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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수 교수의 우리 고전 비틀기 | 홍길동전

《홍길동전》 양반인 듯 양반 아닌 양반의 존재 증명

글 :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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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순간의 욕정 못 이겨 여종과 관계한 홍 판서 탓에 홍길동 태어나
⊙ 홍길동의 활빈당 활동은 빈민구제나 제도개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력 있는 자신을 인정해 달라는 정치적 시위
⊙ 백성들 편을 든다고 했지만 이 나라 백성들을 떠났고, 평화로이 살던 율도국 백성들을 전란에 빠뜨려
홍길동(洪吉童)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도적 홍길동(洪吉同)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설(說)이 있다. 홍길동의 고향이라는 전남 장성군은 홍길동이 ‘실존인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홍길동전(洪吉童傳)》은 양반가에서 서자(庶子)로 태어난 홍길동의 일대기를 그려낸 소설이다. 일찍부터 이 소설은 신분제의 모순 비판, 적서차별(嫡庶差別) 철폐, 봉건 체제 비판, 해외 이상국(理想國) 건설 등 매력적인 내용을 신나는 활극풍의 서사(敍事)로 담아냈기에 사람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작가로 인정되는 허균(許筠)이란 인물의 혁신적 삶과 맞물려 민족적 주체논쟁과 문학사·문화발전론 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품으로 다뤄졌다. 심지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실린 연산군 때의 도적 홍길동(洪吉同)이 지금의 오키나와인 유구국(流球國)으로 갔다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홍길동에 관심이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사회 비판, 활빈당(活貧黨)으로 대표되는 의적(義賊) 활동, 율도국 정벌과 같은 것을 이야기의 핵심으로 보는 듯하다. 본질이 그렇지 않음은 이런 질문 하나로 충분하다.
 
  “조선을 개혁하려 하고 백성을 구휼하던 홍길동이 왜 느닷없이 해외로 갔는가?”
 
  사실 그렇다. 신분제의 모순을 개혁한 것도 아니고, 탐관오리가 발호하는 체재를 혁신하지도 못했으며, 백성들이 잘살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지 못했으니 말이다. 홍길동이 조선을 떠나 해외로 간 것은 좋게 보아 해외 개척이지 엄밀히 말하면 현실도피이기 때문이다.
 
  연구자들도 이를 두고 소설 전반부와 후반부의 정합성(整合性)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있어 왔고, 그 이유로 작가의 상상력 빈곤, 봉건제를 부정할 수 없는 한계 등을 들었다. 하지만 이런 분열증적 혼돈은 작가의 미숙함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홍길동전》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프레임에 갇혀 본질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차차 말하겠지만, 길동이 빈민을 구휼하고 탐관오리를 징치하는 등의 의로운 일을 한 것은 맞지만, 그 본질은 자기 과시와 정치적 시위였다. 율도국 정벌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기에 정합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다만 홍길동을 그렇게 정치적인 인물로 보고 싶지 않은 우리들이 시각이 문제였다. 홍길동이 탁월한 영웅이고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너무 눈부시기에 거기에 현혹되어 본질적 문제가 덮여 버렸던 거다. 굳이 비유하자면,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땄다고 해서, 또 종합순위가 상위에 랭크했다고 해서, 우리나라 체육이 탁월하다고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오히려 금메달을 자꾸 따기에 그 종목 스포츠 연맹의 구조적인 문제와 본질이 호도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금메달을 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황홀한 금빛 찬란함 때문에 본질적 의미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홍길동전》을 잘 살펴보자. 금빛에 현혹되지 말고 말이다.
 
 
  홍 판서의 꿈(?)
 
신윤복의 그림으로 알려진 조선시대의 춘화. 홍 판서는 이렇게 춘섬과 관계를 갖지 않았을까?
  조선 시대 서울에 사는 지체 높은 홍 판서 영감께서 어느 날 낮잠을 주무셨다. 양반들이 모두 게을렀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름 열심히도 사셨다. 특히 판서(判書)이니 임금님을 아침에 뵙는 ‘조회(朝會)’라는 것에 빠짐없이 참석해야 했다. 그게 말이 아침이지 거의 새벽 미명에 모여 국정현안에서 시작해서 유교경전까지 끊임없이 논하는 강론을 매일같이 해야 했다.
 
  아무튼 그날 점심 드시고 까박까박 쏟아지는 졸음에 얼핏 잠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낮잠에 꿈을 꾸셨는데 글쎄 그게 장난 아니게 좋은 길몽(吉夢)이었다. 청룡(靑龍)이 수염을 흔들며 달려드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깬 거였다.
 
