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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시사와 역사로 주역을 읽다 以事讀易’ 〈12〉 잠룡 이재명 경기도지사

“六三은 내가 저지른 것[我生]을 지켜보고서 나아가고 물러간다”

글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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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蠱)란 일[事]이다. 일이 있는 다음에야 (사람은) 커질 수 있다”… 시련을 통해 성장한 이재명 지사의 모습 보여줘
⊙ “觀은 손만 씻고 제사음식을 올리지 않았을 때처럼 하면 (백성들이) 미더움이 있어 우러러본다”
⊙ 겸손하고 바른 태도를 지켜 지극한 열렬함으로 자처할 수 있다면 허물이 없을 것
⊙ “왕에게 손님 대접을 받는 것이 이롭다”… 과단성과 곧은 성품으로 태종·세종 보필한 황희

이한우
1961년생.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同 대학원 철학과 석사,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박사 과정 수료 / 前 《조선일보》 문화부장, 단국대 인문아카데미 주임교수 역임
  이재명(李在明) 경기도지사가 지난 7월 16일 대법원으로부터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 사실상 무죄(無罪) 판결을 받아내면서 단숨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 직후부터 각종 여론조사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1위인 전(前) 국무총리 이낙연(李洛淵)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바로 뒤에서 추격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1위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이재명 지사는 그동안 밝은 뉴스와 어두운 뉴스를 함께 생산해온 ‘문제적 인물’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경기도 성남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검정고시를 통해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그는 1982년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9년에 변호사가 됐다.
 
  이 지사는 경기도 지역에서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 2006년 처음 성남시장에 출마해 낙선하지만, 2010년 지방선거에서 마침내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이어 2014년에 재선(再選)에 성공했고, 2018년 경기도지사에 도전해 압도적 표차로 당선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 하나는 잘 한다.”
 
  이재명 지사의 밝은 면을 이야기할 때 늘 따라붙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묘한 단서가 달려 있다. 일 말고는 이런저런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도 되기 때문이다. 형수 욕설 논란, 친형 강제 입원 논란, 김부선 스캔들 논란, 혜경궁 김씨 논란, 지역 조폭 연루설 논란, 각종 과격 발언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飛翔하는 국면의 괘… 蠱괘, 臨괘
 
  《주역(周易)》에 대한 공자의 풀이 중에 〈서괘전(序卦傳)〉이 있다. 괘(卦)의 순서를 정리한 것인데 그 순서란 곧 일의 대체적인 흐름과 관련이 있다. 먼저 고괘(蠱卦), 임괘(臨卦), 관괘(觀卦)에 대한 〈서괘전〉의 풀이부터 살펴보자.
 
  “고(蠱)란 일[事]이다. 일이 있는 다음에야 (사람은) 커질 수 있다. 그래서 고괘의 뒤를 임(臨)괘로 받았다. 임이란 커진다[大]는 뜻이다.”
 
  이때의 일[蠱=事]이란 ‘시련’이다. 시련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지만 단련시키기도 한다. 고(蠱)괘를 임(臨)괘가 이어받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임(臨)이란 눈[臣=目]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분별한다[品=品評]는 뜻이다. ‘다스린다’가 대표적인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뜻을 ‘커진다, 크다[大]’라고 했다. 일이 커지거나 인물이 크게 자란다는 뜻을 다 포함하고 있다. 지택림(地澤臨)괘(☷☱)는 태(兌)괘(☱)가 아래에 있고 곤(坤)괘(☷)가 위에 있어 땅에서 아래에 있는 연못을 내려다보는 모양이다. 즉 임금이 백성에게 임하고 일에 임하는 것이다. 대업(大業)은 결국 일에서 생겨난다. 또한 괘의 모양에서 ‘성대하다’는 뜻도 추출해낼 수 있다. 복(復)괘(☷☳)는 처음으로 양(陽)이 회복된 것이라면 임(臨)괘(☷☱)는 아래에 두 양이 있어 성대하게 자라나는 모양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경기도지사에 오른 이재명의 현재 효(爻)는 밑에서 세 번째에 있는 음효다. 임괘의 육삼(六三)인 것이다.
 
