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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수 교수의 우리 고전 비틀기 〈15〉 낙랑 공주와 메데이아, 그녀들의 정체

글 :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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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수
1969년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 현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의 사랑을 그린 SBS 대하드라마 〈자명고〉.
  〈낙랑 공주와 호동 왕자〉 이야기는 꽤 유명하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해도 될 정도다. 적대적인 두 나라의 공주와 왕자가 만나 서로 사랑하지만, 결국 두 나라가 전쟁을 하면서 비극적으로 끝나고 만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적들이 침범하면 저절로 둥둥둥 울며 소리 내는 자명고(自鳴鼓)의 신비스러움까지 더해져 멋진 로맨스가 되었다.
 
  이는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들의 바람이 만들어 낸 후대의 변형일 뿐, 실상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원전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인데, 오히려 비릿한 막장 정치극 한 편을 보는 느낌이 든다. 《삼국사기》 14 〈고구려본기〉 2 대무신왕(大武神王)조를 살펴보자.
 
  ‘호동(好童)’이란 묘한 이름의 왕자는 고구려 3대 대무신왕의 둘째 부인이 낳은 아들로, “얼굴이 아름답고 고와서 임금이 매우 사랑했으므로 이름을 호동이라고 지었다[顔容美麗王甚愛之故名好童]” 한다. 이 호동 왕자가 대무신왕 15년(서기 32) 여름에 옥저(沃沮)를 살피고 다녔다. 그때 낙랑왕(樂浪王) 최리(崔理)가 그곳에서 호동을 만나게 되었다.
 
  이 낙랑왕 최리가 낙랑 공주의 아버지다. ‘호동’은 왕자의 이름이지만, ‘낙랑’은 공주의 이름이 아니라 나라 이름일 뿐이다. 이야기의 비극적 주인공인 여성의 이름은 ‘낙랑 공주’처럼 나라의 이름에 기대거나, ‘최리의 딸’처럼 출생에 기대어 서술되고 있다. 《삼국사기》 서술에선 중요한 인물이 아니란 거다.
 
 
  낙랑 공주와 자명고(自鳴鼓)
 
  이 ‘낙랑국’이 한(漢)나라 4군 중 하나인 낙랑인가 아닌가를 두고, 고대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분분하다. 아무튼 옥저에서 호동을 만난 낙랑왕 최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 얼굴을 보니 예사 사람이 아니로구나. 혹시 그대가 북국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닌가?”
 
  ‘북국 신왕’은 고구려 대무신왕을 일컫는 것으로 고구려 왕자냐고 묻는 말이다. 그가 고구려 왕자란 것을 알게 된 최리는 호동을 데리고 낙랑으로 간다. 그러고는 자기 딸, 즉 낙랑 공주를 아내로 삼게 했다. 그 후 호동이 고구려로 돌아가는데, 가서는 몰래 낙랑 공주에게 사람을 보내 일렀다.
 
  “당신 나라 무기고에 있는 북과 나팔을 부숴 버릴 수 있겠소? 만약 그런다면 내가 예를 다해 당신을 맞이하겠소.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당신을 받아들일 수 없소.”
 
  평소 호동이 공주와 진한 사랑의 밀어를 얼마나 나눴는지는 모르겠지만, 《삼국사기》 기록에서 호동이 공주에게 한 말은 이것이 유일하다. 누가 봐도 정략적 이용이지 달달한 로맨스는 아니다.
 
  호동의 ‘미모’에 빠져 그랬는지, 아버지 최리를 배신하고 싶어선지, 그도 아니면 낙랑국에 진절머리 나서 고구려로 가볼까 하는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공주는 호동의 말대로 몰래 무기고에 들어가서 북을 찢고 나팔을 부숴 버린다. 고구려는 낙랑국을 침범했고, 미리 준비치 못했던 낙랑은 대패하고 만다. 공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낙랑 공주는 분노한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했다.
 
