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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사상 크로스 〈2〉

동양적 개인주의 주창한 墨子

글 : 임건순  동양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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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는 兼愛로 최소한의 생활 보장, 백성은 통치에 순응이라는 계약론적 思考
⊙ 墨家는 受刑者 내지 피압박 노동자, 築城기술자 겸 武士 집단
⊙ ‘0’의 개념 인식… 기하학·光學·力學 등에 밝은 과학자
⊙ ‌唯一神 등 주장, 논리 구조 등에서 전통적 동양사상보다 서구사상에 가까워

임건순
1981년생.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수료 / 저서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생존의 기술, 승리의 조건, 변화의 전술》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위대한 사상가 13인이 꿈꾸었던 최상의 국가》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생각이 많으면 진다: 우리가 몰랐던 류현진 이야기》 《야구오패: 한국 야구를 지배한 감독들》
묵자.
  어떤 학파(學派)의 지도자가 남쪽 초(楚)나라로 유세하러 가서 혜왕(惠王)을 만나 책을 바치려 하였다. 혜왕은 그가 늙었다는 이유로 사양하며 목하(穆賀)로 하여금 그 사람을 대신 만나게 하였다. 그가 목하에게 자기 주장을 얘기하니 목하는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선생님의 말씀은 정말 훌륭하십니다. 그러나 왕은 천하의 대왕이시니 천한 사람이 지은 것이라 말하면서 쓰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러자 그가 말한다.
 
  “실행할 수 있는 일입니다. 비유를 들면 마치 약과 같습니다. 잡초의 풀뿌리라 하더라도 천자(天子)가 그것을 먹고 병을 고칠 수 있다면 어찌 한 개의 풀뿌리라 말하면서 먹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농부가 농사를 지어 대신들에게 바치고, 대신들은 술과 단술과 젯밥을 장만하여 하늘과 귀신들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어찌 천한 농부들이 지은 것이라 하여 제사를 받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비록 천한 사람이지만 위로는 농부에게 아래로는 약에게 견주어보면 한 개의 풀뿌리만도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병을 고칠 수 있다면 약초, 잡초 가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천한 사람의 말이라도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수용하는 게 옳다. 하지만 초나라 왕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孔子의 라이벌
 
  이렇게 천하의 약초를 자임한 사상가가 있었다. 그는 늘 말했다. 진정으로 어진 자라면,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라면 천하의 해(害)를 제거하고 이익을 늘릴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그는 늘 이익을 늘리기 전에 해를 줄이고 없애려 분투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주장을 보면 비공(非攻)·비악(非樂)·비명(非命)·절용(節用)·절장(節葬) 등 ‘안 된다’ ‘하지 마라’ ‘줄이라’는 주장이 많다.
 
  그가 바로 묵자(墨子)다. ‘겸애(兼愛)’로 유명한 사상가이자 공자(孔子)의 라이벌이다. 밑바닥 사람들을 위해 사상과 운동을 전개했기에 그를 고대(古代) 동양의 해방신학자, 민중신학자로 보는 사람도 있다. 묵자의 무리가 진(秦)에 투신하고 묵자 자신이 강한 법치(法治)를 주장했기에 전제왕권주의(專制王權主義)와 연관을 짓는 사람도 있다. 서구(西歐) 세계에선 공공복지주의론자, 사회민주주의와 연관을 지어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동아시아 과학의 신성(神聖)으로 보기도 하고, 무협(武俠)의 세계를 연 무사(武士)라고 보기도 한다.
 
  이런 여러 개의 평 내지 얼굴을 가진 사상가 묵자는 당대에 크게 흥행한 묵학(墨學)의 거두였다. 전국(戰國)시대가 끝나면서 묵학은 퇴장해버리지만 전국시대에는 그의 세상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중국 철학 하면 대부분 공맹(孔孟)과 노장(老莊)을 양대(兩對) 산맥으로 이해한다. 묵자는 그저 이름 없는 비주류(非主流) 사상가로 알고 있지만 당대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공자와 명성을 나란히 하고 다른 사상가 집단을 압도할 만큼 영향력을 가졌다. 애석하게도 묵자란 개인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은 정말 부족하다. 그나마 아는 것이 공자와 같은 노(魯)나라 출신이라는 정도다.
 