  이에 대한 주공(周公)의 효사(爻辭)부터 살펴보자.
 
  “육삼(六三)은 달콤하게 다가감[甘臨]이니 이로운 바는 없으나 이미 근심하고 있어 허물이 없다[甘臨 无攸利 旣憂之 无咎].”
 
 
  “달콤하게 다가감은 자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
 
  이에 대해 공자는 “달콤하게 다가감[甘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요, 이미 근심하고 있으니 허물이 오래 가지 않는다”라고 풀었다. 육삼(六三)의 처지부터 점검해보자. 음효로 양 위에 있으니 자리가 바르지 않다[不正位]. 자신에게는 버거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겸손하면 무탈하겠지만 위아래 눈치나 살피게 되면 아첨이나 간사함으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아래로는 유비(有比)이지만 위로는 무비(無比)다. 아첨하게 될 경우 아랫사람들을 향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다가 더 버거운 것은 태(兌)괘(☱)의 맨 위에 있으니 지나침[過]인데 하필이면 아래에 있는 두 효가 다 양강(陽剛)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자리가 마땅하지 않다’고 한 것은 사실상 이중적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서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길이 갈린다. 이 점은 먼저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음미한 다음에 짚어가야 한다.
 
  “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려우니, 기쁘게 하기를 도리로써 하지 않으면 기뻐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부리면서도 그 그릇에 맞게 부린다[器之].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쉬우니, 기쁘게 하기를 비록 도리로써 하지 않아도 기뻐하고, 사람을 부리면서도 한 사람에게 모든 능력이 완비되기를 요구한다[求備].”
 
  군자는 도리로 하고 소인은 도리가 아닌 것으로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소인의 행태를 보자. 이는 정이천(程伊川)이 ‘달콤하게 다가감[甘臨]’을 풀어내는 것과 직결된다.
 
  “처신하는 데 중정(中正)을 이루지 못하니 아첨하며 기쁜 낯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臨] 자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아첨과 기쁜 낯으로 아랫사람에게 다가가면 다움[德]을 잃기가 매우 쉽기 때문에 이로운 바가 없다. 태괘의 성질은 기뻐하는 것인데, 또 두 양효 위에 타고 있고[乘] 양이 자라나 위로 올라가려 하니 불안을 느껴 더욱더 기쁜 낯으로 대하게 되지만 위태로움과 두려움을 알고서 근심하니 겸손하고 바른 태도를 지켜 지극한 열렬함으로 자처할 수 있다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君子와 小人
 
  그렇게 한다면 뒤늦게라도 군자의 길을 갈 수 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할 경우 소인 중에서도 비루한 이가 되고 만다. 《논어》 양화(陽貨)편에서 이런 사람의 속마음을 공자는 생생하게 읽어내고 있다.
 
  “비루한 사람[鄙夫]과 함께 임금을 섬기는 것이 과연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지위를) 얻기 전엔 그것을 얻어보려고 걱정하고, 이미 얻고 나서는 그것을 잃을까 걱정한다. 정말로 잃을 것을 걱정할 경우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못하는 짓이 없을 것이다.”
 
  군자의 입장에서 이런 사람을 만날 경우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 초구(初九)와 구이(九二)의 신진 군자들은 바로 이런 사람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오늘날 기업 조직으로 말하자면 부원들에게 겉으로는 아첨하며 비위를 맞추되 속으로는 해악을 주려고 도모하는 부장쯤 되겠다. 삼(三)은 딱 그런 자리다.
 
  물론 이재명 지사가 곧바로 이런 소인이나 비루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자칫 포퓰리즘에 빠질 경우 이런 효 풀이가 적중할 수도 있다.
 