  어느 경우든 〈낙랑 공주와 호동 왕자〉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이 없다. 정치와 모략, 배신과 이해타산이 난무할 뿐이다. 《삼국사기》 문면을 살펴보면 정치적 엎치락뒤치락하는 모략 냄새가 물씬하다. 결과는 자기 손으로 자기 나라 신물(神物)을 깨뜨린 공주의 비극적 죽음과 멸망의 초래다.
 
 
  호동 왕자가 자살했다고?
 
요셉을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 귀도 레니(Guido Reni), 1630년작, 유화, 129×170cm.
  낙랑국을 격파한 이후 호동은 어찌 됐을까? 대무신왕을 이어 왕위를 계승했을까? 《삼국사기》는 그가 낙랑국을 격파한 바로 그해 겨울 11월에 자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말했듯이 호동은 대무신왕의 둘째 왕비의 소생이었다. 본래 잘생겨서 호감이 높았던 이 왕자의 인기가 날로 치솟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대무신왕의 첫째 왕비가 자기 소생이 호동에게 밀리는 것을 보고 호동을 모함했다. 왜 적통인 첫째 왕비의 소생보다 둘째 왕비 소생인 호동이 왕위 쟁탈전에서 급부상한 것일까? 호동이 옥저에 가고 낙랑에 억류되고 낙랑 공주를 압박하여 자명고를 부수고 결국 낙랑을 파멸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당연히 첫째 왕비는 위기감을 느꼈다.
 
  첫째 왕비가 왕에게 모함하는 말을 했다.
 
  “호동이 저에게 무례하게 굴며 자꾸 음행(淫行)하려 합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다.
 
  “너는 호동이 다른 이의 소생이라고 미워하는 거냐?”
 
  왕이 믿지 않자, 첫째 왕비는 자신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울면서 매달렸다.
 
  “왕께서 몰래 엿보세요. 만약 그런 일이 없다면 제가 벌을 받겠습니다.”
 
  결국 왕은 호동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호동에게 죄를 주려 했다.
 
  어떤 이가 호동에게 “왜 스스로 해명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호동이 대답했다.
 
  “내가 만일 해명하면 어머니의 죄악을 드러내는 것이고, 왕께 근심을 더해 드리는 것이니 이를 어찌 효라고 하겠는가.” 그러고는 그대로 칼에 엎어져 자살하고 말았다.
 
  일단 왕비가 자신을 강간하려 했다고 모함하는 것부터가 충격이다. 옛날에는 왕이나 권세자였던 아버지의 첩들은 그대로 다음 대를 이을 자가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를 증(蒸)이라 한다.
 
  지금 관점이라면 첫째 왕비의 말에 대무신왕이 음행에 초점을 두고 발끈해서 앞뒤 사정도 보지 않고 분노할 테지만, 대무신왕은 “다른 이의 소생이라고 미워하는구나”라고 차분히 말했던 것이다. 첫째 왕비의 말은 문자 그대로 강간하려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다는 점을 말했고, 그것은 성적 문제임이 분명한 것이다.
 
  당시 사회 상황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이 말은 왕의 권력을 넘본다고 모함을 하는 측면에서 “호동이 제가 이미 왕이 된 듯 마구 행동합니다”라는 뜻의 말이다. 다시 말해, “정당한 왕위 계승자로 인정받지 않은 상황이고, 게다가 대왕께서 번연히 살아계시는데도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행동합니다”라고 말한 거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셉이란 자가 이집트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할 때, 보디발의 처가 요셉을 모함하려고 “요셉이 자꾸 강간하려 한다”라고 참소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다. 보디발도 어쩔 수 없이 요셉이 신실한 인물인지는 알지만 감옥에 잡아넣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낙랑국을 격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호동은 자신의 목적인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하고 만다.
 