  “내가 용꿈을 꾸었으니 반드시 귀한 아들을 얻을 것이다.”
 
  크게 기뻐하며 홍 판서가 내당(內堂)으로 들어가, 부인의 손을 끌어당기며 억지로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느닷없는 행동에 부인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벌건 대낮에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대감의 지체가 높으시고 체통이 있으신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십니까? 나이 어린 방정맞은 것들[年少輕薄子]이나 하는 비루한 짓을 하시려 하다니요. 저는 도무지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며 손을 떨치고 나가버렸다. 부인의 말과 행동은 지당하다 못해 정대했다. 하지만 헛물을 켠 홍 판서는 창피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마디로 뻘쭘해지자 오히려 화가 났다. 분기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다시 외당(外堂)으로 나와 탄식했다.
 
  ‘한 집안의 부인이란 자가 도무지 지식이 없으니….’
 
  그렇게 외당에 앉아 아쉬워하고 있는데, 춘섬이라는 여종이 차를 가져다 바쳤다. 이렇게 보니 그 여종이 꽤 괜찮아 보이는 거다. 그래서 그녀를 옆방으로 끌고 들어가 억지로 관계를 맺었다.
 
  그 일로 열여덟 살인 여종이 임신을 하게 되어 아들을 낳았다. 청룡 꿈이 정말 영험했는지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기가 막히게 생긴 것이 영웅호걸의 기상이 있었다. 홍 판서는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부인[妻]에게서 낳지 못하고 여종인 첩(妾)에게서 낳게 된 것을 한탄했다. 이렇게 태어난 이가 홍길동이다. 모든 문제와 사건의 시작은 바로 이렇게, 정확하게는 홍 판서의 이율배반적 행동에서 시작되었다.
 
  홍 판서는 어마어마한 인물이었다. 대대로 명문거족(名門巨族) 집안에, 아주 어릴 적에 과거에 급제하여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벼슬이 판서를 지나 이후 우의정까지 올랐다. 게다가 아들도 잘 둬서 적장자(嫡長子) 인형은 벌써 급제해서 이조좌랑(吏曹佐郎)이 되었다. 그야말로 홍 판서는 조정에서 명망이 으뜸인 명문가의 총수로 온 나라를 진동시키는 인물이었다.
 
  이런 분께서 어느 날 낮잠을 잔 것이다. 지체가 있으시고 유교적 도의에 충실하신 분이시니 낮잠을 대놓고 잔 것은 아닐 것이다. 봄날의 피곤함에 얼핏 졸았을 공산이 크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니 말이다. 문제는 낮잠이 아니라 그 다음이다. 그는 ‘성욕(性慾)’이 달아올랐던 것이다.
 
 
  불행의 시작은 홍 판서의 본능
 
  수면욕이나 성욕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인간답다’는 것은 본능을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것이냐 아니냐에 달린 것이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유교적 예법에 둘러싸여 사는 조선시대는 더 그랬다. 그런데 홍 판서는 자신의 성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다.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었다.
 
  뜬금없는 성욕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홍 판서의 ‘청룡 꿈 타령’은 욕정을 감춘 핑계일 뿐이다. 부인이 홍 판서의 손길을 뿌리치며 한 말에도 분명하게 나와 있다. “나이 어린 방정맞은 것들이나 하는 짓”을 하려 한다는 지적은 명확하게 핵심을 찌르고 있다. 벌건 대낮에 해괴망측한 짓이란 뜻이다. 그런데도 외면당한 홍 판서는 ‘부인이 지식이 없어 이를 뿌리치다니…’ 하며 탄식했다. 무안함에 말도 안 되는 자기변명을 하는 거다.
 
  한 번 따져 보자. 청룡 꿈을 꾸었으니 훌륭한 아들을 낳을 것 같다고 짐작한 홍 판서의 생각이 우선 옳다 치자. 그런데 그런 말을 해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부인이 알 수 있단 말인가? 부인이 생각과 지혜가 없어 동침을 뿌리친 것이 아니라 유교적 예법에 따른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뿌리친 것이다. 물론 ‘꿈을 발설하면 효험이 사라진다’는 속설 때문에 홍 판서가 부인에게 말을 안 한 것일 수도 있다. 즉, 홍 판서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면 대충 이럴 것이다.
 
  ‘내가 이렇게 간절하게 동침하기를 원한다면 부인쯤 되는 사람이 알아서 잘… 에헴 에헴, 거 뭐냐 환합할 것이지, 원….’
 