  고괘에서 임괘로 넘어오는 과정과 관련해 분명한 것은 이 지사가 일을 통해, 즉 시련을 통해 급성장해왔다는 점이다. 이는 이 지사에게는 강점이 될 것이다.
 
 
  향후 행보의 마땅함[義]을 보여주는 觀괘
 
7월 16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무죄판결을 받고 나온 후 이 지사 지지자들은 ‘억강부약’ 등의 팻말을 흔들면서 환호했다. 사진=조선DB
  이제 〈서괘전〉을 통해 왜 관(觀)괘가 임(臨)괘의 뒤를 이어받았는지를 확인해보자.
 
  “일이나 인물[物]이 커진 뒤라야 볼 만하다[可觀]. 그래서 임(臨)괘의 뒤를 관(觀)괘로 받았다.”
 
  풍지관(風地觀)괘(☴☷)에 대해 문왕(文王)은 이렇게 풀었다.
 
  “관(觀)은 손만 씻고 제사음식을 올리지 않았을 때처럼 하면 (백성들이) 미더움이 있어 우러러본다.”
 
  앞부분은 모호하지만 뒷부분은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지지를 이끌어낸다는 뜻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공자의 풀이를 보자.
 
  “크게 보이는 것[大觀]이 위에 있어 고분고분하면서도 공손하고[順而巽] 중정(中正)으로 천하를 지켜본다. 관(觀)은 손만 씻고 제사음식을 올리지 않았을 때처럼 하면 (백성들이) 미더움이 있어 우러러본다는 것은 아랫사람들이 올려다보고서 교화가 되는 것이다. 하늘의 신묘한 도리를 살펴보면 사계절이 어긋나지 않으니 빼어난 이가 이 신묘한 도리로 가르침을 베풀어 천하를 복종하게 한다.”
 
  먼저 문왕의 단사(彖辭)에서 ‘손만 씻고 제사음식을 올리지 않았을 때처럼 한다’를 풀어야 한다. 이때는 재계(齋戒)를 막 마치고 마음의 정성이 극에 이르렀을 때다. 정작 제사음식을 올리게 되면 제사가 시작돼 모든 것이 번잡스럽고 다시 마음이 흐트러진다. 이는 모든 일의 처음, 즉 초심(初心)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모두 믿음을 갖게 돼 우러러보게 된다. 《논어》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증자(曾子)의 말이 그것이다.
 
  “(임금이) 부모님의 상을 삼가서 치르고 먼 조상까지도 잊지 않고 추모하면[愼終追遠] 백성의 백성다움이 두터운 데로 돌아갈 것이다.”
 
  특히 임금의 장엄함은 백성들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공자가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에서 말한 위엄[威=莊]의 중요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앎이 도리에 미치더라도 어짊이 그것을 뒷받침해줄 수 없다면 설사 도리를 (순간적으로는) 얻었다 하더라도 결국 자기 것이 되지 못하고 반드시 잃게 된다. 앎이 거기에 미치고 어짊이 그것을 지킬 수 있다 하더라도 장엄으로써 백성에게 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는다. 앎이 거기에 미치고 어짊이 그것을 지킬 수 있고 장엄[莊]으로써 백성에게 임할[涖=臨] 수 있더라도 백성들을 예(禮)로써 분발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을 좋다고 할 수 없다.”
 
  여기서 ‘백성들을 예로써 분발시키지 않는다면’은 ‘임금이 사리에 따라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으로 옮겨도 무방하다. 자연스럽게 임(臨)괘에서 관(觀)괘로 연결되고 있다.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앞서 이재명 지사를 임괘의 밑에서 세 번째, 즉 육삼(六三)으로 풀었다. 이제 이 지사가 어떻게 해야만 대권에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관괘의 육삼과 육사(六四)를 풀어야 할 차례다. 먼저 이 둘에 대한 주공의 효사다. 참고로 삼(三)은 장관이나 지사, 사(四)는 재상이나 대선 후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육삼(六三)은 내가 저지른 것[我生]을 지켜보고서 나아가고 물러간다[觀我生 進退].
  육사(六四)는 나라의 빛남[國之光]을 지켜보는 것이니 왕에게 손님 대접을 받는 것이 이롭다[觀國之光 利用賓于王].”
 