  아무튼 어느 정도 이야기의 궁금함은 풀렸다. 하지만 신기한 기물(器物), ‘자명고’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정사(正史) 《삼국사기》에 번듯하게 기록되어 있으니 마냥 무시할 수도 없고…, 대체 자명고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낙랑 공주와 호동 왕자〉의 유럽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슷한 메데이아와 아르고 원정대의 대장 이아손, 그리고 황금양털 이야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아손에 반한 ‘악녀’ 메데이아
 
남편의 배신에 대한 복수와 자식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번민하는 메데이아가 자식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앙리 클라그만, 1868년작, 유화. 프랑스 낭시 박물관 소장.
  메데이아(Medea)는 서양의 많은 그림에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한 마녀 또는 악녀이다. 그녀가 자기 동생을 토막 내 죽인 것이나 제 소생의 두 아들을 찢어 죽인 것을 생각하면, 마녀까지는 몰라도 악녀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전승에 따르면 메데이아는 모든 마녀의 우두머리인 헤카테(Hecate)의 딸로 언급되기도 한다.
 
  메데이아는 콜키스(Colchis)의 공주였다. 그런 그는 황금양털을 가지러 아르고 원정대를 조직해서 이 먼 콜키스 땅까지 온 이아손(Iason)을 보고 홀딱 빠지고 만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인 콜키스 왕 아이에테스(Aeetes)가 낸 어려운 숙제를 이아손이 풀도록 도왔다. 결코 잠들지 않는 용이 지키는 성스러운 숲의 떡갈나무에 걸려 있는 황금양털을 탈취할 수 있게까지 해준다.
 
  이아손은 그녀에게 달달한 말을 한다.
 
  “그대는 내 왕비가 될 거요. 내가 황금양털을 거두어 올 때가 바로 그때요. 당신은 나와 함께 아르고호를 타고 가게 될 거요.”
 
  메데이아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아손은 황금양털은커녕 콜키스에서 죽을 운명이었다. 아르고 원정대의 성공은 결국 메데이아의 적극적인 개입과 주도적인 역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금양털을 탈취한 이아손이 아르고호를 타고 돌아갈 때도 메데이아가 없었다면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 황금양털을 가져간다는 것을 알게 된 콜키스 왕이 아르고호를 추격했는데, 그때 메데이아가 자신의 남동생 압시르토스(Apsyrtos)를 토막 내서 바다 여기저기에 던져 버린다. 아들의 시체를 모두 모으지 않으면 장례를 치를 수 없었던 콜키스 왕은 이리저리 시신을 수습하느라 지체하게 되고, 결국 아르고호를 따라잡지 못해 영영 황금양털을 뺏기고 만다.
 
  메데이아가 동생을 죽이지 않았다면, 아니 그전에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동생을 같이 태우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이아손은 메데이아와 황금양털을 가지고 귀국한다.
 
  본래 이아손은 이올코스(Iolcos)의 왕자였다. 그 왕위를 숙부 펠리아스(Pelias)가 뺏었던 것인데, 돌려달라는 말에 “황금양털을 가져오면 주겠다”고 해서 아르고 원정대를 조직해서 그 먼 곳까지 다녀온 거였다. 찬탈한 펠리아스의 생각은 이아손이 당연히 그곳까지 가다가 죽든지, 가는 동안 늙어 그만두든지, 아무튼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번연히 살아서 그것도 당당하게 임무를 완수해서 귀환했으니 난감했다.
 
  차일피일 미루며 버티기를 시도했다. 이때 다시 메데이아가 전면에 등장한다. 그녀는 펠리아스의 딸들을 찾아가서는, 남편 이아손과 크게 다퉜는데 이아손이 자신을 죽이려 하니 보호해 달라며 그녀들의 환심을 산다. 그런 후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자신이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마법을 안다고 한다.
 
  “그대들의 아버지 펠리아스가 저리 늙으셨으니, 이대로라면 돌아가신 후 나라가 저 밉살스런 이아손에게 넘어가고 말 거예요.”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는 딸들에게 메데이아가 늙은 양을 가지고 시범을 보인다. 늙은 양의 목을 따서 피를 쏟아낸 후, 갖은 약재로 만들어 놓은 마법의 약을 담은 항아리에 넣고 끓이자, 세상에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뿔이 단단한 젊은 숫양이 펄쩍 뛰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황금양털을 가져올 때 메데이아가 벌였던 무용담은 이미 소문이 나 있었다. 대단한 마법사라는 소문을 이렇게 눈앞에서 분명하게 확인하니 그녀들이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아버지 펠리아스를 젊게 만드는 시술(?)에 들어간다. 그렇게 늙은 펠리아스는 목이 따인 채로 항아리에 담긴다. 하지만 그는 다시 젊어지지 않는다. 그 항아리에 담긴 것은 신비한 약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펠리아스는 죽고 드디어 왕국은 이아손에게 넘어간다.
 