 
  姓도 몰라요 이름도 몰라
 
  지난 호에 홉스의 프로필은 싣고 묵자의 프로필은 싣지 못했는데, 깜빡하거나 빼먹은 것이 아니다. 기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묵자 개인에 대해 베일에 싸인 것이 많다. 우선 생몰(生歿) 연대부터 제대로 추정이 안 된다. 학자마다 말이 엇갈리는데, 공자와 맹자 사이에 활동한 인물이다. 19세기 말 청(淸)나라 언어학자 쑨이랑(孫詒讓)은 묵자가 공자보다 100년 정도 늦게 태어났다고 한다. 량치차오(梁啓超)는 그보다 좀 빠르게 추정한다. 량치차오는 기원전 463~385년을 묵자가 살던 시대라고 하는데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이름도 확실치 않다. 성은 묵(墨)이요 이름은 적(翟)으로 묵적(墨翟)이다. 묵자(墨子)라고 했는데 당시 자(子)는 극존칭으로서 ‘큰 선생님’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성이 묵이 맞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묵가(墨家)라는 거대한 학파의 종사(宗師)이고 공자의 라이벌이지만 성도 이름도 모른다니…. 이렇듯 묵자라는 사람의 신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묵자가 있고 묵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묵가가 있고 묵자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사상가가 먼저 탄생해서 제자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단체와 조직을 이끈 것이 아니라, 특정한 단체와 조직이 먼저 생겨나고 그들의 수장(首長)과 대표 CEO가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
 
  묵가라는 특정 집단의 성격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묵(墨)’이라는 글자에 주목했다. ‘묵’자는 특정인의 성(姓)이 아니라 어떤 집단을 상징하는 것이라 단정한 채 그 글자를 가지고 묵가 집단의 성격과 출신, 근본을 추정해보았다. 일단 ‘묵’은 ‘검다’라는 뜻이 있다. ‘검은색으로 상징되는 사람들, 검은 무리의 집단이 있었다. 그래서 묵가라고 한 것이며, 그 집단의 수장이 묵자다’라고 말하는 학자가 많았다. 도대체 무엇이 검다는 것일까?
 
 
  묵가는 수형자 집단
 
  《묵자》 귀의(貴義)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묵자가 북쪽으로 가던 중 점쟁이를 만났다. 점쟁이가 말했다. “오늘은 상제(上帝)가 북쪽에서 흑룡(黑龍)을 죽이는 날입니다. 선생은 행색이 검으니 북쪽으로 가선 안 됩니다.”〉
 
  묵자의 얼굴이 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색이 검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점쟁이가 흑룡 운운했는데 그것 역시 묵자가 검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얼굴과 살색이 검은가 본데, 《묵자》 비제(備梯)편에는 금활리(禽滑釐)라는 사람이 묵자를 섬긴 지 3년이 되자 손발에 굳은살이 생기고 얼굴은 시커멓게 변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묵자를 따라다닌 지 3년 만에 이렇게 변했는데, 장시간 그를 따라다니며 천하를 구한답시고 부지런히 활동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진짜 묵자나 묵자의 무리가 검었나 본데, 묵이라는 글자를 의복의 색깔로 보는 견해도 있다. 검은색 작업복을 입었던 것일까?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작업복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데, 얼굴이 검든 옷이 검든 외부 사람들이 보기에 검은 무리였기에 묵자가 된 듯싶다.
 
