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자전거에 태극기를 달고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았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주어진 시간, 즉 수명이라는 한계는 피할 수 없지만 대체로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공간은 의지 여하에 따라 크게 변한다. 똑같이 100살을 산 사람일지라도 공간의 확장,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삶의 질이 어찌 같을까!
코로나19 팬데믹이 번지기 전, ‘백야(白夜) 기행’이라는 테마로 북유럽 7개국을 두 달 남짓 여행했다. 자전거 주행거리는 약 3500km였다.
 |
|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의 쌍둥이門. |
그중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틱 3국은 지정학적으로 우리와 비슷하다. 중세(中世)부터 주변 강대국의 외침(外侵)에 끊임없이 시달려오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 잠시 독립을 되찾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에 강제 합병됐다.
반세기가 흐른 1989년, 자유를 향한 간절한 염원으로 세 나라 국민은 손에 손을 맞잡은 인간 띠를 만들었다. 그 길이가 무려 650km!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거쳐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까지 ‘발틱 웨이(Baltic Way)’라 불리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퍼포먼스였다. 세계인에게 충격을 준 ‘자유를 향한 인간 띠’를 만들면서 평화적으로 투쟁했던 이 세 나라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독립을 얻어냈다.
‘발틱 웨이’의 종점인 빌뉴스에서 러시아로 넘어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돌아본 후에는 노르딕 국가(Nordic Countries) 중 첫 번째 나라인 핀란드를 찾았다.
 |
| 톰페아 언덕에서 본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전경. |
 |
|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전경. |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소련의 침공을 받았다. 소련은 핀란드와의 국경이 소련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너무 가까워 자국(自國)의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으니, 국경을 뒤로 물려라, 즉 영토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 터무니없는 요구에 핀란드인들은 영웅적으로 항전(抗戰)했다. 심지어 공산주의자들까지도 소련에 맞서 총을 들고 싸웠다. 이를 겨울전쟁(Winter War·1939년 12월~1940년 3월)이라고 한다. 결국 소련군의 압도적인 무력(武力) 앞에 굴복하기는 했지만, 핀란드는 소련이 기가 질릴 정도로 거세게 저항한 덕에 발틱 3국처럼 소련에 병합되거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유럽 국가들처럼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하는 일은 모면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보면 발틱 3국과 핀란드의 역사가 떠오른다.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듯 한 국가도 마찬가지인 것만 같다.
 |
| 리투아니아. 호수 속의 옛 수도 트라카이성. |
 |
|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의 검은머리전당. |
‘북유럽 사람’이라고 하면 금발에 푸른 눈, 백옥 같은 피부를 연상하지만 핀란드 사람은 예외다. 작은 눈에 검은 눈동자, 게다가 언어 또한 우리말과 같은 어족인 우랄 알타이 계통이라는 점 때문에 한층 친근감을 느끼며 페달을 돌렸다.
‘여행의 깊이는 운반수단 속도에 반(反)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느림의 미학(美學)’ 자전거는 북유럽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돌아보는 데 더없이 적절한 도구였고, 소리 없이 다가온 백야는 든든한 원군(援軍)이었다. 밤 10시가 넘도록 라이딩에 전혀 지장이 없었으니까!⊙
 |
| 리투아니아에서 민속의상을 입은 소녀들과 함께한 필자. |
 |
| 상트페테르부르크의 白夜. 백야는 밤늦게까지 여행하는 필자 같은 여행자에게는 든든한 援軍이었다. |
 |
| 헬싱키 중심가.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약속의 장소이다. |
 |
| ‘산타마을’로 유명한 핀란드의 로바니에미. 산타클로스의 모델인 성 니콜라스는 터키 태생인데, 어느 사이엔가 핀란드인으로 둔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