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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석의 山이야기

北美대륙 最高峰 데날리

흰 눈처럼 순수한, 환상을 좇는 멍청이 산꾼들

글 : 한필석  전 《월간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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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레스트 등정한 고상돈 대원이 세상 떠난 매킨리峰, 2015년부터 원래 이름인 데날리로 환원
⊙ 포터·셰르파들의 도움 받을 수 있는 네팔 히말라야와 달리 등반객이 식량·장비 옮기면서 등반해야
⊙ 말없이 苦行 하듯 눈보라 뚫고 나갈 때는 ‘무엇 때문에 이 고생 하나’… 頂上에서 내려다보는 멋진 풍광에 모든 고생 보상받는 듯
눈처마를 이룬 설릉을 따라 북미대륙 최고봉 정상에 올라선 김덕환씨.
북미 대륙이 발아래 놓이는 순간이다. 산꾼들은 이런 순간의 기쁨을 누리고자 힘든 과정을 견뎌내며 산을 오른다.
  ‘매킨리(Mckinley)’로 알려진 북미(北美)대륙 최고봉 ‘데날리(Denali·6194m)’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봉(最高峰) 에베레스트(8848m) 정상에 오른 고상돈 대원이 1979년 하산 길에 목숨을 잃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려진 고봉이다. 원래 이름이 데날리였으나 미국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의 이름을 따서 ‘매킨리’라고 부르다가 2015년 데날리로 돌아왔다.
 
  데날리는 필자에게는 추억이 많은 산이다. 1994년 초여름 필자를 포함한 8명의 클라이머는 북미 최고봉 등정(登頂)의 꿈을 안고 데날리를 찾았다. 3주간의 원정 기간 동안 산에 관한 얘기를 많이 나눴다. 당시 등반대를 이끈 박영석 대장은 1993년 에베레스트 무산소(無酸素) 등정을 달성했지만 ‘8000m 14좌 완등(完登)’이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한왕용 대원 또한 8000m 고봉을 하나도 못 오른 상태였다. 1992년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5642m)를 등정한 강준호 형은 꿈이 컸다. 데날리에서 당시만 해도 낯선 ‘7대륙 최고봉 완등’이란 목표를 세우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결과적으로 고소 적응력뿐만 아니라 체력도 시원찮은 필자를 제외한 7명 모두 데날리 정상에 올랐고 무사히 하산했다. 필자는 미련이 남아 2008년 재도전에 나섰다. 정상에 올라서자 마음이 무거웠다. 1998년 1월 2일 남미(南美)대륙 최고봉 아콩카과(6959m)에서 돌아오지 못한 강준호 형이 그리웠다. 1994년 데날리 등반 중 준호 형과 여럿이서 찍은 사진이 지금도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면 아쉽고 씁쓸해진다. 박영석도 없다. 박영석은 2011년 가을 도전한 안나푸르나 남벽(南壁)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선경 펼쳐지는 웨스트버트레스 따라 등반
 
탈키트나의 K2 항공사 부근의 산악인 묘에 있는 고상돈 추모비.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고상돈은 이태 뒤인 1979년 데날리 등정 후 하산 길에 추락사했다.
  데날리 국립공원사무소가 위치한 탈키트나에서 경비행기로 만년설 빙하 위의 랜딩포인트(2100m)에 내려선 이튿날부터 날씨가 나빠졌다. 결국 일행 셋은 화이트아웃 속에서 모터사이클힐(3400m)을 올라서야 했고, 강풍 속에서 윈디코너(Windy Conner)를 거쳐 매킨리시티(4300m, 이하 시티)에 다가가야 했다. 포터나 셰르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네팔 히말라야와 달리 데날리는 등반객이 식량과 장비를 모두 옮기면서 등반해야 한다. 보름간 쓸 식량과 장비를 담은 배낭을 짊어지고 썰매를 끌면서 이동해야 했기에 체력소모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5월 25일은 랜딩포인트 출발 이후 처음 맞는 휴일이었다. 거대한 설원(雪原)인 시티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팀의 텐트들이 꽤 큰 텐트촌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 모두 하이캠프인 데날리빌리지(5250m)로 올라설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5월 23일, 24일 이틀간 불어닥친 폭풍설 때문에 데날리빌리지에는 발이 묶인 산악인이 많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정오경, 체코 남녀 산악인 2명이 우리 텐트 옆에서 눈을 파는 모습이 보였다. 등정 직후 폭풍설이 몰아쳐 사흘간 하이캠프에 갇혀 있다가 내려선 이들이었다. 여자와 달리 남자는 우울한 표정이었다. 동상(凍傷) 때문이었다. 그는 시티 의료텐트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상태가 심각해 도보로 하산하지 못하고 이튿날 오전 헬기로 후송돼야 했다. 시티에 머문 일주일간 이렇게 동상 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헬기가 세 차례나 떠올랐다. 데날리에서는 추위와 바람이 가장 위험한 방해물이다.
 
