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유광수 교수의 우리 고전 비틀기 〈22〉‘거대한’ 경덕왕(景德王)의 소심한 생각

글 :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거대한 성기(性器)를 가졌던 지철로왕(지증왕)의 이야기는 왕권 강화한 군주의 영웅성 상징
⊙ 경덕왕이 신(神)에게 부탁해 얻은 혜공왕, 신하들에게 죽어
⊙ 제정 러시아의 니콜라이2세, 혈우병 앓는 아들에 집착하다가 라스푸틴의 전횡 허용

유광수
1969년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 현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경북 경주 쪽샘지구에 있는 신라시대 돌무지덧널무덤에서 출토된 토우(土偶)장식토기에는 성기(性器)가 한껏 강조된 남자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아무리 의학적으로 생리학적으로 아니라고 해도 도무지 믿지 않는 남자들의 미신이 바로 거대한 성기(性器)에 대한 판타지다. 거대한 성기가 그 크기만큼 엄청난 쾌락을 가져올 거라는, 동시에 상대 여성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워할 거라는 터무니없는 미신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다. 고대(古代)세계에도 그랬는지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보면, 거대한 성기에 대한 이야기가 두 편씩이나 수록되어 있다. 둘 모두 신라왕인데, 지철로왕과 경덕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삼국유사》 ‘지철로왕(智哲老王)’조를 보면 대뜸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시작한다.
 
  〈(지철로)왕은 음경의 길이가 1척5촌이어서 배필을 구하기 어려웠다[王陰長一尺五寸 難於嘉耦]. 그래서 세 방향으로 사람들을 보내 배필을 구했다.〉
 
  《삼국유사》를 읽어 내려가다가 이 구절에 이르면 느닷없이 한 대 맞은 것처럼 억! 하며 놀라게 된다. 그리고 두 가지가 떠오른다. ‘정말 이런 사람이 있어?’와 ‘대체 일연 스님은 이런 소릴 왜 쓰신 거야?’이다.
 
 
  지철로왕의 배필 찾기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거대한 성기 때문에 지철로왕은 배필을 구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 사람을 보내 배필을 구했는데, 어떤 사람이 모량부(牟梁部) 동로수(冬老樹) 나무 아래에 이르렀다. 그가 거기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두 마리 개가 커다란 북만 한 똥 덩어리를 서로 먹겠다고 양쪽 끝을 물고 잡아당기며 난리를 피우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저렇게 거대한 똥 덩어리라니 …!’
 
  사정을 알아보니 “이 마을 대감댁 따님이 여기 와서 빨래를 하다가 숲속에 들어가서 눈 똥입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집을 찾아가 보니, 여자의 키가 7척5촌이 되었다. 이 일을 보고하자 지철로왕이 그녀를 맞이해 부인으로 삼았다.
 
  이렇게 거대한 성기를 지닌 지철로왕의 배필 찾기 이야기가 끝난다. 시작도 끝도 뜬금없는 소리인데, 여기까지 읽고 나면 저절로 의아한 생각이 피어난다.
 
  ‘아니, 성기가 큰 거하고 … 큰 똥을 누는 거하고 … 무슨 관계가 … 으흠 으흠 ….’
 
  좀 겸연쩍은 소리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성기와 똥 덩어리는 큰 관계가 없다. 그래서 거대한 성기를 신화적 요소가 다분한 상징으로 보기도 하고 지철로왕이나 배필이 모두 거인족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지철로왕의 거대한 성기를 사람들은 기괴함이나 흉으로 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신화적 영웅의 요소로 보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그건 현대 남성들의 거물(巨物)에 대한 쾌락적 판타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의미의 영웅성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철로왕은 영웅적 행위를 한 왕으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지철로왕에 대한 기사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지철로왕의 배필 찾기’와 ‘우산국 복속’ 단 둘이다. 즉, 거대한 음경을 지닌 지철로왕이 배필을 맞이한 후 지금의 울릉도인 우산국을 복속했다는 거다. 엉뚱해 보이지만 이 둘은 깊이 연관된 서술이다.
 
  단순히 영웅성이란 말로 뭉뚱그리지 말고, 거대한 성기 문제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거대한 성기를 지닌 왕은 성관계에 곤혹스러웠을 것이고 그건 상대방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욕망인 성욕을 풀고자 함은 그 누구든 방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가 비록 왕이 아니라 해도 그런데, 왕이 성욕은 물론 자손 번창을 핑계로 댈 수 있는 상황이니, 아무리 기세등등한 대신들이라 해도 ‘여성을 고르는 문제’에 함부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마련된 것이다.
 
