이적해 <사랑의 공개홀>, <주부 만세>, <코미디 전망대> 등에 출연했지만, 과거의 인기를 회복하진 못했다. 김씨는 1997년 지상파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1년 뒤 돌연 ‘명심보감(明心寶鑑) 강사’로 변신을 선언했다.

高校 시절 陸士 지망했다가 개그맨으로 진로 바꿔

5월 5일 오후 2시 명동 외환은행 본점 앞. 김병조씨는 아들 형주(31·뮤지컬 배우)씨와 함께 UN 구호단체 ‘한국 JTS’가 주최한 기아 지원 모금 행사 사회를 보고 있었다. 그는 현재 조선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로 《명심보감》을 강의하고, 불교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김병조의 이야기쇼>를 진행하고 있다.

―강연 활동으로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학교, 기업, 은행, 지자체 등의 단체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하루에 1~2건씩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방송에 안 나온다고 뭐하고 지내느냐는 사람들이 많은데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개그맨과 한학(漢學)은 쉽게 연결이 되지 않는데, 언제부터 공부한 겁니까.

“아버지께서 서당 훈장을 하셔서 자연스레 가학(家學)으로 익혔습니다. 제 개그에 한문(漢文)이 많이 등장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유교적 가풍(家風)에서 자랐는데, 개그맨이 된 것도 특이한데요.

“집안 형편이 넉넉했다면 성균관대 유학(儒學)과로 진학했을 거예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서 가세(家勢)가 기운 이후 어머니가 행상(行商)을 해 생활했습니다. 어떻게든 학비가 안 드는 쪽으로 가려고 육사를 희망했는데,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예능계 장학생으로 가라’고 권하시는 거예요. 평소 그런 생각도 있어서 진로를 바꾸게 됐어요.”

―당시 선생님이 예능계를 권유한 까닭은 무엇 때문입니까.

“재능을 보셨던 것 같아요.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사회, 응원단장을 도맡아 했거든요. 웅변대회에 나가 1등도 하고요. 일반적으로 웃기고 까부는 애들은 공부 못하고, 수업시간에 분필 맞는 놈들이잖아요. 저는 광주고에서 성적은 상위권이면서도 까불었으니까 독특한 캐릭터였죠.”

―어렸을 때 어떤 코미디언을 따라했습니까.

“다른 아이들은 선배 코미디언들을 흉내 냈는데, 저는 직접 개그를 짜서 웃겼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제게 ‘위트는 있는데 유머는 없다’는 지적을 하셨어요. 센스는 빠른데 폭넓게 웃기는 건 부족하다는 거였죠.”

―대학 졸업 논문 주제가 ‘위트와 유머의 차이’인 걸로 알고 있는데, 두 개념을 설명해 주신다면요.

“쉽게 말하면 위트는 지성인(知性人)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상대방을 콕콕 찔러 아프게 하는 면이 있어요. 유머는 시골 할머니들도 웃을 수 있고, 웃음을 공유하는 거죠.”

中大 예술대 首席 입학, 졸업

《일요일 밤의 대행진》 당시의 김병조씨.

김병조씨는 개그맨이 되기 위해 1968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그가 어려운 형편에도 다른 곳보다 훨씬 비싼 학비를 내야 했던 예술대로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 단과대 수석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재학 시절 그의 평균 평점은 96.7점. 4년 동안 예술대 수석이었던 김씨는 등록금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는 교외 활동에서도 ‘수석’이었다. 1970년 전국 대학의 재담꾼들이 참가한 ‘전국 대학생 화술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군 복무 시절에는 전군 문화선전대 경연대회에서 두 번 우승했다. 김씨는 군 시절 ‘공(功)’을 인정받아 정훈참모의 추천을 통해 1975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첫 출연 프로는 MBC에서 <웃으면 복이 와요>를 만들었던 김경태 PD가 연출, 김웅래 PD가 조연출했던 국내 최초 개그쇼 TBC <살짜기 웃어예>다.