  이번에는 주공의 이 효사에 대한 공자의 풀이, 즉 〈소상전(小象傳)〉이다.
 
  “(육삼은) 내가 저지른 것[我生]을 지켜보고서 나아가고 물러간다면 아직은 도리를 잃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은 것이다[觀我生進退 未失道也].
  (육사는) 나라의 빛남을 지켜보는 것은 손님을 높이는 것이다[觀國之光 尙賓也].”
 
  아직은 많이 모호하다. 관괘의 밑에서 세 번째 음효에 대해 공자는 “내가 저지른 것[我生]을 지켜보고서 나아가고 물러간다면 아직은 도리를 잃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은 것이다”라고 풀었다. 주공(周公)의 효사(爻辭)에서는 그냥 ‘나아가고 물러간다[進退]’라고 한 부분을 조건으로 해석하고서 아직은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먼저 육삼(六三)의 처지부터 점검해보자. 음효로 양 위에 있으니 자리가 바르지 않다[不正位]. 자신에게는 버거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임(臨)괘의 육삼과 다른 까닭은 임(臨)괘 육삼은 태(兌)괘의 맨 위에 있었지만 관(觀)괘의 육삼은 고분고분한 곤(坤)괘의 맨 위에 있다. 그래서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 이치에 맞을 수 있다[順理].
 
  나에게서 생겨난 것이란 곧 내가 한 행동은 모두 나에게서 비롯됐다는 말이다. 이미 중도를 지나쳐[過] 있으니 바른 도리를 지키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고분고분하려 하니 “아직은 도리를 잃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은 것”이다. 이 말은 곧 이때부터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흉함에 빠지지 않는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아직은 위태위태한 상황인 것이다. 이때 군자의 태도를 가지려면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에 나오는 조언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군자는 (허물이나 잘못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
 
 
  “왕에게 손님 대접을 받는 것이 이롭다”
 
  관(觀)괘의 밑에서 네 번째 음효에 대해 공자는 “나라의 빛남을 지켜보는 것은 손님을 높이는 것이다”라고 풀었다. 주공(周公)은 효사(爻辭)에서 “나라의 빛남을 지켜보는 것이니 왕에게 손님 대접을 받는 것이 이롭다”라고 말했다. 두 풀이는 뒷부분에 묘한 차이가 있다. 이 점에 주목하며 먼저 효사부터 풀어가보자.
 
  육사(六四)의 처지부터 점검해보자. 음효로 음 위에 있으니 자리가 바르다[正位]. 아래로는 같은 음효라 무비(無比)이지만 위로는 굳세고 중정을 얻은 구오(九五)와 유비(有比) 관계다. ‘나라의 빛남’을 본다는 것은 바로 아래에서 친밀한 관계[比=親比] 속에 구오와 가까이 있다는 말이다.
 
  효사는 신하의 입장에서 ‘왕에게 손님 대접을 받는 것이 이롭다’라고 했고 〈소상전〉은 임금의 입장에서 ‘손님을 높이는 것이다’라고 했다. 결국 내용은 임금이 뛰어난 신하를 손님의 예로[賓禮] 극진하게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태종 때 지신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치고 마침내 세종의 치세를 보좌한 황희(黃喜·1363~1452)가 바로 관괘의 육사다.
 
  실록을 통해 황희를 직접 접했을 때 받은 인상은 당혹감이었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고’ 식의 능수능란, 우유부단의 황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결과론적인 초상화의 한 단면이고 위인전식 인물 서술의 폐단에 지나지 않는다. 당혹감의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지나칠 정도의 과단성 혹은 곧은 성품 때문이었다.
 