  즉, 지철로왕이 “이 여성은 도무지 속궁합이 맞지 않아 안 되겠소” 또는 “아무개 대감의 딸은 현숙해서 왕비로는 제격이나 내 물건을 감당하기엔 너무 나약해 보이니 아무래도 안 되겠소”라고 왕이 의도적으로 왕비 선택을 멋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호족 세력이 대단하다손 치더라도 왕이 워낙 거대한 물건을 지니고 있으니 어찌 하겠는가 말이다.
 
 
  지증왕의 왕권 강화
 
신라 시대의 토우. 남녀가 섹스를 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바로 거대한 성기의 비밀은 여기에 있었다. 왕의 배필은 왕이 고르는 것이 아니라 선왕(先王)이나 주변의 권세자들이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이 아니면 여러 여자들을 두루두루 맞이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나라를 세운 패도적(覇道的)인 왕들이 주로 취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고려 왕건이 상당히 많은 호족의 여식을 부인으로 맞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지철로왕은 자신이 배필을 결정했다. 실제로 똥 덩어리가 얼마나 컸는지 어떤지는 사실 중요치 않다. 왕이 자신의 성기를 받아들일 만하다고 ‘우기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산국 정벌이라는 강력한 힘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지철로왕은 지방 세력을 장악해서 중앙집권을 꾀했던 강력한 왕이었다.
 
  ‘지철로’라는 이름이 낯설기에 성기 이야기만 눈에 띄지만, 바로 이 지철로왕의 시호가 ‘지증(智證)’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유명한 신라 22대 지증왕이 바로 지철로왕이다. 64살의 늦은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신라 사회를 안정시키고 지방에 관리를 파견했고, 순장(殉葬)을 금지했으며, 우산국을 복속하고 소를 이용해서 농사짓는 우경법(牛耕法)을 실시해서 농업을 발전시킨 뛰어난 왕이 바로 이 왕이다. ‘신라(新羅)’라는 국호를 확정한 것도 그고 ‘마립간(麻立干)’이란 부족국가적 호칭을 ‘왕(王)’으로 바꾼 이도 바로 이 거대한 성기의 소유자 지철로왕이다.
 
  그의 업적을 요약하면 왕권 강화다. 대표적인 것이 순장 금지이다. 순장(殉葬)은 귀족이 죽으면 부장품은 물론 종들과 주변 사람들을 같이 묻는 제도이다. 이는 끔찍함을 떠나, 그렇게 인력을 낭비(?)하는 것은 국력을 저하시키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목숨이 중앙의 왕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각각의 귀족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리는 표지이자 의례였던 것이다. 그것을 전면 금지시킨 거였다. 이런 그가 있었기에 이후 법흥왕, 진흥왕을 거치면서 신라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결국 지철로왕의 거대한 음경은 괴로움이 아니라 대단한 능력이었던 거다.
 
 
  음경의 길이가 8촌이었던 경덕왕
 
  또 한 명의 거대한(?) 왕은 경덕왕이다. 《삼국유사》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景德王 忠談師 表訓大德)’조는 제목처럼 경덕왕에 대한 기사인데, 앞부분은 충담사와 만나 ‘나라를 잘 다스리는 법’을 듣는 내용이고 뒷부분은 표훈대덕에게 ‘아들을 낳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 우선 뒷부분을 살펴보자.
 
  〈(경덕)왕은 음경의 길이가 8촌이었지만 자식이 없었다[王玉莖長八寸 無子]. 그래서 왕비를 폐위하여 사량부인(沙梁夫人)에 봉하고는, 후비로 만월부인(滿月夫人)을 두었다.〉
 
  〈지철로왕〉 기사를 보았기에 우리는 이 서술의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일단 산술적으로 음경의 길이가 거대하기는 하나, 1척5촌이었던 지철로왕에 비할 것이 아니란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후 내용은 지철로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성을 경덕왕 자신이 의도적으로 고르는 내용이 서술된다. 있던 왕비를 폐하는 이유를 성기의 크기를 핑계로 대듯 말하고 있다. 후비로 들어온 만월부인이 지철로왕과 결합한 모량부 대신의 딸처럼 거대한 똥을 눌 수 있는 인물이었는지는 서술이 없다. 있든 없든 그건 중요치 않다. 사실 이 모든 것이 혼인의 정당성을 위한 정치적 술수와 핑곗거리였을 뿐이니 말이다. 지철로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덕왕의 거대한 성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전술이었던 거다.
 