  “어휴, 이러다 기회도 없는 거 아니에요?”
 
  날씨가 좋지 않자 모두 불안해한다. 그런 상황에서 5월 27일 바람이 잔잔해진 틈을 타 헤드월(Head Wall·4940m, 약 600m 높이 설벽) 위쪽 설릉(雪稜)에 짐을 올려놓고 시티로 내려섰다. 레인저들에게서 일기를 확인한 결과 5월 30일 바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시티에서 하루 쉬었다 하이캠프로 올라 그 다음날 정상 공격에 나서기로 계획을 세워놓았기에 딱 맞는 날짜였다. 그런데도 정오를 넘어서자 몇몇 팀은 헤드월로 올라선다. 일정에 쫓기게 된 팀들이다.
 
  “시티에 오른 첫날 소주가 얼어붙더니 어젯밤은 텐트 안 기온이 영하 16℃나 됐어요. 정말 대단해요. 누에고치의 고통을 알 것 같아요.”
 
  김덕환씨는 아침에 눈을 뜰 때면 누에고치가 떠오른다고 했다. 두툼한 우모복을 입은 채 침낭 속에 쏙 들어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입김이 닿는 부위의 옷과 침낭에 허옇게 서리가 끼거나 얼어붙어 있곤 했다. 밤 11시까지도 환한 백야(白夜)가 이어지다 보니 답답해도 침낭을 얼굴까지 가리지 않으면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7대륙 最高峰 完登 꿈꾸던 강준호
 
폭풍설과 화이트아웃 속에서 C3를 향해 오르는 김덕환씨가 암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밤새 몰아친 바람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룬 5월 28일은 결혼 20주년 기념일이다. 집에서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여념 없을 아내를 생각하니 미안하기 그지없다. 누에고치 생활이 뭐가 그리 좋아서 특별한 날마저 집을 비웠는지.
 
  “형, 뭐 하세요?”
 
  14년 전 비슷한 시기, 필자는 텐트 천에 세계지도를 그리는 강준호 형을 보곤 멀쩡한 텐트를 다 망가뜨린다 싶어 왜 그러냐고 물었다.
 
  “필석아, 아시아에선 에베레스트가 가장 높고, 유럽은 엘브루즈, 북미는 여기, 남미는 아콩카과, 아프리카는 킬리만자로가 대륙을 대표하는 최고봉으로 알고 있는데, 나머지 2개 대륙 최고봉은 어디냐?”
 