  그럼 이후 메데이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아들 둘을 낳는다. 하지만 곧 이아손은 다른 여자에게로 눈을 돌린다. 이아손이 메데이아를 버리고 코린토스(Corinth)의 공주 글라우케(Glauce)와 결혼하려 한다.
 
  메데이아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분노한 메데이아는 남편의 새 결혼식 날 새 신부 글라우케의 옷에 독을 발라 그녀를 살해한다. 그리고 글라우케의 아버지인 코린토스 왕 크레온(Creon)도 죽게 만든다. 자신의 아들이자 이아손의 적자인 두 아들마저 죽여 버린다. 왕의 대를 끊어 버린 것이다.
 
  메데이아는 분노한 이아손을 피해 날개 달린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아테네로 가서 아이게우스 왕과 결혼한다. 그러나 아이게우스의 아들 영웅 테세우스가 돌아오자 다시 쫓겨나, 결국 그녀의 고향인 콜키스로 돌아간다. 돌아가서 자신이 배신했던 아버지가 그 일로 나라를 뺏겼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나라를 되찾게 한다. 메데이아의 최후가 어땠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다만 그녀가 자신이 왔던 ‘동쪽 나라’로 돌아갔다는 것뿐이다. 예전 중동아시아에 있던 ‘메디나’라는 나라의 이름이 그녀에게서 온 것도 이 때문이다.
 
 
  황금양털이 의미하는 것
 
메데이아(왼쪽)가 용에게 약을 먹이는 사이, 이아손(오른쪽)이 황금양털을 끌어내리고 있다.
  메데이아를 생각할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다. 콜키스는 그리스에서 보면 너무나도 멀고 먼 나라였다. 그곳엔 올림포스(Olympos)의 대장장이 재주꾼 신인 헤파이스토스(Hephaistos)가 팠다는 네 개의 샘도 있었다. 밤낮 우유가 솟는 샘, 포도주가 솟는 샘, 향수가 괴어 흐르는 샘, 더운물이 용솟음치는 샘. 이 모두 꿈 같은 것들로, 이런 콜키스 땅이야말로 인간들이 살기에 좋은 기가 막힌 파라다이스 같은 신비의 나라였다.
 
  메데이아는 왜 그런 곳을 버리고 외지에서 온 이아손을 따라갔을까? 왜 아버지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황금양털을 이방인에게 주어버렸을까? 이제 우리는 잠시 잊고 있던 ‘황금양털’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대체 황금양털은 무엇일까?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탈취하는 순간, 황금양털은 이야기에서 사라진다.
 
  그 황금양털은 이아손이 가져간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궁금해하지 않는다. 누가 소유했는지, 어디에 두었는지 말이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메데이아가 마법사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녀가 지닌 마법의 연원은 어디일까? 어떻든 그토록 강력한 마법을 그리스 사람들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오직 콜키스의 메데이아만 한다는 사실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콜키스는 이방의 신비로운 곳이다. 앞서 말한 대로 신기한 샘들이 넘쳐나고 용이 있고 황금으로 된 양의 털이 있는 곳이다. 이런 신비한 이국적 나라에서 황금양털이 탈취된다. 그러자 곧 콜키스의 왕은 실각한다. 다시 메데이아가 돌아와 회복시키기까지 말이다.
 
  이제 곰곰이 메데이아가 한 일을 떠올려보자. 동생을 토막 내고 자식을 찢어 죽이고 그리고 젊음을 되돌리는 마술을 부린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함으로써 일정한 결과를 도출해 냈다. 즉 그런 행동은 단순한 살인, 광기가 아니라 일종의 의례(儀禮)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메데이아의 마술은 의례였고 제례였다.
 