  한편 ‘묵’은 형벌이란 뜻도 있다. 고대 중국에는 얼굴에 글자를 뜨는 형벌이 있는데 요즘으로 치면 전자 팔찌나 발찌와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백호통(白虎通)》에서 오형(五刑) 가운데 ‘묵은 이마에 뜸을 뜨는 것’이라고 했다. 묵가의 묵은 여기에서 의미를 취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형벌을 받은 사람들이나 지배권력의 횡포에 시달리는 데 조금도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모였고, 그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보겠다며 운동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묵을 형벌로 바라보든 얼굴색으로 바라보든 묵가 집단은 체제 내부 사람들이 아니라 체제 외부, 지배층이 아니라 피(被)지배층 특히 피지배층에서도 말단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묵이라는 이름에서 계급성만이 아니라 그들의 직업을 읽어내며 이야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묵가는 工人 집단
 
중국은 지난 2016년 8월 16일 발사한 양자위성에 ‘墨子’의 이름을 붙였다. 사진=뉴시스
  《묵자》 노문(魯問)편에 이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공수반(公輸般)이라는 사람이 대나무를 깎아 까치를 만들어 날렸는데 사흘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공수반이 스스로 대단한 기술이라고 여겨 뽐내자 묵자가 공수반에게 말했다.
 
  “당신이 만든 까치는 수레바퀴에 차축을 고정시키는 비녀장[車轄]만 못하다. 목수는 눈대중으로 세 치 비녀장을 만들지만 수레가 무거운 짐을 싣도록 돕는다. 한 사람의 업적이 백성에게 이로울 때 기술이 대단하다 하는 것이지 사람에게 이롭지 않은 것은 졸렬하다고 한다.”
 
  여기서 묵자가 바로 수레를 만드는 장인(匠人)임을 알 수 있다. 기술자임을 알 수 있는데 본래는 관청에 소속된 기술자로서 국가 명령에 따라 청동기를 만들고 수레를 만들었는데, 축성(築城)기술자 역할도 많이 해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후기 《묵가》 편을 보면 역학(力學)의 원리도 서술되어 있다.
 
  장인이 무언가를 만들고 제조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정확한 측정 기구와 측량 도구일 것이다. ‘묵’이라는 뜻에는 ‘줄자’라는 뜻이 있다. 줄자를 승묵(繩墨)이라고 했는데, 그냥 ‘묵’이라고도 했다.
 
  ‘묵’이라는 글자를 통해 ‘아, 이들이 자를 가지고 작업한 장인 집단, 기술자 집단이었구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 그들은 당대 최고의 기술자들이었다. 그리고 단순 기술자가 아니라 공학자·과학자들이기도 했다. 중국이 3년 전 감청(監聽) 불가능한 위성통신을 쏘아 올렸을 때 괜히 ‘묵자’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다. 묵자 무리가 단순히 기술자가 아니라 과학자임을 알 수 있는 증거는 텍스트에 무수히 있다.
 
 
  과학자 겸 사상가
 
  ▲ 기하학
  •“직(直)은 직선의 의미로 세 점이 하나의 선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경상(經上)편
  •“원은 원심에서 원주까지 서로 같은 것을 말한다.” -경상편
  •“곱자로 곧게 선을 그려 그 선을 합치는 것이다.” -경설상(經說上)편
 
  ▲ 수학
  •“배(倍)는 원래 수에 2를 곱하는 것이다.” -경상편
  •“두 자와 한 자의 차이는 일 배라는 것과 같다.” -경설상편
 
  ▲ 역학(力學)
  •“도르래에 건 물체가 위로 올라가고 잡은 물건이 내려가는 등 서로 상반되게 움직인다. 이유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은 서로를 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하(經下)편
 
  ▲ 광학(光學)
  •“그림자에는 본영(本影)과 반영(半影) 두 가지가 있다. 그림자는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하편
  •“두 개의 광원(光源)에서 출발하는 빛이 하나의 물체에 뒤섞인다면 그 물체는 두 개의 그림자를 형성한다.” -경설하편
 
  과학에 대해 논한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지면 관계상 가져오지 못할 정도다. 묵자 텍스트 후반 편에는 수학·물리학·역학·광학·기하학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특히 광학에 대해 써놓은 이야기들을 보면 그 수준에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이 중국의 과학기술 전통에 대해 서술하면서 묵자를 괜히 상석에 앉힌 게 아닐 것이다. 수학의 진법(進法) 개념도 서술했고, ‘0’ 개념의 발견 등 수학자·과학자라고 해도 될 사람이 묵자다.
 