C2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김병석씨. 캠프 구축 시에는 눈을 파내고 눈벽돌로 담을 쌓아 바람에 대비해야 했다.
  엉뚱한 사람답게 뚱딴지같은 질문을 했다. 당시 대장으로 참가한 박영석에게 대답을 들은 강준호 형은 텐트 천에 그린 각 대륙에 최고봉의 이름을 적고 깃발을 표시했다. 언젠간 태극기를 꽂겠다는 각오였다. 그러곤 “좋다, 해보자” 하곤 7대륙 최고봉 도전을 ‘공식 발표’했다. 그 한 해 전 엘브루즈를 오르고, 1997년 킬리만자로(5895m)도 등정한 준호 형은 1998년 1월 함께 도전한 아콩카과 정상에 오른 뒤 하산 길에 추락사하고 말았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산악인 가운데 7대륙 최고봉 완등을 꿈꾸는 이는 거의 없었다. 외국 산악인들은 달랐다. 외국인들은 캠프를 두리번거리다 말 통하는 산악인을 만나기만 하면 그가 오른 대륙 최고봉에 대해 얘기하곤 “데날리 다음은 어느 봉이냐?” 묻곤 했다. 많은 산악인에게 7대륙 최고봉 완등은 큰 관심사였다.
 
  5월 30일, 하이캠프로 올라서는 날이다. 대개 헤드월에 햇살이 내린 후 등반을 시작하지만 서둘렀다. 조금 추울 때 걷는 편이 힘이 덜 들기 때문이다. 이틀 전 짐을 데포(산을 등정하기 전에 장비들을 특정 지점에 미리 가져다 놓는 것. 영어 ‘deposit’에서 나온 말-편집자 주)시킬 때에 비해 힘이 더 든다. 이런 체력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걱정된다. 다행히 헤드월에 접어들자 속도가 빨라지고 이틀 전보다 30분 빠른 3시간 반 만에 헤드월 상단에 올라선다.
 
모터사이클힐을 올라서는 산악인들. 커니스를 이룬 설릉이 아름다운 곳이다.
  헤드월 위쪽 설릉에 묻어두었던 식량과 장비를 꺼내 배낭에 집어넣자 묵직하다. 가파른 설릉을 따라 워시번 엄지손가락 바위(Washburn’s Thumb)에 도착할 즈음 미국 클라이머들이 추월해 간다. 맹인 한 명을 정상까지 올리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산악인들이다. 맹인 산악인은 굳은 의지 속에서 하이캠프를 향해 힘차게 올라가며 우리를 머쓱하게 했다.
 
  “와~, 정말 멋있네요. 그림 같아요.”
 
  우리 등반로인 웨스트버트레스(West Buttress)는 육체적·정신적 고통만 주는 능선이 아니다. 헤드월을 올라설 때는 각양각색의 텐트들이 캠프촌을 이룬 매킨리시티가 아름답게 바라보이고, 그 뒤로 웅장하게 솟구친 헌터(Hunter·4442m)와 포레이커(Foraker·5304m)는 보석처럼 반짝이며 감동케 했다.
 
  헤드월을 올라선 다음 능선을 따르며 구름을 뚫고 솟구친 설릉이 자아내는 선경에 취해 넋을 잃고 말았다. 내일 올라서야 할 데날리패스 왼쪽으로 고개를 빼꼼 치켜들고 있는 데날리 북봉(5934m)은 어서 오라 부르는 듯하다. 이런 풍광에 데포해 놓은 짐을 배낭에 넣어 한층 힘겨운 상황인데도 김병석씨와 김덕환씨는 즐거움이 넘치고 멋진 풍광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빌리지’ 산책
 
매킨리시티에 설치한 이탈리아 팀 캠프. 텐트가 보이지 않을 만큼 담을 높이 쌓고, 주방까지 꾸며놓았다.
  엄지손가락 바위 앞에 올라서자 여자 산악인을 선두로 4명의 외국 클라이머가 내려온다. 어제 하이캠프로 향했던 이들이다. 표정이 어둡다. 오늘 오전 정상 공격을 시도했으나 강풍에 실패하고 시티로 내려서자니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은 분명 내일 날씨가 더욱 좋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정에 쫓겨 오늘 정상 공격에 나섰으리라.
 
  데날리에 도전한 수많은 팀은 3주 안팎의 일정으로 등반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시즌처럼 대엿새씩 날씨가 좋지 않은 상황을 만나면 등반 가능 기간은 2주밖에 되지 않고, 원정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등반 기간을 2주 정도 잡은 우리 팀 역시 답답한 마음에 어제 하이캠프로 올라설까 망설였던 것이다.
 