그의 데뷔 당시는 과장된 행동, 비속어 남발 등을 이유로 ‘코미디 저질(低質) 논란’이 제기되던 때다. ‘코미디언 가뭄’도 심했다. 개편이 있을 때마다 영입전을 펼쳐야 했다. 김경태 PD는 1973년 당시 “의미 없는 제스처와 난센스가 판치는 우리나라 코미디 풍토는 지양돼야 한다”며 “코미디의 질 향상을 위해 대학생 출신을 코미디언으로 대거 기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살짜기 웃어예>에는 임성훈, 송영길, 허원, 전유성, 최미나 등이 출연했고, 김씨는 조금 뒤에 합류했다.

―전유성씨가 국내 최초로 개그맨이라는 명칭을 썼다는데, 코미디언과의 차이가 뭔가요.

“쉽게 말해 포크송과 가요의 차이라고 보면 돼요. 둘 다 노래인 것처럼, 코미디나 개그가 사람을 웃기는 것에서는 같죠. 다만 코미디는 악극단 출신 선배들이 무대에서 하던 걸 방송으로 옮겨 온 것이고, 개그는 대화 위주로 하는 겁니다.”

가장 존경하는 선배는 ‘김삿갓’

김병조씨는 1980년대 《뽀뽀뽀》에 ‘뽀병이’로 출연해 인기를 누렸다. 오른쪽은 ‘뽀식이’ 이용식씨.

―데뷔 직후부터 풍자를 했습니까.

“김경태 PD가 배려해 줘서 배역은 있었지만 크게 히트를 치진 못했어요. 당시 했던 것 중 하나가 강석하고 한 중계 개그였죠. 캐스터를 맡은 강석이 ‘김병조 해설위원, 지금 경기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라고 정상적인 대사를 하면, 저는 ‘예, 앉아서 보고 있습니다’ 등의 엉뚱한 말을 하는 거죠. 또 제가 ‘뻗습니다! 쭉 뻗습니다!’라고 하고, 강석이 ‘무슨 중계인가요?’라고 물으면 ‘지금까지 개구리 잡기 중계였습니다’라고 답하는 것도 있었어요.”

―개그맨으로서 본받고 싶은 선배는 누구였나요.

“선배 코미디언들이 노력하시는 모습은 존경했어요. 하지만 제가 본받고 싶은 ‘선배 개그맨’은 김삿갓이었어요.”

―김삿갓이 개그맨이란 말인가요.

“그 양반이 전국을 주유하면서 억눌려 있는 민초(民草)들에게 풍자로 웃음을 줬잖아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명심보감》을 강의하면서 웃음을 주고 있잖아요.”

―《명심보감》을 가르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아버지께서 가장 좋은 일은 ‘교육 봉사’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그 DNA를 물려받았는지 기회가 되면 꼭 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조선대 평생교육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코미디 강의를 제안했습니다. 제가 인성교육 차원에서 《명심보감》 강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학교 측에 요청해 1998년부터 하게 됐습니다.”

―14년 동안 《명심보감》만 가르친 이유가 있나요.

“아버지께서는 제게 편지를 쓸 때 항상 《명심보감》 글귀로 가르침을 주셨어요. 《명심보감》은 동양 고전의 진수(眞髓)를 모은 것으로, 인성(人性)을 가꾸는 데 이것만큼 좋은 책이 없어요.”

―몇 명이나 가르칩니까.

“처음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학기에 100명씩이었는데, 학부생도 맡아달라는 총장의 요청에 오전·오후로 나눠 총 600명이 됐습니다. 지금은 교육대학원으로 옮겨 대학원생 100명을 대상으로 교양수업을 하고 있어요.”

―강의는 어떤 내용으로 구성합니까.