  실제로 경덕왕은 지철로왕(지증왕)처럼 지방 호족의 어지러움을 타개하기 위해 중앙집권을 위해 노력한 왕이었다고 역사가들은 입을 모은다. 확실히 거대한 음경 이야기는 영웅성의 부각이고 또한 강력한 왕권의 상징이자 실제적인 권력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이야기였던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경덕왕이 처한 정치적 상황은 선대 지철로왕보다 더 힘든 시기였다. 왕비를 바꿨으나 도무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서술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그렇다. 자식이 없자 경덕왕은 애가 탔다. 게다가 자신이 의도적으로 왕비를 바꾼 후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덕왕과 딸 바꾸기
 
출산하는 임산부의 모습을 표현한 신라 시대의 토우.
  그래서 왕은 고승인 표훈대덕(表訓大德)을 청빙해 부탁을 한다.
 
  “짐이 복이 없어 대를 이을 자식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대사께서 천제(天帝)께 청해 아들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시오.”
 
  놀라운 것은 바로 이 표훈 스님이 바로 하늘을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엄청난 양반이었다는 거다. 왕의 부탁에 표훈대덕은 하늘로 올라가 천제께 아뢰고는 다시 땅으로 내려와 경과를 경덕왕에게 말한다.
 
  “천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딸은 가능하지만 아들은 안 된다고 하십니다.”
 
  왕이 다시 부탁했다.
 
  “그 딸을 아들로 바꿔 주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해 달라고 해 주시오.”
 
  경덕왕도 대단한 것이, 자식을 주면 딸이든 아들이든 “고맙습니다” 하고 받으면 그만인데, 글쎄 지금 옥황상제와 딜(deal)을 하자는 거였다. 아무튼 표훈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 천제를 만나 사정을 아뢰었다. 그러자 천제가 말했다.
 
  “딸을 아들로 바꿀 수는 있지만, 그렇게 남자가 된다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표훈이 땅으로 내려가려 하자, 천제가 불러 세웠다. 옥황상제가 그 하는 짓을 보니 계속해서 오르락내리락거릴 것 같았었나 보다.
 
  천제가 말했다.
 
  “하늘과 사람 사이를 어지럽힐 수는 없는데, 네가 지금 하늘과 땅을 꼭 이웃 마을 오가는 것처럼 다니며 천기(天機)를 누설하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다니지 마라.”
 
  엄청난 소리를 들은 표훈은 아무튼 돌아왔다. 그리고 경덕왕에게 천제의 말을 알아듣도록 설명했다. 하지만 왕은 요지부동이었다.
 
  “나라가 비록 위태로워진다 해도 남자 아이를 얻어 대(代)를 이을 수 있다면 좋겠소.”
 
  참 고집불통 양반이다. 이런 말을 표훈대덕이 하늘에 올라갈 수도 없게 되었는데 어떻게 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만월부인이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러자 왕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혜공왕의 비극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아들이 8세가 되었을 때 경덕왕이 죽자 그가 왕이 되었다. 우리가 혜공왕(惠恭王)이라 부르는 이다. 나이가 어려 태후가 섭정을 했지만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옥황상제의 말처럼 나라가 어지러워져 사방에 도적떼가 들끓었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이찬 김지정(金志貞)이 반란을 일으켜 궁성에 쳐들어오자 상대등 김양상(金良相)과 이찬 경신(敬信)이 김지정을 물리쳐 죽였지만 혜공왕은 난병(亂兵)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난을 평정한 그 김양상이 왕위에 올라 선덕왕(宣德王)이 되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선덕왕이 된 바로 그 김양상이 혜공왕을 죽였다고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반란을 일으킨 자를 평정한 자가 왕이 되었다고 하는 보수적 시각을 보이고 있지만 《삼국유사》는 바로 그렇게 어지럽게 난리가 난 통에 혜공왕을 죽이고 그 자가 정권을 장악했다고 말한 것이다.
 
  어떻든 딸에서 아들로 바뀌어 태어난 혜공왕은 찬탈을 당했다. 물론 그 잘못을 《삼국유사》는 〈어린 왕은 원래 여자를 남자로 바꾼 것이어서 첫돌부터 왕위에 오를 때까지 늘 여자 아이들과만 놀며 지냈다. 비단 주머니를 노리개처럼 만들어 차고 도사들과 어울렸다〉며 혜공왕의 탓처럼 말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경덕왕 때문이다. 혜공왕이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 경덕왕이 우겨서 그리된 것이니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혼란스러워진다. 거대한 성기의 대단한 왕이 어떻게 이런 일을 초래한단 말인가? 쉽게 납득이 안 된다.
 
