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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석의 山이야기

셰르파니콜~메라라 트레킹 〈1〉 툼링타르~타시가온~마칼루 BC~셰르파니콜

가장 히말라야다운 히말라야

글·사진 : 한필석  전 《월간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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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르파니콜(Sherpani Col), 세계 제5위 고봉인 마칼루(8486m) 베이스캠프에서 에베레스트가 위치한 쿰부히말 사이의 내원으로 들어서는 관문
⊙ 산골 마을 장악한 마오이스트들, 트레커들에게 헌금 강요
⊙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네팔 셰르파들, 동생이나 형제가 山行 중 어려움 당해도 안 도와줘
셰르파니콜 이스트콜로 향하는 일행. 바위능선 오른쪽 끝에 이스트콜이 있다.
  히말라야에는 고봉(高峰)도 여럿 솟아 있지만, 콜(Col), 라(La), 패스(Pass)로 표기된 고개도 많다. 오래전부터 능선 너머 마을로 가기 위해 현지인들이 넘던 고개들이다. 이제 유명 고개들은 트레일을 잇기 위한 경로로 트레커나 클라이머들이 이용하고 있다. 그중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가 위치한 쿰부히말의 렌조라(Renjo La·5345m)나 촐라라(Chola La·5330m), 안나푸르나의 토롱패스(Thorong Pass·5416m), 다울라기리의 프렌치패스(French Pass·5360m), 랑탕히말의 수르자쿤드패스(Surjakund Pass·4640m) 등은 우리 트레커나 산악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고개들이다.
 
  반면 셰르파니콜(Sherpani Col·6110m)은 우리 등산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고개다. 세계 제5위 고봉인 마칼루(8486m) 베이스캠프(이하 BC)에서 에베레스트(8848m)가 위치한 쿰부히말 사이의 내원으로 들어서는 관문이랄 수 있다. 높이와 거친 절벽, 예기치 못한 악천후 등으로 인해 한 시즌에 5개 팀이 시도하면 3개 팀 정도밖에 성공하지 못할 정도로 힘든 고개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일단 넘어서면 그 어려움에 상응하는 대자연이 맞아주는 코스다. 가장 히말라야다운 히말라야, 은밀한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인 것이다.
 
십튼패스 너머 양리카르카 부근의 바룬계곡. 일행 뒤로 세계 제5위 고봉 마칼루가 솟아 있다. 왼쪽 바위산은 ‘임산모’란 의미의 아마푸줌(P7, 6185m)이다.
  셰르파니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1999년 가을, 마칼루 BC 트레킹 때였다. 해발 5600m 높이의 캠프에서 박영석 원정대원들과 마신 술이 고소증세로 이어져 물 한 모금 못 마신 채 마을로 내려서던 중 만난 스위스 팀 대원 한 명이 목적지를 묻더니 “셰르파니콜을 두고 왜 왔던 길로 되돌아가느냐”고 반문했다.
 
  그땐 고소증세가 너무 심해 아무 생각 없었다. 그 패스가 다시 떠오른 것은 귀국 후 사무실에 앉아 기사를 쓰기 위해 마칼루 지도를 들여다볼 때였다. ‘해발 6100m’ 고개가 2곳이나? 트레킹이 아니라 등반길이다 싶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렇게 마음에 묻어두고 있다가 4년이 지난 2003년 봄(3월 19일~4월 6일) 마칼루-바룬 지역 트레킹 기점인 툼링타르(Tumlingtar·410m)에서 출발, 마칼루 BC(4800m)~셰르파니콜~메라라(Mera La·5413m)~제트라라(Zetra La·5010m)~루크라(Lukla·2800m)를 잇는 트레킹에 나섰다.
 
 
  히말라야의 소형 버스
 
해발 410m 높이의 툼링타르 공항. 2003년만 해도 잔디밭 활주로였다.
  사람 마음은 간사하기 이를 데 없다. 히말라야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들도 어서 빨리 문명의 혜택을 보고, 보다 나은 삶을 누리기를 바라곤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100년이 가도 1000년이 가도 히말라야의 자연만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양면성은 툼링타르에 도착하는 순간 또다시 드러났다.
 