“수요일에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가는 동안 신문을 통해 세상 흐름을 꼼꼼하게 파악합니다. 제가 가르치려는 내용이 지금 무슨 의미가 있는지 현대적 해석을 하기 위해서죠. 여기에 제 경험까지 넣으면 재미와 교훈이 담긴 강의가 되는 거죠.”

―개그맨 교수의 《명심보감》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궁금한데요.

“교수평가를 보면 ‘할아버지한테 꾸중 듣는 기분이었다’, ‘고전은 어려운 줄 알았는데 쉽고 재밌었다’는 얘기가 많아요.”

―《명심보감》을 지금도 계속 공부합니까.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끊임없이 봅니다. 요즘에는 제가 배웠던 247구절짜리 《명심보감》 말고, 798구절로 된 청주판 《명심보감》 번역 작업을 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미 두 명이 번역을 했지만, 살아 있는 말이 아니에요. 요즘 사람들에게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재번역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요. 현재 75% 진척도를 보이는데, 연내 완료를 하려고 합니다.”

신문 보며 ‘개를 찾습니다’까지 다 읽어

김병조씨는 1980년 <웃으면 복이 와요>가 세태풍자를 담은 코미디를 시도하면서 MBC로 갔다. 평소 김씨를 눈여겨봤던 심상수 PD(전 춘천 MBC 사장)가 영입한 것이다. 김씨에 따르면 심 PD는 영어교사 출신으로 코미디에서의 여장(女裝), 이상한 말투나 몸짓 등을 싫어했다. ‘코미디도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씨는 MBC에 와서 <뽀뽀뽀>의 뽀병이, <청춘만만세>의 훈장으로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지만, 출세작은 <일요일 밤의 대행진>이다.

이 프로는 원래 가수 박상규씨가 진행하는 버라이어티쇼였다. 김씨가 앵커맨으로 출연한 ‘뉴스 대행진’은 쇼에 포함된 코너일 뿐이었지만, 위장전입한 6만명의 학부모, 호화망년회를 위한 호화연회장 예약 현장 등을 꼬집으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MBC는 <일요일 밤의 대행진>을 1983년 10월 시사풍자 코미디 프로로 개편하고, 김씨를 진행자로 내세웠다. 곁방살이를 하다가 집주인이 된 셈이다.

―기존의 코미디 프로와는 소재가 판이한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요.

“모두 신문에서 본 것들이었어요. 신문을 통해 현실감 있는 소재를 끊임없이 얻을 수 있거든요. 이건 지금도 유효한 방법입니다. 저는 지금도 신문을 볼 때 ‘개를 찾습니다’라는 한 줄짜리 광고까지 꼼꼼하게 읽어요. 오전 내내 신문만 붙잡고 있을 때도 종종 있어요.”

―당시는 5공 시절이라 시사 개그를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당연히 소재 선택이 어려웠죠. 그래서 정치풍자까지는 못하고 세태풍자에 머물렀어요. 풍자대상이 되는 ‘힘 있는’ 협회나 단체에서는 거세게 항의했죠. 방송만 나가면 관련 단체의 항의 때문에 아마 방송국이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거예요.”

심지어 김병조씨가 방송에서 “복부인, 이 파리 같은 인간들. 파리, 파리를 때려잡자”고 한 것을 가지고 “내 별명이 파리인데 왜 죽이자고 하느냐”며 방송사를 고소한 일도 있었다.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 출연할 당시 유행어를 많이 만들었죠.

“‘지구를 떠나거라~’, ‘나가 놀아라’ 같은 유행어가 그때 나왔죠. 코미디언이 뽑은 최고의 유행어 1, 2위로 《월간조선》에 기사가 나간 적이 있어요.”