  단순 사상가가 아니라 과학자이자 수학자, 과학자 겸 철학자라? 서양에서는 철학자가 과학자나 수학자를 겸하는 것은 전혀 유별난 일이 아니다. 탈레스부터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 수학과 철학,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든 사상가가 많다. 과학자·수학자는 아니지만 과학과 수학의 방법론을 가지고 철학·인문학을 한 이들도 많다.
 
  동양에는 그런 사람이 사실 전무(全無)하다시피 하다. 하지만 100%라고 단정할 수 없다. 바로 묵자 때문이다. 묵자는 과학자이자 사상가, 요새 말로 하면 전혀 ‘문송하다(문과라서 죄송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공계적 지식과 수완에 문과적 통찰력을 겸비했다고나 할까. 이렇게 묵가, ‘묵’이란 글자를 가지고 과학기술자로서의 그들의 정체성(正體性)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묵자는 武士 집단
 
2007년 개봉한 韓·中·日 합작영화 〈墨攻〉. 인기배우 류더화가 墨子의 反戰사상을 실천하는 장수 혁리역을 맡았다.
  정리를 좀 해보면 피지배층, 그리고 공인, 기술자 집단, 관청에 소속되어 명령대로 물건을 제조하고 성을 만들고 무기와 제사도구를 만들던 사람들, 힘들게 노동하는데 대접을 받지 못하고 노동에 대한 제 몫과 대가를 받지 못하니 집단으로 저항하던 사람들, 그러다가 형벌을 받기도 한 사람들, 얼굴도 검고 형벌도 받고 과학기술에 능하기도 한 그들이 뭉쳐 사상운동을 벌인, 그 집단의 수장이 바로 묵자인 셈이다.
 
  이들은 무사(武士) 성격도 있다. 축성기술자에서 방어전문무사로 진화했다는 의견도 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네가 거기 만들었지. 네가 거기 관리해, 담당해. 그리고 적(敵)이 쳐들어오면 지키기도 하고 말이야.”
 
  이러다 보니 무사 성격도 갖게 되고 무사 집단으로 진화하기도 했다. 실제 묵가 후반부편은 ‘묵자병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제51장 비적(備敵), 비성문(備城門), 비고림(備高臨), 비충(備衝), 비제(備梯), 영적사(迎敵祠), 기치(旗幟), 호령(號令) 편에 군사를 다루고 부리는 방법 등에 대해서 논한다. 침략전쟁을 부인한 사람들이기에 방어전쟁과 관련된 전술, 요령을 특화(特化)시켜 텍스트에 실었지만 그들은 무사 집단 성격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일본에서 묵자의 조명과 재평가가 활발했던 것 뒤에는 아무래도 묵자 무리가 가진 무사로서의 성격이 그들에게 강하게 어필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묵자 철학은 집단 창작물
 
  우리가 묵자 개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해도 애석해할 필요는 없다. 왜냐? 묵자 철학이란 묵자 한 사람이 단독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고 하겠지만, 묵자 철학은 묵자가 원맨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집단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학자 사이에서 이미 그런 말이 있었다. 공자처럼 자신만의 통찰력으로, 장자(莊子)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문제의식으로 전부를 만들어내고 구성해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이 모였고, 그들이 갑론을박(甲論乙駁)을 벌인다. 어지러운 세상 도저히 안 되겠으니 우리가 우리 세상을 구해야 하는데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까? 어떤 슬로건을 내걸어야 할까? 어떤 원칙으로 구세(救世)를 위해 모인 우리 집단을 다스려 나가야 할까?
 