  황희는 27세 때인 1389년 문과에 급제해 관리의 길에 들어섰다. 남들보다는 조금 늦은 나이였다. 아직 어렸기 때문에 개국 과정에서 격랑에는 휩쓸리지 않고 잠깐 벼슬길에서 물러났던 그는 1차 왕자의 난(亂)이 일어나기 직전에 언관(言官)으로 있었다. 1398년 7월 5일 태조 이성계가 “직책에 충실하지 않고 사사로이 나라 일을 의논했다”며 함경도 경원의 교수관으로 내쫓았다. 거의 유배에 가까운 좌천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부와는 거리가 먼 성품이 그대로 드러날 때였기에, 아마 당시 실세던 정도전이나 남은에게 살갑게 처신하지 못한지도 모른다.
 
 
  태종과 황희
 
황희 정승.
  1차 왕자의 난은 결국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와 가까운 박석명(朴錫命)이 태종의 심복으로 지신사(知申事·비서실장)로 있다가 병이 들자, 자신을 대신할 인물로 황희를 천거하고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태종 5년(1405년) 6월 지신사에 오른 황희는 얼마 안 가서 박석명 못지않은 총애를 태종으로부터 받았다. 황희로서는 처음으로 지우(知遇), 즉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만난 것이다. 실록은 당시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후하게 대우함이 비할 데가 없어서 기밀사무(機密事務)를 오로지 다하고 있으니 비록 하루이틀 동안이라도 임금을 뵙지 않는다면 반드시 불러서 뵙도록 했다.”
 
  그런데 그의 졸기(卒記)에는 앞서 그가 정도전이나 남은에게 살갑게 처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언급이 나온다.
 
  “훈구대신(勳舊大臣)들이 좋아하지 아니하여 혹은 그 간사함을 말하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하륜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태종의 처남인 민무구와 민무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직 임금에게만 충성을 바쳤다. 결국 처남들을 제거할 때 비밀리에 일을 처리한 인물들로 실록은 이숙번(李叔蕃), 이응(李膺), 조영무(趙英茂), 유량(柳亮)과 더불어 황희도 포함시키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도 깊이 간여했던 것이다.
 
  4년 후인 태종 9년 황희는 의정부 참지사(參知事)로 자리를 옮긴다. 본격적으로 의정 활동을 하는 정승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러고 곧바로 의정부지사로 승진했다. 태종 11년 전후에는 형조판서, 대사헌,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이건 누가 보아도 태종이 황희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 후 예조판서로 옮겼고, 한성부 판사로 있을 때인 태종 18년(1418년) 그의 생애에서 가장 큰 위기가 찾아온다. 폐세자(廢世子)를 전면에서 반대하다가 결국 세자에게 아첨하려 한다는 죄를 얻은 것이다. 평소 그를 못마땅하게 보아온 조정대신들은 거의 그를 죽일 듯이 탄핵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구상은 이미 태종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황희(黃喜)를 간사하다고 하나, 나는 간사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심복(心腹)에 두었는데, 이제 김한로의 죄가 이미 발각되고, 황희도 또한 죄를 면하지 못하니, 지금이나 뒷날에 곧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황희는 이미 늙었으니, 오로지 세자에게 쓰이기를 바라지는 않겠으나 다만 자손(子孫)의 계책을 위해서 세자에게 아부하고 묻는 데 바른 대로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폐(廢)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았으니, 인신(人臣)으로서 어찌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겠느냐?”
 
  그럼에도 태종은 “그대의 간사함을 미워한다”며 경기도 교하로 유배를 보냈다가 끝내 충녕대군으로 세자가 교체되자 전라도 남원으로 멀리 내쫓았다. 그러고 4년 후인 태종 4년 2월 상왕 태종은 황희를 한양으로 불러 올리고 복직시켰다. 게다가 어린 세종에게 “황희를 중용하라”고 당부하고 그해 5월 태종은 세상을 떠났다.
 