2000년 9월 《월간조선》은 코미디언 100명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유행어’를 물었다. 당시 기사는 “대부분의 코미디언이 자기 유행어를 추천하거나 기억에 남는 유행어가 없다고 답해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다”면서도 “‘지구를 떠나거라’가 8명의 추천을 받아 1위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세태풍자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행위는 없어져야 하잖아요. 이들에게 그냥 ‘지구를 떠나거라’라고 하면 재미도 없고, ‘너나 떠나거라’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무당 톤으로 ‘지구를 떠나거라~~’라고 했습니다. 이게 인기가 식으니까 한 글자로 줄여서 ‘뿅~하거라’라고 바꿨고, 나중에는 ‘바가지 씌운 놈들은 이거’하면서 손에 올려놓고 ‘후~’ 불었어요. 말 없는 유행어를 만들었다고 할까요. 앉아서 이상한 짓 안 하고 점잖게 웃기니까 시청자들이 좋아했습니다.”

선배들, “대학 나온 놈은 그렇게 웃기냐”며 싫어해

김병조씨는 이외에도 “먼저 인간이 되어라”, “떫으요”, “난 이렇게 산다우”, “나도 ~겠다” 등의 유행어로 1980년대를 풍미했다.

―전라도 사투리도 유행어로 사용했나 봐요.

“‘껄쩍지근하~구~나(매우 꺼림칙하다는 뜻의 호남 방언)’, ‘떫으요?’가 전라도 사투리입니다. 그런데 방송에서 전라도 말을 하지 말라고 하니까 판소리 개그로 했어요. 전라도 말에 감정을 담은 게 판소리거든요. 그때는 정말 마음 놓고 사투리를 썼어요.”

―목적을 갖고 유행어를 만든 겁니까.

“유행어가 인기의 척도가 되니까 몇몇 후배들이 얼토당토않은 걸 반복했는데, 제 유행어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재밌으면서도 한국적이어야 하고, 교훈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대학 다닐 때 교수님이 ‘연기를 하든, 연출을 하든 먼저 인간이 돼라’고 강조하셨는데, 좋은 말씀이라서 항상 담아두고 있다가 ‘먼저 인간이 되어라’라는 유행어로 만들었어요.”

―아이디어 구상 때문에 상당히 힘들었겠는데요.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인기가 올라갈수록 다음에 더 잘해야 하니까 본인에게는 큰 부담이죠. 제가 아이디어를 짤 때는 상당히 예민해지거든요. 옆에 누가 오지도 못하게 했어요. 내일 녹화라면 가족이 숨조차 못 쉴 정도였으니까요.”

과거 동료와의 일화(逸話)를 묻는 말에 김병조씨는 “주위 사람들과의 추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잡기도 즐긴 적이 없다. 밤무대 출연도 하지 않고, 외박을 한 적도 없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방송이 끝나면 집으로 직행해 아이디어 구상하고, 원고 쓰고, 공부하는 데도 시간이 부족했다고 한다.

―예전에 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는데, 개그맨으로서 처음 아닌가요.

“《경향신문》에 ‘만필(漫筆)’이라는 칼럼을 썼고, 《스포츠조선》에 한문 관련 글을 연재했습니다. 나중에 이걸 모아서 《종갓집 배추》라는 책도 냈어요. 개그맨이 신문에 연재한 건 이전에는 없던 일이에요. 코미디에 한문을 접목한 것도 제가 처음이고요. 제가 말했던 주자십회훈(朱子十悔訓·주자가 제시한 평생 해서는 안 될 후회 10가지)은 아직도 많은 분이 기억하고 계시더라고요.”

―식자 풍의 개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까.

“저는 방송국 내에서 면장(面長)으로 불렸어요. 아는 것이 많다고 붙여진 건데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별명입니다. 그런데 선배들은 ‘야, 대학 나온 놈은 그렇게 웃기냐’며 싫어했어요. 일종의 콤플렉스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아져 전처럼 엎치락뒤치락으로 웃겨서는 웃어주질 않는다’고 했는데, 기사가 나간 다음 선배들이 ‘그럼 우리는 저질이란 얘기냐’며 재떨이를 던지기도 했어요.”