  시티 출발, 6시간 반 만에 도착한 하이캠프는 차분한 분위기다. 외국 산악인 대부분 내일 등정을 앞두고 체력을 최대한 아끼고 있나 보다. 우리로서는 캠프지를 만드는 게 시급한 일. 시티의 5인용 텐트보다 작은 3인용 텐트지만 삽으로 눈을 파내고, 눈톱으로 눈벽돌을 잘라내 텐트 주변을 둘러쌓노라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주변의 외국 산악인들이 우리 캠프에서 눈길을 떼지 않는다.
 
윈디코너에서 모터사이클힐로 내려서는 외국 등반가들. 윈디코너는 강풍으로 악명 높은 고갯마루를 일컫는다.
  하이캠프의 70여 외국 클라이머들은 대부분 사나흘씩 묵고 있다. 내일 등정길에 나서겠다는 우리 얘기에 의아스런 표정이다. 이들은 마지막 캠프에서 체류하는 시간을 짧게 하고 등정을 시도하는 게 좋다는 우리의 등반 상식과 생각이 달랐다. 그보다는 5250m 높이 설원인 데날리캠프에서 여러 날 적응 기간을 갖고 정상을 향하는 게 성공 확률이 높다는 판단이다.
 
  텐트가 매킨리시티 캠프에 비해 좁지만 그래도 아늑하다. 눈을 녹여 차를 여러 잔 마시고 동결건조미 두 봉으로 저녁을 해결한 다음 ‘빌리지 산책’에 나선다. 레인저캠프 부근의 커다란 렌치에는 로프가 잔뜩 감겨 있다. 사고자를 헬기 접근이 가능한 매킨리시티까지 후송하는 데 쓰이는 구조장비였다. 하이캠프와 매킨리시티와의 표고 차가 1000m에 이르니 결국 거의 1000m 이상의 로프가 감겨 있는 셈이다.
 
  하이캠프는 ‘데날리빌리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늑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매킨리시티의 캠프들이 개미만큼 작게 보이고, 헌터와 포레이커뿐 아니라 카힐트나 빙하로 뻗어내린 웨스트버트레스 설릉, 그리고 그 너머 피터스빙하(Peters Gl.) 일원의 설산들과 그 너머로 거대한 평원까지 몽땅 바라보인다. 설산의 아름다움과 대평원의 편안함이 함께 곁들여지면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잠시라도 장갑 벗었다가는 손가락 잘라야 될 수도
 
피곤한 표정으로 웨스트버트레스 능선을 따르는 김병석씨. 포레이커(5304m)와 카힐트나 빙하가 바라보인다.
  “일찍 출발하는 게 성공 확률이 높다는 형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지금부터 준비하죠.”
 
  새벽 4시30분, 김덕환씨가 깨운다. 기껏해야 대여섯 시간밖에 안 잔 것 같은데 워낙 푹 잠이 들다 보니 몸이 상쾌하다. 그래도 깨죽과 잣죽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뜨거운 물을 보온통에 채워 넣은 다음 장비를 챙기고 나니 오전 7시가 다가온다. 우리 캠프 위쪽에 텐트를 치고 있는 미국 상업등반대원들은 우리 눈치를 보며 출발하지 않는 분위기다.
 
  7시 정각, 데날리빌리지 설원을 가로질러 데날리패스로 접어든다. 그제야 미국 상업등반대원들이 뒤따라온다. 설벽 길을 느림보 걸음으로 나아가다가 그들에게 양보하자 모두 고마워한다. 14년 전 패스를 올라서는 데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2시간이 지나는데도 데날리패스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미국 팀 꼬리가 고개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도 20분쯤 지나서야 패스에 올라선다.
 