  이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해서 어떤 결과물들을 산출해냈고, 그런 과정을 통해 묵자 사상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텍스트를 보면 그런 흔적이 많다. 토론, 논쟁, 합의 도출에 대한 것이 보이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동(同)은 다른 주체가 함께 지닌 의견 공통성이다.” -경상편
  •“동이란 것은 두 사람이 하나의 기둥을 보고 두 사람이 모두 기둥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 왕을 섬기는 것과 같다.” -경상편
  •“필(必)은 어떤 경우에도 그렇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 .”-경상편
  •“두 형제가 있는데 한 사람은 그렇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 필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필연성이 없는 것이다.” -경설상편
  •“설(說)은 명확한 근거를 세워 추론하는 것이다.” -경상편
  •“정(正)이라는 것은 정확하다는 뜻으로 반박, 공격당할 것이 없는 것이다.” -경상편
 
 
  ‘최대 多數에게 최소한의 생활 보장’
 
  《묵자》 텍스트를 보면 어떻게 정의를 내리고 명제를 만들지에 대해 말을 한다. 주장할 때 어떻게 근거를 내세우고 어떻게 상대방의 주장에 반박할 것인지, 그러면서도 어떻게 같은 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통해 공통의 결론을 내볼 것인지에 대해 서술한 부분도 많다. 상동(尙同)편을 보면 의견 수렴과 합의에 대해 지난한 과정까지 써놓기도 했는데 논쟁하기, 논쟁하면서 결론내리기, 명확한 합의를 도출하기에 대해 묵자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일까? 묵자 사상을 보면 ‘최소한 이것만큼은…’이라는 맥락으로 이해해야 할 부분이 많다. 자, 여러 사람이 모여서 갑론을박 토론하고 논쟁한다고 치자. 결론이 날 때까지, 최대한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 그러면 ‘우리 최소한 이것만큼은 하지 말자, 절대’ ‘우리 최소한 이것만큼은 모두에게 보장하도록 하자’ 이렇게 귀결되기 쉽지 않을까?
 
  사실 겸애가 그렇다. 의식주(衣食住)로 대변되는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최소한을 모두에게 보장하자는 것이 묵자의 겸애다. 요약해서 말하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아니라 ‘최대 다수에게 최소한의 생활 보장’을 하자는 것이다. 좋은 옷, 기름진 음식, 큰 집 이런 것을 주는 게 아니라, 누구든 먹어야 하고 춥지 않게 입어야 하니 최소한의 의식주만큼은 누릴 수 있게 국가 권력이 시스템을 만들자는 게 겸애다. 겸애란 사상의 특성이 그러하다. 《묵자》 텍스트를 훑어보면 논쟁, 토론, 합의도출 과정에서 묵자 사상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와야 한다. ‘도대체 묵자라는 사람은 뭐냐’라고. ‘조직과 단체의 창작물이라면 묵자란 특정 개인이 가지는 묵가 집단 내에서의 역할 내지 위상은 무엇이냐’고 물을 수밖에 없다. 결국 묵자는 집단 논쟁, 토론에서 결론을 도출해내는 과정을 잘 이끌어내고, 거기에서 나온 사상을 좀 세련된 언어로 포장하고, 적당히 시대정신으로 표현하고 재구성한 사람? 그 사상과 시대정신을 구현할 조직과 단체를 이끈 어떤 카리스마, 리더십 강한 인물 내지 수장?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층민, 천민 출신 집단이다 보니 글을 아는 사람이 없는데 집단의 이야기와 생각을 활자화·성문화(成文化)한 사람이 있었고, 그가 묵자인 게 아닐까? 당시 피지배계층이 문자를 아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 무리 중에서 문자에만 능통해도 꽤나 대접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하면 무리한 추론(推論)이 아닌데, 어쨌든 묵자 철학은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고 집단 창작의 산물이다. 그리고 집단 창작물이라고 해서 뭐 별스럽게 생각할 건 없다. 묵자 사상 자체가 워낙 특이하고 예외적 존재인지라 그거 하나 가지고 놀랄 필요는 없다.
 
 
  계약론적 思考
 
  동양사상가 중 유일하게 유일신론(唯一神論) 입장에 서 있던 사람, 공맹의 유가와 다르게 인간의 상한선(上限線)상이 아니라 인간의 하한선(下限線)에서 시작한 사람, 관계적(關係的) 존재로서 인간이 아니라 단독 개체라 할 수 있는 개인을 말한 사람, 그의 사상 안에서 개인주의(個人主義)의 맹아(萌芽)가 보이기도 하는 사람, 농촌공동체보다는 도시상업사회에 어울릴 이야기를 한 사람….
 