  고교 동창 석상명은 카트만두를 출발한 경비행기가 내려앉은 툼링타르공항 풀밭 활주로를 벗어나자 공항 앞 로지 쪽을 가리켰다. 소형 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지난해(2002년) 초부터 툼링타르에서 마칼루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인 칸드바리(Kandbary·1040m) 한 시간 위에 위치한 마을까지도 차가 다니고 있었다. 마칼루 지역이 고향인 쿡(주방장) 왕추 역시 놀라는 표정이었다. 1999년, 가을 곡식뿐 아니라 건축자재까지도 바짝 마른 현지인들이 등짐으로 올리던 구간이었건만, 이제는 경적 요란하게 울리는 차들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지프에 짐을 실은 채 칸드바리를 향하는 스태프들. 13km 거리를 1인당 50루피(약 885원)에 태워준다.
  툼링타르에 대기하던 포터들과 모든 짐을 싣고 칸드바리까지 가기로 했다. 포터 13명에 짐 500kg을 실은 지프는 1300루피(2003년 당시 약 2만3000원)로 굽이굽이 산길을 13km 달려 50분 만에 칸드바리에 올라섰다. 퉁퉁한 몸매에 청바지와 단화 차림의 운전사는 언덕이나 길이 휘는 지점이 나올 때마다 요란스럽게 경적을 울려댔다.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힘겹게, 아니 고통스럽게 칸드바리로 향하던 현지인들 모습이 떠올랐다. 그나마 등짐 벌이로 생활하던 그들은 이제 어떤 일로 먹고살까 걱정스러워졌다.
 
  이튿날 오전 7시부터 트레킹이 시작됐다. 석상명, 장경관, 필자에 클라이밍 셰르파 2명과 쿡, 키친보이, 그리고 포터 16명 등 총 23명에 이르는 많은 인원이지만, 삼삼오오 떨어져 걷다 보니 그리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부르주아와 문학은 없어져라!’
 
무레의 한 농가에서 곡식 껍질을 벗겨내고 있는 주민들.
  보테바시(Bhote Bash·1730m)를 거쳐 해발 2000m대 능선에 올라서자 기온이 뚝 떨어졌다.
 
  “오늘 우루루까지는 가야 하는데 너무 느릿느릿 걷네. 치치라에서 머물면 차질이 많을 텐데….”
 
  첫날부터 포터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치치라(Chichira·1980m)에서 3시간쯤 더 걸어 우루루(Ururu·2000m)까지 가야 예정대로 사흘 만에 마지막 마을인 타시가온(Tashigaon·2100m)에 도착할 수 있는데, 첫날부터 차질이 생긴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 치치라에 닿는 순간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곧 콩알만 한 우박이 쏟아진다. 하늘도 오늘은 여기서 끝마치라는가 보다.
 
  “여기도 마오이스트들이 접수했나 보네요.”
 
  마을 입구 장대에 빨간 휘장이 걸려 있어 불길했는데 집마다 벽에 빨간 글씨가 적힌 노란 종이가 붙어 있다. 우측 상단에 도끼와 낫이 엇갈려 그려 있고, 그 오른쪽에는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毛澤東), 그리고 낯선 이들의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다. 그 아래에는 ‘부르주아와 문학은 없어져라!’는 내용의 글귀가 적혀 있다.
 
툼링타르 공항 부근의 가게에서 재봉틀로 옷을 수선하는 노인.
  마칼루 지역은 1998년 말까지 트레커나 등반대들이 마오이스트(마오쩌둥주의자)들에게 봉변을 당하곤 했던 곳이다. 마지막 마을인 타시가온에 도착하면 마오이스트들이 1인당 5000루피씩 헌금을 강요하고, 이를 거절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롭혔다 한다. 한국어에 능숙한 왕추는 “마오이스트들 때문에 트레커들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마오이스트란 단어를 쓸 때마다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우리 잠자리는 다 허물어져 가는 민가, 겨우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석상명, 장경관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방충제를 뿌려댔다. 트레킹 때마다 벼룩에게 워낙 고생했기 때문이다.
 
  마칼루 트레킹은 다른 고봉 트레킹에 비해 힘이 많이 든다. 해발 410m의 툼링타르 공항에서 2000~2100m 높이의 능선에 올라섰다 다시 700m대의 아룬강(Arun River)으로 내려선 다음, 세두아(Sedua·1500m)와 타시가온, 카우마(Kauma·3500m)를 거쳐 4170m 높이 십튼패스(Shipton Pass)를 넘어 또다시 1000m 아래 바룬강(Barun River)으로 내려선다. 그다음 고도 1600m를 올라야 마칼루 당말 BC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러고서 지루한 돌밭길을 따르고 눈밭을 가로질러 1300m 이상 올라서야 셰르파니콜에 닿는다.
 