 
  황희의 再起
 
  사실 세종의 입장에서 황희는 불쾌한 존재였다.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세자 즉위를 가장 앞장서서 반대한 신하이기 때문이었다. 10월에 세종은 황희를 의정부 참찬에 임명했다. 한직(閑職)이었다.
 
  이런 황희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듬해 7월 강원도에 혹심한 기근이 들었는데 당시 관찰사 이명덕이 구황과 진휼의 계책을 잘못 써서 백성들의 고통이 심화됐다. 이에 세종은 당시 61세던 황희를 관찰사로 임명해 기근을 구제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황희는 놀라울 정도로 단기간에 강원도 민심을 안정시켰다. 이때부터 황희는 일을 통해 세종의 신임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당시 그가 맡았던 관직은 이를 말해준다. 판우군도총제(判右軍都摠制)에 제수되면서 강원도관찰사를 계속 겸직했다. 1424년(세종 6년) 의정부 찬성, 이듬해에는 대사헌을 겸대했다. 또한 1426년(세종 8년)에는 이조판서와 찬성을 거쳐 우의정에 발탁되면서 병조 판서를 겸직했다. 이제 건강만 허락한다면 그가 최고의 실세인 좌의정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여기서 우리는 이원(李原)이라는 인물을 떠올려야 한다. 만일 그가 계속 좌의정으로서 업무를 잘 해냈다면 어쩌면 ‘명(名)재상 황희’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원은 아버지 태종의 신하이자 세종 또한 크게 신뢰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세종 1년 사실상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던 상왕 태종은 좌의정에 박은, 우의정에 이원을 임명했다. 그리고 이런 체제는 계속 이어지다가 세종 4년 태종이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날 박은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홀로서기를 시작한 세종은 이원을 좌의정으로 올리고 우의정은 정탁, 유관 등이 번갈아 맡기는 했지만 사실상 비워둔 채 병조판서 조말생(趙末生), 이조판서 허조(許稠)의 삼두마차 체제로 정국을 이끌면서 젊은 신왕(新王)으로서의 입지를 하나하나 굳혀가고 있었다.
 
  그런데 세종 8년(1426년) 3월 15일 이원은 많은 노비를 불법으로 차지했다는 혐의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공신녹권(功臣錄券·공신에게 주는 공훈사령장)을 박탈당하고 여산(礪山)에 안치됐다가 배소에서 죽었다. 복권의 기회는 없었다.
 
  그로부터 1년도 안 된 세종 9년 1월 25일 잠시 우의정을 거친 황희는 마침내 좌의정에 오른다. 그를 좌의정으로 임명하면서 세종이 그에게 한 말이 실록 황희 졸기(卒記)에 실려 있다.
 
  “경(卿)이 폄소(貶所)에 있을 적에 태종(太宗)께서 일찍이 나에게 이르시기를, ‘황희는 곧 한(漢)나라의 사단(史丹)과 같은 사람이니, 무슨 죄가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사단은 중국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에 시중(侍中·재상)을 지낸 명신(名臣)이다. 원제가 가장 사랑하는 후궁 부소의(傅昭儀)의 소생 공왕(恭王)이 총명하고 재주가 있어 세자를 폐하고 공왕을 후사로 삼고자 할 때 극력 간(諫)하여 마침내 폐하지 않게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 후 20여 년 재상으로서 황희의 업적은 우리가 아는바 그대로다. 중국 한나라에서는 소하(蕭何)가 여기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可觀者에 근접해가는 이재명
 
이재명 지사는 7월 30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나선 이낙연 의원과 만났다. 두 사람은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사진=조선DB
  오늘날 우리는 다소 부정적 의미에서 ‘가관(可觀)’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주역》에서 가관(可觀)이라는 말은 인물이 크게 돼 모두가 우러러볼 만한 사람이 됐다는 뜻이다.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여도 가관자(可觀者)가 나타나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면 무리는 그저 중(衆)으로 남을 뿐이다. 가관자가 무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 비로소 사(師)가 된다. 조직화된 무리가 바로 사(師)다.
 