  그래 맞다. 부인이 ‘지혜’가 있었다면 알아서 잘(?) 묻지도 않고 허락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억지다. 왜냐하면 혹시 꿈 이야기를 부인에게 했다 해도 부인이 이렇게 되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꼭 그 벌건 대낮에 동침을 해야만 꿈의 효험이 있나요?”
 
  “꿈을 꾸고 효험이 있기까지는 일정한 시효가 있는 건가요? 몇 시간 만에 사라지는 효험이란 말인가요?”
 
  본질은 이것이다. 홍 판서가 정말 청룡 꿈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꿈을 마음에 품고 그날 밤에 부인과 동침하면 되는 거였다. 부인의 거부는 체통도 없이 벌건 대낮에 밑도 끝도 없이 들이닥쳐서 강제로 범하려는 것 때문이었지 섹스리스(sexless)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결국 분출할 길 없는 성욕은 엉뚱한 곳(?)을 향해 분출되었고, 가장 만만한 약자(弱者)인 여종이 그것을 고스란히 받고 말았다. 강제로 추행을 했다는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홍 판서가 이미 이런 행위를 통해 나올 인물이 적자(嫡子)가 아닌 서자(庶子)일 거란 것을 알면서도 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홍길동이 태어났다. 그렇게 홍 판서가 시작부터 적서차별의 굴레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래도 뻗쳐오르는 성욕 때문이 아니라 용꿈 때문에 그랬다고 홍 판서를 두둔할 분들을 위해 《홍길동전》 본문을 살짝 인용해 보겠다. 아마도 생각이 바뀌실 거다.
 
  〈공이 생각지 못한 때에 위압으로 정을 베푸니 춘섬이 감히 항거치 못하여 드디어 몸을 허한 후에, 그날부터 문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다른 남자를 취할 뜻을 보이지 않으니, 공이 기특히 여겨 인하여 첩(妾)으로 삼으니〉 - 《홍길동전》 (김동욱89장본)
 
  일을 치른 후 만약 춘섬이 여기저기 심부름으로 바깥출입을 하고 이런저런 남자 종들과 말을 섞고 했다면, 홍 판서는 춘섬을 첩으로 삼았을까? 당연히 아니다. 춘섬이 너무나도 ‘기특하게도 몸을 사리고 보존하기에’ 그녀를 첩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너무나도 명백한 한 가지를 말해 준다. 홍 판서는 그 일(?)을 치르려고 할 당시에 용꿈 같은 것은 개나 줘 버렸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춘섬과 동침한 후 그녀의 뜻과 상관없이 즉시 첩으로 삼아 따로 거처하게 하고 조신하게 행동하라고 당부했을 테니 말이다.
 
  모든 것이 단지 성욕이었을 뿐이다. 그 외는 핑계일 뿐이다.
 
 
  자기 존재증명으로서의 활빈당
 
홍길동은 자기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활빈당을 만들어 세상을 소란하게 만들었다. 사진은 1966년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홍길동〉의 한 장면.
  홍길동은 태어나는 과정도 비정상적이었지만 태어난 후에도 정상적이지 못했다. 양반이긴 하나 양반 같지 않은 양반이었다. 적서차별은 표면적으로 호부호형(呼父呼兄) 금지로 드러났지만 핵심은 한정된 수효의 관직으로 인한 사회적 차별 메커니즘이었다.
 
  그래도 판서 집안의 서자라면 먹고사는 것에 문제는 없다. 홍길동이 가출을 하지 않고 그대로 집안에 눌러 있었다면 이런저런 냉대와 멸시, 차별을 받기는 했겠지만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 그가 가출한 것은 그대로 있으면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길동의 생모 춘섬이 느닷없이(?) 첩이 되기 전에 이미 홍 판서에게는 곡산 기생 출신의 초란이라는 첩이 있었다. 홍 판서는 초란을 총애했고 초란은 첩 중에서는 으뜸인 위치였다. 그런데 그녀는 아들을 못 낳았다. 당연히 길동과 춘섬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사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초란이 무당과 관상쟁이 여자를 매수해서 홍 판서를 비롯한 집안사람들의 관상을 보게 했다. 미리 인물의 속속들이 다 가르쳐주었으니 관상쟁이의 말은 백발백중이었다. 그녀의 영험함은 홍길동의 관상을 보는 데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영웅의 기상이 있습니다.”
 