  치치라, 무레(Mure·1950m), 눔(Num·2100m), 바나나 산지인 룸루마(Lumruma·1050m), 세두아, 섹시단다(Sheksydanda·1800m)의 가옥과 주민들은 4년 전 필름을 다시 돌리는 듯 변한 게 없다. 단지 룸루마와 세두아 사이의 숲지대가 벌목으로 많이 훼손되고, 세두아에 있던 경찰서와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마오이스트들을 피해 폐쇄됐을 뿐이다.
 
 
  돼지 잡은 날
 
마칼루 BC 트레킹상 마지막 마을인 타시가온(2100m). 쿰부히말과 마칼루 양 지역을 대표할 만큼 강한 셰르파들이 사는 부락이다.
  3월 22일 타시가온에 닿은 일행은 현지인들과 단합 파티를 벌였다. 파티라야 3500루피짜리 흑돼지 한 마리 잡아 고기를 나누어 먹으면서 눈인사를 나누는 것. 내일부터 카르카(Kharka·목초지) 외에는 주거지나 주민을 만날 수 없다. 그래서 고기 몇 점으로나마 잘 부탁한다는 인사차 돼지 파티를 연 것이다.
 
  돼지 잡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동네는 파티 분위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돼지는 숨이 끊어지고, 불에 그슬려 털이 벗겨지고,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낸 다음 부위별로 해체된다. 내장은 돼지 원주인의 몫. 우리는 돼지고기를 굽고 삶고 볶고 다양하게 요리해 먹지만, 이들은 오로지 커리(curry)에 넣어 먹는다. 이들의 주 음식은 달밧타카리(Dal-bat-taarkari), 달은 녹두죽(국), 밧은 쌀밥, 타카리는 야채를 양념과 섞어 익힌 것을 말한다. 커리가 나오면 대개 달을 뺀다. 커리는 우리가 먹는 카레와 비슷하다.
 
  “샹가이 자네~”
 
  이튿날 “함께(샹가이) 가자(자네)”고 네팔말을 건네니 현지인들은 자기 나라 말을 한다며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이제 십튼패스만 넘어서면 마칼루 내원으로 들어선다. 마칼루 지역 주민들도 십튼패스 너머는 다른 세계로 생각한다. 주민들이 봄부터 늦가을까지 야크와 양, 염소를 방목하기 위해 들어서는 곳이다. 풀이 자라는 카르카 일원에는 움막이 들어서 있는 등, 임자가 정해져 있다. 카르카 주인 대부분이 거주하는 타시가온은 마칼루 지역에서도 거칠기로 이름나 있다.
 
  현지인들에게는 이 정도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이색적인 곳이다. 지형과 기후, 분위기 등 모든 것이 십튼패스를 경계로 양쪽이 다르다. 빙하수가 거칠게 흘러내리는 골 좌우에는 하얀 산들이 도열해 있고, 수천 길 절벽에는 어마어마한 폭포수가 걸려 있다. 산 아래는 초록빛을 띠고 있는데 위쪽은 순백의 눈으로 반짝여 아름답고도 신비스럽다.
 
 
  소녀 셰르파 락파
 
카우마 직전 능선에서 현지인들과 기념촬영한 일행(앞줄 왼쪽 석상명, 오른쪽 장경관). 17세 소녀 락파가 제법 추운 날씨에도 어깨 없는 옷을 입은 채 웃고 있다.
  오늘은 카우마까지 오른다. 표고 1400m를 올려쳐야 한다. 우리에 앞서 영국 트레커들이 출발한다. 다섯 명 가운데 남녀 두 사람만 젊고, 나머지 세 사람은 60세 전후다. 원시림 우거진 숲길을 따라 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는 사이 카우마 직전 다라카르카(Dhara Kharka·2800m)에 닿았다.
 
  키친보이 치링 셰르파가 마련해 준 김밥으로 점심을 먹은 뒤 발길을 옮기자마자 눈밭이 펼쳐진다. 원시림 속 눈밭이다. 눈이 깊은 곳은 디디기만 하면 허벅지까지 푹 빠져든다. 30kg이 넘는 무거운 짐을 진 포터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포터들은 깊이 빠져들어 몸이 기우뚱거릴 때마다 서로 웃음을 지으며 즐거운 표정을 잃지 않는다.
 