  현재 이재명 지사는 비로소 가관자에 근접해가고 있다. 그런데 임괘에서도 그렇고 관괘에서도 그렇고 이런 인물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겸손[巽]과 순리다. 그런 점에서 이 지사가 어떻게 해야 바라는 목표에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관괘의 구오(九五)다. 먼저 주공의 효사다.
 
  “구오(九五)는 내가 저지른 것[我生]을 지켜보는데 군자다우면 허물이 없다[觀我生 君子无咎].”
 
  관괘의 밑에서 다섯 번째 양효에 대해 공자는 “내가 저지른 것을 지켜보는 것은 백성을 살펴보는 것[觀民]이다”라고 풀었다. 뒷부분은 “군자다우면 허물이 없다”를 풀어낸 것이다.
 
  구오는 임금의 자리다. 한 시대의 다스림과 어지러움은 결국은 임금 한 몸에 달려 있다. 그래서 주공은 ‘군자다우면 허물이 없다’고 했는데, 공자는 이때 군자다움의 잣대로 ‘백성을 살펴보는 것’을 제시한 것이다. 그것은 친민(親民)이기도 하고 여민동락(與民同樂)이기도 하다. 《맹자(孟子)》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다.
 
 
  與民同樂
 
  〈맹자가 위나라 혜왕을 만나뵈었을 때 왕은 연못가에 서서 크고 작은 기러기와 다양한 종류의 사슴들을 살펴보면서 물었다.
 
  “뛰어난 이[賢者]들도 이런 것들을 즐기는가?”
 
  맹자가 답했다.
 
  “뛰어난 이가 되고 난 후에 이런 것을 즐길 수 있지요. 뛰어난 이가 아니라면 비록 이런 것들을 갖고 있다고 하여도 즐길 수 없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주나라 문왕이) 영대(靈臺·신령스러운 대)를 세우려고 할 초창기에 큰 그림을 그리고 이리저리 궁리를 하자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와 합심하여 하루도 안 돼 완성시켰네. 일을 하는 초창기에 너무 서둘지 말라고 해도 백성들은 자식들이 아버지 일을 위하는 듯 달려왔도다. 문왕이 영대가 완성된 동산에 계실 때 암수 사슴들은 자기 자리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데 잘 먹어 여유로운 모습이었고, 백조들은 눈부시게 하얀 빛을 띠었도다. 왕이 연못가에 계시니, 아아! (연못) 가득하게 물고기들이 뛰어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문왕께서 백성의 힘으로 대(臺·누각 형태의 높은 건물)를 만들고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것을 기쁘고 즐겁게 여겨 그 대를 이름 붙여 신령스러운 대라 부르고 신령스러운 못이라고 불렀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그곳에 크고 작은 암수 사슴들과 물고기와 자라들이 자라고 있는 것마저 즐거워했으니, 옛사람들은 (이처럼) 백성들과 더불어 모두 함께 즐겼습니다[與民偕樂]. 그랬기 때문에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서경》 ‘탕서(湯誓)’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놈의 태양은 언제나 없어질 것인가? 내 너와 더불어 함께 없어지리라!’ (이처럼) 백성들이 (태양과) 더불어 함께 없어지고 싶어 한다면 아무리 좋은 대와 연못과 새와 짐승들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들 어찌 (왕께서) 능히 혼자서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일이 순조로워 과연 여민해락(與民偕樂)하는 자리에 이를 수 있을지는 다분히 이재명 지사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주역》의 고괘(蠱卦), 임괘(臨卦), 관괘(觀卦)가 차례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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