  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잠시 서양으로 가 봐야 한다.
 
 
  괴승 라스푸틴
 
제정러시아를 멸망으로 이끌고 간 괴승 라스푸틴.
  거대한 성기와 나라의 혼란, 그리고 아들에 대한 집착. 이런 요소를 두루 가진 역사적 사건이 20세기 초 유럽에 있었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과 라스푸틴의 농간이다.
 
  라스푸틴(Grigory Rasputin)은 러시아 제정 말기의 악명을 떨친 수도승이다. 일개 떠돌이 수도승이던 그가 니콜라이 2세(Nicholas II, 1868~1918)의 부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Alexandra Feodorovna, 1872~1918)의 신임을 얻어 황궁을 어지럽혔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전쟁에까지 간여해서 러시아를 궁지에 몰아넣었고 결국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과 멸망, 러시아혁명을 촉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라스푸틴을 둘러싼 추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황후를 비롯한 궁정 여인들을 성적으로 농락했다는 것에서부터 눈속임 마술을 부렸다, 최면술의 달인이었다, 실제로 유능한 의사였다 등등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온갖 이야기들이 자극적이고 노골적으로 퍼져 있다.
 
  그중 분명한 것 한 가지는 그의 성기가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라스푸틴을 죽인 황제의 측근들이 그를 죽이고 성기를 잘라 보관한 것이 박물관에 현재도 보관되어 있는데 그 거대함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그의 성기를 보관한 것은 라스푸틴이 황후를 비롯한 궁정 여인들을 농락했다는 스캔들을 공고해서 볼셰비키 혁명을 정당화하려는 요량도 없지 않지만 어떻든 그의 성기가 보통 이상임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즈음에서 야릇한 상상이 가미된다.
 
  “아하, 황후가 라스푸틴에게 빠진 것은 그렇고 그런 일 때문이로구먼.”
 
  이런 생각이 틀렸는지는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
 
 
  황태자의 혈우병
 
  확실한 것은 황후가 라스푸틴에게 사로잡힌 이유가 성적 이유 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니란 점이다. 시작은 전혀 다른 일로 라스푸틴에게 빠져들었다. 왕권 강화, 즉, 알렉세이 황태자 때문이었다.
 
  황제와 황후 사이에는 자식이 내리 딸만 넷이었다. 왕권을 위해서는 아들이 절실했다. 그러다 얻은 아들이 바로 어린 알렉세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귀한 아들이 혈우병자라는 거였다.
 
  혈우병(hemophilia)은 피를 응고시키는 인자가 부족해서 피가 멈추지 않는 유전성 질병이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듯이, 혈우병은 X염색체 열성으로 자손에게 유전된다. 그래서 여성[XX]의 경우, 한쪽 X염색체에 혈우병 인자가 있어도 열성이어서 병이 발현되지 않지만, 남성[XY]의 경우는 별다른 의미 없는 Y염색체로 인해 X염색체의 혈우병 인자가 발현되어 병이 나타난다. 특별한 다른 케이스도 있지만, 아무튼 간단히 말해 혈우병은 여성은 걸리지 않고 남성만 걸리는 유전질환이고, 그 원인은 어머니 쪽 X염색체의 혈우병 인자를 물려받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라 황후의 혈우병 인자는 그 유명하고 위대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Victoria, 1819~1901)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알렉산드라 황후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였다.
 
  황후의 고민과 괴로움은 자신으로 인해 귀하디귀한 아들, 로마노프 왕조의 유일한 계승자인 알렉세이, 이 혼란스런 러시아 정국을 안정시킬 황태자가 병이 들어 피만 흘리면 큰일 나는 아이로 태어났다는 거였다. 그녀의 번민과 낙심, 절망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소한 상처가 나라를 뒤흔들 엄청난 죽음까지 몰고 오는 저주받을 질병이 바로 자신에게서 이어졌으니 말이다. 자신의 탓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 있으니 그 감정은 걷잡을 수 없었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이 바로 요승(妖僧) 라스푸틴이다. 그가 어떤 술수를 부렸는지는 모르나 알렉세이의 혈우병이 멈춘 것처럼 재주를 부렸고, 그로 인해 황후는 그를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이후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흘러갔다.
 