  묵자 사상 자체가 특이하지만 그 특이함의 정도가 참 심하다. 동양사상계에서 이질적이다 못해 너무 이단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동양사상의 전형적 특성과는 거리가 있고, 때론 상반되다시피 하다.
 
  가장 신기한 게 계약론적(契約論的)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 상동편에서 묵자는 개인들이 계약을 통해 국가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국가와 개인이 다시 계약을 맺는다고 했는데 그러면서 쌍방의 의무가 규정된다. 우선 국가의 의무는 겸애이다. 그리고 국가와 계약을 한 당사자인 개인도 의무를 가지게 되는데, 개인은 국가의 통치에 순응하고 복종해야 한다. 그게 나머지 계약 당사자인 개인의 의무다. 이렇게 쌍방 간의 의무와 권리를 규정하는 것을 보면 계약론적 사고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차후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묵자는 그들만의 하느님을 말했는데 묵가가 말하는 하느님과 관련된 이야기에도 계약론적 사고가 강하게 드러난다. 특히 천지(天志)편에서 절대자와 계약이라는 사고가 두드러져 보인다.
 
  사실 동양에서 계약론적 사고는 어려운 이야기 아닐까? 계약론적 사유는 철저히 조건적 사고를 해야 하고, 거래 관념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양에선 무척이나 어려운 일 아닌가. ‘자식 된 도리로…’ ‘신하 된 이상…’, 이렇게 당위론적 관념이 익숙한 동양에서는 조건적 사고나 거래 관념을 키우기 힘들다. 그런데 묵자는 거래 관념을 바탕으로 한 계약을 이야기해 반(反)동양적이고 지극히 서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
 
 
  反동양적·서구적 특성도 묵가 몰락의 원인
 
  묵자 철학의 반동양적 특성과 서구적 특성은 그뿐만이 아니다. ‘무엇을 말하냐’보다는 ‘어떻게 주장을 전개하느냐’도 중요하다고 했고, 그렇기에 논리를 중시했다. 성인(聖人)과 전통의 권위에만 호소하는 게 아니라 확실한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전개하려 했다. 메신저와 메시지는 분리 가능한 존재라는 말까지 했다. 서양에서는 당연히 동의받을 주장이지만 동양에서는 수용되기 어려운 말을 많이 했다.
 
  묵자 사상이 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완전히 사라지게 된 데에는 이런 반동양적 요소가 가득한 게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사상 자체가 지닌 민중적 요소, 지나친 이상주의, 동중서(董仲舒) 이후 유가(儒家)사상의 독재, 통일전쟁 과정에서 제자들의 희생과 조직의 와해 등 묵가 사상의 절멸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언급한 반동양적 요소들, 서구적이고 동양 사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특성도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묵자 사상이 가진 이질성과 서구적인 면을 보아야 그들의 고유한 문제의식이 드러나고 오늘날 활용할 여지가 보인다. 그래야 묵자와 홉스의 유사성을 이해할 수 있는데, 묵자 사상의 반동양적 특성을 살피면 두 사람이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회계약론, 당대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파생된 과학적 방법론과 사고를 인간과 세계를 보는 관점에까지 끌어온 것, 그러면서 개인이라는 창으로 인간을 말한 점, 그리고 인간을 볼 때 욕망과 이성, 정념과 계산하는 능력으로 인간을 이원화(二元化)해 말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번 호에 묵자의 인간관을 미처 다루지 못했다. 다음으로 미루게 되어 독자들에게 죄송한데, 묵자 사상의 전반적 이해를 위해 집단으로서 묵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호에는 묵자와 홉스의 인간관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계약론적 사고를 다뤄볼 것이다.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계약론적 사고, 우리에게 부족한 ‘신뢰(信賴)’라는 사회적 자본을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사고지만 가장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계약론적 사고까지 이야기함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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