  관상쟁이의 좋은 말이지만 결코 좋은 말이 아니었다. 길동이 영웅이 된다면 곤란했다. 관직에 나갈 수 없는 서자가 어떻게 영웅이 된단 말인가. 그래도 영웅이 된다면 그건… 역적뿐이었다. 이로 인해 홍 판서는 걱정으로 병이 들어 몸져 누웠다. 작전대로 먹히자 초란이 부인과 장자 인현을 공략했다.
 
  “길동을 없애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수단을 강구하겠습니다.”
 
  부인과 인현은 차마 살인을 할 수는 없었지만, 대감이 아프기까지 하자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린다. 부인과 가문의 계승자인 인형의 허락을 받은 초란은 자객 특재를 시켜 길동을 죽이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길동이 오히려 자객을 죽이고 관상쟁이와 무당까지 내처 죽인 후 시체를 초란의 방에 던져 버린다. 죽기 전에 자객이 “너를 죽이라고 한 것이 집안의 결정이다”는 말을 들은 길동은 단순히 초란만의 생각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언젠가 또 다시 기회만 되면 이런 일이 벌어질 거였다. 게다가 지금 살인까지 했으니 이대로 집안에 있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그 밤으로 집을 떠난다. 집은 원치 않은 출생으로 누구도 바라지 않는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자가 있을 곳이 아니었던 거다.
 
  가출한 길동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어떻든 살인을 저질렀고 살인자가 아니라도 제도권하에서 서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는 도적들을 규합하여 활빈당을 만든다. 그리고 제 욕망대로 움직였다. 그건 빈민구제나 제도개혁이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거였다.
 
 
  홍길동의 정치적 시위
 
  ‘활빈당’이란 명칭을 표명하고 조선8도를 다니며 의적이 되어 백성을 구휼하고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을 징치하는 행동의 근본은 기실 정치적 시위였다. 물론 빈민들이 구제되었고 조금 나은 세상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길동이 요구한 것은 근본적인 제도의 개혁이 아니었다. 그는 귀순을 요구하는 임금에게 병조판서 자리를 요구했다.
 
  “소인이 조선8도를 왕래하며 탐관오리와 불의한 짓을 한 자들을 선참후계(先斬後啓)하였사오니, 성상(聖上)께서는 저의 죄를 사하시고 병조판서를 제수해 주옵소서.”
 
  길동의 목적은 분명했다. 가출할 때 품은 마음, 아니 가출하기 전부터 품은 마음이 이것이었다. 활빈당을 만든 목적도 탐관오리를 징치한 것도 모두 이것이었다. 사실 그가 활빈당을 이끌고 한 모든 일은 실제로 병조판서와 같이 국가의 녹을 먹는 관리가 했어야 할 일들이었다. 그런 일련의 탁월한 행동을 통해 ‘누구보다 더 병조판서다움을 스스로 증명’해 낸 것이다.
 
  그렇다고 길동이 무모한 응석받이 이상주의자는 아니었다. 국가 전체의 체제를 뒤흔든 도적이, 그것도 근본도 한심한 서자 주제에, 국정을 마비시킨 정치적 시위와 협박(?)으로 병조판서가 된다면, 그야말로 나라 기강이 결딴나는 거였다.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길동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소인의 한(恨)을 풀어 주시면 신이 즉시 조선 경계를 떠나 성상의 근심과 부형의 근심을 끼치지 않겠나이다.”
 
  길동의 욕망은 이것이었다. ‘나를 인정해 달라’, ‘서자이지만 능력 있는 자를 인정해 달라’는 거였다. 한날한시에 조선8도에서 여덟 홍길동이 떼로 일어나 시끄럽게 했던 것을 기억하고, 언제든지 이렇게 차별받는 능력 있는 존재들이 들고일어설 수 있다는 항거였다. 묵직한 시위였다.
 
  결국 그는 인정받는다. 왕이 병조판서를 제수한다. 그러자 길동은 약속대로 조선을 떠난다. 그렇게 걷잡을 수 없던 혼란이 막을 내린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조선은 평안해졌지만 세계는 더 피곤해졌다. 집안의 작은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더니만 사회문제가 국가문제가 되었다가 이젠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가 되어 버린다. 전쟁이 난 것이다.
 
 
  율도국 정복, 어떻게 볼 것인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
  조선을 떠난 홍길동은 중국 난징(南京) 근처 흩어져 있는 여러 섬[諸島]으로 간다. 그곳에서 요괴를 퇴치하고 요괴가 납치해 간 여성 3명을 구출해서 그녀들과 결연한다. 그렇게 든든한 세 집안의 사위가 됨으로써 그곳에서도 입지를 탄탄히 다진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멈출 줄 모른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갈증처럼 그의 목을 타 들어가게 만든다.
 