  그토록 사랑하는 알렉세이 황태자는 물론 네 딸과 황제와 황후 모두 총살당해 죽었다. 로마노프 왕조는 멸망하고 러시아는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충담사의 〈안민가〉
 
경덕왕릉. 제공=경주시 관광자원영상이미지
  딸을 아들로 바꿔 달라고 우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경덕왕은 결코 아둔한 인물이 아니었다. 지철로왕처럼 능력 있고 영민한 왕이었다.
 
  앞서 말했듯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조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앞부분은 ‘충성스런 말씀을 잘하는[忠談]’ 충담사(忠談師)라는 스님을 통한 왕권강화 이야기다.
 
  휘황찬란하게 차려 입은 스님을 모시려는 대신들을 물리치고 후줄근한 용모의 누비옷에 삼태기를 진 충담사 스님을 모셔 와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도를 듣는다. 충담사가 들려준 노래가 그 유명한 〈안민가(安民歌)〉이다. 아무튼 그렇게 호족들과 대신들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했는데, 얼마나 태평성대였는지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은 극찬을 한다.
 
  〈(경덕)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24년에 오악삼산(五岳三山)의 신들이 때때로 궁전 뜰에 나타나 왕을 모셨다[王御國二十四年 五岳三山神等 時或現侍於殿庭].〉
 
  이 구절이 경덕왕을 향한 평가라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그가 어찌나 나라를 잘 다스렸는지, 상서롭게도 천지신명이 그의 궁궐에 나타나 그를 모셨다는 서술이다. 이후 내용은 더욱더 경덕왕의 빼어난 안목과 탁월함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죽 이어져 나온다.
 
  이런 경덕왕이 나라를 망치다니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정도이다. 거대한 성기를 지닌 대단한 인물 경덕왕의 패착은 간단하다. 딸이면 나라가 튼튼할 것인데 아들을 달라고 우겼기 때문이다. 제 생각에 아들이면 나라가 튼튼할 것으로 생각했던 거다. 옥황상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잘 아는데, 지방의 드센 호족들을 억누르려면 여자로는 안 돼요. 아들이어야 한다니까요. 뭘 하나도 모르면서 난리야 ….”
 
  어쩌면 옥황상제에게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성기만 믿은 아집과 패착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집은 자가당착이다. 충담사가 〈안민가〉에서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다워야 나라가 평안할 것이다”고 했음을 그는 잊어버렸다. 임금이 도무지 임금답지 않은 집착을 한 것이다. 아니 선대에 훌륭한 선덕여왕, 진덕여왕 같은 이들도 있었는데 왜 그토록 아들만을 고집했단 말인가? 하늘의 분명한 메시지를 거스르면서까지 말이다.
 
 
  ‘여자는 안 된다’는 쪼잔한 생각
 
니콜라이 2세의 가족.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혈우병을 앓은 황태자 알렉세이.
  라스푸틴이 분탕질로 로마노프 왕조가 멸망한 것이 사실이고, 그 배경에 알렉산드라 황후의 어리석은 맹목과 무지, 과잉의식 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라 멸망의 핵심은 황제에게 있다. 결국은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라스푸틴과 황후에게 휘둘린 탓이다. 그가 바른 생각과 확고한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엉망진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황후처럼 아들 알렉세이에게 과잉반응을 보였던 거다. 자신의 네 딸 중에서 하나를 골라 황위를 물려주면 안 되는 걸까? 만약 황제가 딸에게 황위를 물려주려 했다면 황후가 그토록 혈우병 황태자에게 집착하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면 라스푸틴의 전횡이 얼씬도 못했을 것이다. 분명히 말이다.
 
  따지고 보면, 로마노프 왕조의 선대에 예카테리나 2세(Ekaterina Ⅱ, 1729~1796)라는 걸출한 여성 황제가 있었으니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더욱 앞서 말했듯 황후의 외할머니가 위대한 빅토리아 여왕이기도 하다. 그러니 네 명의 딸 중에서 한 명을 골라 황위를 주었다면 그 또한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경덕왕의 내밀한 의도와 니콜라이 2세의 복잡한 생각을 우리가 알 수는 없다. 그리고 또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도 없다. 어떻든 그들이 취한 행동은 남자만이 가능하다는 속 좁은 생각이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그 패착이 그들 왕조, 그들 집안만의 실패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백성들이 그 혼란과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혁명과 난리의 와중에 무수한 백성이 죽고 말았다. 이러니 한탄이 안 나올 수 없다.
 
  그깟 속옷 속의 것이 거대하면 뭐 하겠는가. 고작 생각한다는 것이 겨우 “여자는 안 돼! 남자여야 해!” 같은 쪼잔한(?) 생각들이니 말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712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정기구독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