  깊숙한 안부를 이룬 패스에는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따스한 물 한 모금과 간식으로 체력을 보강하고 급사면으로 접어든다. 젊은 남녀 한 쌍이 오버행 바위 아래서 엉거주춤한 상태로 있다. 여자는 막 볼일을 끝낸 듯하고, 남자는 여자의 어색함을 달래주려는 듯 옆에서 껄껄대며 오줌을 눈다. 그리고 1시간쯤 더 올라갔을 때 우리를 추월해 가는 여자에게 김덕환씨가 벙어리장갑을 끼워준다. 매킨리 등반 중, 특히 정상을 향하다 잠시라도 장갑을 벗는다면 손가락을 잘라야 하는 위험마저 있다. 고소증이 심하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이다.
 
  “형, 그 속도로 정상까지 갈 수 있겠어요?”
 
  이제 완경사 설릉을 따라 풋볼필드(Football Field)로 올라서는 클라이머들과 그 너머에 솟구친 정상 능선이 보인다. 능선 오른쪽 턱이 카힐트나 혼(Kahiltna Horn·약 6100m)이요 왼쪽 끄트머리가 정상이다. 김덕환씨가 내가 100발짝에 한 차례씩 쉬면서 숨을 고르자 그런 속도로 갈 수 있겠냐고 묻더니 선두 자리를 내게 넘긴다. 속도가 처지는 나를 앞장세우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풋볼필드를 가로질러 카힐트나혼(능선 우측 봉우리)을 향하는 산악인들. 능선 왼쪽에 정상 남봉이 솟아 있다.
  선두 자리를 넘겨받자 힘이 솟는다. 마지막 언덕을 넘어 넓디넓은 설원인 풋볼필드와 정상 능선이 마주 보이자 14년 전 기억과 지금은 만날 수 없게 된 선배 얼굴이 떠오르고 한편으론 흥분이 인다. 당시 일행은 화이트아웃과 강풍이 번갈아 등장하는 상황에서 정상으로 향했다. 찬 바람이 몰아치는 데날리패스를 올라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불편해지더니 설사를 하고 말았다. 안전벨트를 풀고 바지를 내리고…. 다시 바지를 입었을 땐 엉덩이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손가락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가슴팍에 손을 넣고 주무르기를 20여 분. 손가락이 서서히 풀려가자 마음이 놓였다. 다시 용기를 내어 일행을 뒤쫓아 갔으나 시원찮은 걸음으로 쫓아가기에는 너무 벌어져 있었다.
 
  광풍이 불어왔다. 설릉에 피켈을 꽂고 거의 기도 자세를 취했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때 누군가 등을 툭툭 치며, “괜찮으냐”고 묻더니 함께 오르자 했다. 외국 클라이머였다. 그는 너무도 편안한 모습으로 앞장서 나아갔다. 그렇게 생면부지 외국 클라이머의 뒤를 쫓아 오르기를 1시간쯤 했을 때 거대한 설원인 풋볼필드가 펼쳐지고, 정상 능선에서 움직이고 있는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일행은 이미 하산 길에 접어들고 있었고, 30분쯤 지나 풋볼필드에서 만난 한상국 형은 “합의했던 대로 내려가자”며 하산을 종용했다. 당시 개인 8명이 모여 나선 원정이었던 터라 사고 시 뒤처리가 걱정되었다. 해서 등정 길에 나섰다 마지막 등정자가 내려올 때 만나는 사람은 무조건 하산하기로 시티에서 약속했다. 필자의 제안이었는데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풋볼필드를 지나 급경사 설벽에 접어들자 발걸음이 더욱 느려진다. 모두 고뇌에 차 있다.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 걸까. 한 발 한 발 오르면서도 왜 이렇게 무의미한 행위를 하나 회의가 인다. 그것도 적잖은 시간과 경비를 들여가면서까지. 정상에 서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어렵사리 설벽을 올려치고 카힐트나혼에 서자 배낭이 여럿 놓여 있다. 정상을 향한 등반객들의 소지품들이다. 바람이 매섭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좁은 설릉을 따르다 왼쪽으로 떨어지면 150여m 아래 풋볼필드요, 오른쪽은 3000여m 아래 이스트포크 카힐트나빙하(East Fork Kahiltna Gl.)다. 바람이 획 불어댈 때마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선다. 그래도 멋진 풍광을 사진에 담겠다는 욕심에 배낭에 넣어둔 카메라를 끄집어내자 김덕환씨는 어이없어한다.
 