  길동이 남쪽에 있는 섬나라인 율도국을 눈여겨본다. 그리고 자신이 양성한, 이제는 엄청난 군대가 되어 버린 활빈당의 무리들을 이끌고 율도국 정벌에 나선다. 전쟁이라곤 한 번도 겪지 않았던 풍요롭고 평안하던 율도국은 불세출의 영웅 홍길동의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율도왕이 목이 잘려 죽고 홍길동이 국가를 평정하고 왕위에 오른다.
 
  이쯤 되면 마음이 곤혹스럽고 복잡해진다.
 
  “아니 해외 정복이라니 대체…?”
 
  확실히 《홍길동전》은 특이한 작품이다. 우리 소설 중 이렇게 외국을 침범해서 그곳을 정복하는 이야기는 없다. 중국 황제를 희롱하는 《최고운전》의 최치원(崔致遠)이나, 일본 왕을 준엄하게 꾸짖고 책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임진록(壬辰錄)》의 사명당(四溟堂)과 같은 경우가 있는 정도였다. 정론과 사리를 들어 비판하고 책망한 거였지 중국이나 일본을 침략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아무르 강 유역까지 가서 러시아와 전투를 벌여 승리하는 《배시황전》 같은 소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도 청(淸)의 요청으로 출정했던 나선정벌(羅禪征伐)이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고, 내용도 외국으로 쳐들어간 것이 아니라 침략하는 적군과 싸워 막아내는 거였다. 그런데 유독 《홍길동전》만 이렇다.
 
  난감함에 율도국 정복을 미화해 ‘해외 이상국 건설’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기도 한다. 꼭 “빈 섬에 들어가 나라를 개척했다”는 것처럼 들리게 말이다. 그래서 박지원(朴趾源)의 《허생전(許生傳)》에서 허생이 도적들을 이끌고 섬에 들어가 개척한 것과 절묘하게 혼선시켜, 길동도 그렇게 한 것처럼 슬그머니 넘어간다. 하지만 아니다. 율도국은 엄연히 왕이 다스리는 나라였고 그 나라를 공략해 정복했다.
 
  “그 왕이 황음무도(荒淫無道)해서 징벌하려고 그런 거 아닐까?”
 
  사실 동양문고본처럼 율도국 왕이 패역한 나쁜 왕이라고 서술한 이본(異本)이 없지 않으나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 노골적으로 홍길동의 욕망을 서술한다.
 
  〈길동이 큰 뜻을 두고 부하들을 날이면 날마다 훈련시키니 무예가 정숙해졌다. 군마(軍馬)가 10만이요 보병(步兵)이 10만이었다. 하루는 길동이 여러 장수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우리가 이제 천하를 횡행해도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내가 들으니 율도국은 부유하고 나라의 형세가 대국(大國)이나 다름이 없다고 한다. 여러 장수들의 뜻은 어떠하냐?”〉
 
  왜 홍길동은 율도국을 정벌했을까? 전쟁에 미친 자여서일까? 조그만 섬에 살기에는 너무 갑갑해서일까? 그 답은 율도국 정복 후, 길동이 조선 국왕에게 보낸 국서(國書)에 “전임 병조판서 율도왕 홍길동”이라며 자신을 드러낸 것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려 한 거였다. 서자로 차별받던 자신이 여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조선 사회에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서자로 태어난 길동은 맘에 품은 욕망이 있었다. 그 욕망에 아버지는 회초리로 때렸고 형은 눈을 부릅떴다. 집안에선 살인 모의가 일어났고 결국 내쳐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제 방식대로 자신을 증명하려 했다.
 
 
  또다른 불행의 씨앗을 뿌리다
 
  부질없는 소리지만 한 가지 상상을 해 보자. 만약 길동이 적자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의 능력으로 미루어 보면 관직에 올라 그야말로 큰 인물이 됐을 거다. 조선 안의 탐관오리들을 척결하고 정치를 바로 세우고 체제를 개혁하는 출중한 영웅이 되었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서자였기 때문이다.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결국 택한 방법은 도적이었고 정치적 시위였고 무력(武力)행사였다. 그 궁극적 모습은 침략과 전쟁이었다. 백성들 편을 든다고 했지만 조선 백성을 버리고 떠났고, 엉뚱한 곳의 행복한 백성들을 크게 불행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억울하고 답답했던 것만큼이나 다른 백성들도 억울하고 답답하게 그냥 당하고 말았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바로 자기 자신 때문에 힘들고 괴로운 일이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너무 멀리 갔다.
 
  비참하고 민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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