  지능선 안부인 운시사(Unshisa· 3100m)에 올라서자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강한 바람에 안개까지 몰려들고 눈이 더욱 깊어진다. 앞에서 여러 사람이 눈길을 다져놓아도 밟으면 푹푹 꺼져 들어 힘을 빼낸다. 우리에 앞서 마칼루 BC에 진입하는 등반대가 있기를 바랐건만 우리가 올 시즌 첫 팀의 ‘영광’을 안고 말았고, 오늘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와~ 반팔 아니야. 이거 기죽이는데….”
 
  타시가온부터 함께 올라온 17세 소녀 셰르파 락파는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보란 듯이 카우마 직전 능선 안부에 앉아 있다. 막내 남동생 역시 힘이 넘쳐 설사면(雪斜面)이 나타나면 미끄럼을 타며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등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셰르파들과 왕추, 치링도 락파의 옷차림에 재미있어 한다. 락파의 집은 2남 4녀의 딸부잣집으로 이름난 로지다. 막내딸인 락파뿐 아니라 언니들 모두 미모에 영어 솜씨가 뛰어나 마칼루를 등반한 한국 원정대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영국의 ‘부자 트레킹단’
 
겨우내 깊은 눈에 덮인 카우마 대피소. 눈삽과 피켈로 눈을 걷어 낸 뒤에야 문을 열 수 있었다.
  능선에 올라선 이후 급경사 오르막을 채니 카우마(3500m) 정상이다. 앞서간 현지인들이 안부에서 왼쪽 사면으로 올라붙는다. 이들이 멈춘 곳은 이태 전 새로 지은 찻집 겸 대피소다. 오후 3시20분, 타시가온 출발 7시간 만에 고도 1400m를 올린 셈이다. 막내인 장경관은 지리산 천왕봉(1915m)이 최고 도달점인 자신으로서는 “한 발 한 발이 기록 경신이었다”며 즐거워한다.
 
  대피소는 깊은 눈에 묻혀 문을 열 수 없는 상황. 피켈과 눈삽으로 20분 이상 눈을 파낸 다음에야 겨우 문을 연다. 대피소 안에 들어가자마자 락파는 겨우내 쌓인 먼지를 털어낼 생각은 않고 쪄서 발효시킨 고도(millet·기장과 흡사한 곡물)를 자루에서 꺼내 채에 얹은 다음 동생이 떠온 눈 녹인 물을 부어 창(chang·막걸리와 비슷한 곡주)을 만들어낸다.
 
  현지인들이 창에 취해가는 사이 대피소 맞은편 능선 위로 올라섰다. 비록 그늘져 있지만 십튼패스 일원의 침봉(針峰)들은 창날처럼 날카롭게 치솟아 있다. 우리는 대피소 위쪽 돔형의 궁가르라(Gungar La·3603m)에 올라선 다음 능선을 따르다 침봉 사이의 안부를 넘어서야 한다. 이제 히말라야 품 안에 들어선 기분이다. 속세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풍광이 지금 이곳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우리도 꽤 비싼 트레킹을 하고 있지만, 영국팀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는 셰르파 2명과 쿡·키친보이와 포터 14명으로 이루어졌지만, 텐트도 낡고 포터들의 옷차림도 지저분한 게 가난한 트레킹단이다. 반면, 멤버 5명에 현지인 25명으로 이루어진 영국팀은 멤버 1명당 텐트 1동을 치고, 키친테이블에 의자, 화장실 텐트까지 가지고 다니고, 포터들은 유니폼까지 입은 ‘부자’ 트레킹단이다.
 
  하지만 마칼루 BC까지 동행키로 돼 있던 두 팀의 길은 이튿날 아침 갈라지고 말았다. 심한 고소증을 느끼며 카우마에 올라온 영국 트레킹단은 궁가르라를 올라서는 것으로 트레킹을 마치기로 결정했다. 트레커보다 현지인들이 더욱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아무래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리라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가혹한 생존법칙
 
눈발 날리는 툴라포카리 설원에서 쉬고 있는 포터들.
  궁가르라를 지난 이후 산세는 알프스 산릉을 걷는 듯하다. 오른쪽 멀리 세계 3위 고봉 캉첸중가(8586m) 산군(山群)이 하늘금을 긋고 있고, 왼쪽으로는 흰 눈을 얹은 암봉(巖峰)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솟구쳐 있다. 우리에게 시즌 첫 입성을 내주는 게 못마땅했던지 동물 발자국이 한동안 우리를 앞선다. 히말라야 표범 발자국이다. 길동무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먹을 게 뭐가 있다고 눈밭에서 서성대는지 알 수 없다.
 