  강풍이 휘날리는 정상은 카힐트나혼에서 올라온 날카로운 설릉과 캐신리지, 그리고 사우스버트레스(South Buttress) 3개 능선의 꼭짓점에 솟구쳐 있다. 남쪽 캐신리지 쪽은 웅장하면서도 험난하고, 그 뒤로 헌터는 기운차게 솟구쳐 힘을 북돋아 주고 있다. 정상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던 동쪽 산군(山群)은 멀리 대평원과 이어지면서 편안한 산세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런 풍광을 보며 가슴 벅차하기 위해 50kg 가까이 나가는 무거운 짐을 끌고 시티로 올라서고, 동상을 각오하면서 하이캠프를 거쳐 예까지 올라온 것이란 말인가. 그래도 분명 보상이었다. 지금 이곳이 아니라면 볼 수 없는 풍광이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김덕환씨는 ‘현수야, 사랑해’ 글자를 써넣은 스포츠타월을 펼쳐 들고 찰칵하고, 김병석씨 역시 가족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듬뿍 적어 넣은 타월을 펼쳐 들고 찰칵한다. 그 사이 외국 산악인들이 한 명 한 명 올라온다. 모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한쪽 아이젠으로 반대쪽 신발을 찍으면서 균형을 잃고 미끄러지는 클라이머가 있었으나 다행히도 500여m 높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멈추었다.
 
  하산 길….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마음은 편안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설릉을 오르는 데 왜 그리 힘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외국 클라이머들 역시 마찬가지. 정상으로 향할 때의 무표정함 대신 부드러운 눈길을 주고받으며 등정을 축하해 준다. 이제 마음 놓고 카메라를 눌러댈 여유도 누리고, 김덕환씨는 아껴두었던 보온병 안의 따뜻한 물을 선배들에게 따라준다.
 
  등정 9시간, 정상체류 1시간30분, 하산 4시간30분 등 15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하이캠프로 내려섰을 때는 밤 10시. 그런데도 텐트 밖은 밝기만 하고, 텐트 곳곳에서 도란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바람 소리까지도 다정하게 느껴진다.
 
 
  頂上을 오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
 
북미대륙 최고봉 데날리 정상에 오른 일행. 왼쪽부터 필자, 김병석, 김덕환 대원.
  이튿날 아침, 그제 저녁이나 어제 아침과 달리 클라이머들이 텐트 앞에서 커피 한 잔씩을 손에 들고 담소를 나누거나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등정의 기쁨을 만끽하는, 너무도 행복한 표정들이다. 이제 서두를 이유도 없다. 몸이 이끄는 대로 마음 닿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정상을 오른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이자 자유가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텐트를 걷고, 배낭을 꾸린 다음 빌리지 산책에 나선다. 역시 아름다운 곳이다. 데날리만큼 아름답고 다양한 산세를 지닌 산도 드물 것이다. 도화지를 펼쳐놓은 듯 깨끗하고 거대한 빙하 주변에 반짝이며 솟구친 수많은 설봉과 설릉들…. 이 산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흰 눈만큼 순수한 등산인들이 찾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산이 수많은 고산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느껴져 왔고, 14년 만에 다시 찾은 게 아닌가 싶어졌다.
 
  헤드월을 향해 내려서는 사이 부지런한 클라이머들이 벌써 올라오고 있다. 고뇌에 찬 표정들이다. “정상을 밟았느냐”고 묻고는 축하해 주는 클라이머들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말 한 마디 건넬 힘조차 없어 보인다. 그들은 우리가 겪었던 똑같은 길을 따르며 환상을 좇는 멍청이 산꾼들이었다.
 
  강준호 형도 박영석도 지금도 저렇게 산을 오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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