1980년대 연간 소득 개그맨 중 1~2위

김병조씨는 면장과 배추머리 외에 ‘짠돌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김씨는 결혼 전까지 누나가 운영하는 허름한 세탁소 한쪽에서 구석잠을 청하는 생활을 했다. 그래서 데뷔 이후 수입의 절반을 저축하겠다고 계획했고, 그 덕에 1978년 보증금 70만원 전세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노원구에 50평짜리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1984년에는 개그맨 최초로 저축상을 받았다.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 출연한 7년 동안 그는 양복 한 벌과 구두 한 켤레로 버텼다. 당시 김씨의 연간 소득은 개그맨 중 1~2위에 들었지만, 몸에 밴 검소함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복(福)은 맑고 검소한 데서 생긴다고 했는데, 검소함은 선택한 가난을 사는 것으로 이런 삶이야말로 진정 멋있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관태어환성(官怠於宦成)이라고 사람이 출세하면 점점 게을러지고 잘못을 저지르게 되거든요. 저는 촌놈이기 때문에 시류에 휘말리며 순수함을 잃고 싶지 않았어요. 신종여시(愼終如始), 즉 ‘항상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남들이 좀 알아준다고 건방 떨지 말자’고 다짐하며 살았습니다. 방송에서 뜨려면 돈도 좀 쓰고, 술 마시면서 인간관계를 쌓아야 하는데, 저는 전혀 안 했어요.”

―선비 개그맨이네요. 그런데 1987년 설화에 휘말려 고생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공개석상에서의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정당의 내부행사에서 한 개그였습니다. 투·개표하는 데 몇 시간씩 걸리니까 잠깐 개그를 한 건데, 전후 맥락을 거두절미하고 그 대목만 보도하니까 졸지에 암담해진 거죠.”

―개그 내용이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나요.

“대본에 있는 내용을 읽은 것뿐이니까요. 제가 그 자리에서 다른 개그로 얼마나 웃겼는데요. ‘오늘 다 죽였다’면서 기분 좋게 방송국에 왔을 때, 집 전화를 받고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아마 기자도 그렇게 반향이 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당시 김병조씨의 출연은 민정당의 요청으로 MBC 제작간부들에 의해 이뤄졌다. 김씨는 사전에 대본을 작성해 민정당에 제출했다. 그가 쓴 원안에는 문제 부분이 없었다. 행사 전날 총연습에 참여한 김씨는 수정대본에 ‘통민당’ 부분이 추가된 걸 보고 주최 측에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정당은 “식구들끼리 하는 내부행사인데 무슨 걱정이냐”며 김씨를 안심시켰지만, 이튿날 ‘사고’가 터진 것이다. 김씨의 ‘통민당 발언’ 보도가 나간 이후 MBC에는 “상식 밖의 편파적 발언이다”, “앞으로 김병조가 나오는 프로는 보지 않겠다”는 항의가 빗발쳤다. 각 신문사도 김씨의 집 주소, 전화번호를 묻거나 발언내용을 비난하는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노원구 거주 동명이인들도 뜻밖의 항의전화에 시달렸다.

―‘의식 있는 개그맨’에서 순식간에 지탄(指彈)의 대상이 됐을 때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인기가 얼마나 허망한지 절실히 느꼈습니다. 한마디에 벌떼처럼 일어나서 제가 다 뒤집어썼으니까요. 그때 우리 어머니가 ‘아비야, 밥만 먹으면 되아야’라며 위로하셨지만,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막다른 선택까지 생각했으니까요.”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라고 했는데, 그 기간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어렵고 가난했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당숙(堂叔)의 빚 독촉에 고개 숙이던 할아버지, 행상을 하며 고생한 어머니, 동생 공부를 위해 희생한 누님 등을 떠올렸죠. 여기서 쓰러지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이겨냈습니다. 그야말로 배수진이었어요. 만약 제가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죠.”