  그런 마술적 제례를 통해 메데이아가 이룩한 결과적 성취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라. 그건 이아손에게 왕권을 되찾아준 것이다. 자, 이제 ‘황금양털’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황금이 신의 존재라는 것은 신화에서는 상식이다.
 
  기독교가 맹위를 떨치기 이전의 콜키스 지방에 있는 숫양이라면, 더욱 그것이 황금으로 된 것이라면 그건 무엇을 상징할까? ‘황금’은 그야말로 왕이 되기 위한 핵심이고 ‘양털’은 마술적 의례의 신성한 요소이다.
 
  황금양털이야말로 동방 콜키스의 왕권이자 신권이며, 권력이며 제례를 통한 종교적 중심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콜키스 종교의 행위들은 그리스 입장에서는 ‘사악한 마술’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콜키스 종교의 핵심이 황금양털로 수렴되고, 그 마술적 종교의 제사장이 바로 메데이아였던 거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숭배의 본질 황금양털이 곧 메데이아였던 것이다. 그래서 황금양털이 탈취되자 그것은 종적을 감추고 메데이아 이야기만 주야장천 나왔던 것이다. 메데이아가 이아손의 왕권을 되찾아줬고, 다시 콜키스로 돌아가 무너진 아버지의 왕권을 되살렸다. 메데이아가 있는 곳, 다시 말해 황금양털이 있는 곳, 콜키스의 마술적 종교제의가 있는 곳이 바로 왕권이 서는 곳이었던 거다.
 
 
  고상한 꿍꿍이
 
  이아손이 메데이아를 내치고, 아테네에 잠시 있었지만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쫓겨나고, 결국 동방의 본래 곳으로 왔다는 것은, 메데이아로 대표되는 콜키스의 종교제의가 그리스에 수용되었으나 그것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밀려나는 정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르고 원정대와 이아손, 그리고 메데이아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리스 신화〉의 맨 첫 장면을 생각해 보라. 애초부터 황금양은 그리스가 아닌 이방에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아타마스(Athamas) 왕의 첫째 왕비 네펠레(Nephele)가 자신이 낳은 쌍둥이 남매 프릭소스(Phrixos)와 헬레(Helle)가 왕이 새로 얻은 왕비 이노(Ino)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봐 신에 기도하자 신이 보내준 것이 황금양이었다. 이 황금양에 남매를 태우자 양이 날아서 간 곳이 바로 콜키스다. 가는 도중 동생 헬레가 양에서 떨어져 죽은 바다는 그녀의 이름을 따서 ‘헬레스폰토스’가 되고, 콜키스에 도착한 프릭소스는 황금양을 잡아서 제물로 바치고 그 황금양털은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 우리가 잘 아는 메데이아의 아버지에게 바친다.
 
  이제 낙랑 공주를 생각해 보자. 자명고가 찢어졌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 낙랑 공주가 제 나라 낙랑국을 위해 일하지 않고, 고구려가 침범하는 데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리지 않은 것이다.
 
  정치와 모략은 힘을 가진 자들의 술수이다. 그들의 움직임에 부수적으로 따랐던 것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에겐 한없이 하찮다. 그들에겐 모든 것이 수단이었고 모두가 방편적 우호이고 친교였기 때문이다. 이아손은 나라를 찾았고 호동은 조국 고구려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 가운데 그들은 메데이아를 버렸고 낙랑 공주의 마음을 짓밟았다. 그들은 애초에 목적이 그녀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와 결연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메데이아를 이용해서, 황금양털을 탈취해서, 나라를 되찾겠다는 ‘고상한 꿍꿍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꽃미남 호동 역시 마찬가지다. 낙랑 공주를 꼬드겨서 제 나라를 배신하게 하는 것은 전략적 방편이었다. 호동의 속셈은 낙랑을 무너뜨리고 그 공으로 고구려의 왕위를 계승하고자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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