  카우마를 떠난 지 4시간쯤 지나 사누포카리로 올라선다. 코발트빛 호수 수면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곳인데, 지금은 깊은 눈에 덮여 겨울잠을 자고 있다. 이제 십튼패스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도상에는 십튼패스(4170m), 투투라(Tutu La·4080m), 케케라(Keke La·약 4000m) 3개의 고개로 표시돼 있지만, 포터인 사누 셰르파(Sanu Sherpa)는 지도 표기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사누포카리와 툴라포카리 사이의 고개가 십튼패스로, 네팔명으로는 ‘툴라라(Tula La)’라 부른다는 것.
 
  “이거 날씨가 장난이 아닌데….”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더니 사누포카리에 닿는 순간 강한 바람과 더불어 눈발이 더욱 굵어진다. 바룬강변의 양리카르카(Yangri Kharka·3540m)까지 함께 가는 락파 남매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다. 막냇동생은 설사면만 나타나면 미끄럼을 타며 즐거워하더니 덜덜 떨면서 허옇게 질려 있다.
 
  오빠 부부인 다와-템바 셰르파는 도와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다른 셰르파들도 마찬가지.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치링 셰르파가 방한모와 우모 조끼 두 벌을 꺼내 아이들에게 입혀준다.
 
  셰르파뿐 아니라 네팔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생존법칙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1996년 쿰부히말 트레킹 중 타망족 포터 한 명이 고소증으로 고통 속에 숨을 거둘 때도 함께 걷던 두 명의 형제는 도와줄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각박한 환경이 몸에 배어 있기에 형제간에도 도와주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인가 싶다.
 
 
  십튼패스
 
카우마 대피소 맞은편 능선에서 바라본 십튼패스.
  무너져내리는 설사면을 한 시간 가까이 헤치고 헤쳐 십튼패스 위에 올라섰다. 마지막 고개가 보였다. 고개 자체는 그리 높지 않지만 툴라포카리(Tula Phokari·빙하호)로 한참 내려섰다 다시 올라서야 하기에 만만찮다. 날씨만 좋다면 이스와빙하(Iswa Gl.) 주변의 P7(Peak7·6185m), P6(6739m), 참랑(Chamlang·7319m) 등 멋진 설봉을 볼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궂은 날씨가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
 
  “여기서 텐트 치고 하룻밤 묵고 내일 양리카르카까지 가는 게 어떨까요?”
 
  툴라포카리에 포터들이 모이자 왕추가 일정을 바꾸자고 한다. 깊은 눈과 눈보라에 포터들이 힘들어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바람도 거세지는데 패스 사이에서 야영한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일. 한 시간 정도면 패스 너머 도바테(Dobate·3800m) 대피소가 나오는데, 현명한 생각이 아니다 싶었다.
 
  강행을 결정하자 눈치를 살피던 포터들도 벌떡 일어나 걸음을 재촉한다. 30분 만에 마지막 패스 위에 올라서자 마음이 편해진다. 이제 도바테까지 줄곧 내리막이다. 한데 셰르파나 포터나 넓은 사면에서 도바테 방향을 잡아내지 못한다. 토박이 락파도 앞장서는 듯하다 곧 뒤로 빠진다. 포터 사누 셰르파가 앞장서 내려간다. 세두아 부근 왈룽(Walung)이 고향인 그는 마칼루 BC 트레킹을 일곱 차례나 해낸 포터답게 방향을 잘 잡아 모두 무사히 도바테로 내려선다.
 
  십튼패스 너머 외딴집 도바테는 깊은 눈에 묻혀 있다. 포터들은 눈을 거둬낸 뒤 문을 열고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 모닥불을 피웠다. 우리는 연기에 눈이 매워 잠시도 머물 수 없는 곳이었지만, 현지인에게는 콧노래가 절로 나올 만큼 편안한 곳이었다. 눈밭에 텐트를 쳤지만 편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 침낭 속에 몸을 집어넣자 곧 온기가 퍼지면서 마음이 가라앉는다.
 
  정신없이 십튼패스를 넘느라 잊고 있던 사실을 이튿날 새벽녘 밤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깨달았다. 우리가 머문 곳은 마칼루 내원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 외에는 인간이 없는 신(神)들의 세계였다.⊙
 
  (다음 달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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