“연예인도 자기 얘기할 수 있지만, 조심해야”

김씨의 발언은 지금 기준에서 보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른 만큼 우리 사회 ‘민주화’가 진행된 까닭일까. 지금은 더 높은 수위의 정치적 발언을 하는 폴리테이너의 전성시대다. 과거 김병조씨가 타의에 의한 개그로 곤욕을 치렀던 것과 달리 이들은 ‘소신 발언’을 하는 ‘개념 연예인’으로 받들어진다.

물론 김미화, 김제동 등으로 대표되는 폴리테이너들이 국민으로서 정치적 의견을 밝히는 것은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이 자신을 부각시키고, 거기서 형성된 이미지로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영향력은 기성 정치인을 넘어서지만 책임질 일이 있을 때는 ‘연예인’이라는 보호막 뒤에 숨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병조씨에게 물었다.

―폴리테이너에 대해 어떻게 봅니까.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연예인도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영향력이 워낙 크니까 조심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어요.”

―개그맨 후배인 김미화, 김제동씨가 하는 건 개그나 풍자가 아니라 정치 참여인데요.

“둘 다 제가 아끼는 후배인데, 깊이 빠지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설화 당시와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많이 변했죠.

“민주화가 돼서 좋긴 한데, 저는 그 부분에서 마음고생을 했던 사람이라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 어쨌든 제가 얘기할 수 있는 건 조심스럽게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것뿐입니다.”

―예전에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까.

“최근까지 선거 때마다 유혹이 많았어요. 얼굴 알려졌고, 돈도 제법 있고, 얘기를 잘하니까. 어쨌든 고마운 일이죠. 정치해도 괜찮을 정도로 수준 있는 사람으로 평가를 받은 거잖아요. 단 거기서 만족해야죠. 저는 ‘제 분수를 압니다’라며 넘어갔어요.”

―1992년 DJ, 1995년 조순 서울시장 후보 지원을 했다고 하던데요.

“사실무근입니다. 제가 그런 문제로 고생한 사람인데, 정치에 관심이 있겠습니까. 저는 정치의 ‘정(政)’자도 싫습니다.”

풍자는 박영진이 최효종보다 한 수 위

―요즘 개그맨 중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은 누굽니까.

“김준현이에요. 요즘은 입으로만 하지, 연기가 되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2년 전에 대학로 소극장 공연에 갔는데 김준현이 연기를 자연스럽게 잘했어요. 끝나고 ‘자네 연기 정말 잘한다’고 칭찬했어요. 또 김준호, 박영진, 황현희도 잘해요.”

―작년 개그맨 최효종씨의 개그에 강용석 의원이 ‘국회의원 모독’으로 고소해 법정공방이 될 뻔했는데요. 후배들의 풍자를 평가한다면요.

“최효종이 풍자한다고 하는데, 일차적인 수준이에요. 풍자는 칼로 찌르는 게 아니라, 빙 둘러서 살짝 꼬집는 겁니다.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것은 풍자가 아니에요. 듣자마자 ‘저게 나를 씹네!’라고 하는 게 아니라 5분 뒤에 ‘야, 쟤가 나 씹은 거 아니냐’라는 반응을 보이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으면서도, 예리해야 합니다. 풍자는 ‘소는 누가 키워’의 박영진이 최효종보다 한 수 위예요.”

―제대로 된 풍자를 하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코미디나 개그는 한국적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세계적인 코미디언이라고 해도 우리를 웃기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영어를 유창하게 해도 외국인을 웃길 수 없습니다. 결국 한국 코미디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야죠.”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은 공부법이 있나요.

“먼저 역사 공부와 신문 구독을 권하고 싶어요. 또 고생을 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인생의 폭이 넓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줄 알게 되거든요. 노숙하고, 무전여행도 하면서 ‘눈물’을 아는 개그맨, 노지(露地)채소 같은 개그맨이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